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경무청 (2)
장수 출신답게 최철주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연병장이 골짜기에 자리한 덕분에 그의 목소리는 더욱 또렷이 전달되었다.
“허허! 전역했으니 여러분은 예비군에 편성되었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겠지? 그런데 군 경험을 살려 경무청 관리가 되는 건 어떻소? 경무청은 포도청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인데, 그 관원들을 통틀어 경관이라 칭하기로 했소. 경관의 역할은 모두 세 가지요. 첫째는 당연히 도적과 같은 범법자를 잡는 것이고, 둘째는 맹수를 구축하는 것, 셋째는 포로의 관리요. 여러분이 잘 싸워 준 덕분에 포로가 얼마나 많은지 아시잖소? 앞으로 그들을 경무청이 관리한다, 그 말이오. 물론 앞으로 경관이 전쟁에 동원될 일은 없을 거요. 전쟁은 군이 하는 거니까. 그러나 예비군은 거주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거나 외침이 있을 시, 소집되어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
군 생활에 신물이 나서 전역을 신청한 이들이라, 대부분 최철주의 말을 흘려듣고 있었다. 그러나 최철주가 대우 부분을 언급하자 분위기가 돌변했다.
“경관 중 가장 직급이 낮은 총순 직은 병졸 출신 전역자가 지원할 수 있는데, 종9품으로 대우해 주기로 했소. 매월 쌀 다섯 말의 가치에 해당하는 녹봉을 받게 되오.”
병사들이 크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최하위 관직이긴 하나 어엿한 관리가 되는 건 물론이고, 녹봉의 양이 꽤 많기 때문이다. 구한말로 치면, 쌀 한 가마니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반 섬이나? 가만! 그럼 농사를 짓지 않아도 우리 식구를 다 먹여 살릴 수 있단 말이네?”
“그렇지. 그렇다고 놀면 뭐 하나? 나라에서 땅도 주는데, 다른 가족은 농사를 지어야지. 그러면 그만큼 재물이 쌓일 거란 말이지.”
“세상에나. 가장 낮은 관직이라도 관리만 되면 그 정도로 받을 수 있다니. 더구나 포도청일세. 그 권세가 하늘을 찌른다는 포도청이라고.”
최철주는 미소를 머금은 채, 이제 예비군이 된 이들의 술렁거림이 멈추길 기다렸다. 이윽고 다시 장내가 조용해지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다음은 경무관이오. 예비역 갑사들이 지원할 수 있는데, 부교 출신은 정9품, 정교와 특무정교 출신은 종8품의 녹봉을 받을 수 있소. 경무관으로 채용이 되면 군과 마찬가지로 중간 간부로 재직하게 되오. 녹봉은 7원으로 책정됐으니…….”
최철주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새로 시행될 화폐제를 기준으로 녹봉을 정했기 때문에 원 단위가 익숙하지 않아 잠시 헷갈린 것이다.
“에, 그러니까 쌀 일곱 말이군.”
최철주의 말에 이번엔 갑사로 전역하는 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사에 해당하는, 참교 전역자는 거의 없었다. 병사였다가 갑사로 진급한 이들은 의무 복무연한이 더 늘어나 부교(중사)로 진급한 후 일정 기간 더 복무해야 전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역하는 갑사들 모두가 부교 이상이었다.
“다음, 위관급 장교로 전역하는 이는 경무감이 될 수 있는데, 종7품에서 정6품의 녹봉을 받게 되오. 그러니 가장 적게 받는 이라도 매월 쌀 한 섬은 족히 되겠지.”
“우와! 쌀 한 섬이라니. 우리 소대장 정말 좋겠다.”
“최하가 종7품이잖은가? 경무감이 될 경우, 우리 소대장은 한 계급 오른 셈이지.”
현재 동해부 군문에서 장교가 된 이들의 삼 할 정도는 원래 군관 출신이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일반 병졸이거나 갑사였던 이들이 전공을 세워 장교가 된 경우였다. 그러다 보니 참위(소위)인데도 전역을 선택한 이들이 많았다. 참위의 품계가 정8품이므로 경무관으로 임용되면 한 계급 더 승진하는 셈이었다.
최철주는 전역자들이 마음껏 얘길 나눌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다시 최철주가 입을 열었다.
“경무청에서 관헌으로 일하길 바라는 이들은 저기 맨 뒤편에 신청서를 제출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으니, 신청하고 가길 바라오. 혹시 그냥 집에 갔다가 마음이 바뀌어 뒤늦게 신청하더라도 받아 줄 것이오. 그러나 처음 조직이 출범할 때 들어오면 더 좋은 보직을 받을 수 있고, 더 빨리 승진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서 결정하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역병들은 연병장 뒤편으로 몰려가 신청서 접수대 앞에 줄을 서더니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다들 군에서 한글을 배워, 읽고 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줄을 선 이들은 전체 전역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천오백 명이었다. 단 하루 만에 꽤 많은 경관 인력을 확보한 셈이었다.
바로 귀환을 선택한 이들은 이제 삼삼오오 모여 훈련소 정문으로 향했다.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다들 들떠 아이들처럼 수다를 떨며, 경쾌한 걸음걸이로 나아갔다. 그러다 누군가 정면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대장군님이다!”
바로 정문 옆에 서 있는 태건을 발견한 것. 태건은 일을 마치자마자 이들을 배웅코자 달려왔다. 수년간 군에서 고생한 이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송찬황과 최철주도 어느새 태건 옆에서 서서 환하게 웃으며 전역병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간 고생했소.”
태건은 전역자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해주었다.
“아, 아닙니다.”
“자넨 낯이 익군. 맞다, 성이 봉씨였지? 흥안성 전투에서 다쳤던. 그래, 다 나았나?”
“예, 예. 나았습죠. 그런데 어떻게 그걸 다…….”
“뭐, 그렇지. 조심해서 가시게. 그간 수고 많았네.”
“고, 고맙습니다. 대장군.”
전역자들은 태건의 손을 맞잡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지난 몇 년 동안 전장에서 동고동락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데다, 하늘과 같은 수장이 직접 손까지 잡으며 잘 살펴 가라고, 그간 수고 많았다고 위로해 줬기 때문이다.
* * *
회령현 하리사에 속한 오산동 두만강 강변.
며칠 전부터 이곳으로 몰려드는 이주민의 수가 부쩍 늘어난 바람에, 이 오산덕 구릉지는 난민촌처럼 변했다. 회령 관리와 주둔군이 열심히 이들을 보살폈지만, 밀물처럼 밀려드는 이주민을 모두 감당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회령 주둔군은 계속해서 추가되고 있는 포로까지 관리해야 했다.
회령 현령 연정률은 오산덕을 둘러보다 한숨부터 내쉬었다. 연정률은 충청도 출신 선비로, 경흥에서 관리로 일하다 얼마 전 회령 현령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어휴! 축하할 일이긴 한데, 너무 큰 짐을 지고 가시는 거 같아 마음이 무겁소.”
“할 일이 많으니 좋은 일이지요. 더구나 도독님과 약조한 게 있으니 지켜야지.”
민유문이 웃으며 대답했다.
국경인의 난 당시 태건에게 항복하며 한 약속이 바로 강외로 나가겠다는 것인데, 태건은 이를 기억하고 그를 새로 용정현의 현령으로 임명했다. 그래서 오늘 용정에서 일할 관리들과 함께 길을 나설 예정이었다. 그래서 민유문을 배웅코자 연정률이 오산덕으로 나온 것이다.
“그래도 용정진에 이라대가 세운 목책도 있고, 마을 내에 번듯한 건물이 많다고 하니 다행이지 않습니까?”
“나도 들었소. 이라대의 동량개 부락이 꽤 컸다고 하니, 일단 거길 기반으로 삼는 수밖에.”
“아, 연대장도 왔네요.”
“오! 한 정령.”
오랫동안 같이 호흡을 맞춰온 제7연대장 한이례가 모습을 드러내자 민유문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한이례도 얼마 전, 태건의 도르기 비라 정벌 작전에서 보조 임무를 맡아 원정을 다녀왔다. 그는 1개 대대 병력을 이끌고 보을하보를 나와 두만강 상류 쪽에 자리한 상보을하 부락과 사지부락 등을 점령했다. 원정을 다녀온 후에도, 그는 회령에서 삼봉평 사이 구간에 설치할 역참 후보지들을 선정하느라 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벌써 임지로 떠날 때가 되었군요.”
“허허! 그렇지.”
“근데 이주민이 며칠 전보다 더 늘었네요.”
인사를 마치자마자 한이례 연대장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주민 촌으로 향했다.
“경성에서 이쪽으로 보내기 시작했다오.”
연정률이 그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동해부 방침에 따라 종성으로 올라가라고 권해 봤지만, 이주민이 회령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뭐, 상관없지 않습니까? 종성에서 석문령을 넘으나, 여기서 오랑캐령을 넘으나 동해란평으로 가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음, 그러고 보니 금강령으로 이름이 바뀌었지요?”
금강령의 옛 이름, 오랑캐령은 산맥 이름이기도 하지만 회령 북서쪽에 자리한 긴 고갯길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력이 약해진 이주민들이 저 험한 고개를 잘 넘을 수나 있을지 걱정되어 그러지요.”
종성 쪽 석문령이 금강령에 비해 고갯길 길이도 짧고 덜 험했다. 또한 태건이 구상한 동서횡단선 도로 노선도 이 석문령을 통과할 예정이었다.
“음, 그런 면도 있군요. 이주민 출신지는 어찌 됩니까?”
“이제 함경도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 남쪽 백성들이오. 경기도 사람이 가장 많고, 그다음은 황해도, 충청도, 강원도 순이요. 아, 그러고 보니 경상도에서도 많이 왔지. 그러나 호남이나 평안도 사람은 아직 많진 않소. 그런데 정말 저 많은 사람한테 충분히 농토를 나눠 줄 수가 있소? 가능하단 얘길 여러 번 듣긴 했으나 저 많은 이주민을 볼 때마다 믿기지 않아서.”
연정률은 아직 금강령 이북 쪽을 다녀온 적이 없어 현지 사정을 잘 몰랐다.
“저도 아직 가 보진 못했지만, 원정을 다녀온 제1군 동료에게 물으니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너른 벌판이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계속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땅이라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더이다.”
“휴! 그래요? 정말 감이 오지 않는군요.”
연정률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제 가시지요. 강 건너 길 닦는 일을 살필 겸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그럽시다.”
“그럼 조심해서 가시오.”
연정률이 민유문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이제 한이례와 관리들은 오산덕을 뒤로하고, 두만강을 건너 오도리인들이 거주하는 사오이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길이 아주 잘 닦였군. 널찍한데다 판판하니 말이야.”
“포로가 좀 많아야죠?”
도로는 사오이 부락까지 거의 직선으로 뚫려 있었다. 회령에서 사오이까지 거리는 대략 10㎞인데, 이 사오이 부락은 앞으로 용정현 사오이사로 바뀔 예정이었다.
민유문 신임 현령 일행을 사오이 부락 사람들은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조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번호 부락이라, 이들은 조선어에도 능했다. 게다가 너른 농토를 보유하고 있어 살림살이도 풍족한 편이었다.
사오이를 벗어난 일행은 금강령으로 들어섰다.
“고갯길에도 도로가 벌써 나 있구려.”
“예. 이 고갯길의 길이가 대략 35리 정도 되는데, 절반 정도까지 공사를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반대편에서도 공사가 진행 중인데, 용정진에서 명동 쪽으로 오고 있답니다.”
“정말 빠르군.”
“포로 수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포석을 깔아 놓은 걸 보니 채석장이 있는 듯한데?”
“저 앞, 고갯길에도 하나 있고, 남쪽의 회령 건너편 계곡에도 있지요.”
“그렇군.”
이윽고, 이들은 고개 중간에 있는 도로 공사가 한창인 지점에 도착했다.
“음, 생각보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군.”
“도독님의 지시에 따라 대우를 잘해 주고 있으니 그럴 겁니다. 음식도 풍족하게 주는 데다, 험하게 대하지 않으니 저들도 잘 따른답니다.”
“포로를 관리할 병력이 부족하진 않소?”
“당연히 부족하죠. 지금 소장의 휘하에 있는 병력의 삼 할은 이곳에 있고, 삼 할은 회령에, 나머지는 회령에서 경흥 방향으로 도로 공사 중인 포로 관리에 동원되고 있는데, 장졸들 모두가 노역하는 포로보다 더 힘들다며 병력을 더 보충해 달라고 난리입니다.”
“나중에 이 일을 경무청에 맡아 한다고 하니, 조금만 참게.”
“뭐, 별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큰 공을 세운 제1군과 달리, 정작 자신의 부대는 포로 관리에 정신이 없다 보니 한이례를 비롯한 모든 지휘관들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 역시 경무청의 출범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