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미타호 지방을 얻다 (3)
남둘루의 본진, 푸르단성(솔빈진) 동북쪽에 있는 후예 부족의 중심지.
미래 러시아의 아르세니예프란 곳으로, 우수리강의 지류인 호야하(呼野河) ― 나중에 도비하(道比河)로 이름이 바뀜 ― 강변에 자리했는데 푸르단성과 직선거리로 약 115㎞ 정도 떨어져 있었다. 후예 부족은 이 호야하 강변을 따라 주로 거주했다.
마중 나와 있던 후예 부족의 암반들이 태건과 이하륜, 제2군 사령관 정강빈, 제5연대장 김무정 등 동해부 군 지휘부에 황망한 표정으로 다가와 절을 하듯 허리를 숙였다.
암반들은 태건의 뒤를 따르고 있는, 삼천여 병력을 보고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태건이 조금이라도 변심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태건이 후예까지 온 이유는 후예 추장들이 조건부로 투항했기 때문이다. 그 조건이란 태건과 대면해 귀부 절차를 밟겠다는 것. 그래서 태건이 약속한 현령의 지위, 약간의 자치권 등을 직접 보장받고자 했다.
그 소식을 들은 태건은 흔쾌히 응했다. 심지어 보여 줄 게 있다며 이하륜까지 데리고 왔다.
두 진영 간의 회합은 간단히 끝났다. 태건이 수많은 병력을 대동해 직접 왔기에 후예 추장들은 태건의 말을 그저 수긍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미타호 동부 평원과 이곳 호야하 유역을 합쳐 후예현으로 묶고, 현청을 이곳 후예진에 두기로 하겠소. 동미타호 평원은 나중에 거주민이 늘어나면 미주현으로 분리될 것이니 그리 아시고. 물론 현령은 그대, 지르카 암반이 맡아 주시오. 조만간 동해부에서 현감이 파견될 테니, 일단 그에게 내정을 맡기고 지르카 암반은 다른 암반들과 함께 동해부로 와서 행정 체계를 익히길 바라오.”
“예, 그리하겠습니다. 대도독님.”
태건은 이하륜과 함께 새로 후예평이란 이름이 붙은 이 평원지대를 둘러보았다.
“와, 여기도 엄청 넓네? 미타호 평원만 넓은 줄 알았더니.”
현재 동해부가 차지한, 미타호 주변의 평원은 솔빈진(푸르단성)이 자리한 남미타호 평원과 호수 동쪽의 동미타호 평원, 두 곳이었다. 이 두 평원만 해도 현 동해부 인구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었다.
특히 남미타호 평원의 경우 남북의 길이가 대략 100㎞, 동서가 65㎞에 달해, 이곳만 농토로 잘 개간해도 동해부 인구 전체를 부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곳 역시 대도시가 될 만한 곳이지. 훈춘평원보다 훨씬 넓으니까. 조금 추워서 그렇지.”
“조금 추운 정도는 아니지 않나? 크크크!”
“추위에 익숙한 함경도나 평안도 사람이라면 잘 버틸 거다.”
“남둘루를 정벌하고 나니까 진짜 북동쪽이 활짝 열려버리네?”
“그렇지. 이제 소규모 부족들을 차례로 복속시키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땅만 확보하면 된다. 그러다 인구가 많이 늘면 그만큼 확장하면 되고.”
“이게 진짜 꿈인지 생시인지. 맘만 먹으면 영토를 늘릴 수 있다니.”
“일단 우리가 목표로 삼은 곳까지 확보한 다음, 내실에 신경을 쏟자고.”
“예, 형님.”
태건은 후예의 일이 끝나자 1개 대대 병력만 후예진에 남기고, 북쪽으로 호야하를 따라 이동했다.
길을 개척하며 사흘 정도 나아가자, 드디어 우수리강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우수리강 상류에 해당하는 이 물줄기는 동쪽 계곡에서 흘러나왔는데, 상류의 수계도 매우 복잡하고 넓었다. 그래서 ‘우라하’라는 별도의 하천 이름이 붙어 있는데, ‘우라’는 여진어로 강이란 뜻이기 때문에 고유명사로 보기 어려웠다.
“연해주가 전반적으로 산으로 뒤덮여 있긴 한데, 큰 강 유역만큼은 나름 쓸 만하거든. 저 우라하 유역이 그래. 사람 살기에 좋은 땅이 꽤 넓게 분포되어 있지 그러니 나중에 물줄기를 따라 개척촌을 건설해야 할 거다.”
“그래야죠. 비록 소수라도 이런 연해주 산골짝에도 조선인이 들어와 살게 해야지.”
“그럼 일단 이곳을 대흥진이라고 할까? 이곳 합수되는 지점부터 개발해야 하니, 이름이라도 붙여 두자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군도 조만간 이곳에 주둔지를 만들어 두겠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정강빈이 대답했다.
“좋지.”
태건 일행이 다시 대흥진을 나서서 우수리강 본류를 따라 15㎞쯤 나아가자, 드디어 동미타호 평원이 나타났다.
“허허! 여기서도 지평선이 보이네요.”
정강빈이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남미타호 평원만 그런 게 아니라, 동미타호 평원 역시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었다. 발해 시기 이곳은 미주였기에, 태건은 훗날 이곳을 미주현으로 분리시킬 작정이었다.
태건은 우수리강이 빠져나온 이 협곡 지대를, 큰 관문과 같다고 하여 ‘대관’이라 명명했다. 이곳 역시 동쪽에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어 개발의 필요성이 큰 곳이기 때문에 지명부터 먼저 부여한 것이다.
“미타호 구경은 나중에 하고 일단 계속 북쪽으로 가세.”
“예. 그리하지요.”
태건 군은 우수리강을 따라 약 60㎞를 더 나아갔다. 그러자 끝도 없이 펼쳐진 평원 한가운데에 나지막한 구릉지가 나타났다. 주변이 온통 저지대이다 보니, 이 언덕 지형의 고도가 높지 않음에도 우뚝 서 있는 성처럼 보였다. 우수리강 역시 이곳에서 서쪽으로 언덕을 휘영청 감돈 다음, 다시 북쪽으로 흘러갔다.
“여기서 잠시 머물다 가기로 할까?”
이곳은 훗날 레소자보츠크라는, 꽤 큰 도시가 들어설 곳이었다. 태건도 이곳을 눈여겨보았고, 이곳을 답사할 생각으로 이하륜을 데려왔다.
“혹시 여길 보자고 절 데려왔어요?”
“어, 여기다 제철소를 지을 생각이거든.”
“예? 제철소를 여기에?”
이하륜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에 뭐가 있다고? 제철소 같은 공업시설을 들여앉히기보다 농사짓기 딱 좋은 곳 아닌가? 여기만 제외하고 주변이 온통 평야 지대인데요?”
“이곳 주변이 광물자원의 보고이거든. 저 동쪽의 구릉지와 숲이 그렇다.”
“그럼 이곳에 철광산도 있어요?”
“물론이지.”
“철광산은 여기 말고도 많은데? 단천하고, 경흥, 무산, 아랑현에도 있잖아요? 그런데 하필 왜 이런 먼 곳에?”
“거기엔 역청탄이 없잖아.”
대형 제철소를 짓고 거기서 강철을 뽑아내려면 반드시 코크스를 써야 하는데, 그건 역청탄을 건류해야 얻을 수 있다.
“아, 그렇다면 이 주변에서 역청탄이?”
“아니. 조금 먼 데 있다. 교통수단도 변변치 않은 우리 형편에서 제철소를 짓자면 둘 중 하나에 부합해야지. 역청탄이 나오는 곳, 혹은 철광산이 있는 곳. 그런데 역청탄이 매장된 탄전 지대에서 가장 가까운 철광산이 바로 이곳이거든.”
“아! 이해했어요. 그래서 여길 선택했군. 그럼 역청탄은 어디에?”
“여기서 정서 방향으로 약 120장미 떨어진 곳에 있다.”
“정서 방향이면… 미타호 북부 평원 지대인가?”
“아니, 그 너머 서북쪽 산지다. 봉밀산이란 곳.”
태건이 말한 곳은 미래 중국의 ‘밀산시(미산시)’였다. 청대에 봉밀산이라 불리었는데, ‘밀산’으로 바뀐 것이다.
“거긴 무런 부족의 땅 아닌가?”
“맞아. 하지만 지금쯤 우리 7연대가 거길 정벌했을 것 같아서.”
제2군 제7연대 병력은 동녕진을 출발해 동북쪽으로 나아간 다음, 미타호의 서부 연안 지역인 타주 ― 발해 시기의 지명으로 미타호 서부 지역을 말함 ― 를 지나 북상 중이었다.
미타호 서부 연안은 북부와 동부, 남부와 다르게 언덕 지형이 호수 주변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 구릉지를 돌파하고 나면 우수리강의 지류인 무런강(목륜하)이 나오는데, 이 무런강 유역을 따라 서부 상류 쪽은 우르구천 부족이, 동부 하류 쪽은 무런 부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제7연대는 이 두 부족을 정벌하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럼 난 여기서 할 일이 있겠군.”
“제철소를 어디에 세울지 부지 좀 알아봐 줘.”
“네. 바로 둘러볼게요.”
이하륜이 호위들과 함께 떠나자, 태건은 정강빈 사령관을 불렀다.
“예, 대도독님.”
“여기를 앞으로 영강진이라 부르겠네.”
“영강진이요? 그럼 이곳을 중요한 거점으로 삼을 생각입니까?”
“그렇네. 이곳에 연대 사령부를 두는 게 좋겠어. 2군 사령부는 솔빈에 설치하고.”
“역시, 지형을 보고 저도 처음부터 요충지라 생각했습니다.”
“난 여기서 돌아갈 테니까, 자넨 북쪽으로 더 나아가 우수이 부족과 니만, 아쿨리 부족의 항복을 받게. 그리고 니만 부락에 요새를 짓도록.”
“그럼 니만 부락이 우리의 북방 변경이 되는 겁니까?”
“그렇게 되겠지. 더 북진하고 싶어도 관리할 여력이 없으니, 일단 니만을 북방 경계로 삼자고.”
“하하! 그리하지요.”
니만 부족의 거주지는 무런강과 우수리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로, 미래 러시아의 ‘달네레첸스크’를 꼽을 수 있는데, 이 도시의 원이름은 ‘이만’이었다. 태건이 요새를 세우라고 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 * *
홀한성에 틀어박힌 채, 각지에서 들어오는 전황에 귀 기울이고 있던 니마차의 암반 뇨후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군의 매복 위치가 다 간파당한 것 같다고?”
“그렇습니다. 벌써 다섯 부대가 먼저 역으로 기습당해, 장정 대부분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다섯 부대면 보유 병력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수치였다. 벌써 꽤 많이 당한 셈이다.
“아무래도 하늘에 둥그런 괴물체가 떠 있는데, 거기서 다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런 소문을 들은 바 있네. 조선군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싸운다고.”
똑똑!
“들어와!”
부관이 들어와 새로 들어온 정보를 알려 주었다.
“우르구천 부족에서 보낸 사자가 도착했는데, 조선군 대군이 갑자기 동쪽에서 나타나 우르구천을 부족을 압박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래서 급히 암반들이 회동했는데, 결국 항복하기로 의견을 모았답니다.”
“뭐, 뭐요?”
너무도 놀라운 소식에 닝구타 암반 성거의 눈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무런도 이미 넘어갔단 뜻인데…….”
뇨후트는 이번 동해부의 공세가 모든 야인여진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점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다시 부관에게 물었다.
“사자를 보낸 암반은 어찌하고 있나?”
“투항을 거부하는 쪽이라 사자를 보냈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투항할 것 같답니다. 이건 사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아, 이를 어쩐다…….”
니카리 암반도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서성거렸다.
닝구타 암반들이 초조해하는 이유는 그들의 거주지가 우르구천에서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동해부 군이 우르구천의 항복을 받은 뒤, 무런 강 상류를 따라 전진해 동북쪽에서 압박해 오면, 남쪽과 서남쪽에서 작전 중인 동해부 병력 사이에 끼어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다.
뇨후트 역시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게 잠시 방안에 정적이 흐르자, 남 후르카의 자코타 암반이 결국 중재에 나섰다.
“우리 부락으로 후퇴하시지요. 그게 싫다면 투항하시든지.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싸워 봐야 의미 없는 희생자만 낳을 뿐입니다.”
자코타 암반의 발언을 누구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휴! 그럽시다.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떻소?”
뇨후트도 결국 포기하고, 다른 니마차 암반들의 의견을 물었다.
똑똑!
또 다른 부관이 문을 두드렸다.
“뭔가?”
“포로가 됐던 우리 장정 하나가 조선군의 전갈을 가져왔습니다.”
“조선군이 보냈다고? 들여보내게.”
몰골이 엉망이 된 장정 하나가 들어와 그에게 보고했다.
“지금이라도 투항하면 어떤 처벌도 없을 거랍니다. 그러나 우리 니마차 암반들의 지위를 보장하진 못한답니다. 다른 부족과 형평성 때문에. 다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겠답니다.”
“사, 살려 준다고?”
“그렇습니다.”
뇨후트가 내심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걸 어떻게 보장할 수 있나?”
다른 암반 하나가 물었다. 그러자 뇨후트가 대신 답해 주었다.
“지금까지 조선군이 약속을 어긴 적은 없소. 나 또한 건가퇴에서 붙잡혔는데, 사전에 약속한 사항을 완벽하게 이행해 줬소. 태건이란 수장의 태도가 그렇고, 부하 장수도 그의 명을 철저히 따르니, 믿을만합니다.”
“휴! 그럼 투항합시다.”
니마차 암반들이 결국 투항을 결정하자, 닝구타 암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니마차까지 무너진 마당에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르카 암반은 달랐다.
“그럼 난 장정들을 데리고 돌아가겠소.”
“그러시지요.”
남 후르카 부족들의 거주지는 이들과 다소 거리가 있어 지금 당장 귀부 여부를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