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여민부 (2)
여민부가 오매불망 원하는 건, 당연히 동해선의 완공이었다.
“속도가 잘 나지 않는군.”
“도로청 측의 얘기를 들어보니, 본디 함경도 동해안 지역은 길을 놓기 어려운 곳이랍니다. 물줄기의 길이가 짧은 데 비해 강폭이 넓은 하천이 많고, 해안인데도 지형이 험한 구간이 많아서죠. 동해부의 동북쪽 슬해 해안도 지형이 함경도와 비슷하나, 그래도 완만한 편이라 훨씬 수월하답니다.”
태건이 도로의 건설을 우선시하다 보니, 도로 노선을 계획하고 공사를 지휘하는 관청을 새로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도로청이었다.
“그렇긴 하지.”
김응진의 설명처럼 여민부와 동해부 남부 해안지대의 길이 험하고, 도로 또한 아직 개통되지 않아 주로 배편을 통해 화물과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도로가 뚫려야 우리도 그 증기자동차 덕을 볼 텐데 말이오.”
증기자동차가 언급되자 장관들이 일제히 아쉬움을 표했다. 동해부와 현덕부 고을들 일부는 도로가 잘 연결되어 있어 현마다 한두 대씩 자동차를 보급받았으나, 여민부와 동해부 남부 고을은 자동차를 이동시킬 방법 자체가 없어, 그런 호사를 누리기란 매우 요원한 일이었다.
공상부 장관은 다른 안건도 보고했다.
“고려제염공사 사람들이 염전에서 일할 포로들을 데리고 온답니다. 그래서 이동로 상에서 주민과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그 또한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우리 여민부 남부에 사는 백성들은 아직 동해인 포로를 본 적이 없으니, 그들과 사소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태건은 국가가 관리하는 공사의 사명으로 고려와 발해를 혼용해 쓰게 했다. 아울러 기존의 경흥 혹은 동해를 쓴 회사명 중에 오랫동안 공사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 회사의 경우, 고려나 발해로 바꾸게 했고, 그렇지 않은 회사는 어차피 민간에 넘길 예정이기에 그대로 유지하게 했다.
고려제염공사는 당연히 염전을 조성하고 소금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금과 은, 인삼과 마찬가지로 소금 역시 정부가 직접 생산하고 유통할 품목이라 공사를 설립한 것이다.
여민부 관리들도 저렴한 소금이 여민부 관내에서 생산될 경우, 그게 얼마나 큰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잘 알고 있어 이를 희소식으로 여겼다.
고려제염공사는 공사이기에 이윤보다 백성들의 이익을 더 중시한다고 했다. 물론 세수 확보도 해야 하니 어느 정도의 이윤을 챙길 예정이나, 사기업처럼 폭리를 취할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소금을 2차, 3차로 유통하는 이들이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민부를 대표할 만한 상단인 함흥상단과 영흥상단이 소금 유통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들 두 상단은 함흥과 영흥 지방의 상인들이 투자해 올해 설립된 상인 집단인데, 이들 현지 상인이 송화상단의 활약상을 보고 자극되어 결성한 것이다.
현재 첫 번째 염전은 동해부 경성현의 어랑사에 조성되어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고려제염공사는 영흥부의 영인사 해안에 두 번째 염전을 조성하고 있었다. 이제 염전 조성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가자, 염전에서 일할 여진인 포로를 투입하게 된 것이다.
* * *
동해부의 부도, 경흥현의 현내사에 자리한 허성의 처소.
허성은 수도가 이전되었는데도 여전히 경흥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건국을 선언했으므로, 조선에서 보낸 첩자들이 모두 서울로 몰려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허성은 경흥에 온 이후, 가족과 함께 현내사 서쪽 원봉산 산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태건이 별지사 녹봉을 풍족하게 챙겨 준 덕분에, 가족 모두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었다.
“허허! 정말 언문… 아니지, 이제 한글이라 해야지. 이 서체가 참으로 보기 좋소. 반듯하고, 균형이 잘 잡혀있는 데다, 유려하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오늘 허성의 집을 찾은 전 남병사 정문부는 허성이 개발한 인쇄용 한글 서체를 보고 찬사를 쏟아 냈다. 그는 관보를 통해 이미 허성의 서체를 접한 바 있어, 서체를 만든 주인공이 허성이란 사실을 듣고 반가움에 허성을 보자마자 서체 이야기부터 시작한 것이다.
“내 조그만 재주가 쓰일 곳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소. 밥값이라도 해야 부끄럽지 않지요.”
“조그만 재주라니요? 그간 악록이 발해국에 얼마나 크게 공헌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소?”
악록은 허성의 호였다. 허성은 ‘허명’으로 개명했고, 필명 또한 이 이름을 썼다. 그러나 지인들은 여전히 그의 이름과 과거의 호로 그를 불러 주었다.
황진이 나서서 허성의 공치사를 대신해 주었다. 이제 허성과 황진은 둘도 없는 지기가 되었다. 그는 허성의 공적을 줄줄이 나열하기 시작했다.
“인쇄 서체는 맛보기에 불과하지. 유람기로 슬해일기가 있는데, 문장이 너무 아름다워 여러 교과서에 실릴 예정이라오. 또 경흥사란 한글 시조집도 지었고, ‘선 발해유적 답사기’란 평전도 쓰고 있답니다.”
“평전이요? 제목만 보면 유람기처럼 보이는데?”
문관 출신인 정문부는 평전이란 말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제 지식이 짧아 그렇습니다. 발해 역사에 대해 더 궁구한 다음 써야 하나, 일단 평전 형태로 가볍게 저술해 보라는 태왕 기하의 명이 있었소. 그래서 유적지를 답사해 보고 느낀 대로 적었지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입소문은 입소문이란 전제를 달고 써 보았소. 기록도 조금 찾아서 인용했고.”
“흠, 그 자체도 의미 있는 일이지요.”
“저술만 많이 한 게 아니에요. ‘권장 의례규범’ 안도 만들었잖소?”
발해 관리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이 규범도 황진이 언급했다.
“음, 나도 그 얘길 들었습니다. 그게 시행되는 게 두렵다고 울상을 짓는 관리도 있더이다.”
전 함경도 관찰사 원희도 한마디 했다.
‘권장 의례규범’은 사실 국가에서 국민을 상대로 강제하는 규범이 아니었다. ‘되도록 이렇게 간소하게 행하라’는 권고안에 가까웠다. 그러나 관리에겐 그렇지 못했다. 그 규범을 따르든 말든 상관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공무에 지장을 주면 바로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어떤 관리가 삼년상을 치르겠다고 고집하면, 바로 사직 처리함은 물론 재등용 시에도 불이익을 주는 식이었다.
“난 그 규범에 따르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관리는 사인이기 이전에 공직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사사로운 의례 문제로 자리를 비우고자 한다면, 그에 따른 불이익도 당연히 달게 받아야지요.”
유학자 출신인 정문부가 오히려 의례규범을 찬성하고 나섰다. 이들의 토론이 한참 뜨거워질 무렵, 주안상이 들어왔다. 술상을 보자 원희가 가장 반겼다.
“허허! 내 이 맛에 살지. 발해국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며 살아도 되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로.”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남쪽은 여전히 전란 중이고, 다들 굶주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정문부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희와 정문부는 그간 함흥에서 숨어 살던 중, 이번에 건국 행사에 즈음해서 서울로 와 마침내 태건과 만났다. 태건은 물론 두 사람을 몹시 반겨 주었다. 외부에는 전사한 것으로 처리되어 있어, 두 사람은 몹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태건 역시 그 사정을 헤아려 출사를 권하지 않고, 이들 가족에게 집과 농토를 내줘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들의 화제는 얼마 전 구경 갔던 경흥방적공사의 방적기로 옮겨 갔다.
“난 정말 그 증기기관은 물론이고, 그 기관의 힘을 빌린 기계가 팽팽 돌아가며 실을 잣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오.”
원희의 말에 정문부가 거들고 나섰다.
“그걸 의정대신이 고안했답니다. 그래서 하륜방적기라고 하네요. 허허! 그냥 똑똑한 젊은 장수인 줄만 알았는데, 그런 천재였다니.”
“자동차도 의정대신이 만들었다죠? 그런데 태왕 기하도 의정대신처럼 이것저것 직접 만들었답니다. 연청이란 물질도 태왕께서 만들었고, 곧 석탄으로 화약을 만드는 기술도 선보인답니다. 심지어 발해군에서 쓰는 신형 화포도 직접 고안했다고 들었소.”
황진도 이 화제에 끼어들었다.
“정말 모든 면에서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발해라는 나라는. 그간 우리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는지 날마다 깨닫게 해줍디다.”
허성이 웃으며 말했다.
“몇 년 만에 이런 번듯한 나라가 세워지다니, 난 지금도 믿기지 않소. 아무리 육진과 함경도가 기반이 되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정문부 역시 태건 세력의 성장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엔 경흥부가 토대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육진 전역이, 또 함경도 전체가 태건을 지지했다. 그 덕분에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외에서 드넓은 영토를 개척하고, 벌써 온갖 기물을 만들고, 고유의 문물을 꽃피우기 시작한 것까지 설명하긴 어려웠다.
“조선이 키워 준 겁니다.”
허성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흠.”
“그렇군.”
“맞소. 나도 같은 생각이오.”
다들 허성의 의견에 동의했다.
“무능한 조선 국왕이 백성을 이리로 내몰았으니, 발해가 클 수밖에 없었지요. 또 율곡 선생의 말대로 조선은 백약이 무효한, 죽음을 앞둔 병자나 다름없는 나라였소. 내 발해 땅에 와서 그걸 깨닫는데 며칠 걸리지도 않았지.”
허성은 이제 동생 허균만큼이나 조선의 체제를 혐오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 맞는 말이오. 따지고 보면 왜란을 불러온 것도 결국 조선 조정이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죄 없는 백성이 죽어 나갔는지… 바깥에서 바라보니 문제점이 더 잘 보이더군요.”
정문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또한 발해 관료들의 연령대가 다 젊은데다, 생각도 매우 진취적이더이다. 그러니 나라의 기풍이 활달하고 건강할 수밖에.”
원희의 말이었다.
“참으로 모든 면에서 독특하지요. 심지어 궁에 환관과 궁녀도 없어요. 허허허!”
허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궁이 돌아갑니까?”
“지금까지 잘만 돌아갔는데요, 뭐. 내가 은근슬쩍 궁인들을 들일 생각이 없냐고 태왕에게 물었더니, 비슷한 일을 하는 직원만 있으면 된다고. 환관이 왜 필요하냐고 되묻더군요.”
“허허허! 확실히 우리와 사고방식이 크게 다르군요.”
태건은 대한민국의 청와대나 대한제국의 ‘궁내부’와 비슷한 조직으로 ‘태왕부’를 두어 왕실 사무는 물론이고, 내각의 각부와 소통하며 태건을 보필하는 업무를 맡게 했다. 이 조직 내에서 왕실 자체 업무를 보는 이들은 황후나 태왕의 비서뿐이었다. 그러므로 굳이 궁녀나 환관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앞으로 명과 조선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오. 왜란이야 언제고 종결될 텐데, 그게 끝나면 결국 저들의 창날이 발해로 향하지 않겠소?”
원희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발해의 앞날을 걱정하는 말을 했다.
“그러게요. 발해군이 아무리 강군이라 하나, 명과 조선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생각하면…….”
황진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뭐, 잘 버틸 겁니다. 그간 함경도에서 가등의 왜적과 싸운 일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땐 정말이지 하늘에서 전신이 내려온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강해졌다고 들었습니다. 군 병력도 벌써 4만에 달한다고 하니, 어느 나라도 쉽게 넘볼 수 없을 겁니다.”
정문부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왜적에 맞서 같이 싸우던 때의 기억이 뇌리에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