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발해 건국 (1)
서기 1596년, 병신년 음력 5월 5일.
아이신교로 슈르하치와 누르하치의 장남 츄잉은 수행원들과 함께 두 번째로 완공된 두만강 대교, 융화교 앞에 이르렀다.
슈르하치는 융화교를 보자 또다시 탄성을 터트렸다.
“오오! 이 다리가 훨씬 더 커 보이는데?”
“어제저녁에 건넜던 다리가 뭐였지요?”
“글쎄다. 뭐였지?”
“채탄교입니다.”
조카의 질문을 받은 슈르하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호위 겸 통역으로 동행한 콜칸인 김와일란 정령이 대답해 주었다. 그는 1군 사령부의 부장으로, 건주부의 외교사절단을 국경부터 호위해 왔다.
“그래, 채탄교였지.”
채탄교는 종성의 방탄사와 용정현의 채사를 연결하는, 두만강 세 번째 다리였다.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터를 잡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도로 하나는 아주 잘되어 있는 것 같군. 저렇게 멋진 다리도 만들고 말이야.”
건국 선포식 행사의 축하 사절로 온 슈르하치와 츄잉은 동해부 형편을 정탐할 생각으로, 일찌감치 출발해 여유롭게 움직여 왔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자, 다소 실망했던 차에 채탄교라는 두만강 교량이 이들의 흥미를 다시 불러일으킨 것.
국경을 접한 인안부는 드문드문 정착촌이 조성되고 있을 뿐 전체적으로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고, 용정과 아랑현 등이 있는 현덕부 지방은 개발이 조금 진행되어 형편이 약간 나아 보이는 정도였다.
그나마 놀랄 만한 점이 있다면 바로 도로였다. 산악 지대인 증봉령 구간에서 벌써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또 증봉령을 지나자 시원하게 뚫린 동서 횡단선 도로를 타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채탄교를 건너 옛 육진 지역에 들어서서 확연히 달라진 풍경을 접하고, 두 사람은 몹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염탐할 게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거리마다 사람으로 넘쳐흘렀고, 잘 포장된 도로를 수많은 우마차가 짐을 가득 실은 채 오가고 있었다. 특히 말 두 마리가 끄는, 뒤 칸에 사람을 여럿 태울만한 객석을 붙인, 소위 ‘합승 수레’ ― 19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마차 버스 ― 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여진족 정벌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말을 노획한데다, 말을 사육하는 부족도 세력권에 들어와 있어 동해부의 말 가격은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 그래서 태건은 마차 버스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경흥이나 경원, 훈춘, 단천, 악양처럼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은 고을에서 우선 도입되었는데, 일단 현청에서 직영하는 형태로 운행이 시작되었다.
“어라? 저들은?”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 뒤를 돌아본 츄잉은 얼굴을 찌푸렸다.
“쳇! 호이파의 바인다리 버일러의 아들이군.”
호이파 역시 축하 사절을 보냈는데, 마침 융화교 앞에서 이들이 마주친 것이다.
“호이파 사절도 초청했소?”
슈르하치가 이당에게 물었다. 외부의 수장, 이당은 외빈 중에서 가장 귀한 손님인 슈르하치와 츄잉을 맞이하려 경원의 훈융사로 나와, 그곳부터 이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김와일란이 이를 통역해주자 이당이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당연히 초청했지요. 호이파뿐만이 아니라 여허와 울라국 사절도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그래요?”
슈르하치는 입맛을 다셨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행사라면 되도록 많은 축하 사절단을 불러 모아야 한다. 그리고 동해부의 초청을 다른 나라들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현재 만주 지역에서 가장 강성한 국가이기에 더 적극적으로 참석하려 했을 것이다.
슈르하치는 어쩔 수 없이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같이 다리를 건너 경기현 경내로 들어섰다. 경기현은 과거의 훈춘현으로, 올봄부터 그 이름이 경기로 바뀌었다.
태건은 올봄, 수도를 경흥에서 훈춘으로 이전하며 행정구역을 일부 조정했다. 그래서 이웃한 하다현 땅의 3할과 훈춘현의 2할 정도를 떼어 내어 수도 기능을 하는 서울 별부를 편성하고, 훈춘현의 지명을 경기현으로 바꿨다.
이들은 융화교를 건너자마자 또다시 깜짝 놀랐다. 또 다른 형태의 마차와 만났기 때문이다.
“헉! 저, 저건?”
“쇠로 만든 마차 같은데?”
“근데 저절로 가네요. 허, 이런… 이게 무슨 조화지?”
“저 연기는 뭐지?”
호이파와 건주부 사절들은 도로를 돌아다니는 두 대의 증기자동차를 목격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들의 눈에 굉음과 함께 연기를 뿜어내며 달리는 쇠 마차의 모습이 몹시 기괴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저, 저건 뭐요?”
츄잉이 김와일란에게 물었다.
“증기자동차란 겁니다. 작년부터 세상에 나와 지금 수십 대가 돌아다니고 있지요.”
“그럼 저 수레에 탄 이는 누구요?”
이들이 목격한 건 6인승 승용차였다.
태건은 이 첫 모델을 ‘경흥 1형’이라 이름하고, 각 부처와 현에 한 대씩 보급하고 있었다.
“서울 별부의 수장, 첨터허 도독이 타고 있습니다.”
첨터허는 이번에 승진되어 수도 서울의 도독 지위에 올랐다.
“첨터허? 그럼 피오성의 와르카부 암반이었던?”
슈르하치도 훈춘평의 세력가였던 첨터허를 알아보았다.
“그렇습니다.”
“그럼 저 다른 쇠마차는?”
“하다현 소속 자동차이니 현양건 현령이 타고 있을 겁니다. 오늘 행사 때문에 두 분이 일찌감치 만났던 모양입니다.”
“저 사람도 와르카 암반이오?”
“아닙니다. 고려인입니다.”
태건은 이번에 개국하며, 여진족을 그대로 동해인으로, 조선인을 고려인으로 호칭하기로 했다. 새로운 나라를 세웠으니, 조선과 선을 긋기 위함이었다.
“흠, 고려인…….”
여진족들도 조선인을 고려인이라 호칭하는 경우가 흔해, 자연스레 이 호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존 조선인들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약간의 거부감을 표하는 이도 있었다.
“혹시 우리도 저 쇠마차를 얻을 수 있겠소?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겠소만.”
츄잉이 간절한 표정으로 김와일란에게 물었다.
“어렵습니다. 저 자동차를 만든 기술 자체가 나라에서 비밀리에 관리하는 거라.”
“흠, 그렇겠지.”
일행은 다시 말에 올라 서울 별부로 향했다.
* * *
허균과 조경린은 정부청사 옥상에 올라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봉황광장과 그 너머 금오대로 쪽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장관이로다. 사람이 이리도 많이 모였다니.”
조경린이 탄성을 터트렸다.
“우리나라가 건국을 선포하는, 그 현장에 없었다면 평생 후회하지 않겠소?”
“그렇지. 술자리에서도 바보 취급당하겠지요.”
“그건 정말 못 참지. 후후!”
허균의 고개가 격하게 끄덕여졌다.
“사람은 많은데 건물은 여전히 휑하군요.”
“뭐, 차차 들어서겠지요.”
신수도 건설 사업이 시작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관계로 몇몇 핵심 기능만 조성해 놓은 상태라, 건물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도 공사 중인 블록도 있지만 빈 곳이 더 많아, 시가지는 전체적으로 휑해 보였다. 하지만 오늘은 주민들이 그 공간을 가득 채워 주었다.
두 사람은 오늘 행사가 끝나면 장관에서 대신으로 승진하게 된다. 이전의 동해부 정부처럼 지방 각부에도 중앙정부와 같은 내각이 설치되는데, 그 부처의 수장이 바로 장관이었다. 그러므로 중앙정부 각부 수장의 호칭도 자연스레 바뀌게 된 것이다.
“서울 별부라… 허허! 난 서울이란 이름이 너무 좋소. 순우리말 아니오?”
허균의 말에 조경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제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으니 모든 면을 일신해야지.”
수도 이름을 서울로 하자는 안을 처음 낸 이는 당연히 태건이었고, 이하륜도 적극적으로 찬성해 자연스레 서울이 되었는데 반대하는 이가 아예 없을 정도로 다들 만족해했다. 안 그래도 ‘훈춘’ 이름을 쓰면 안 된다는 얘기가 한창 돌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동경’과 ‘북경’, ‘경성’ 등의 여러 안이 나왔는데, 그런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 되었다.
“우리 태왕 기하가 내세운 국가의 정체성이 참으로 타당하지 않소? 고구려와 발해, 고려를 계승한다니. 조선은 형제라 했고.”
발해 정부는 고구려와 발해의 전통에 따라 왕호를 ‘태왕’으로, 또 조선의 ‘전하’ 대신 고구려와 발해의 ‘기하’라는 존칭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래서 허균이 ‘태왕 기하’라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만주 땅에서 터전을 일군 이상, 반드시 그리해야지요. 그래서 우리 국가 체제에도 발해와 고구려의 유산이 많이 스며들어 있지 않습니까?”
“맞소. 그 때문에 조선 조정과 너무나 많은 점에서 다르지요.”
허균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껏 기지개를 켰다. 건국 행사를 앞두고 있다 보니 몸이 자신도 모르게 경직된 것이다.
“전 건국이념으로 홍익인간을 내세운 점이 더 좋습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니, 얼마나 멋진 이념입니까? 더구나 건원도 하고요.”
연호를 선포하는 걸 ‘건원’이라 한다. 두 사람 모두 유생 출신이라 건원이란 행위에 깃들어 있는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으나, 조선에 살던 때의 기억이 벌써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구차했던 상황에 관한 기억 말입니다.”
허균의 말에 조경린이 격하게 반응했다.
“맞소. 참으로 구차했지. 명에게 구걸해 가며 왕위 책봉을 받은 것도 그렇고, 중국 사신 놈들의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단호히 거절 못해 쩔쩔매던 일도 그렇고.”
“그래서 태왕께서 얘기하셨지요. 앞으로 우리의 주적은 왜와 명이라고. 건주부와 조선이 아니라.”
“어쩌면 숙명이겠지요. 고유의 연호까지 내세운 마당이니. 우리나라가 자주국 노선을 가는 걸 보고 조선도 정신을 차렸으면 좋으련만.”
“후후! 그게 되겠어요? 그 케케묵은 유교 이념 자체가 기득권인데, 그걸 포기하면 권세를 포기하는 건데요?”
허균이 웃으며 말했다.
* * *
드디어 시작된 건국 선포 행사.
행사가 늘어지는 걸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태건은 명확한 의미가 담긴 의례만 짧게 진행했다.
사실 오늘의 행사에 앞서 며칠 전, 사전 행사도 있었다. 태건은 관상감 출신 교수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발해의 정궁인 건흥궁 뒤편, 봉황산 산봉에 제단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아울러 인동천 계곡 깊은 곳에 종묘를 만들고, 고조선의 단군왕검부터 시작해 고구려, 발해, 고려를 개국한 역대 군왕들의 위패를 봉안하는 행사도 개최했다.
그리고 행사 당일인 오늘, 봉황광장 한쪽에 서 있는 원형단에서 다시 천제를 지내고, 새로운 왕조의 개창을 하늘에 고했다.
제사 의식이 끝난 이후, 태건 부부는 중앙에 마련된 단상에 올랐다. 두 사람이 단에 오르자 백성들의 환호성이 광장을 뒤흔들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이 단 앞으로 나오자, 이번에 중추원장으로 선출된 조형용과 부원장 김아한 ― 콜칸 추장 출신 ― 이 각기 발해식 금관 하나씩 들고 단상으로 올라왔다. 이 금관은 그 원형이 조우관, 즉 깃털을 꽂은 모자 형태인데, 깃털 모양을 금장식으로 형상화했다.
태건 부부가 나란히 서서 살짝 고개를 숙이자, 두 중추원 대표는 금관을 태건과 홍은에게 차례대로 씌워 주었다.
그러자 국립 악단의 힘찬 연주가 흘러나왔고, 광장에 모여 있던 주민들과 내외빈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쏟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