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솔빈강 하류 유역으로 진출하다 (1)
[슬해의 푸른 물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더위에 축 늘어진 까치다리풀이 부르르 떨더니 바로 몸을 일으킨다. 바람이 지나간 해변 초원은 슬해 물색을 닮아 더욱 푸르렀다.사람의 얼굴도 초원처럼 살아났다. 여름의 슬해 바람은 분명 뭇 생명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다. 나와 일행은 이제 기운을 얻어 연추의 동창룡사로…….]
“또 군 보급대가 지나가고 있구려. 아무래도 군이 움직일 모양이오.”
도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글 쓰는 데에 한창인 허성을 황진이 깨웠다.
“군 보급대요?”
“오늘만도 벌써 두 번째요.”
“동해부가 또 북쪽으로 영역을 넓힐 모양입니다.”
황진은 멀리 보이는 군 보급대의 행렬에서 관심을 거둬들이고 다시 해변을 둘러보았다.
황진과 허성이 경흥에서 재회한 후로, 둘은 늘 붙어 다녔다. 허성이 여행을 떠나면 당연히 동행했고, 돌아와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면 술친구가 되어 주었다.
현재 허성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려 옛 콜칸 지방을 여행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이곳은 연추군 동창룡사에 속한 지역으로, 길에서 벗어나 해변 언덕에 오르기만 해도 슬해 해변 풍광을 만끽할 수 있어 여행하기에 그만이었다.
“정말 맘에 드는 곳이군.”
“그러게요. 북방이라 해도 참으로 살기 좋아 보이지 않습니까?”
“태 도독은 정말 하늘이 낸 인물 같소.”
황진이 새삼스레 태건에 대해 평하자 허성이 웃으며 물었다.
“왜 그리 생각하시오?”
“북방을 경략한 배포와 능력을 봐도 그렇지만, 내정도 기가 막히게 잘하니까요. 이 도로만 봐도 그렇지. 두만강 다리부터 시작해, 이렇게 널찍은 관도를 저 북쪽 지방까지 다 놓지 않았소? 역참도 잘 정리해 놓은 데다, 동해인이 많이 사는 땅인데도 해코지하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민심 관리도 잘하고 있고.”
황진은 곁눈질로 번호 출신 온로가의 표정을 살폈다. 허성의 비서 역할을 맡게 된 조찬정과 함께 나란히 서서 슬해 바다를 보고 있던 온로가가 미소를 짓더니 황진에게 말했다.
“동해부의 법이 엄정한 편이라, 범죄를 저지르려면 큰맘 먹어야 한답니다. 더구나 초기 포로들과 달리 앞으로 죄짓고 잡히는 범죄자들은 무조건 탄광에서 노역한다는 소문이 강외에도 쫙 퍼졌지요.”
“오호라! 그런 속사정도 있었구먼.”
“동해부 정부가 원래 사람 차별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으니, 조선인 목숨이나 동해인 목숨이나 그 경중이 같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도 콜칸인은 더욱 조선인과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애쓴답니다. 예전에 녹둔도로 약탈 나갔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허허! 나도 들었소. 녹둔도가 시작이었다고 했지. 그 일로 큰 전투가 벌어져 많이 죽었다고 들었소.”
“예. 그래서 다들 우리 도독님을 참으로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원칙과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면이 있어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잘 따르는 편이지요.”
번호 출신인 온로가의 말이라 상당히 객관적인 평가였다.
허성은 미소를 머금은 채, 온로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온로가는 허성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동생 허균의 부탁으로 동해인을 위한 조선어 교재를 만들고 있는데, 온로가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다.
허성은 요즘 글 대부분을 한글로 쓰며, 한글의 위력을 더욱 실감하고 있었다. 특히 주션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마다 한글이 얼마나 편리한 문자 체계인지 새삼 깨달았다. 반치음과 순경음 자음, 아래아 모음 등이 모두 현존하다 보니 주션어 발음을 너끈하게 한글로 적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천상 성리학자인 허성도 한글에 더욱 매료되었다.
허성은 손을 들어 남쪽을 가리켰다.
“오늘은 저 해변 마을로 가봅시다.”
“예. 어르신.”
“어르신은 무슨…….”
허성의 나이는 이제 47세이고, 황진의 나이는 45세였다. 조선시대로 보면 꽤 많은 나이이긴 하나, 한창 일할 시기이기도 했다.
일행은 말에 올라 남쪽으로 난 소로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곧 해변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이 동창룡사에 속한 양진동이라고 했지?”
허성의 질문에 조찬정이 답했다.
“예. 강원도 고성의 양진이란 곳에서 살던 어부들이 이곳으로 이주했답니다.”
“그래서 양진이 되었군.”
“그렇습니다. 강외의 이주민 촌 이름이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붙고 있답니다.”
이곳 양진동은 미래 러시아의 자루비노 부근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양진동은 전형적인 반농반어 형태의 마을이었다. 이곳에 정착한 인구가 많지 않다 보니, 포구 뒤편에 자리한, 타지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넓은 땅이 가구마다 배정되었다.
또 주민 중, 어부였던 이들은 바다로 나가 어로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된 어선을 구하지 못해, 떼배 ― 통나무를 뗏목처럼 엮어 만든 배 ― 형태의 어선을 타고 가까운 바다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허성 일행은 바로 마을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찾아온 조선인 나그네들이라, 마을 사람들은 허성 일행을 몹시 반겼다. 허성은 마을을 둘러보다, 여기저기에 잔뜩 걸려 있는 건어물을 보고 어민에게 물었다.
“고기는 잘 잡히오?”
“아유! 말도 마시오. 여긴 정말 고기 반 물 반이오. 버젓한 어선만 있다면 우리 모두 부자가 됐을 겁니다.”
“그렇게 잘 잡히오?”
“이웃 마을 콜칸 사람들에게 물으니, 원래 풍부했답니다.”
“허허! 말이 벌써 통하오?”
“콜칸 마을에 조선말을 조금 할 줄 아는 이가 살고 있지요.”
“그렇군. 그럼 저 고기로 어떻게 돈을 버시오?”
“군에서 사러 옵니다. 전쟁 나간 군인들 식량으로 건어물만큼 좋은 게 없답니다. 물에 불려 국 끓여 주면 병사들이 아주 좋아 죽는다네요.”
“아하! 그렇군.”
“우리뿐만이 아니라 콜칸 어부들도 신이 났지요.”
“콜칸 사람들과 사이가 좋은가 보오?”
“물론입죠. 우리한테 배우는 게 많아 좋다네요. 와서 보니, 이렇게 풍요로운 바다에서 고기와 조개만 잡아먹고 살더라고요. 그래서 해초 따서 먹는 거, 해변에서 다른 먹을 거 찾는 거, 채소 반찬 만드는 거, 이런 걸 알려 주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특히 여긴 콩이 많이 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두부 만들어 나눠 줬더니 아주 환장해서 더 만들어 달라고 어찌나 졸라 대던지…….”
어민은 신나서 그간 콜칸 마을 사람과 교류한 일에 대해 떠벌렸다.
“그런 일이 있었군.”
허성은 어촌 마을에서 동해인과 조선인이 어떤 방식으로 교류하며 살아가는지 능히 이해하게 되었다.
“확실히 우리 조선인이 좋은 이웃인 모양이오.”
황진이 한마디 덧붙이자 어민이 웃으며 대답했다.
“좋은 이웃이지요. 우리가 뭐 저들 땅을 빼앗은 것도 아니니, 사이좋게 지내면 서로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허성은 오늘 유람기에 쓸 거리를 많이 얻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 * *
태건은 현재 육군 소속 각 군이 펼치고 있는 작전을 ‘통로 확보전’이라 명명했다.
원래 내실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이기에 더 넓은 영토를 확보하기보다 다음 작전을 위한, 진출로를 확보하는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다.
제3군 남부군의 폐사군 점령 작전도 그 일환이었다. 현재 신첨의 제10연대 병력은 자성군과 강계부의 경계 지점인 자작령과 우항령까지 진출했고, 장호의 제12연대 역시 우예군과 강계부의 경계인 상토진에 배치되어 있었다. 신첨과 장호 연대장은 진지 구축이 완료되자마자 우항령과 신토진에 구휼소를 열었다.
태건은 폐사군 전역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곧바로 폐사군이란 용어를 없애고 무창, 자성, 여연, 우예군을 부활시켰다.
이처럼 압록강 사군 지방의 안전이 확보됨에 따라, 평안도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동해부 군이 이곳을 점유하기 전부터 이미 이주민이 들어온 바가 있어, 유입 추세가 더욱 빨라졌다.
더구나 구휼소가 열린 데다, 강외로 이주하면 너른 농토를 준다는 소문이 조금씩 평안도에 퍼지기 시작한 데 따른 파급효과도 매우 컸다. 태건의 의도대로 동해부와 평안도를 잇는 통로가 열린 셈이었다.
제1군의 경우 두 곳에서 ‘통로 확보전’이 실행되고 있었다. 진태종의 제2연대는 미래 안도현의 중심지인 명월진까지 나아간 후, 주변의 골짜기를 돌며 점령지를 늘려 갔다.
그리고 새로 창설되어 사령부를 장령현 장령진에 두고 있는 제11연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전 개시 명령이 떨어지자, 신임 경현호 연대장은 병력을 이끌고 북쪽 가야하 상류 유역을 차근차근 점령해 가며 무려 60㎞를 북진, 노송령까지 진출했다. 그래서 노송령 바로 남쪽에 미래의 ‘춘양진’이란 곳에 자리 잡고, 그곳을 제11연대의 새로운 주둔지로 삼았다.
제11연대의 전격적인 북상으로 인해 니마차 부족은 현재 난리가 난 상태였다. 장령진에서 노송령 사이에 있는 니마차 부락의 절반은 북쪽으로 도주했고, 절반은 즉시 항복했다. 항복한 이들은 장령진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이들로, 마치카 현령과 조선인 현감이 니마차 원주민들을 상대로 선정을 펼치자, 그 소문을 듣고 귀부한 것이다.
제2군도 절반의 병력은 ‘통로 확보전’에 동원되어 만보동과 양천동까지 진출한 후, 동령진에 거주하는 남둘루 무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군의 절반만큼은 이 작전이 아닌, 다른 성격의 작전에 투입되었다. 바로 제2군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수이푼 공략전에 돌입한 것이다.
제2군 사령관 정강빈은 직접 제7연대 병력을 이끌고 안춘과 여산현 사이에 자리한 분수령을 넘어, 여산현 무릉강 상류 지역으로 진출했다. 또한 무릉강 중류, 용산동과 삼수진 지역에 주둔 중인 제5연대도 무릉강을 건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촉각을 곤두세운 채 동해부 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수이푼의 대추장 툴런(吐朗)에게 이 소식이 즉시 전달되었다.
“적병의 수가 무려 4천이라니…….”
제2군 사령관 정강빈이 처음부터 2군을 네 개 연대로 편성했기에 각 연대 정원은 이천 정도였다. 그래서 4천이었다.
툴런의 시선은 남둘루의 칵두리 암반에게 향했다. 칵두리는 남둘루의 최대 세력가인 캉구리 암반의 동생으로, 수이푼을 돕기 위해 구원병을 이끌고 수이푼 지역에 들어와 있었다.
칵두리는 차마 말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본진에서 더 많은 원병을 보내 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었다.
“남둘루에서 원병을 보내 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저 조선군을 막는단 말입니까?”
“지금 우리 남둘루 본가도 난리가 났어요. 민안도바얀 암반이 지키고 있는 수분 부락이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답니다.”
민안도바얀은 남둘루 수분부의 추장으로, 동녕진과 그 부근의 솔빈강 유역을 본거지로 삼고 있었다. 그러므로 제2군 소속 2개 연대 병력이 동녕 부근까지 바짝 접근하자 대경한 그는 즉시 남둘루 본진이라 할 수 있는 푸르단성 ― 미래의 우수리스크 ― 으로 구원을 요청했다. 캉구리는 이 요청에 응해 병력 일부를 이미 차출해 동녕으로 원군을 보낸 상태라, 수이푼으로 병력을 보내 줄 여력이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