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누르하치의 속내 (2)
주셔리 부락 서북쪽에 자리한 구릉지.
누르하치 군을 이끌고 온 어이두 바투루는 오만한 표정으로 동해부 연합군 기병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와 동료 장수 가가이 자르구치, 안피양구 숑코로 바투루가 이끌고 온 병력은 겨우 천여 명에 불과했다. 주셔리와 너연, 두 부족을 정벌하기에 적은 숫자였지만, 이번 전쟁의 승리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다 보니 이들 세 장수는 자신감이 있었다. 또 이들은 실제 역사에서 그걸 해내기도 했다.
“크하하! 조선 놈들이 원군으로 왔다고 하더니, 다 합쳐도 고작 천 명이군?”
어이두 바투루가 과장된 웃음을 터트렸다. 동료 장수와 부하들의 사기를 올리려 한 행동이었다. 여기서 ‘바투루’나 ‘자르구치’, ‘숑코로 바투루’는 모두 영예나 직위와 관련된 용어로, 바투루는 용사, 자르구치는 형 집행관, 숑코로 바투루는 송골매의 용사란 뜻을 품고 있다. 즉 세 장수 모두 누르하치로부터 이런 직위에 봉해졌을 정도로 유명한 무장들이었다.
“이상하군. 분명 더 많다고 하지 않았나요?”
가가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보병이라 아직 도착하지 못한 모양일세. 그렇다면 우선 저 기병들을 먼저 파하고 보병을 맞아야 하지 않겠나?”
안피양구의 제안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럽시다.”
만주국 기병들은 좌군과 우군, 중군, 이렇게 셋으로 무리를 지어 연합군 기병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또한 포위 공격을 시도할 요량으로 좌우 날개가 더 앞서 나아가고, 중군은 살짝 뒤처진 대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연합군 기병대의 전술적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좌우 두 무리로 나뉘었는데, 좌군이 만주국의 우군과 중군을 상대하는 사이 우군 500여 기가 만주국의 좌군을 노리는 방식이었다.
만주국 우군 병력을 지휘하고 있는 가가이는 건주 군의 우군과 중군, 양쪽으로 협공당할 위험도 감수한 채 마주 달려 나오고 있는 연합군 좌군 기병을 보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래 계속 달려와 봐라.”
자신이 지휘하는 우군이 앞서 있다 보니, 연합군 기병도 우군부터 노리고 달려왔다.
가가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훌륭해.”
중군을 이끄는 어이두는 연합군 좌군을 협공하기 위해 속도를 올려, 자신의 부대와 간격을 줄이고 있었다. 확실히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들이라 굳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죽이 잘 맞았다.
“응? 벌써?”
그러나 가가이는 적군이 예상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자, 살짝 당황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원래 자신의 부대가 적 좌군과 맞붙어 싸우는 사이, 빠르게 접근한 아군 중군이 적 측면을 노리는 것이다. 그래서 적 좌군의 기세가 꺾이면 이들을 중군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시 우회해 적 우군을 아군 좌군과 함께 협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 좌군은 갑자기 자신의 좌측으로 우회기동을 하더니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컥!”
“크아악!”
달리는 말에서 쐈는데도 화살은 꽤 정확하게 날아와, 여러 병사가 당했다.
“크흑!”
심지어 가가이 자신도 어깨에 화살을 맞았다. 선두에서 병력을 이끌다 보니 집중 공격을 받은 것이다.
가가이는 비로소 적 좌군의 정체를 파악했다. 화살의 사거리가 길기로 유명한 조선 각궁을 쓰는 데다 활 솜씨가 뛰어난 부대라면 당연히 조선군 기병이었다.
우회기동한 조선군 기병대는 이번에는 건주 군 중군 앞으로 내달리며 또다시 화살 비를 선사했다.
“빨리 추격하라!”
가가이는 몹시 당황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더욱 속도를 내어 조선군을 추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좌군 조선군은 물론이고, 우군 즉 샹기얀 알린 연합군 기병도 단 한 차례만 건주 군의 좌군을 상대한 다음 그대로 측면으로 돌아 후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한 차례 전투도 연합군 우군의 수가 훨씬 많다 보니 건주군 좌군은 그다지 이득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한참을 달려가던 가가이는 결국 질주를 멈춰야 했다. 중군의 어이두와 좌군의 안피양구도 동시에 부대를 멈춰 세웠다.
무려 2천에 달하는 연합군 보병 부대가 전방에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결국 건주군은 즉시 후퇴해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자 연합군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가장 앞서 달렸기에 가장 나중에 도착한 가가이가 식식거리며 어이두에게 다가갔다.
“휴! 조선 놈들도 만만치 않군요.”
가가이의 솔직한 평가에 어이두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도 전장에서 단련된 군대이니 그럴 수밖에…….”
“이제 어떻게 하지? 수적으로 너무 불리하지 않나?”
어느새 다가온 안피양구가 물었다.
“글쎄요. 어찌해야 할지.”
건주군 장수들이 급히 다음 작전을 논의하는 와중에 누르하치가 보낸 사자가 도착해, 전투를 멈추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 * *
“휴! 다행이군.”
보병으로 이뤄진 본대가 도착하자, 신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허! 정말 조선의 궁술은 대단하오. 정말 놀랐소.”
이번 전투에서 연합군 우군의 지휘를 맡았던 주셔리의 암반, 선무리 유렁어도 크게 기뻐했다.
“일단 여기서 대기하며 상황을 지켜보지요.”
“그럽시다. 지리는 우리가 훤히 꿰고 있으니, 정찰은 우리 기병대 우군이 맡겠소.”
“그럼, 부탁합니다.”
신첨의 얼굴은 여전히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번 전투만큼 신첨을 긴장시킨 적은 없었다. 가토 기요마사가 지휘하는 흉포한 왜군과 싸울 때도 흥겹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전과 달랐다. 병력의 절반이 약체로 소문난 주셔리와 너연 연합군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싸움에 이기기보다 시간을 끄는 데 주력했는데, 그 전술이 잘 맞아떨어져 좋은 결과를 낸 셈이었다.
“연대장님.”
보병을 이끌고 온 장호가 급히 신첨을 찾았다.
“부도독님이 오신답니다. 그때까지 전투를 자제하라는 전갈이 들어왔습니다.”
“오! 부도독님이 오신다고? 잘 됐군.”
신첨은 이하륜이 올 거란 소식에 몹시 기뻐했다.
며칠 후, 이하륜이 주셔리 진지에 도착했다.
“와우! 우리 군에 또 한 명의 명장이 탄생했다는 소문이 벌써 온 천지에 자자하던데?”
넉살 좋은 이하륜이 특유의 익살맞은 미소를 흘리며 신첨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명장이라뇨? 그 말 들으면 다들 코웃음을 칠 겁니다.”
“역시, 겸손한 태도를 보니 명장은 명장이야.”
“부도독님, 자꾸 그러면 저 욕 먹습니다.”
이하륜은 신첨의 죽는소리를 한 귀로 흘리더니 건주군이 웅크리고 있는 숲속을 바라보았다.
“근데 저놈들, 그간 한 번도 도발을 안 했다고?”
“예. 서전 한 번 치르고 잠잠합니다. 더구나 원병으로 이천이 더 합류했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협상이군.”
“역시…….”
“크크! 자네도 그렇게 예측했나?”
“그렇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들이 우리와 싸워 전력을 소진하는 선택을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턱없이 힘이 약하다면 시도해 보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저들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맞아. 조만간 협상하잔 연락이 올 거야. 엇, 뭐야. 저놈들도 양반은 못 되겠네.”
이하륜은 말하는 도중에 적진에서 깃발을 든 기병 몇몇이 나타나자, 스스로 감탄했다.
“오오! 정말 협상을 청하는 사자인 것 같습니다.”
신첨도 이 우연의 일치에 놀라 입을 떡 벌렸다.
* * *
이하륜은 자신의 협상 상대로 슈르하치가 나온 걸 보고 내심 몹시 놀랐다. 슈르하치도 마찬가지였다. 배석한 통역으로부터 자신의 상대가 동해부의 2인자란 얘길 듣고 몹시 만족해했다.
슈르하치는 협상의 서두에 유감을 표명했다.
“왜 조선이 우리 만주의 일에 개입해서 분란을 자초합니까?”
“말을 똑바로 합시다. 우린 조선이 아니라 동해부요. 조선인이 주축이 되긴 했으나, 엄연히 동해인이 함께하고 있지요.”
“그럼 조선에서 독립해 나라라도 세웠나?”
“그쪽 만주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명으로부터 도독첨사란 벼슬을 받았을 텐데?”
이하륜은 굳이 통역을 통해 대화하고 있는 처지라 무미건조한 말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슈르하치의 표정을 보니, 그 역시 자신을 존중하고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쓸데없는 말로 시간 끌 이유가 없지. 왜 협상하자고 했지?”
이하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슈르하치가 드디어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쪽이 주셔리와 너연을 감싸고 나선 이유는 뭐요?”
“우리한테 귀부하기로 했으니까.”
“허! 이런…….”
슈르하치는 크게 탄식했다. 짐작했던 바이지만, 막상 사실로 드러나자 크게 실망한 것이다.
“우리 만주국과 귀측이 굳이 싸울 이유가 없는 것 같소만.”
슈르하치는 결국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결코 자신의 입으로 ‘동해부’란 말을 내뱉지 않았다.
“그건 그렇지요.”
이하륜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슈르하치는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길 바랍니까?”
이하륜의 질문에 슈르하치는 준비해 온 내용으로 답변했다.
“우리가 아직 서로 믿지 못하는 데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세력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같은 수의 병력만 주둔시키기로 합시다.”
“오호!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군. 그럼 동해부는 북쪽의 너연 경계에 오백, 남쪽의 주셔리 경계에 오백을 배치하겠소.”
이하륜이 먼저 선수를 쳤다. 1개 대대만으로 동해부의 현에 해당하는 지역 하나씩 지킬 속셈이었다.
슈르하치도 불만이 없었다. 그들도 다른 곳에 투입할 병력이 많을수록 좋았다.
“좋소. 그럼 우리도 비슷한 수의 병력을 배치하겠소. 그럼 남쪽은 어떻게 되오?”
슈르하치는 폐사군의 일을 물었다. 동해부가 무창과 여연, 두 군을 점유한 사실을 염두에 둔 질문이다.
“남쪽이야 뭐, 논할 게 뭐가 있소? 폐사군이 건주의 영토요?”
“그, 그건…….”
슈르하치는 말문이 막혔다. 말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 오늘 회동에서 나온 말이 조선 조정의 귀에 들어가면 또 하나의 적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선뜻 속내를 밝힐 수가 없었다.
“압록강으로 합시다. 폐사군 이북의 경우, 우린 압록강을 넘지 않겠소. 그러나 주셔리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압록강 부락은 예외요. 여연과 무창 대안 지역 말이오.”
“여연과 무창 대안이라.”
슈르하치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연과 무창 대안 지역은 온하위 얄루강 부락의 영역이라, 만주국이 자신의 세력을 거저 떼어 주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셔리와 너연이 이미 동해부의 일원이 된 마당이라, 그 땅을 고집하면 전쟁하자고 나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휴! 알겠소.”
슈르하치가 동의함으로 인해, 김왜두 추장의 여연 읍성 대안 땅은 동해부 소유가 되었다.
이제 굵직한 사안들에 대한 협의가 끝나고, 만주국과 주셔리 및 너연 지역의 경계를 획정하는 실무협상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슈르하치는 아직 큰 의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누르하치는 이 마지막 사안을 몹시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니까… 음, 적당한 지점 하나를 골라 거기서 서로 교역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화의 협상도 했으니, 그게 이런 방식의 결과로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교역소를 만들자?”
“예.”
“좋아요. 그럼 저 남쪽 여연 대안 땅에 만듭시다. 평화사라 부르기로 할까? 화의 회담 결과로 생기게 된 곳이니까.”
“허허! 좋소. 아주 시원시원하군요.”
슈르하치는 비로소 홀가분하게 웃을 수 있었다.
사실 모든 여진 부족은 대외 교역에 몹시 집착했다. 자체 생산품이 적다 보니, 명이나 조선과 교역을 많이 할수록 국력을 신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기에 조선과 명은 교역 규모를 엄격히 제안함은 물론, 교역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여진족을 통제해 왔다.
누르하치는 동해부를 조선 반군이라 규정했지만, 어쨌든 자신들보다 더 풍요롭고 앞선 문물을 지닌 집단이란 사실을 알고 있어 교역부터 염두에 둔 것이다.
“혹시 동해부에 필요한 건 뭐가 있습니까? 인삼이나 모피는 그쪽에도 흔할 테고.”
슈르하치는 내친김에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이것저것 필요한 게 있지만 우린 면화와 양모 수급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지요.”
“음, 면화는 명에서 구해야 하는데.”
“중개무역도 환영입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럼 귀측도 은을 씁니까?”
“예. 올해부터 쓰기 시작했지요.”
“허허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슈르하치는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중개무역을 하면 더 큰 이득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협상이 마무리되었고, 그 결과 동해부는 또다시 주셔리와 너연 전체, 그리고 얄루강 지역의 일부를 얻게 되었다. 두세 개 현에 해당하는, 매우 넓은 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