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주셔리가 사자를 보내다 (2)
김나홀은 뜻밖의 인물을 데려왔다.
“주셔리의 선무리 유렁어 암반의 사자요. 얼마 전, 이웃한 얄루부 마을로 찾아와 조선군 장수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주셔리에서? 허허! 이런…….”
신첨은 깜짝 놀라 탄성을 터트렸다.
“왜 놀라십니까?”
“예전에 도독님이 보급품 수송대 편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주셔리와 너연에서 사자가 올 거라고 하셨네. 지금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지. 노추에게 대패했으니까. 하지만 도독님이 그 편지를 보낸 건 그 전의 일이었거든.”
“허허! 이제 놀랍지도 않습니다. 그런 일이 하도 흔해서.”
장호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태건은 동해부가 폐사군의 무창과 여연을 차지한 사건이 구러산 전투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몰라 걱정했다. 그러나 구러산 전투는 어김없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온하위 부족의 세력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즉 동해부에 온하위 일부를 넘겨준다 해도 누르하치에게 큰 변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온하위를 정벌한 후에도 누르하치가 온하위의 개별 행동을 제대로 제지하지 않았을 정도로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구러산 전투를 일으킨 주체가 9부 연합이기 때문이다. 나날이 강성해지는 만주국의 세력을 꺾고자 그들이 먼저 도발했으므로, 누르하치는 남쪽 변경을 파고들어 온 동해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주셔리 부족에서 보낸 사자의 표정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로 날 찾아왔소?”
신첨은 다시 정색하고, 사자에게 물었다.
“원군을 보내주셨으면 해서, 염치 불고하고 찾아왔소.”
“허허! 우리보고 그대들 분쟁에 끼어들란 말인가?”
사자는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기에 즉각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냥 솔직히 사정을 얘기하시오.”
김나홀이 옆에서 거들어 주자 사자는 한숨을 내쉬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지난 구러산 전투에서 패배한 바람에 우린 건주군의 침략을 막아 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막무가내로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9부 중에 노추의 최대 앙숙은 여허 아닙니까?”
여허는 해서여진 4개국 중 가장 강성한 나라이며, 이번 구러산 전투를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신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누르하치가 당장 여허를 정벌하러 군을 일으킬 리가 없다는 점 또한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사자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누르하치는 늘 우리 샹기얀 알린 지방부터 노렸습니다. 가장 만만하고 가까우니까요. 그러니 우린 너연과 함께 연합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 연합군이 패배해 누르하치를 억제할 수단이 없어졌으니, 누르하치가 먼저 노릴 곳은 오로지 샹기얀 알린이오. 그중에서도 우리 주셔리가 첫 번째 목표가 될 겁니다.”
실제로 주셔리는 누르하치가 샹기얀 알린 지방 정벌군을 보내자마자 즉시 항복한다. 지킬 군사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어 그들의 코앞에 동해부 군이 대군을 이끌고 들어왔다는 큰 변수가 발생하자, 무조건 찾아와 읍소하게 된 것이다.
김나홀은 측은한 표정으로 주셔리 사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속한 얄루강부는 이미 복속된 상황이라,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낀 것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되지요?”
“좋은 동맹을 얻는 거 아니겠습니까.”
“동맹? 그 동맹을 얻고자 노추란 적을 만들란 뜻인가요?”
“휴!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드릴 것도 없고요. 그저 우릴 불쌍히 여겨 달라고, 살려 달라고 빌 수밖에 없군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그냥 건주부에 항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절 이곳으로 보낸 유렁어와 장경 암반도 처형당할 걸 각오한 채, 항복마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족민이라도 살리고자…….”
“음, 알겠습니다. 일단 돌아가시지요. 전 우리 도독께 의견을 구해야 할 것 같군요.”
“그, 그러면 너무 늦는 거 아닙니까?”
“우리 파발이 빠르게 달리면 사흘 내에 도달할 수 있으니, 최장 열흘 이내에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열흘… 그래도 늦을 거 같은데…….”
“일단 객관에 머물며 기다리시오. 열흘보다 더 일찍 답이 도착할 수도 있을 테니.”
신첨은 조바심을 내는 사자를 달래, 손님 숙소로 보냈다. 김나홀과 사자가 물러가자 장호가 물었다.
“도독께서 전권을 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아직 눌은이 오지 않았으니까.”
“그럼 눌은도 오리라 봅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나? 주사리 다음은 눌은이니까. 그러니 저들도 구원병을 청하는 사자를 보낼 수밖에 없지.”
“그럼 두 부족의 동시 귀부를 조건으로?”
“허허! 당연하지. 그건 도독님의 지시 사항이네. 귀부하면 원군을 보내 주겠다. 복수심에 불타 있는 노추에게 항복하느니, 우리 동해부의 일원이 되라. 어떤가, 이런 요구라면?”
“저 같으면 당연히 우리 동해부에 붙지요. 더구나 저들도 아치랑귀 부락이나 피오성 사례를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저들의 대추장을 현령으로 임명하는 배려만 해 줘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좋겠군. 어쨌든 우린 노추의 군과 싸워야 할 것 같으니 병사들을 단단히 준비시키게. 유사시 우리 연대 전체가 강을 건너가기로 했으니까.”
강대구는 신첨의 능력을 믿고, 제10연대를 원정군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그들이 압록강을 건너가면 무창에 주둔 중인 제3연대 소속 1개 대대가 여연을 맡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 * *
경흥방적과 경흥방직공사 사람들이 첫 모직 제품을 들고 태건을 찾아왔다.
“양모로 만든 털실과 천입니다.”
태건은 시제품을 천천히 만져 보더니,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는 허균에게 건넸다. 그는 방긋 웃으며 원단부터 살폈다. 당기기도 하고, 뺨에 대어 보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시험했다.
“괜찮군요. 이걸로 옷을 만들면 한결 따뜻하게 겨울을 날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군. 다들 수고하셨소.”
태건이 치하하자, 두 회사 간부들이 활짝 웃었다.
장령현과 광명현을 돌며 양털을 수매하기 시작한 시점이 지난여름이었다. 고려상단뿐만이 아니라, 피오상단도 이 수매 사업에 참여해 꽤 많은 양모를 모아 왔다.
경흥방적공사는 양모가 도착하자 세척 과정을 거친 다음, 방적기를 이용해 털실을 제조했고, 이를 방직공사에서 천으로 만들어 왔다.
“도독님. 함강복식사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들이게.”
함강복식사는 함강상단이 창업한 의류 제조업체이다. 함강상단은 경흥방적과 경흥방직의 유통 사업권을 쥔 송화상단이 개최한 경매에 참여해 얻은 천으로 의류를 제조했다. 물론 경흥기계공사가 제작한 재봉틀을 십여 대 확보하는 데 성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기계제품을 제조하는 회사는 경흥기계공사와 동해기계공사 두 곳인데, 경흥기계는 재봉틀, 조면기, 직조기, 방적기, 기계톱 등을 주로 생산하고 있고, 동해기계는 증기기관의 생산을 담당했다. 조산 공단에 자리 잡은 이 두 회사는 경흥의 안화와 단천에 제2, 제3 공장을 짓고 있다.
“오! 여자분들이 많이 오셨네요.”
허균이 다소 놀란 기색을 보였다. 특이하게도 함강복식사 간부는 사장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었다.
“옷을 짓는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회사에 여자가 많습죠.”
함강복식사 사장이 멋쩍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경강상인 출신으로 주로 면포를 취급하던 자였다.
“좋은 현상이오. 우리 동해부는 인구가 적으니, 여자들도 밖에서 일할 수밖에 없지.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이오.”
태건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배석한 관리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균이 재촉했다.
“어서 제품을 보여 주시오.”
그러자 여성 간부가 나서서 보따리를 풀더니, 두루마기처럼 생긴 겉옷을 들어 보여 주었다.
“주문하신 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두루마기로, 직령포와 비슷한 옷입니다.”
두루마기는 조선 후기에나 출현하게 된다. 현재 시점에도 그와 비슷한 옷이 있는데 그게 바로 직령포였다. 두루마기를 디자인한 이는 홍은이다. 홍은은 화원의 도움을 받아 기억에 있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린 다음 상단에 두루마기라고 적었는데, 그게 그대로 복식 이름이 된 셈이었다.
“음, 소매가 몹시 좁아졌군요.”
허균은 바로 도포와 이 두루마기 시제품의 차이점을 알아보았다.
“‘뭐 하러 소매를 치렁치렁 늘어뜨리나? 옷감 아깝게’라고 누군가 그러더군.”
“네? 푸하하하!”
태건이 마치 남의 말을 인용하듯 대답하자 허균은 폭소를 터트렸다. 홍은의 말투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홍은이 없다 보니 태건이 대변자가 된 셈이었다.
동해부의 문화는 철저하게 실용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의복에도 적용되었다.
소매의 폭이 곧 신분의 상징인 시대였다. 그래서 신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소매가 넓은 옷을 입었다. 그러므로 함강복식이 제작한 이 두루마기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입는 옷인 셈이었다.
태건은 소매가 치렁치렁한 옷을 몹시 싫어했다. 움직일 때마다 소매가 걸리적거려 활동성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기 싫은 자들이 입는 옷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겨울만 되면 짐승 가죽을 두르고 살아야 하는 북방 주민에게, 치렁치렁한 소매야말로 사치지요.”
허균도 즉시 동의했다.
“잘 만들었군. 다른 건 없소?”
태건의 주문에 사장은 재빨리 다른 제품을 보여 주었다.
“통저고리입니다.”
또 하나의 제품은 스웨터였다. 겨울에 입기에 스웨터만큼 좋은 의류는 없어, 바로 개발에 들어갔다.
스웨터 양식이 처음 출현한 시기가 20세기 초반이기 때문에, 태건은 이 옷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줘야 했다. 그래서 디자인한 그림을 함강복식 측에 보여 주자, 다들 ‘통저고리’라고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허균은 통저고리를 보더니 바로 다른 방으로 가서 갈아입고 나왔다.
“어떻소?”
조경린 법부장관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무 좋은데요? 이걸 안에 입고, 저 두루마기를 걸치면 겨울을 너끈하게 날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오. 깃이 없고 옷감이 목 부분까지 덮도록 만들었으니 보온이 잘 될 것 같소.”
조경린은 왜 통저고리를 개발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아보았다. 지켜보고 있던 최철주 군부장관도 두루마기와 통저고리를 받아 다른 방으로 가서 입어 보더니, 만족한 표정으로 나왔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이걸 토대로 군복을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맘에 든다니 다행이오. 그럼 상단 측과 상의해서 군복을 멋지게 만들어 보시오.”
“예. 도독님.”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서두릅시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병사에게 따뜻한 군복을 입혀야 하니.”
“예. 알겠습니다.”
“안이 나오면 복식 제조업에 뛰어든 모든 업체를 불러 모아 주문을 넣어 주시오.”
“예, 도독님.”
공상부 장관 홍진이 대답했다.
“이 옷들이 군복 형태로 먼저 보급되고 나면 이제 일반 백성들도 이 옷을 찾겠군요. 각 상단이 소, 중, 대, 이렇게 여러 크기로 만들어 팔면 주민들이 참으로 편하게 옷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걸 기성복이라고 하지. 이미 만들어진 옷이란 뜻으로.”
“기성복이라… 참으로 적절한 말 같습니다. 이제 이런 옷이 주류를 이루겠군요. 번거롭게 집에서 옷을 만들어 입지 않고 사면 그만이니 집안일도 크게 줄어들 테고. 그렇게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생활도 더 풍요로워질 겁니다.”
허균은 오늘 처음 접한 이 옷이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벌써 정확히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