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정유재란 (2)
초여름 솔빈부 영강현의 영강진.
이곳에도 이제 이주민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농사철이 시작된 지 꽤 지났기에, 방금 도착한 이들은 서둘러 들판으로 나가 배정받은 농토를 개간함과 동시에 한쪽에선 방울마와 옥수수, 콩 등을 파종하고 있었다.
태건은 새로 들어온 이주민도 격려하고 영강진 개발 현황을 파악할 겸, 오랜만에 이곳을 방문했다.
“익숙한 풍경이군.”
지금까지 매해 보던 풍경이다. 북방은 파종 시기가 늦다 보니, 늦봄에 파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초여름에 도착하는 이주민들도 앞으로 기거할 집을 지으며, 거칠게나마 서둘러 개간하고 씨를 뿌려 왔다. 그래도 땅이 기름져, 가을이 되면 충분히 수확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더 늦게 도착하는 이주민이 문제입니다. 지금까진 관에서 먹여 살렸으나, 지금은 이주민이 워낙 폭증하고 있어 이를 어찌할지…….”
동행한 손중일 내부대신의 얼굴이 다소 어두웠다.
정유재란은 즉시 발해에 영향을 미쳤다. 임란 때 생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왜적이 재침했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미련 없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발해행을 선택한 조선 백성들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간 전란과 기아, 전염병으로 모진 고초를 겪고 나자, 이런 비참한 삶의 현실에 반비례해 발해를 향한 백성들의 열망이 더욱 커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선 팔도에 퍼진 소문을 보면 발해가 마치 이상향인 것처럼 묘사되곤 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농토를 거의 거저 주는데, 땅이 얼마나 기름진지 심기만 하면 알아서 잘 자란대. 들판엔 노루와 사슴이 지천으로 돌아다녀, 틈만 나면 한 마리씩 몽둥이로 때려잡아 동네 사람들이 술과 고기로 잔치를 벌인다네. 세금은 또 얼마나 적은지, 세금을 내고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곡식이 너무 많이 남아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아 은화로 바꾼단다. 조금 추워서 그렇지, 정말 살 만한 곳이 아닌가? 더구나 발해는 반상의 차별이 없고, 노비도 없다네. 양반이랍시고 허세 좀 부렸다간 동네 사람들한테 온갖 괄시를 당하고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다는구먼. 그런 세상이 있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그것도 조선 사람들이 만든 나라인데 말이야.’
이 말은 실제로 이주민이 발해 관리에게 전해 준 이야기였다. 조선에서 이런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다.
내부 관리들은 이런 이야기를 접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너무 과장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맨땅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를 실감하게 될 이주민들에게 너무 환상을 심어 주는 전언이라며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주민은 소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몹시 기뻐했다. 빈 땅에 들어가 사는데 당연히 처음엔 고생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환상 같은 것도 없다고 했다. 그저 세금 명목으로 재산을 강탈해 가고 탐학을 일삼는 탐관오리가 없고, 동네에서 왕이라도 된 양 거드름 피우는 양반이 없고, 신분 차별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무조건 다 받아들여야지. 어쨌든 이곳 동북 평원 지대에도 이주민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다행이네요.”
동북 평원 지대란 미타호 주변 평원과 솔빈강 하류 유역, 혜민 평원을 말한다. 모두 합하면 그 넓이가 조선의 2개 도에 필적하는데, 그 땅이 모두 평야 지대인 셈이니, 이곳이 향후 발해에 얼마나 중요한 땅이 될지 능히 가늠할만했다.
“그러게요. 이 드넓은 허허벌판에 언제 사람을 채우나 했는데, 왜적 놈들 때문에 그런 일이 빨리 일어나는군요. 불행한 일이지만.”
손중일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호남 사람도 많이 온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떠나지 못해 후회하던 사람들이 결국 길을 나섰다고 들었습니다.”
“더 많이 오면 좋겠는데…….”
태건은 앞으로 호남에서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가 발생할 걸 알고 있어, 호남 백성들이 되도록 많이 오길 바랐다. 태건은 다시 들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제 솔빈부도 서서히 체계가 잡혀가는군.”
이주민 폭증세가 감지되자 태건은 서둘러 솔빈부 행정 체계를 개편했다. 동녕현과 솔빈현, 후예현, 이렇게 세 개만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들을 분리해 새로운 현을 만들었다.
미타호 서부 연안의 구릉지와 남미타호 평원의 서남부 지역을 통합해 타주현이라 이름했고, 동미타호 평원과 남미타호 평원의 동남부 지역을 합쳐 미주현을 설치했다. 이에 따라 솔빈현은 솔빈진 부근으로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현의 면적은 남부 현들에 비해 훨씬 넓었다.
후예현은 그대로 두었고, 이곳 영강진 지역과 대관동 협곡 이동의 산지와 분지 지역을 합쳐 영강현이라 이름했다. 이렇게 하여 솔빈부는 여섯 개 현으로 재편되었다.
아울러 행정구역을 조정하는 와중에 기초 행정구역 체계도 손을 봤는데, 현청 소재지가 있는 곳에 기존 관행대로 ‘진’을 붙이기로 했고, 군 주둔지가 있는 곳을 ‘영’이라 고쳐 부르기로 했다. 물론 청량진처럼 포구에 붙은 ‘진’은 나루라는 뜻이므로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태건 일행이 이제 영강현 들판을 벗어나 여러 공사가 진행 중인 영강진 경내로 들어서자 제5연대 김무정 연대장이 태건을 호위하기 시작했다.
영강진 내에 공업단지와 상가 지구, 관청 부지가 이미 지정되어 있어 이주민은 아예 없다시피 했고, 제2군 제5연대 사령부 소속 병력과 현청, 도로청, 경무청 관리들만이 기거하고 있었다. 아울러 남둘루와 니마차 포로들도 도시 외곽의 수용소를 거점으로 삼아 도로공사와 각종 건물 신축 공사에 동원되고 있었다.
“역시 이곳은 목재 자원이 풍부하니 좋군.”
“예. 동쪽 구릉지에 아름드리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지요. 그 덕분에 이주민들이 임시로 움막 대신 통나무집을 짓고 있는데, 짓기 편해 집이 빨리 올라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다들 겨울도 따뜻하게 날 수 있을 것 같다며 좋아합니다.”
태건은 훗날 이 도시 ― 레소자보츠크 ― 가 목재 산업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태건은 다시 말을 타고 도로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현재 솔빈진과 영강진을 연결하는 도로는 이미 완성되었고, 이제 영강진과 홀한부의 봉밀산을 연결하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잘 됐군. 이제 제철소 건설에 들어가도 되겠군. 이만 상황은 어떻소?”
발해는 니만을 발음하기 편하게 ‘이만’으로 고쳐 부르고 있었다.
“그 주변이나, 그 이북이나 이렇다 할 여진 부족 집단은 없습니다. 나름 부족 명도 있고 추장도 있으나, 대개 수십 호… 많아 봐야 백여 호에 불과해 변방을 위협할 만한 적은 없는 셈이지요.”
“그럼 이곳 영강과 이만 사이에 이주민 정착촌을 만들어도 되겠군.”
“예, 그렇습니다. 우리 군이 운영하는 역참들 주변에 마을을 조성하면 안전도 도모할 수 있지요.”
“좋소. 그대로 실행하시오.”
“근데, 정찰해 보니 미타호 대평원 북쪽에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은 평원이 있던데요. 거기까지 차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김무정 연대장도 북방 지역에 호기심이 동해 정찰대를 꾸준히 보내 북쪽 상황을 살피게 했다. 그러다 보니 우수리강과 흑룡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보호리 ― 미래의 ‘하바로프스크’ ― 도 다녀왔다. 그래서 이만과 보호리 사이 지역에 대한 상세한 지리 정보도 얻었다.
“후후! 차지한다고 쓸 수나 있어요?”
“음, 그렇군요.”
“나중에 인구가 늘었을 때 취하면 그만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김무정이 말한 지방은 삼강 평원이다. 흑룡강과 송화강, 우수리강이 합류하는 곳에 형성된 평야 지대라 해서 삼강 평원이란 이름이 붙게 된다.
이곳을 개간하면 수억의 인구를 능히 부양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넓고 비옥한 땅이다. 세계 3대 흑토지대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건은 이하륜과 홍은에게 이만 이북의 땅을 지칭해, ‘발해의 냉장고’라고 했다. 즉 배고프면 그냥 냉장고 문을 열고 음식 재료를 꺼내듯, 맘만 먹으면 언제든 확보해 쓸 수 있는 땅이란 의미였다.
* * *
태건은 다시 측근들과 함께 청량진으로 가서, 제3함대 소속 경흥급 대선 4번함인 하다함에 승선해 벽해도 해군기지로 향했다. 제5번함 경원함과 제6번함 온성함의 취역식 때문이다.
벽해도 해군기지는 해군본부와 제3함대 사령부, 그리고 벌써 1개 연대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진 해병대 사령부가 있는 곳이라, 섬 전체가 북적거리게 되었다. 이제 섬의 북쪽 지역에도 해군 장병 숙소와 고위급 지휘관 가족이 거주하는 관사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취역식이 끝나자, 태건은 태미와 이천호 해군 통제사와 함께 해변을 거닐며 밀담을 나눴다.
“올가을부터 참전할 생각이네.”
“예. 저도 전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해군과 해병대만 참전할 거라고.”
이천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니 누이는 원양 항해와 포사격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해서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해. 특히 새로 취역한 배들 말이야.”
“예, 오라버니.”
“통제사는 제2함대도 준비시키게.”
“예? 2함대도 남쪽으로 갑니까?”
“상황 봐서. 근데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아오지급 중선도 원양 항해가 가능할까요?”
“충분하지. 그러니 아오지급 함선도 원양 항해 훈련에 참여시키게.”
제2함대가 보유한 아오지급 중선은 모두 세 척인데, 특이하게도 형태가 제2함대 주력함인 북청급이 아닌, 경흥급 함선을 닮아 있었다. 손원표 원대장이 개량된 모델을 아오지급부터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경흥급의 건조도 훨씬 빨라져, 예정보다 두 달이나 앞당겨 6척을 모두 진수할 수 있었다.
아오지급 중선의 배수량은 400~500톤 정도로, 서양의 사례를 보면 능히 대양 항해도 가능한 크기였다.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로 처음 항해할 때 탄 카락선, 산타마리아호의 배수량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손원표 원대장에게 경흥급 여섯 척을 더 건조해 달라 부탁할 생각이네. 아오지급도 그렇고.”
“엄청나군요.”
“후후! 재정이 넉넉한 덕분이지.”
새로 땅을 배정받아 정착한 이주민들은 소출의 절반을 5년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규칙 때문에 발해의 재정은 항상 넉넉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일반 노동자 임금의 2할만 주고 쓸 수 있는, 약 1만에 달하는 포로가 있어 수많은 공공사업을 벌이는데도 지출이 적었다.
또 대형 상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활발히 영업한 덕분에 이 부문의 세입도 크게 늘었다. 심지어 공기업도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고, 건주부와 교역을 통해 들어오는 세입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러한 넉넉한 재정 형편이 해군력을 비롯한 군사력 증강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럼 여섯 척을 모두 3함대에 배치합니까?”
“아니, 2함대와 3함대에 세 척씩 배당할 생각이네.”
“이 소식을 들으면 1함대 사령관이 배가 아프겠군요.”
“연안 함대니까 어쩔 수 없지. 수심이 얕은 바다를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니, 격군을 없앨 수도 없고. 그러니 판옥선을 개량해 쓸 수밖에.”
현재 제1함대 사령관은 육군 무관 출신인 나용언으로, 육군에서 수군으로 적을 옮겨 경력을 쌓아 온 인물이었다.
“되도록 우리 해군 훈련이 일찍 끝났으면 좋겠군.”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천호와 태미가 동시에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사실 준비를 마쳤다고 해도, 당장 남쪽 바다로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원균이 수장으로 있는 한, 조선 수군을 도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발해 해군과 조선 수군 간에 충돌이나 벌어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