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인재를 얻다 (1)
홍은은 당분간 개성에 머물며 해 오던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태건과 이하륜은 서울로 돌아와 더욱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낮에 무관들을 상대로 무예를 전수하고, 밤이 되면 각자 집필에 몰두했다. 일본 체류 시절부터 시작한 작업의 연속이었다. 태건은 벌써 21세기 대한민국의 중등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교재를 집필 중이었다.
이하륜은 화원의 도움을 받아 무예도보통지를 완성했고, 이제 자신의 지적 자산이라 할 수 있는 기계공학이나 무기 관련 지식을 글로 옮기고 있었다. 십팔기를 수련하다 보니 그는 자연스레 밀리터리 마니아가 되었고, 수준급의 지식을 보유하게 되었다.
며칠 후 저녁 무렵, 개성상인 김명신이 사람을 여럿 데리고 태건의 집을 찾아왔다.
몹시 기다리던 바라, 태건은 이들에게 거나하게 술과 식사를 대접해 주고, 좋은 잠자리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김명신을 방으로 불러들여 이하륜과 함께 단출한 술자리를 가졌다.
“영광입니다. 태 판관 나리.”
태건이 술을 따라 주자 김명신은 공손한 자세로 술잔을 들었다. 개성에서 만났을 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셋은 홍은과 관련된 일화는 물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안주 삼아 한참 동안 즐겁게 어울렸다.
김명신은 두 사람의 얘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신분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또한 상업과 수공업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 더욱 그의 관심을 끌었다.
“저, 태 판관 나리.”
김명신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가 본론으로 들어갈 조짐을 보이자 태건이 웃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 결심하셨습니까?”
“휴! 그렇습니다. 사실 너무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태건은 지난번 개성에서 김명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김명신이 소위 개성 상계에서 물주라 할 수 있는 부유한 상인, 즉 ‘부상(富商)’의 일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개성부 시전에서 운영하는 점포는 그의 사업 규모로 볼 때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전국 각지에 유통망을 갖춘 행상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운송 수단으로 쓰이는 말과 소, 수레 또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전국 주요 거점마다 지점장이라 할 수 있는 ‘차인’까지 두고 상단을 경영할 정도였다.
물론 조선 후기의 거대 상단 조직인 ‘송상’에 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업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조선 중기라는 시대적 한계를 참작하면 꽤 큰 상단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었다.
“수많은 식구의 생계가 걸려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더구나 태 판관님의 말씀이 너무 파격적인지라.”
태건은 조선통신사 사행에서 얻은 정보를 자세히 알려 줬다. 내년에 왜란이 반드시 일어날 텐데 조선은 형편없이 밀리고, 왜란도 장기화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로 인해 나라의 생산 활동이 장기간 정지됨에 따라 상업이 큰 타격을 받게 되므로, 그간 일궈 놓은 자산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북변으로 발령이 날 자신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태건은 그에 따른 대가도 충분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그런 전란 상황에서 김명신에게 가장 크게 도움 될 일은 바로 안전한 창고지기 역할이었다. 화폐가 거의 통용되지 않는 조선이다 보니, 상인들은 부피가 큰 현물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늘 보관의 문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명신은 겸연쩍은 표정을 짓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송구하게도 태 판관님에 대해 조사해 봤습니다.”
“허허! 그래요?”
“잘하셨습니다. 서로 자세히 알아야 믿음이 생기는 법이죠.”
이하륜이 오히려 그의 처신을 칭찬하고 나서자, 김명신은 속으로 더욱 탄복했다.
“그래서 떠도는 소문도 수집하고, 같이 통신사 사행을 다녀온 분들을 수소문해 만나 보았습니다. 왜국에서 느낀 바를 물어보니, 정말 태 판관님과 같은 말을 하더군요. 이구동성으로 왜란이 발생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김명신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흔들린 계기가 된 건 바로 도요토미의 국서였다. 아울러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태건이란 인물 그 자체였다.
“그들 모두 태 판관님이 경천동지할 만한 무위를 갖춘데다, 신통력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앞날을 정확히 예측하셨다고 증언하더군요. 다들 나라를 구할 인재가 났다고 했고, 사행길 내내 신인처럼 떠받든 이가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젊은 분을 말입니다.”
“부끄럽군요. 면전에서 그런 얘길 듣자니.”
태건은 이렇게 말하고 기분 좋게 술잔을 비웠다. 이 정도면 김명신이 완전히 넘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태 판관님께 투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차피 전란이 일어나 잃을 재물이라면, 모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지요.”
“고맙군요.”
옆에서 듣고 있던 이하륜이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미래를 위한 포석 중 가장 어려우리라 판단했던 과제가 홍은이 다리를 놔준 덕분에 해결된 셈이다.
태건은 붓을 들더니 종이에 한자로 글씨를 썼다. 무인다운, 힘이 느껴지는 필체였다.
“고···려 상단?”
놀라움에 김명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개성상인에게 ‘고려’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다. 아울러 자칫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나중에 대외적으로 이 명칭을 쓰시지요. 안에서는 그냥 원래 이름대로 송화상단이라 부르고요.”
“그럼 향후 외부와 무역하게 될 거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기회가 열리면 고려상단은 거대 대외 무역상으로 성장할 겁니다.”
태건은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방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우도 들어와! 한잔하자고. 집주인들이 왜 엿듣고 그러나?”
방 밖에서 화들짝 놀라는 기척이 들려왔다.
“큭!”
“오라버니! 나도.”
“그래, 막내도 들어와.”
문이 열리며 태원과 태미가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오는 사이 마당에 우뚝 서서 경계를 서고 있는 전지로의 모습이 문틈으로 보였다. 그는 태건이 몹시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에 경계를 서려고 나왔지만, 동생들은 경계 대상자가 아니었기에 그냥 두고 본 것이다. 전지로는 이렇게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다.
술친구가 늘어나자 즐거움이 더욱 배가되었다. 태건의 동생들 역시 이미 태건과 같이 뜻을 함께하기로 결심했기에 이들 모두가 한배를 탄 사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리!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양반가 사람 같습니다요.”
겸인 소동구가 방밖에서 고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손님이?”
“예. 지나가던 길손인데 밤이 늦어 하룻밤 유숙하길 바란다며······.”
“알았네.”
지나가는 손님을 재워 주는 건 양반가에서 의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태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대문 앞에서 뒷짐지고 서 있던 젊은 선비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랑방에 손님이 그득 들어찼으니, 일단 내 방으로 가시지요. 안 그래도 벗들과 술 한잔하던 참이었소.”
태건은 젊은 선비를 유심히 살피더니 아예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소동구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나리, 남은 방이 없는 건 아니온데······.”
“술이라! 허허, 안 그래도 출출했는데 잘 됐습니다. 그 호의, 감사히 받잡겠습니다.”
소동구의 말을 끊으며 선비는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태건은 씨익 웃으며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새로운 손님이 합류하자, 하인들은 다시 서둘러 주안상을 차려왔다.
“오늘따라 손님이 많은 모양입니다. 사랑방도 가득 찼고, 여기도 그렇고.”
젊은 선비는 자리에 앉자마자, 방안을 훑어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술자리치고 묘한 조합이었다. 상인 차림의 사내도 있고, 사내들과 내외해야 마땅한 반가의 여식도 있기 때문이다.
“여진견이올시다. 이제 겨우 생원시에 합격한 별 볼 일 없는 선비외다.”
여진견이 먼저 자신을 소개하자마자, 불편함을 느낀 김명신이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자 태건이 그를 제지했다.
“왜 벌써 일어섭니까? 조금 더 얘기하다 잠자리에 드시지요.”
“아, 알겠습니다.”
김명신을 각별히 챙기는 태건을 여진견은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누군지는 아시는지요?”
태건이 묻자, 여진견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어찌 모르겠습니까? 병마절제사를 배출한 가문인데다, 이제 한양 도성에서 태 판관님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데요.”
워낙 많은 인원이 사행길을 떠났기에 태건에 대한 소문 또한 한양 거리로 금세 퍼져 나간 상태였다. 태건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이하륜을 비롯해 방 안에 있는 이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럼 하던 얘기를 마저 하시지요. 괜히 저 때문에 흥이 깨진 건 아닌지 저어되는군요.”
“허허! 그럴까요?”
태건은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보관 중인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작은 책자 하나를 꺼내와 김명신 앞에 내려놓았다.
“이, 이건 뭡니까? 참으로 괴이하게 생겼군요.”
김명신이 놀라 물었다.
“마령서와 감저요. 이번 사행길에 남만 상인으로부터 얻은 농작물입니다.”
“이걸 왜 소인에게······.”
“대기근에서 백성들을 구할 수 있는 작물입니다. 그러니 올봄부터 농사를 지어 되도록 종자를 많이 생산해 주십시오. 상단 상품으로 취급해도 상관없어요. 어쨌든 조선 팔도에 널리 퍼지는 게 중요하니까. 그리고 이건 재배 방법과 보관법입니다.”
태건은 투자에 대한 대가 차원에서 감자와 고구마의 보급을 김명신에게 맡겼다. 또한 전국 각지를 누비는 행상 조직이 있어 그를 통하면 더욱 빨리 퍼트릴 수 있을 터였다. 그 과정에서 김명신 또한 상업적 이득을 충분히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김명신은 책자도 들춰 보았다. 언문으로 적혀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음, 마령서는 추운 지방에서도 잘 자라는군요. 반면 감저는 따뜻한 기후를 좋아한다니 한강 이남에 뿌려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시지요. 아울러 첫 수확을 하면 내 임지가 될 곳으로 마령서를 가능한 한 많이 갖고 와 주십시오. 함경도 같은 척박한 곳이야말로 마령서가 반드시 필요하니까.”
“그리 하겠습니다.”
“음,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여진견은 책자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너무 궁금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예. 보시지요.”
김명신이 건네준 책자를 본 여진견은 크게 탄복했다.
“허허! 언문도 활용하시네요. 설명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실용적인 문장을 구사하십니다, 그려.”
그는 내용 자체보다 문장에 더 관심이 많았다. 태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음, 외람되지만··· 한동안 이 집안에서 식객 노릇을 해도 될까요? 언뜻 보니 재미있는 일이 많을 듯하여······.”
여진견이 뜻밖의 제안을 하자 태건이 파안대소했다.
“좋습니다. 단보께서 원하신다면야. 허허!”
“으헉! 제 자를 어찌 아시고······.”
“자, 내 동생들과 벗들에게 다시 소개 하시지요.”
“미, 미안합니다. 태 판관님이 어떤 분인지 하도 궁금해서 이름을 숨겼습니다. 전 양천 허가에 이름은 균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제 형님과 태 판관님의 관계 때문에 처음부터 본명을 알려드리기 좀··· 그랬습니다.”
“허, 허균?”
이하륜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태건은 눈치챘지만 이하륜은 이 거침없이 행동하는 불청객이 누군지 몰라 유심히 관찰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가 그 유명한 허균이라 하니 당혹감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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