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26
126화
북청급 대선 진수 (1)
왜란 3년째인 서기 1594년, 갑오년(선조 27년) 여름, 경흥의 동해부 청사에서 아침 일찍 열린 내각 회의.
다른 장관에 이어 군부 장관 최철주의 보고가 이어졌다.
“1군 사령부의 보고입니다. 제1연대가 허시현 서북부 변경의 창성진과 북부 낭랑진의 진지 구축은 물론, 마을현과 연결되는 역참 설치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창성진은 호이파국 국경에, 낭랑진은 북쪽 와르카 부족의 경계에 구축된 군 요새이다.
“오! 벌써 역참을 설치했다니 놀랍군요. 다들 노고가 컸겠소.”
태건은 도로 공사도 아닌, 겨우 역참의 설치를 마쳤다는 보고에도 크게 기뻐했다.
와르카 허시허(赫席赫, 혹은 黑十黑) 부족의 암반들은 지난해 겨울부터 부지런히 회합해 의견을 모으더니, 봄이 되자 결국 너연 지방에서 주둔 중인 동해부 군에 귀부를 요청해왔다. 동해부 측이 별다른 압력을 넣은 적도 없지만, 제풀에 지쳐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지난가을 주셔리와 너연 부족이 스스로 동해의 일원이 됨에 따라, 허시허 부족은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동해부 영토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더구나 북부엔 자신과 다른 워지 계열의 ‘오모호 수루’ 부족과 경계를 접하고 있어, 결국 투항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그래서 허시허 부족의 영역이 ‘허시현’이 되었다.
허시허의 합류는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었다. 그로 인해 백두산 권역 전체가 동해부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백두산의 상징성이 큰 만큼, 동해부는 이 사실을 널리 알려 동해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활용했다.
아울러 영토 형태가 기존의 길쭉한 형태에서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변해, 관리하기에 편리해졌다는 이점도 생겨났다.
허시허까지 동해부의 일원이 됨에 따라 동해부는 이 백두산 권역에 세 개 현을 설치했다. 세 부족의 영역을 모두 현으로 인정하되, 명칭을 조금 고쳐 남쪽부터 주서리현, 너연현, 허시현으로 명명했고, 선무리 유렁어와 서오원 등 현지의 암반을 현령으로 임명했다.
이제 동해부는 새로 얻은 이 드넓은 영토를 관리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증봉령 산줄기를 관통하는 길 아닙니까? 기병이나 다닐 수 있는, 소로를 내는 일도 꽤 힘들었을 겁니다.”
이하륜도 한마디 덧붙였다.
증봉령은 노토 부족의 영역이던 마을현과 허시현 사이를 가로지르는 산악 지대인데, 55㎞에 달할 정도로 그 폭이 넓고 지형이 험했다. 그런데도 태건은 이 산악 지대를 관통하는 노선으로 역참 노선을 구상하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영토를 동서로 횡단하는 간선도로가 지나게 될 구간이니까, 쉬어갈 역참 마을이라도 먼저 들어서야 나중에 길 만들기도 편하지요.”
태건은 이 역참로를 ‘동서횡단선’, 즉 훈춘에서 출발해 경원, 종성, 용정, 아랑, 마을현 등을 잇는 도로 노선과 연결할 생각이었다.
“예, 저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역참로는 해란강 상류 계곡을 통과해, 베개봉 고개 ― 증봉령 산줄기의 정상에 해당하는, 베개봉 부근에 있는 고갯길 ― 를 지나는 노선이었다.
“양강로와 백두선 노선도 계속 공사 중이지요?”
태건이 공상부 장관 홍진에게 물었다.
“예. 현재 천포진까지 이르렀으니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겁니다.”
양강로란 두만강을 따라 백두산의 천리천평을 지난 다음, 압록강변을 따라 폐사군까지 연결되는 길이다. 중간의 천포진에서 백두선이 분기되는데, 백두선은 서북쪽 허시현 지역을 통과하게 된다.
“잘됐네. 백두선이 탕하진까지 닿게 되면 거기에도 교역소를 열어야 할 것 같군.”
태건은 횡단선 도로 노선의 완공이 요원한 일이기에, 일단 보급로와 교역로로 양강로와 백두선을 활용하기로 했다. 특히 백두선이 완공되면 주서리현의 중심지 주서리진 부근에 자리한 방어 거점인 탕하진을 두 번째 건주부 대상 교역소로 지정할 생각이었다.
첫 번째 교역소는 압록강 변에 자리한 평화사인데, 압록강 길이 험하다 보니, 도로 사정이 한결 나은 탕하진을 두 번째 교역소로 염두에 둔 것이다.
“부흥진에도 호이파 사람들이 계속 찾아와 교역을 요구하고 있답니다.”
“호이파도?”
부흥진은 너연 지방의 서쪽 경계에 해당하는 곳으로 미래 무송현 무송진 부근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곳 부흥진과 탕하진을 제3군이 관리하고 있었다.
“호이파라…….”
태건이 호이파를 되뇌자 이하륜이 물었다.
“고민되세요?”
“조금.”
거래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누르하치의 건주부는 중개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건주부는 명나라와 주변 유목 부족에게서 면화와 양모, 비단, 차 등을 수입해 동해부에 수출했다. 또한 동해부의 유리 제품이나 곡물, 소금, 옷감, 농기구 등을 명과 주변의 몽골 및 여진 부족에 팔아 이득을 취했다. 물론 명을 상대로 한 건주 여진의 전통적인 특산품, 즉 모피와 인삼 교역이 가져다주는 기존의 수익도 여전했다. 그 결과 건주부의 국력은 매우 빠르게 성장 중이었다.
“호이파는 해서여진 중에서도 약한 축에 드니 조금 밀어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음, 그게 낫겠지?”
동해부 수뇌부는 누르하치 세력의 성장을 돕는 게 동해부에 이롭다는 정책적 판단을 이미 마친 상태였다. 동해부와 명나라 사이에 끼어 있어, 일종의 완충지대 노릇을 해 주기 때문이다. 다소 위험한 전략이라 해도, 건주부보다 명을 감당하는 게 더 어렵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이제 동해부와 국경을 접하게 된 호이파 역시 동해부와 좋은 관계를 맺길 원했다. 지난 전쟁에서 패한 이후, 건주부를 더욱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건주부처럼 동해부와 교역해 힘을 키우고 싶어 했다.
“그래. 교역소를 부흥진에 열자. 속도 조절도 필요하니까. 근데 호이파는 우리한테 무슨 상품을 갖고 올까?”
“그게, 그러니까…….”
이하륜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결국 생각하길 포기했다.
“에휴! 지들이 알아서 하겄지~”
태건은 피식 웃더니 최철주를 다시 바라보았다.
“다음 달부터 제1군과 제2군의 작전이 시작되는데, 작전 승인이 필요합니다.”
최철주는 서류를 태건에게 건넸다. 태건은 빠르게 훑어보더니 이하륜의 말투를 흉내 내며 답해 주었다.
“잘 알아서 하겄지요.”
“예?”
“계획대로 진행하라고 하세요.”
태건은 서류를 다시 돌려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라, 슬해항은 포로와 포로를 관리하는 경관들, 작업 감독자와 인부들로 북적거렸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많이 달라져 보이네요. 배후 도시가 될 곳에 벌써 관청과 민가도 많이 들어섰고.”
“그러게. 그간 너무 무심했군.”
이하륜과 태건이 마지막으로 슬해항에 들른 건 지난해 가을의 일이었다. 벌써 열 달 가까이 지난 셈이다.
“수군무관학교가 계획대로 벽해도에 세워졌다면, 그때 왔을 텐데.”
올봄 육군무관학교와 수군무관학교가 동시에 개교했다. 조선처럼 과거를 보지 않고 이 학교 졸업생들을 무관으로 뽑겠다, 또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동해부 전역이 난리가 났었다. 당연히 경쟁률도 엄청나, 입학시험 자체가 곧 과거가 된 셈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육군무관학교는 경원의 훈융사에, 수군무관학교는 경흥 조산사 교장에서 처음으로 신입생을 받았다.
수군무관학교가 임시로 조산사에서 개교한 이유는 벽해도의 준비 상태가 아직 미진했기 때문이다. 모든 자재를 배로 운반하다 보니, 공사 속도가 느리게 진행된 탓이다. 그래서 일단 생도들은 조산보 수군 기지에서 더부살이하며 교육받고 있었다.
“부두 하나가 거의 다 완공된 것 같은데요?”
이하륜이 슬해만 바다 쪽을 가리켰다.
슬해항 부두는 목재를 써서 평상이나 다리 형태로 선착장을 조성한, 그런 조선식 포구가 아니었다. 수심이 충분히 깊은 지점까지 해변을 메운 다음 잘 다듬어 둔 석재로 선착장을 만들었고, 또 그 위에 거대한 기중기까지 설치했다. 이 기중기는 도르래와 밧줄, 목재로 만들었는데, 도르래와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해 작동하게 되어 있었다.
이 기중기를 설계한 이는 태건이었다. 책을 통해, 대항해시대 유럽 항구에서 쓰던 목조 기중기 모델을 본 기억을 떠올리고 이를 바로 설계해 내놓은 것이다.
“그렇군. 하지만 부두는 이따가 둘러보고 빨리 조선소로 가자.”
태건은 막상 슬해항에 이르자 마음이 급해졌다. 태건의 행차에 모두가 고개 숙여 인사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이동 속도가 느려진 상황이었다.
“그럽시다. 나도 궁금하네.”
태건과 이하륜, 최철주는 북적거리는 구간을 빠져나가자 다시 말에 올라 조선소가 세워진 선소곶을 향해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소곶 중간 부분의 낮은 둔덕에 오르자마자 조선소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 저거다! 이야, 대단하네.”
이하륜이 말을 멈추고 소리쳤다.
“오! 정말 멋지군.”
태건 역시 멈춰 서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오라버니!”
언덕 부근에서 기다리던 태미가 반가워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태건과 이하륜은 태미를 알아보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선거에 우뚝 서 있는 대선에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오빠!”
결국 태미가 태건에게 다가와 툭 건드리며, 홍은처럼 태건을 불렀다. 홍은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아, 미안.”
“호호! 나도 저 배를 처음 보고 그랬어요. 정신을 못 차렸지.”
“그럴 만도 하네. 빨리 가 봅시다.”
이하륜이 태건을 재촉했다.
조선소에 이르고 보니 진수식을 앞둔 대선이 첫 번째 선거에 고스란히 올려져 있고, 다른 선거 두 곳에 조선장과 인부들이 붙어 벌써 2호와 3호 함을 건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즉 선거 세 개를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다.
“허허! 영락없이 카락이군.”
태건이 웃으며 말했다.
“카락이요?”
“그래, 남만인한테 들었지. 저런 형태의 배를 카락이라 부른다고.”
“그렇구나. 카락…….”
“다른 면도 많은 듯한데?”
“허허! 그럼요. 많이 바꿨습죠.”
어느새 태건 곁으로 다가온 조선장 원대장 손원표가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바꿨군요.”
“예. 갑판 높이를 조금 낮추고, 선루를 조선식으로 꾸몄지요.”
“그럼 크기는?”
“처음 계획 그대로입니다.”
“음, 그렇게 보이는군요.”
손원표가 처음 제작한 이 대선의 길이는 대략 60m이고, 전폭은 전장의 4할을 조금 넘어 약간 통통해 보였다. 배수량은 일천 톤 정도로 몹시 큰데, 동양으로 넘어온 포르투갈의 후기 카락선 크기에 맞추다 보니 커진 것이다.
태건은 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선거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대선이 점점 커졌다.
이 순간의 태건은 21세기를 살던 태건이 아닌 조선 무관 출신 태건이었다. 원양 항해가 가능한 배를 간절히 원하는 그였기에, 21세기 기준에서 작은 배에 불과한 이 카락선이 산처럼 거대해 보였다.
곧바로 진수식이 시작되었다.
조선의 전통을 이은 이들답게 고사부터 지냈다. 고사가 끝나자 태건은 배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육진을 제외한 함경도 고을 이름을 씁시다. 그래서 이 배의 이름은 북청함이오. 그러니 앞으로 이 배를 북청급 대선이라 칭하면 될 것이오.”
이윽고, 배가 밧줄의 보호를 받으며 통나무들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바닷물을 사방으로 튕기며 수면에 우뚝 섰다.
“하하하! 성공입니다.”
진수 과정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손원표가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파안대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