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압록강 유역 진출 (2)
오랜 행군 끝에 마침내 전지로의 부대가 갑산을 거쳐 삼수군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신첨은 측근들을 이끌고 삼수로 향했다. 전지로는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양, 신첨을 반겼다. 항왜 출신 장수이다 보니 그는 함께 싸운 전우를 매우 각별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전지로의 제3연대는 진군하며 만난 여진족 마을로부터 항복만 받았을 뿐, 보급로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 요처에 주둔군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2천에 달하는 병력 ― 1개 대대를 신첨 연대에 떼어 준 상황 ― 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삼수로 입성, 방혹과 군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군수 방혹은 전지로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특이한 이력에 대해 듣고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군을 이끄는 장수가 항왜 출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노토 부락을 모두 토벌했으니, 이제 백두산 이남 지역을 우리 동해부가 고스란히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으면 도독님이 몹시 기뻐할 겁니다.”
“허허! 뭔 대단한 일을 했다고. 그냥 천천히 걸어왔을 뿐인데. 그랬더니 알아서 항복하더라고.”
“어디 이번뿐이겠습니까? 그간 대장군과 함께 얼마나 많은 전투에 참전했는지 모르는 이는 없을 겁니다. 양영만동보에 있던 저는 연달아 들어오는 승전보를 들으며 연대장님 같은 분들의 처지를 몹시 부러워했지요.”
방혹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보니, 전지로가 태건의 최측근 인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허허! 강외 영토를 개척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셨군요.”
“예. 맞습니다.”
마침 방혹이 대화에 끼어들자, 신첨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북쪽 강외 정세가 어떻습니까? 요즘 약탈하러 오진 않습니까?”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고 약초꾼이나 드나들고 있소. 아시다시피 삼수 서쪽은 폐사군이라, 여진인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산삼을 캐 가고 있지요. 삼수에도 약초꾼들이 드나들고 있으나, 침략이라 보기 어려워 그냥 방치하고 있소. 더구나 우린 왜란을 겪고 있으니, 굳이 저들을 자극해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으니까요.”
“잘하셨습니다.”
“하지만… 눈여겨 들여다볼 필요는 있소.”
“왜 그렇습니까?”
신첨의 질문에 방혹은 지도를 보며 폐사군 지역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폐사군에 주로 온하위 여진인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추장들의 성이 김씨라 들었소. 우린 그들을 압록강 부족이라 부르고 있지.”
“온하위의 김씨 가문들?”
“그 근본이 골간 올적합이라오.”
“골간인이요?”
신첨은 깜짝 놀랐다. 콜칸 부족 이야기를 반대편 압록강 지역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아, 예전에 그 일파가 두만강 하구 쪽에서 살다 이주했다고 들었소. 폐사군의 여연과 무창, 또 그 인근의 강내외 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지.”
“그렇군요. 노을가적의 건주위도 예전에 본거지를 옮겼다고 들었습니다.”
“맞소. 그들도 그랬지. 그런데 온하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서 우호적인 번호 노릇을 했는데, 그만 노을가적에게 복속당하고야 말았지 뭐요. 그로 인해 이제 노을가적의 명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으니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단 말이오.”
노을가적은 누르하치의 조선식 발음이다. 조선 측은 공식 이름으로 노을가적을 썼지만, 줄여서 ‘노추’라 부르기도 했다.
사실 방혹의 말은 절반만 맞았다. 온하위, 다른 이름으로 얄루강(압록강) 부족은 누르하치에게 복속된 건 맞으나, 직접적으로 통치 체제에 흡수된 상태는 아니었다. 즉 반독립적인 지위에 놓여 있는 셈이었다.
신첨은 방혹의 말을 듣고 온하위 여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노을가적의 하수인이 되었으니, 노을가적은 온하위를 통해 우리 변경 상황을 가늠해 보겠군요.”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소.”
신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군수님, 혜산진 첨사분도 이번에 경흥으로 가기로 했으니 군관들과 함께 가서 새로운 보직을 받으시지요. 도독님이 크게 기뻐할 겁니다.”
“허허! 고마운 말이오. 빨리 가서 도독님을 뵙고 싶군요.”
신첨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면에 걸린 지도로 다가갔다.
“군수님 말씀을 들으니 갑산과 이곳 삼수 전역을 통틀어 가장 위험한 곳은 폐사군과 접한 서북쪽이군요?”
“맞소. 건주부의 힘이 막강한데다 그 세력권에 속한 곳과 접하고 있으니.”
“그럼 제가 병력을 이끌고 가서, 이곳 구갈파지보를 지키겠습니다.”
“흠. 좋은 생각이오. 천명이나 되는 병력이 거길 든든하게 지킨다면, 그 주변의 여진족들은 극도로 조심할 겁니다.”
방혹이 신첨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나섰다.
삼수군의 서북쪽 변경에 두 개의 보가 있는데, 갈파지보와 옛 갈파지보, 즉 구갈파지보였다. 두 성채는 장진강 하구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압록강 강변에 자리해 있었다. 이들 중 서쪽에 있는 게 바로 구갈파지보였다.
“그럼 난 삼수 읍성과 다른 압록강 진보들을 맡으면 되겠군.”
전지로가 알아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
“예, 부탁드립니다.”
“그럼 혜산진은 갑산 부대가 맡게 되오?”
“예. 김성 연대장에게 부탁해야죠. 제 휘하 부대가 백두산 부근에서 북쪽 오랑캐가 드나드는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갑산 후방에 2개 대대나 배치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읍성에 일부만 남기고 병력 대부분을 혜산진을 비롯한 압록강 강변에 배치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혜산진 동북쪽의 여러 요처에 진지도 구축해야죠.”
“좋은 생각일세. 그럼 곧바로 김성 연대장과 상의해봐야 할 것 같군.”
신첨의 의견대로 병력이 배치된다면, 압록강 부근에 꽤 많은 동해부 병력이 집결하게 된다.
* * *
황진은 측근 강승덕과 함께 덕원부의 진석령 고개를 넘고 있었다.
“휴우! 큰일이군. 겨우 이런 나지막한 고개 넘는 것도 힘겹다니.”
“아직 기력을 다 회복 못한 모양입니다. 저도 좀 그렇군요.”
두 사람 모두 아직 고문 후유증이 남아 있어,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내 고생해야 했다.
측근들은 황진의 남원행을 만류했다. 죽기 직전까지 갔을 정도로 심하게 고문당했으니, 먼 길을 가다 보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가족을 데려올 테니, 먼저 경흥에 가 있으라고 권한 것이다. 그래서 황진을 돕기 위해 강승덕도 남아 동행하게 되었다.
황진과 강승덕만 힘들어하는 게 아니었다. 대기근 탓에 어쩌다 동행하게 된 이주민 대부분이 제대로 먹지 못해 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고갯마루에 다다른 황진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세상에… 이게 다 뭔가?”
“아니, 이 산속에 어쩌다… 꼭 별세상 같습니다.”
진석령 고개의 북쪽 사면은 산 전체가 난민촌으로 변해 있었다. 진석령이 첫 번째 구휼소 역할을 맡다 보니, 셀 수 없이 많은 이주민이 가던 길을 멈추고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부분 기력이 소진된 탓에 영양을 보충하며 며칠씩 쉬어 가다 보니 졸지에 산속에 마을 하나가 생긴 것이다.
황진과 강승덕 역시 여민단의 도움이 필요했다.
“함경남도의 주인은 의병이라더니, 바로 저들인가 보네.”
“예. 그 수가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여민단의 수는 무려 4천 5백에 달할 정도로 불어난 상태이고, 이곳 진석령에만 1개 연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조선 조정은 토벌군을 보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황진은 의병이 건네준 주먹밥을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허! 이주민의 수가 엄청나군. 조선 팔도에서 굶주림에 지친 자들은 다 이쪽으로 오는 것 같네, 그려.”
“오는 동안에도 많이 만났지 않았습니까? 소문도 그렇게 돌았고.”
“그랬지. 일단 진석령까지 가면 살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런데 실제로 그렇군.”
황진과 강승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짓고 있는 의병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근데 이 많은 사람을 먹일 식량을 어떻게 모았소?”
“태 장군 덕이오. 동해부에서 계속 배편으로 식량을 보내 주고 있다오. 전에는 단천에서 보내줬는데, 이제 뱃길을 통해 직접 보내 주니 양도 더 많아졌소.”
이미 많은 이들이 같은 질문을 한 탓에, 의병은 막힘없이 술술 얘기했다.
“정말 굶주린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군.”
“겨우 도움이라니요?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야지. 태 장군님이 아니었다면 벌써 수십만 명이 삼도천을 건너고도 남았을 거요.”
“그렇다면 맞는 말이군. 생명의 은인이란 말이.”
“그럼 이 또한 앞날을 내다보고 대비해 놓은 것이라 봐야 합니까?”
“허허! 그렇게 볼 수밖에 없지.”
황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더구나 완충지대로 여민단을 내세웠잖은가? 이들로 인해 조정의 경계심이 조금 완화되었으니, 구호 활동에 별다른 문제가 없게 되었지.”
“아, 그렇군요. 태 장군 휘하 병력이 이곳에 있다면 통행이 벌써 막히고도 남았겠네요.”
강승덕 역시 절묘한 안배에 감탄했다.
“그럼 동해부에서 온 배는 어디서 볼 수 있소?”
황진이 의병에게 물었다.
“왜? 구경 가시게요? 고개 넘어서 동쪽으로 가면 원산포가 나오는데, 거기 가면 볼 수 있소. 배가 교대로 오가고 있으니 조금 기다리면 동해부 배를 볼 수 있을 거요.”
황진은 강승덕과 함께 원산포로 향했다. 두 사람은 운이 좋아 마침 포구로 접근하는 배를 볼 수 있었다.
“배 모양이 특이하군. 저거 낯이 익은데? 아, 왜국 계빈주에서 봤군.”
황진은 사카이항에서 본 거대한 남만배를 떠올렸다. 동해부에서 온 배는 그보다 훨씬 작았지만, 남만배와 비슷한 면이 많이 엿보였다.
동해부 선단은 중첨선 두 척과 판옥선 두 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황진은 아예 길가 바위에 걸터앉은 채, 배가 포구에 정박하는 장면과 화물을 하선하는 작업을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혹시… 황 장군님?”
다른 의병과 달리, 번듯하게 갑옷을 차려입은 무관이 다가와 물었다.
“누, 누구요?”
황진은 깜짝 놀랐다. 강승덕은 재빨리 환도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충청 병사 영감, 맞습니까?”
“그렇소만.”
황진은 이 지역이 여민단 세력권에 속한 곳이란 사실을 떠올리고 순순히 인정했다.
“전 여민단 우군 소속 제2대대장 오혼입니다.”
“아, 여민단 소속 장수군. 근데 대대장은 무엇이오?”
“오백여 병력을 지휘하는 무관입니다.”
“음, 오백이나? 많군.”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장군.”
남부 지방을 대상으로 한 여민단의 첩보망은 매우 광범위하고 물 샐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왜란 전황과 조선 조정의 동향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이를 파발을 통해 동해부에 전달해 왔다. 그 덕분에 태건도 며칠 정도만 지연된 상태로 남부 정세를 여민단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 어찌 아셨소?”
“죄송한 얘기지만 동해부에서 영감의 용모파기가 이미 내려왔습니다.”
“내 용모파기를? 누가?”
“태 대장군님이 보냈습니다.”
“뭐라, 태 장군이? 언제 보냈소?”
“국문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에 내려왔습니다.”
“국문이라니… 허허! 보내며 뭐라고 했소?”
황진은 이미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분명 오실 테니, 무장의 풍모가 물씬 풍기는 이들 중에 찾아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진석령에서 수하 하나가 용모파기와 비슷한 분을 본 것 같다고 보고했지요. 그래서 급히 물어물어 원산포까지 쫓아왔습니다.”
“역시 태건 장군이야. 허허허! 왜국에서 그렇게 날 놀라게 하더니, 여기서 또 그러는군.”
“정말 그렇습니다. 앞날의 일을 훤히 꿰뚫어 보는 분 같습니다.”
강승덕도 이제 태건을 인정하고, 존칭을 쓰기 시작했다.
“그럼 이쪽으로 가시지요.”
오혼은 황진과 강승덕을 동해부 선단이 있는 포구로 데려갔다.
“어? 저 사람은 혹시 여자?”
“하하! 아주 유명한 분이지요. 수군 장수인데, 태건 장군의 여동생분입니다.”
황진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배를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는 태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