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2
12화. 국왕 알현 (2)
조선 국왕은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을 불러들여 왜의 침범 가능성에 대해 물었고, 둘은 역사의 기록 그대로 각기 상반된 내용으로 고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평도 갈렸다.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자인 듯하다’고 평했지만, 김성일은 ‘눈이 꼭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된다’고 보고했다.
서장관 허성도 결국 범죄 혐의를 벗고 왕 앞에 불려 왔는데, 그는 동인임에도 황윤길의 편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국왕은 당연히 김성일의 보고를 마음에 들어 했다.
국왕은 또 그간 사행단이 겪은, 크고 작은 일에 대해서도 정사와 부사에게 물었다. 구중궁궐에 갇혀 사는 임금의 입장에서 이러한 타국 여행기만큼 흥미로운 화제는 없었다.
국왕은 그 이야기 속에서 여러 번, 그것도 극적인 장면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태건에 대한 호기심이 끓어오르자 결국 참지 못하고 그를 경복궁 편전으로 불러들였다. 태건의 지위가 아직 높지 않은 데다 당파 문제에서도 자유로우니, 임금 역시 정치적 이득을 따지지 않고 편하게 얘기를 듣고자 했다.
국왕은 한참동안 태건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훈련원 판관이라 했지?”
“그러하옵니다.”
“무관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았나? 왜가 미구에 바다를 건너올 거라 보나?”
이미 예측한 질문이다. 태건은 왕이 부른다는 전갈을 받았을 때부터 이를 예상하고 대답을 준비해 왔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천천히 대답했다.
“일본 무사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지휘관은 물론 병졸들의 경험이 풍부해 보였습니다. 만약 저들이 외람되이 조선을 침범한다면 우리 군이 크게 고전하리라 예상됩니다.”
“어허! 과인이 물은 건 그게 아니다. 과연 왜적이 아국을 침탈할 것이냐, 그 여부이다.”
“소신은 아직 경험이 미천한 무관으로, 그런 판단을 할 만큼 깊은 안목을 갖추지 못했나이다.”
태건은 자기 직위에 맞는 말만 할 뿐, 더 나아가지 않았다.
“허허! 그래? 하긴 풍신수길을 직접 만나지도 못했으니.”
왕의 표정이 묘했다. 그는 태건이 젊은 무관답게 신나게 떠벌리길 바랐다. 그래야 태건에 대해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왕은 문득 태건이 연치에 비해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지니고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도요토미를 직접 접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속내를 솔직히 토로했다는 쪽으로 무게를 두었다.
“이번 사행길에서 큰 공을 세웠다 들었다. 정사와 부사, 서장관이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더군.”
왕은 사실 사사건건 반대 의견을 내던 정사와 부사가 유일하게 같은 목소리를 내도록 만든 장본인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흥미를 느껴 태건을 불러들인 것이다.
태건은 그저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였다. 왕의 성정상, 그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건 좋은 처신이 아니었다. 그러자 같이 편전에 들어 있던 김성일이 활짝 웃으며 대신 대답해 주었다.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구름처럼 모여든 왜인들 앞에서 왜국 무사를 진검으로 다스려, 조선의 기개를 한껏 드높이던 그 장면을 소신은 지금도 잊지 못하나이다. 그런 일이 수차례 반복되다 보니, 더 이상 덤비는 자가 나오질 않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자객도 들었는데······.”
태건의 숙소에 왜인 자객이 든 일이 언급되자 왕은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문서로 접하는 것보다 직접 듣는 게 더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왕은 왜인들의 행위를 두고 극악무도하다 꾸짖으면서도 혈투 끝에 그들을 물리친 태건의 무위, 또 태건의 제안에 따라 문제를 잘 봉합한 점을 크게 칭찬했다.
“허허! 참으로 장하도다. 말만 들어도 즐거운 일이로고.”
왕은 활짝 웃더니 태건에 대해 이것저것 더 캐물었다.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부의 행적이나 가족 관계에 대한 부분까지 샅샅이 알고자 했다.
“이토록 젊은 연치에 벌써 훈련원 판관이라니, 하늘이 조선을 위해 좋은 인재를 내주셨구려.”
“부끄럽기 한량없나이다, 전하.”
태건은 다시 몸을 조아렸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미 승급 대상자였던 거 같은데? 태씨 성이 희귀해 기억이 나는군.”
태건은 조선통신사 일정을 마친 즉시 정5품으로 승진될 예정이었다.
“소신 또한 그리 들었나이다.”
김성일도 태건에 대해 알아본 바가 있어서 왕의 질문에 바로 대답해 주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그래, 태 판관은 원하는 보직이 있는가? 곧 승급되면 새로운 보직을 맡게 될 터.”
중요한 순간이었다. 태건은 고개를 더욱 조아리고 왕에게 고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소신은 육진 변경을 지키고 싶사옵니다.”
“오호라! 다시 북변으로 가겠다고?”
왕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태건을 바라보았다. 문관이든 무관이든, 모두가 중앙에서 근무하는 경관직을 원하는데 태건은 의외로 외직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또 과거 변방에서 꽤 오래 근무하며 전공을 세운 이력이 있는 그가 다시 변방으로 빠진다고 하자 왕은 이를 의아하게 여긴 것이다.
“아직 무관으로서 경험이 부족하고, 나라에서 받은 바에 상응할 만큼 충분한 공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북변으로 나아가 국경을 방비하며 경험을 축적함은 물론, 공을 세워 하해와 같은 전하의 성은에 보답하고 싶사옵니다.”
“허허! 그 뜻이 장하도다. 알았네, 그만 나가 보게.”
태건은 예의를 표한 뒤 물러났다.
그는 편전에서 나오자마자 깊게 심호흡을 했다. 그는 왕을 알현하는 일을 기회이자 일대 위기라 생각했는데, 별다른 문제없이 한고비 넘긴 셈이었다.
* * *
훈련원에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이하륜이 대뜸 결과부터 물었다.
“형, 어떻게 됐어?”
“아직 모르겠다. 내 뜻을 전했으니 곧 반응이 오겠지.”
“될까?”
“후후! 무조건 된다. 분명 김성일 부사가 적극적으로 밀어 줄 거다.”
“전쟁 안 난다고 보고한 일 때문에?”
“그래. 그러자면 평소처럼 북쪽 변방의 방비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전시가 아닌 이상, 조선군에서 가장 중시하는 곳은 당연히 북쪽 변방이다. 그러므로 태건을 인재라고 크게 떠벌린 이상, 태건 스스로 북변으로 간다고 했으니, 김성일은 찬성할 수밖에 없으리라.
“크크! 그것도 그거지만 왕의 성격도 한몫할 걸?”
태건은 낯 뜨거운 얘기라 차마 얘기하지 못했지만, 이하륜이 먼저 짚어 내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왕 자신도 태건의 활약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테니, 왕의 성정상 태건이 두드러질수록 긴장하게 되어 있다.
“동인과 서인이 이례적으로 함께 밀어 주는 대상이라면 특유의 질투심이 새록새록 솟아날 수밖에. 또 형은 풍채나 실력, 성과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하잖아? 그런 전도유망한 인재를 왕이 좋아하겠어? 필요할 땐 어쩔 수 없이 쓰겠지만, 두각을 드러내면 바로 견제 들어가는 게 현 국왕의 타고난 품성인데.”
모두가 옳은 말이었다. 태건도 그걸 알기에 왕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리라 확신했다. 왕의 성정을 고려하면, 태건을 먼 곳으로 보내고 싶어 할 게 분명했다.
“뭐, 기다리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태 판관님, 납셨습니까?”
“편전에 들었다 알고 있습니다만.”
정강빈과 송찬황이 태건에게 다가오며 인사했다. 조선통신사가 해체된 이후, 조정은 단원들에게 휴식을 부여했지만, 이들 훈련원 소속 4인방은 틈만 나면 출근, 저간의 계획을 진행시켜 나갔다.
“뭐, 그랬지.”
“와! 벌써 다 만들었네?”
이하륜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두 사람은 편곤과 월도, 협도, 당파를 나눠 들고 있었다.
“예, 방금 찾아온 길입니다.”
이하륜은 외부의 공방에 이들 네 무기의 설계도를 그려 주고 사비를 털어 신속히 만들어 달라 부탁했는데, 벌써 완성이 된 것이다.
태건은 먼저 편곤을 받아들고 자세를 취해 보았다.
“흠, 잘 만들었군.”
태건으로부터 이 무기를 추천받은 바 있는 송찬황의 눈이 반짝였다.
“보병이 쓰는 보편곤이지. 이걸 짧게 만들면 마상에서 쓰는 마편곤이 되고.”
태건은 편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편곤 역시 임진왜란 때 들어온 무기였기에 현재 조선의 무관들에겐 낯선 무기였다. 길고 짧은 두 개의 곤봉을 쇠사슬로 연결한 형태인데, 자루에 해당되는 부분이 ‘곤’이고 짧은 부분이 바로 ‘편’이었다. 이하륜이 설계한 편곤은 중국식에 비해 그 쇠사슬 이음새 부분이 매우 짧은 편이었다.
“상상해 보게. 말을 타고 이 철편을 휘두르며 달려가면 적 보병이나 기병이 방패로 막는다한들 온전하겠는가?”
“허허! 정말 생각만 해도 피가 끓어오릅니다.”
송찬황은 벌써 자신이 전장에서 말을 달리며 편곤을 휘두르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월도도 마찬가지. 이 무기는 너무 무거워 아무나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아니네. 하지만 송 봉사라면 가능할 것 같군. 나 또한 마상 무기로 이걸 쓸 생각이고.”
“옙! 반드시 익혀 보겠습니다.”
송찬황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 봉사는 협도와 당파를 익히게. 보병용 무기니까 충분히 익힌 다음 병졸들에게 전수해 주고.”
“네. 그리하겠습니다.”
이하륜은 협도와 당파를 차례로 휘둘러 보았다. 하륜은 특히 당파를 보며 고증이 엉망인 사극을 떠올리고 피식 웃었다. 시대 배경과 상관없이 조선 시대의 관군 대부분이 삼지창, 즉 당파로 무장하고 나오는,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그럼 다음에 보세.”
이제 태건과 이하륜은 훈련원을 빠져나왔다. 이하륜은 오늘 태건의 동생들과 어울릴 계획이라 태건과 동행했다.
이들은 운종가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시전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며 갔다. 둘은 이제 태건과 이하륜의 기억에서 벗어나 박철헌과 최진형의 시각으로 시장을 관찰했다. 이 시대의 기술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함이었다.
시전을 대표하는 육의전 앞은 여전히 북적거렸다. 육의전은 명나라 비단과 국산 비단, 면직물, 모시 제품, 종이, 어물 등을 주로 취급했다. 육의전 이외에 다른 상점도 볼만한 게 많았다.
“엇? 저건 뭐지?”
이하륜은 빗과 허리띠 등의 각종 잡화를 파는 소위 ‘상전’을 살피다 낯익은 물건이 보이자 깜짝 놀랐다. 태건도 걸음을 멈추고 하륜을 놀라게 만든 물건 앞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그 물건을 한참동안 자세히 살펴본 다음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거··· 맞지?”
이하륜이 태건에게 물었다. 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다 주게.”
마음이 급한 하륜이 점원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주문했다. 심지어 가격도 묻지 않았다.
“아, 알겠습니다. 조금 비싼데 괜찮겠습니까?”
“괜찮네.”
이하륜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태도로 답했다. 그래 봐야 남은 수량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점을 의아하게 여긴 태건이 점원에게 물었다.
“이거, 잘 나가는가?”
“그렇습니다요. 내놓기 무섭게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갑죠. 오늘은 나리분들 운이 좋아 아직 남아 있는 겁니다요.”
“혹시 안에 주인 있는가? 내 물어볼 게 있네만.”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만······.”
“그럼 여기서 기다리겠네.”
두 관리가 기다리겠다니 점원은 놀란 기색이다.
“예, 나리.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점원은 상점 주인을 데려오려 바삐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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