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폐사군 (1)
태건은 처음으로 생산된 연청, 즉 고무 제품을 시험해 보고 있었다.
“좀 그런데? 그래도 첫 산물이니, 뭐.”
연청을 만지작거리는 태건의 모습을 주의 깊게 보고 있던 허균이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내밀었다.
태건은 웃으며 연청 한 조각을 내주었다. 허균은 연청을 눌러 보고 당겨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신기한 재질이긴 하나, 이걸로 뭘 만들지요?”
“피대?”
피대는 곧 벨트로, 증기기관의 회전축과 기계의 회전축을 연결하는 데 주로 쓰이고 있었다. 증기기관의 수가 늘어나면서 질기고 내구성이 좋은 벨트의 개발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시점이라, 태건은 벨트부터 떠올렸다.
“또 요걸 수레바퀴에 감으면 덜 요동치는 데다, 바퀴의 수명도 늘어나죠.”
홍은도 웃으며 타이어 개념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충격을 완화해 주는 데는 다 쓸 수 있지 않겠어? 말랑말랑하니까.”
이하륜도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튼 성공한 것이오?”
허균이 묻자, 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오. 이거 만드느라 도독님이 얼마나 수고했는지, 그걸 생각하면…….”
태건은 화학공업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이 고무 제품의 개발에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바쁜 와중에도 며칠 동안 조산만 공방에서 살다시피 하며 공정을 연구했다. 그나마 이하륜이 부품을 대부분 만들어 놓은 덕분에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태건이 만든 고무는 훗날 폴리부타디엔 고무란 이름이 붙는, 초기형 합성고무였다. 그러나 현시대의 기술력으로 이 제품을 개발하는 일이란 무척 힘든 과제였다.
목초액에서 탄화수소 화합물을 추출하고 이를 고온으로 가열한 다음, 빠르게 냉각하는 등의 공정을 거쳤다. 그러다 보니 이런 기능을 구현할 여러 기계와 장치들이 필요했다. 어쨌든 규모가 작은 생산 시설에서 만든 조악한 제품이긴 하나, 성공적으로 출발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태건은 훗날 국화동의 석탄화학 공업단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여기서 생산된 나프타로 다시 대규모 합성고무 공장을 지을 예정이었다.
“형님, 흑연 원료도 많이 쌓였어요. 이제 연필 개발에 들어가야죠?”
“맞다. 연필도 있었지.”
“오빠 좀 쉬게 해 줘요. 연청 개발한다고 고생했는데, 바로 또 일을 들이대?”
“그, 그건 내가 할 일이라고.”
“아, 그러셨구나.”
이하륜이 급히 말을 바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홍은이 눈을 흘기며 하륜을 보았다.
“그래, 동생이 해 봐. 어렵지 않을 테니까.”
“넵.”
이하륜은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제로 이하륜은 그간 연필 제조 방식을 놓고 무척 고심해 왔다. 연필심을 굽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공정이다. 흑연 가루와 물, 점토를 혼합해서 국수처럼 뽑아낸 다음, 이를 가마에 넣어 구우면 그만이다. 물론 경도를 조절하기 위한 최적의 배합 비율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시간만 들이면 되는 일이었다.
정작 문제는 몸체로 쓸 적절한 목재를 찾는 일이었다. 통상 연필 재료로 쓰이는 삼나무나 편백나무는 일본에서 주로 자라는 수종이다. 그러므로 동해부 내에서 다른 적당한 대체재를 찾아야 한다.
아울러 접착제도 필요했다. 연필심을 나무에 박아 넣는 방식보다 절반을 자른 거푸집 형태로 만들어 심을 끼운 다음, 접착제를 바르고 나서 나머지 나무 절반을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할 생각이었다.
“대충 종이와 연필이 비슷한 시기에 생산되겠지?”
“뭐, 대충?”
“그렇다면 소설책을 또 출간해 볼까?”
“허허! 좋지요. 안 그래도 첫 소설집이 화제였소. 근데 수량이 적어, 다들 불만이 많았습니다. 책 빌려주는 서점도 책이 누더기가 될 정도로 손을 탔다고 했소.”
관보를 통해 공개 모집한 소설집은 크게 성공했다. 홍길동전을 통해 소설에 재미를 붙인 주민들은 소설집이 출간되자마자 바로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종이의 부족으로 간행 부수가 적다 보니 곧바로 품귀 현상이 일어나, 책 대여료마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태건은 이 현상에 주목하고, 앞으로 소설책을 더 많이 출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또 관보 간행 간격을 더 좁히고, 민영 신문도 발행하면 좋을 것 같군.”
“신문이요?”
허균이 물었다.
“관보를 민간이 발행한다고 생각하면 되네. 정기 구독자를 모아 돈을 받은 다음, 그 대가로 신문이 발행되면 구독자에게 배달해 주는 거지.”
“오! 그거 괜찮네요.”
“종이 생산량이 대폭 늘면 할 수 있는 게 많으니까, 미리 준비해 놓게.”
“예, 도독님. 그럼 교과서 출판도 준비하겠소.”
허균은 종이가 대량 생산된다는 말에 크게 고무되었다. 종이와 학부 업무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좋지. 이왕이면 학부 장관이 동해부 정체성 형성에 도움이 되는 소설도 직접 집필해 보게.”
“예. 그러지요.”
태건은 다음 업무로 넘어갔다.
“다음은 염전 개발 건이네.”
“염전이요?”
허균은 단독으로 소위 삼 남매 회동에 참여한 상태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소위 삼 남매는 이따금 이런 자리를 가져 신기술과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토론하곤 했는데, 오늘 허균도 학부와 관련된 일이 많아 참여하게 된 것이다.
조선은 바닷물을 끓여 만든 자염을 생산했다. 염전을 조성해 소금을 생산하는 천일염 방식은 일제강점기 때 들어왔기에, 아직 염전이란 개념이 없는 상태였다.
이하륜이 염전의 원리를 허균에게 먼저 알려 주었다.
“그래서 일단 제염회사도 공사 형태로 출범시키자. 염전 노동이 고된 편이니, 포로를 투입하면 노동력 문제는 말끔하게 해결될 거다.”
“하핫! 맞아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요즘처럼 포로가 넘쳐날 때, 노동집약형산업을 후다닥 출범시켜야죠.”
이하륜이 웃으며 대답했다.
“염전 후보지는 어디에요?”
홍은이 물었다. 태건은 기억을 되살려 북한 지역에서 동해안 제염소로 유명했던 지역을 떠올렸다.
“경성현의 어랑사에 먼저 만들어 보자. 해안 지형으로 볼 때, 그곳이 가장 적합할 거다.”
“예, 형님.”
“나중에 영흥부의 영인사와 장평사 해안에도 제염소를 설치할 만하지. 그곳도 염두에 두라고.”
“예.”
이하륜은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바로 태건의 지시를 종이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단천에 유황점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혹시 아나?”
“글쎄요.”
허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하륜과 홍은도 금시초문이라,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유황이 부족해서 그러지요?”
“맞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석탄화학 공업단지를 조성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니 일단 유황을 캐서 쓸 수밖에. 비축분이 고갈 직전이라니까.”
유황 재고가 떨어져 가고 있다는 화약장의 보고가 이미 올라와 있었다.
태건은 이를 심각한 문제로 여겼다. 유황이 떨어지면 결국 화포와 화승총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백두산도 뒤져 봐야 하지 않나요?”
이하륜이 물었다. 물론 이하륜은 유황 광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백두산이 화산이니까 막연히 유황이 매장되어 있을 거라 추론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태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건 곧 태건의 지식에 있단 뜻이었다.
“그래야지. 그간 로툰 세력에 막혀 손도 못 댔지만, 이제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 열렸으니 찾아봐야지. 그럼 광무공사에 연락해서 단천하고 백두산에서 유황점을 찾아보라고 전하게.”
“예, 형님.”
“에휴! 원양 항해가 가능한 배만 있으면 그냥 북해도 가서 캐 오면 되는데.”
홍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자 태건도 활짝 웃으며 받아쳤다.
“하하하! 나도 방금 그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형이 그렇게 조바심을 내는구나. 빨리 밖으로 나가려고.”
“솔직히 그렇다.”
이하륜과 태건, 홍은이 또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결국 허균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북해도는 또 어디요?”
“있어. 동쪽으로 바다 건너 이천 리 떨어진 곳에.”
“이, 이천 리? 거길 또 어떻게 알고.”
“크크! 잊었나? 우린 조선통신사 일원이었다고!”
이하륜이 익살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 * *
함경도 갑산.
이번에 참장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신임 3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강대구가 본영 병력과 화포부대를 이끌고 갑산 읍성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원로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갑산에 남아 있던 제9연대장 김성이 강대구를 맞아 주었다.
“연대장도 고생했소. 다른 연대장들은?”
“한창 오고 있습니다. 곧 도착할 겁니다.”
강대구가 갑산으로 움직인 이유는 갑산에 3군 사령부를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갑산이 조선의 남병영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 셈이었다.
아울러 갑산현 또한 이번에 정식으로 동해부의 일원이 되어 새로 현령을 임명해야 하나, 갑산의 인구가 적은데다 변방이라 강대구가 현령직을 겸하게 되었다.
“병력 배치는 끝났소?”
“예. 신첨 연대장의 의견에 따라 서북쪽의 구갈파지보부터 시작해 혜산진과 그 동쪽의 오시천, 비비수 하구, 서수라덕 등지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수고했소. 동점과 은점은 어떻소?”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단천에서 일꾼과 포로를 보내 준 덕분에 잘 꾸려 가고 있지요. 산출된 은과 동도 단천을 통해 반출하고 있고. 그 광산들로 인해 갑산 인구도 꽤 늘었습니다.”
“인구가 늘었다니 다행이군.”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지로와 신첨이 도착했다. 신첨은 구갈파지보에서, 전지로는 삼수 읍성에서 오는 길이었다.
제3군 지휘관이 모두 모이자 강대구는 곧바로 태건의 명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우리 북쪽에 있는 주사리, 눌은 부족과 건주여진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고 하오.”
주사리는 주셔리, 눌은은 너연의 한자식 발음이었다.
“그래서 우리 동해부 군의 존재감을 미리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하셨소.”
“오! 그렇습니까?”
지시가 매우 구체적이라 신첨이 다소 놀란 기색을 보였다.
“존재감을 드러내다니 무슨 뜻이오?”
전지로가 물었다.
“우리 동해부 군이 압록강 유역까지 세를 확장했다는 것을 알리란 말이지요.”
“음, 알겠습니다.”
“그러자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신첨이 물었다.
“신 연대장 생각은?”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병력이 많은 편이니, 폐사군을 건드려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온하위를?”
“예.”
“그러면 노을가적과 척지게 될 텐데?”
“하지만 직접적으로 노을가적을 공격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더구나 폐사군은 엄연히 조선의 영토입니다. 관리를 포기해서 그렇지.”
“음. 그렇다고 폐사군이 동해부의 영토가 될 수는 없지만, 건주 여진의 영토는 더욱 아니지. 또한 우리 동해부 군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강대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까운 무창부터 점령해 볼까요?”
“정찰해서 작전 계획만 세워 두시오. 같은 이유로 조선 조정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일단 도독님의 재가를 받은 다음 움직입시다.”
“그게 좋겠군요. 아무래도 폐사군은 복잡한 문제가 얽힌 지방이니.”
신첨도 강대구의 지적에 동의했다.
폐사군은 분명 조선의 영토이나 현재 건주여진에 복속 당한 여진 부족이 들어와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곳을 정벌하면 당장 조선과 건주여진을 자극하게 된다. 그래서 태건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