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도량형 통일과 측량 사업 (1)
광명현 천보산 광산 개발을 위해, 그리고 군사 목적으로 조성된 마을 보산사.
보산사는 부루강과 그 지류인 보산천 ― 천보산 광산 지대를 지나는 하천이라 보산천이라 명명함 ― 이 만나는 곳에 자리했는데, 산과 강, 계곡이 어우러져 있어 주변 풍광이 무척 수려하고, 사람 살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광명현 현령 태원은 마을을 둘러보다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도로가 뚫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장까지 자리를 잡았네요.”
“여기서 지내고 있는 저도 매일매일 놀랄 지경입니다.”
제2연대장 진태종도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변방인데다,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 모으기 어려울 거라 봤는데.”
“이주한 농민들 말을 들어 보니 의외로 땅이 비옥하답니다. 또 농토로 개간할 만한 땅이 은근히 널찍하고 많다네요. 더구나 우리 2연대까지 자리를 잡고 나니, 사람이 더욱 잘 모이는 것 같습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진태종 연대장은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줬다.
“같은 생각이오. 이런 강외 땅에서 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지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조선인 이주민은 당연히 안정적인 환경을 선호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몰라도 여기로 보내달라는 이주민이 꾸준히 늘고 있어요.”
조선인 농민 이외에도, 천보산의 은광과 구리광산 개발이 시작됨에 따라 광산 관련 장인과 광부, 포로들이 몰려들어, 이곳은 광명현의 중심지 광명진만큼이나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
“더구나 경무 분견대 소속 경관들도 많이 들어왔지요.”
태건은 약속대로 경관 병력이 충분히 확보되어 경무청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광명진에 경무서를 설치하고 경관 병력을 배당해 주었다. 그 덕분에 경관의 가족들도 광명현에서 토지를 배당받고 정착해 인구 증가에 크게 일조했다.
이런 현상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던 태건은 광명현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광명진에 소학교를 세워 주기로 했다. 원래 올해 말, 경흥과 훈춘, 경원, 회령에서 처음으로 아동을 대상으로 한 소학교를 개교할 예정이었는데, 이중 경원을 다음으로 미루고 대신 광명을 선택한 것이다.
동해부가 그간 미뤄 뒀던 소학교 개교를 마침내 추진하게 된 건 경흥사범학교 졸업자들이 생겨난 데다, 종이의 양산이 시작되어 교과서 간행 사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해부는 사립 소학교의 개교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도 발표했다. 우선 사범학교 출신 교사를 한 명이라도 확보할 경우, 학교를 개교할 수 있도록 자격 기준을 대폭 낮춰 잡았다. 또한 교사가 되길 원하는 서당 훈장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학부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봐서 통과되면 자격을 얻는데, 이들은 한학 기초 과정만 가르칠 수 있다. 어차피 소학교 교과과정에 한학 기초가 포함되어 있어 훈장 인력도 흡수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훈춘에 두 번째 사범학교를 세우기로 했고, 동해인 거주 지역에 조선어학당을 우선 설립한 후, 아동과 성인을 대상으로 조선어를 가르치기로 했다.
“제2연대는 언제 출정합니까?”
“며칠 내로 떠나야지요.”
출정 얘기가 나오자, 진태종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간 제2연대 장병들은 포로 관리와 치안 유지, 산골 마을 정벌 등의 자잘한 임무를 수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더구나 제3연대를 제3군에 내주는 바람에 업무량이 더욱 가중되어 소속 장병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런데 올봄에 드디어 제11연대가 새로 출범해 제1군으로 배속되었고, 경무청 병력마저 들어오자 비로소 여유를 찾게 되었다.
그런 일상이 지속되다 보니 벌써 몸이 근질근질해진 것이다.
“그쪽 형편은 어떻소?”
“이렇다 할 적이 없으니, 편한 원정이 되겠지요.”
제2연대는 보산사 주둔지에서 서북쪽으로, 부루강 상류를 따라 진군할 예정이었다.
“그쪽에 거주하는 여진 부족 호칭이 오모… 뭐였죠?”
“오모호 수루와 퍼너허 톡소올시다. 오모호 수루는 올적합이고 퍼너허 톡소는 올량합이라 들었습니다.”
“음, 이름이 좀 그렇군요.”
“맞소.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서에 적힌 걸 외우긴 했는데, 입에 잘 붙지 않네요.”
“작전 대상 지역에 그들의 본거지가 있는 건 아니죠?”
“허허! 그럴 리가요. 우리가 목표로 삼은 곳은 산악 지대 한복판이오. 비록 산중에 있다고 해도 큰 마을 하나를 품을 만한 땅입니다. 그러나 본거지가 될 만큼 넓은 땅은 못되지요. 또 그 본거지란 곳을 당장 점령할 수 있더라도 절대로 그곳까지 진출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더 큰 적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니, 일단 다음 과제로 넘기자 그러더군요.”
오모호 수루와 퍼너허 톡소(佛訥赫 拖克索)의 본거지는 바로 후세의 돈화시였다. 돈화 시내를 중심으로 주변에 조선의 군 몇 개는 족히 들어갈 정도로 광활한 내륙분지 지형이 펼쳐져 있는데, 이 지역의 북부는 퍼너허 톡소, 남쪽은 오모호 수루 부족의 영역이었다.
거주지 남부와 동부에서 동해부와 경계를 접하게 된 오모호 수루는 돈화 남부 평원과 그 남쪽의 산악 지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남부 산지의 거주지는 홀한하(목단강) 상류와 부르하, 고동하 유역을 따라 분포되어 있었다.
태건이 특별히 이 두 부족을 정벌하지 말라고 부탁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제2연대 병력만으로도 그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누르하치는 단 천여 명의 병력으로 이 두 부족의 항복을 받아 냈다. 물론 저들의 힘이 미약해 일어난 일일 수도 있지만, 누르하치의 위세에 눌려 굴복한 측면이 있었다. 누르하치는 이런 점을 이용해 그다지 많은 병력을 파병하지 않고도, 어렵지 않게 여러 여진 부족들을 차례차례 복속시켰다.
* * *
태건은 화원이 그려 준 북청함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 속의 북청함은 수많은 돛을 활짝 펼친 채, 슬해의 거친 파도를 가르며 수면 위를 나는 듯 달려가고 있었다. 태건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타 봤으면서 또 그림을 보고 웃어요?”
그림에서 태건의 얼굴로, 번갈아 시선을 주던 홍은이 결국 참지 못하고 참견했다.
“내가 웃었어?”
“예, 푼수처럼요.”
“푼수?”
“호호! 뭐, 그렇다고요. 얼마나 좋으면 그럴까? 근데 내가 왜 여기 왔는지 묻지도 않으시네?”
“아, 이런. 내 정신 좀 봐. 미안.”
“이거 좀 봐주세요.”
홍은이 막대형 천리경을 태건에게 건넸다.
“오오! 드디어 천리경이 나왔네?”
“우리 유리 장인들 실력이 일취월장했잖아요.”
유리 제조업이야말로 동해부에서 세제 제조와 함께 가장 먼저 출범한 산업이라, 그만큼 기술력이 많이 축적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제 망원경에 들어가는, 투명한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를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태건은 얼른 밖으로 나가 천리경을 시험해 보더니 다시 집무실로 돌아왔다.
“첫 작품치고 잘 나왔어. 이거 빨리 군에 보급해야겠다. 양산이 가능하지?”
“그럼요. 그동안 렌즈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했는데. 덕분에 렌즈 만드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지. 몸체야 야장분들이 주물로 만드니까, 시간 걸릴 이유가 없고.”
“참 맘에 드는군.”
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며 이하륜과 심결이란 지리학교수가 들어왔다. 차치량의 동료로 그와 같이 경흥으로 온 이였다.
“그건 측량기기?”
직원 몇몇이 짐을 들고 들어오자 태건은 단번에 그 물건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예. 이번 기회에 은이와 함께 만들어 봤어요.”
“와! 오늘 아주 날을 잡았군. 그럼 이제 지리원을 출범시켜도 되는 건가?”
“예?”
지리란 두 글자가 언급되자 심결이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공상부 산하로 지리원을 만들려고 했소. 예전부터 계획된 일이었지요.”
“아, 예. 그럼 우리 지리학교수들은 지리원으로 소속이 바뀌는 겁니까?”
“그렇지. 거기서 새로운 형태의 지도를 제작해 주시오. 지맥 중심이 아닌 실제적인 정보가 듬뿍 들어간, 전보다 사실적인 지도 말이오. 그뿐만이 아니라 지적도도 만들어야 하는데…….”
지적도가 언급되자, 이하륜이 나서서 대신 설명해 주었다.
“헉! 그 많은 걸 언제 다 한단 말입니까?”
“사람을 많이 뽑아줄 테니, 그 사람들 잘 교육해서 진득하게 해 나가야지. 지도가 만들어질 때까지는 일단 기존 지도를 활용하고.”
사실 조선에도 측량기기가 이미 존재했다. 원근을 재는 인지의와 고도를 재는 규형, 그리고 평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리고차 등이 있지만, 이하륜과 홍은은 근대식 측량기를 개발해 활용하고자 했다.
“음, 알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하륜은 청동으로 만든 자 하나를 들어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건… 자 아닙니까? 근데 꽤 기네요?”
“예. 이거 때문에 심 교수님을 부른 겁니다. 이거 가지세요.”
이하륜이 심결에게 자를 넘겼다.
“이걸 왜…….”
“이제 동해부에 맞는 도량형을 만들 때가 되었거든요. 모든 단위를 통일해서.”
“통일이라면……?”
“단위가 제각각이라 매우 불편하고 복잡하죠. 지역마다 다르고, 심지어 품목마다 기준이 다르기도 하고. 그러니 바꿔야 하지 않겠어요?”
“예. 그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도량형 문제만큼 골치 아픈 건 없었다. 길이 단위만 해도 분, 초, 척, 장, 리 등 명칭이 달라 몹시 복잡한데다 시대마다 기준이 달라지기도 했다. 부피와 무게 단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하륜과 태건은 고민 끝에 후세의 미터법 비슷한 개념을 도입해 도량형을 통일시키기로 했다. 심지어 길이 단위도 1m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는데, 현재 1m짜리 자가 없다 보니 기존의 자를 가지고 환산해서 대충 표준자를 만들었다.
“이 자를 기준으로 삼을 겁니다. 길이 단위는 미를 씁니다. 리에 비해 작으니, 작다는 뜻의 ‘미’자를 선택했지요.”
이하륜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한자의 ‘미’자가 아닌 미터의 미를 줄여 말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자 길이를 1정미라 정했습니다.”
1정미는 곧 1m였다. 그러므로 센티미터와 밀리미터에 해당하는 단위도 당연히 새로 도입했다.
“이걸 100으로 나눈 단위를 세미라 하고, 1세미를 10으로 나눈 단위를 미미라 부르자고요. 그리고 정미가 천이면 장미라 하고.”
“그럼 가장 작은 단위가 미미이고, 가장 큰 단위가 장미입니까?”
“그런 셈이죠. 나중에 더 추가할 수도 있지만. 어때요?”
“음. 미란 단위로 통일하니까, 편리할 것 같습니다. 그럼 무게도…….”
이하륜은 보따리에서 1㎏짜리 추 하나를 꺼내 놓았다.
“아, 이것도 표준 저울추군요.”
“예. 무게 단위의 기준은 중입니다. 이 저울추가 1중중이죠.”
“중중이요? 허허! 재미있군요.”
“재미있으니 더 잘 외워지지 않겠어요?”
“맞습니다.”
이하륜은 1킬로그램을 1중중, 1그램을 1정중이라 정했다. 또한 밀리그램은 미중이고, 톤은 태중이라고 했다. 부피 단위에도 ‘양’이란 용어를 도입했다. 그래서 1리터를 1정량, 1cc를 1미량, 1킬로리터를 1태량이라 표현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물 1태량의 무게는 1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