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발해 건국 (2)
동해부는 작년 말부터 건국을 준비해 왔는데, 그 첫 번째 과제로 떠오른 일이 바로 태건의 결혼이었다. 한국식 나이로 벌써 스물아홉이나 되었고, 곧 왕위에 오르는데 배필이 없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며 측근들이 당장 식을 올리라고 채근했다.
그래서 태건은 못이기는 척하며 결국 홍은에게 청혼했고, 그 결과 올봄 두 사람이 결혼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그간 미뤄 뒀던 중추원도 구성했다. 귀부한 동해인 대추장 중 현령직을 맡지 않은 이들은 당연직 의관으로 임명되었다. 아울러 원래 조선인 거주지인 여민부나 동해부, 그리고 이주 정착민이 부쩍 늘어난 현덕부의 경우, 현마다 두 명 정원의 의관을 뽑는 선거를 치렀다. 물론 외곽에 자리한 새로 편입된 지방의 경우, 귀부한 부족의 대추장 중 한 명이 대표자로 의관이 되었다.
태건이 중추원 구성을 건국에 앞서 진행한 이유는, 명목상 이들이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달 전, 중추원 의관 총회가 열렸고, 그 자리에서 건국을 결의하고, 투표를 통해 태건을 국왕으로 추대하는 절차를 거치게 되었다. 물론 투표 결과는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왕관을 쓴 태건이 단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광장에 있는 국민들이 다시 함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
“발해국 만세! 만세! 만세!”
“발해 태왕 만세! 태왕 만세!”
처음엔 그저 의미 모를 함성만 들렸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그 소리가 뭉치더니 또렷하게 만세란 말로 들리기 시작했다. 만세는 황제에게 행하는 예법이나, 백성들은 그런 구분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실제로 태건은 굳이 왕국이니 황제국이니 하는 것으로 새 나라, 발해의 국격을 규정짓지 않았다. 그저 자주국이고 독립국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왕국이라 업신여기는 국가가 있다면 그들에게 황제국처럼 행동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왕의 호칭을 고구려식대로 ‘태왕’이라 했다. 사실상 황제인 셈이다.
태건은 꾸벅 고개를 숙여 답례한 다음, 광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제 정식으로 그의 신하가 된 측근들은 화려한 장식을 추가한 개량 한복 형태의 관복을 입었다. 아울러 관모 역시 왕관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는데, 장식만 달리해서 지위를 구분했다. 그렇게 다들 날렵한 형태의 관모를 쓰고 있으니, 기상이 매우 씩씩해 보였다.
광장 왼쪽에는 새로 제정된 국기, 삼족오기가 바람을 받아 펄럭이고 있었다.
이윽고, 태건이 연설을 시작했다.
“백성이 하늘이고, 그 백성의 대표가 짐을 태왕으로 추대했으니, 짐은 곧 하늘의 선택을 받은 것이오. 그러므로 우리 발해국이야말로 하늘이 낸 나라가 아니겠소?”
단상 아래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서 있는, 1개 대대에 달하는 근위대원들은 태건의 연설을 한마디씩 그대로 따라 외쳐 백성에게 전달해 줬다. 대원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광장에 울려 퍼지자, 백성들은 또다시 환호성을 터트렸다.
“와아아아! 맞소!”
“태왕 만세!”
태건은 백성들의 함성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다시 연설을 이어 갔다.
“동쪽을 보시오! 저 삼족오기가 바로 우리 발해국의 국기요.”
태건의 말에 따라 백성들의 시선이 일제히 오른쪽으로 향했다.
고동색 바탕 깃발 중앙에 황금색 삼족오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삼족오 문양은 봉황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유려하며 날렵해 보였고, 장식적인 요소가 강하게 고안되었다.
태건과 이하륜, 홍은이 머리를 맞대고 국기를 디자인했는데, 어디선가 봤던 문양을 떠올리고 이를 화원에게 부탁해 그리게 한 것이다.
“아울러 연호는 건흥이니, 올해가 바로 건흥 원년이 됩니다.”
태건은 고구려와 발해 대에 한 번씩 쓰인 ‘건흥’을 연호로 선택했다. 고구려의 경우 사용된 기록만 있고 시기가 특정되지 않았지만, 발해는 10대 선왕 때 썼던 연호였다. 두 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이 연호를 선택한 것이다.
* * *
발해 태왕이 된 후에도 태건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인간관계도 그랬다. 호칭만 바뀌었을 뿐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은 여전했다. 심지어 백성들도 전과 다름없이 태건을 살갑게 대했다. 그래서 말이나 증기자동차를 타고 행차하다 보면, 길 가던 백성들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곤 했다.
태건은 오늘도 서울 별부 주민의 성원을 받으며, 왕실 전용 증기자동차 편으로 금오대로를 타고 남쪽으로 나아갔다.
훈춘강에 놓인 돌다리, 금오교를 지나자 서울의 강남 시가지가 나왔다. 강남 역시 부지만 조성되어 있을 뿐,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이곳이 수도 예정지가 된 이후부터 농민 이주민을 더 이상 받지 않은 탓에 인가도 거의 없었다.
“너무 휑하군. 수도 이전이 너무 빨랐나?”
태건이 옆좌석에 타고 있는 이하륜에게 물었다.
“늦기는요. 건국 날짜가 나왔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새 수도로 들어가야지.”
“그렇긴 하지?”
“형님 기하, 요즘 어때?”
이하륜이 익살맞은 표정으로 태건에게 질문했다.
“뭐가?”
“형수님이랑 말이야.”
“됐다.”
맨 앞 기관석에 타고 있는 운전자는 증기기관의 소음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을 수가 없었다. 그걸 믿고 이하륜이 겁 없이 국왕에게 농담을 던진 것이다.
태건은 이하륜의 시선을 피하고자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음, 여긴 좀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는군.”
“형 청혼받은 날, 형수가 눈물까지 흘리던데? 얼마나 감격했는지.”
“여기도 경흥 노구동 주택단지처럼 테라스하우스 형태로 짓나 보다. 다 지어지면 멋지겠어.”
둘이 제 할 말만 하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와우! 시대를 넘어선 사랑의 결실, 너무 멋지지 않나? 이거, 소설 잘 쓰는 학부대신한테 내가 지어낸 얘기라며 뻥치고 줄거리 한번 줘 볼까? 그 소설 세상에 나오면 엄청 팔릴 듯~”
“오! 저긴 시장이 들어서나 보네.”
“에효! 난 이제 동생한테 형수님이라고 불러야 하잖아? 나만 이게 뭐람?”
“너도 결혼해라.”
태건이 드디어 이하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우리 어머니도 성화던데…….”
이하륜도 홀어머니만 모시고 있었다. 태건과 홍은, 이하륜의 직계 가족 구성원 수는 이상하리만치 공통으로 적었다. 태건만 동생 둘이 있을 뿐 홍은은 오빠 하나, 이하륜은 홀어머니만 두고 있었다.
“생각해 둔 여자 있어?”
“어, 있어. 근데 괜히 얘기 꺼냈다가 봉변당할까 봐 그냥 일에 집중하려고. 아직 한참 젊잖아?”
두 사람은 여전히 20대였다. 21세기 가치관도 공유하고 있는 이들답게 이 시대 기준에서 보면 이미 노총각이나 다름없지만,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누구지?”
“에휴! 눈치 없기는.”
“누군데?”
“신경 끄십시오, 태왕 기하. 전 발해와 결혼할 생각이랍니다.”
“뭐? 뭐와 결혼? 젊은 놈이 그런 케케묵은…….”
“으쌰! 다 왔네?”
태왕 전용 자동차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정부 청사에서 8.5장미 정도 떨어져 있는, 야춘산 산자락에 자리한 인의동 지역으로, 서울의 남쪽 끝에 해당하는 곳이다.
“오! 건물이 멋지게 나왔군.”
언덕에는 정부 청사와 비슷한 양식의 건물 세 동 정도가 서 있고, 나무로 만든 담장도 둘러쳐져 있었다.
태건과 이하륜이 도착하자, 마중 나와 있던 학부대신 허균과 총장, 교수, 관리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태왕 기하.”
“의정대신님도 오셨군요.”
이번에 조직이 개편되며, 이하륜은 총리에 해당하는 의정대신이 되었다.
태건이 이곳에 온 이유는 발해국 최초의 대학교, 국립발해대학교 개교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태건은 초대 총장으로 허규를 임명했다. 허균과 이름이 비슷해 친척 관계로 착각하는 이도 있지만, 사실 본관만 같았다. 허균에 의해 발굴된 인사로 학문이 깊은 동인 계열의 유생 출신인데, 그 배움의 연원이 화담 서경덕에게 닿아 있어 열린 사고를 할 줄 아는 이였다.
그는 동해부로 들어온 이후, 줄곧 태건이 집필한 책을 통해 신학문을 익혔다. 특히 자연과학과 공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의 가치관이 크게 변했다. 그 변화된 시각으로 유학을 비롯한 인문학 체계를 새롭게 정립해 태건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그의 신유학은 조선 후기에 유행한 실학에 가까웠다. 학문의 초점이 실생활에 맞춰진 실사구시적 경향을 비롯해, 민족주의적 성향도 매우 강해졌다. 그러다 보니 조선의 사대주의에 대해 거의 욕설에 가까운 언어를 동원해 비판하는 글을 쓴 적도 있을 정도였다. 아울러 여러 역사서를 모아 분석해 가며, 고대사를 재구성하는 연구도 시작했다.
이처럼 평상시 허규가 학문에 너무나 몰입해 있다 보니 태건은 그를 발탁해 쓸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대학교가 설립됨으로 인해 그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줄 수 있게 되었다.
발해대학교 교수진 중 인문학 분야 교수의 상당수는 허규와 비슷한 이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에 반해 이공계 계통의 경우 대부분 장인 중에서 발탁이 되었다. 기술만 익힌 게 아니라 태건이나 홍은, 이하륜과 공동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이론적 지식까지 갖춘 자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미래의 대학교 수준에 비할 바는 못 되나, 나름 충분히 후학을 육성할 수 있도록 교수진이 구성되었다고 평가할 만했다.
“학생 선발 준비는 잘 돼 갑니까?”
“그렇습니다. 태왕 기하.”
허규가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내년 봄부터 교육할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검증시를 통과한 이들에 한 해 입학 지원서를 받고, 입학시험을 치르게 할 생각입니다.”
‘검증시’란 발해 정부가 도입한 일종의 검정고시와 같은 고시 체계였다. 초중등 교육기관이 아직 미비하다 보니, 대학교나 하급 관리 지원 자격을 주는, 중등 교육과정 학력을 검증하는 시험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종이가 이제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되고 인쇄소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신학문을 주창한 태건과 이하륜, 홍은은 물론이고, 허균이나 허규 같은 신흥 지식인들이 집필한 교재가 시중에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검증시 제도를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올겨울 첫 검증시가 실시될 예정이고, 합격자 중에서 대학교 신입생을 선발할 계획이었다.
개교 행사는 매우 간단히 진행되었다. 교수진을 소개받고, 태건이 격려사 한마디 건네는 것으로 끝났다. 물론 화원이 동행해 이 장면을 그림으로 남기는 절차도 있었다.
행사가 마무리되자, 태건과 허균, 허규는 허성이 만들어 태건에게 바친 ‘권장 의례규범’을 토대로 대화를 나눴다.
“어떻소?”
태건은 우선 허규에게 물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우리가 주창하는 신유학의 이념과 딱 맞아떨어지고요.”
허성이 만든 권장 의례규범은 관혼상제와 관련된 모든 의례에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과도한 절차를 강요하는 기존 유교 의례를 간소화한 것이다. 특히 장례나 제사와 관련된 절차가 대폭 축소되었다.
“다른 교수들 생각은 어떻소?”
“모두 좋다고 합니다.”
“유림이 반발하지 않겠소?”
“무시해도 됩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요.”
허규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발해 내에도 유림이 존재했다. 그러나 신분제가 혁파된 상태라 유림의 힘은 그다지 강하지 못해, 압력단체 노릇도 제대로 못 하는 실정이었다.
“하하하! 딱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게 싫으면 우리 발해 땅으로 들어오지도 않을 테고요.”
허균이 웃으며 허규의 대답에 맞장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