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명량과 부산포 해전의 여파 (1)
깊어가는 가을,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로 인해 가을 바다는 두려운 느낌이 들 정도로 새파란 물빛을 뽐낸다. 바람마저 파란 물이 든 것 같은, 청량하기 그지없는 날씨다.
태건은 오늘도 경흥함 선수루 갑판에 서서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파란 바람을 만끽했다. 태건이 이 자리에 서 있는 걸 좋아하다 보니, 경흥함 승조원은 이 갑판을 그의 전용석처럼 인식했다.
“아직 아무것도 없네요.”
태미가 다가와 말을 붙였다.
“곧 나올 거다. 전쟁이 한창인데, 이 바닷길이 조용할 리가 있겠어?”
경원함과 온성함은 여전히 초량만에 남아 남은 하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작업을 마친 네 척의 대선은 이렇듯 포구를 빠져나와 동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출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이 조선해협 동수로 해역에서 마주친 배는 아직 없었다.
“울릉도로 피로인의 2할 정도가 떠날 모양이더라고요. 그들은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포기했답니다. 더럽혀진 몸이라며.”
“여자들이 많은가 보네?”
“예. 그네들과 남은 가족이 다 학살당해 갈 곳도 없다는 이들이 나섰습니다.”
너무나 구구절절한 피로인들의 사연을 접한 나머지, 태미의 심정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럼 울릉도 거주 왜인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으로 데려와 섬을 깨끗이 비워야지. 걔네들도 기백 명 정도라던데.”
“예. 대략 그 정도 될 거예요.”
“남은 피로인들은 다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겠지?”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데 고향이 과연 반겨 줄까?”
태건은 송환된 조선인 피로인들의 운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조선 조정은 최소한의 명분 때문에 피로인을 데려가려는 시늉만 했을 뿐, 실제로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첩자로 취급하기도 했다.
조정의 영향을 받은 관리들의 인식이 그렇다 보니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귀환한 피로인을 붙잡아 남자는 노비로 삼고, 여자는 첩으로 삼는 자들이 넘쳐났지만, 조정은 이들을 수수방관했다고 한다. 결국 왜국에서 잡혀 살 때와 마찬가지로, 고국에 돌아와서도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한 것이다.
태미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태건을 바라보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태미 역시 조선 조정의 성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며칠 더 지나면 적선들이 몰려올 거야.”
“예, 알고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지?”
“뭉치기 전에 치고, 뭉치고 나면 치고 빠지길 해야죠.”
“잘 알고 있군.”
“오라버니가 당부한 말이니까요.”
“그랬지. 음, 이제 대마도 동부 해안과 충분히 멀어졌으니 대마국부로 가자.”
“예.”
이번 침략 전쟁에서 대마도주 가문이 등을 떠밀려 앞잡이 노릇을 했다고 해도, 태건은 이들을 절대로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일본식 봉건제의 유산인 영주의 존재 자체도 발해국 제도와 맞지 않는 데다, 조선과 일본 중간에서 저울질하며 이익을 취하는 대마도 영주 가문의 행위도 탐탁지 않았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익숙한 지형이 눈에 들어오자 태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조선통신사 사행단의 일원이었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마국부 앞바다 ― 이즈하라만 ― 가 시야에 들어오자 견시수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 해역에 떠 있거나 선착장에 정박해 있는 왜선들의 제원을 빠르게 전달했다.
“관선 세 척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민간 대형 선박 세 척이 보입니다. 아, 그리고… 동남방에서 여섯 척의 관선이 대마국부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견시수의 보고를 들은 태건이 미소를 지으며 태미를 바라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많은 왜선이 대마국부를 경유하는 항로를 선택했나 보다.”
“그러게요. 그럼 바로 공격에 들어갈게요”
제3함대 소속 함선 4척은 즉시 공격 태세에 돌입했다.
이들은 먼저 이키섬 방향에서 접근 중인 세키부네 여섯 척을 먼저 수장시킨 다음, 곧바로 배를 돌려 이즈하라만으로 접근, 해상에 정박 중이거나 선착장에 접안해 있는 모든 선박을 격파해 나갔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발해 함선이 포탄을 쏟아붓자 대마국부는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해변 거리에 있던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산속으로 도망쳤고, 어선들은 황급히 뭍으로 피항했다.
태건은 항만 시설과 창고 건물도 빠짐없이 화포로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퍼퍼펑! 퍼펑!
폭음과 연기가 이즈하라만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해안가 목조 건물들이 온갖 파편을 사방으로 튀기며 부서져 나갔다.
“저 대마도주 소굴까지 부쉈으면 좋겠는데, 너무 머네요.”
항만 시설 공격마저 끝났는데도, 아직 아쉬움이 남은 태미는 툴툴거렸다. 대마도주의 성은 더 내륙에 자리해 있어 함포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아 보이네?”
“기분이야 좋죠. 아직 분이 덜 풀리긴 했지만.”
태미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다시 북쪽으로 갈까요?”
“그러지.”
제3함대는 나머지 두 척과 합류하기 위해 다시 초량으로 향했다.
* * *
부산포의 왜군은 아직도 발해 함대 공격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피습된 선박 자체가 워낙 많은데다, 포구 앞에서 수장된 것도 많아 피해 수습에 꽤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시설 복구가 우선이라, 배를 수리하는 일은 아직 언감생심이었다.
“쓰시마에선 아직 소식이 없나?”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초조한 표정으로 측근 이나바에게 물었다.
“안 그래도 소식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오우라항이 후발해 함대에 습격당해, 여러 군선과 항만 시설이 파괴되었답니다.”
“오, 오우라항이? 이런…….”
왜군 총사령관 히데아키가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는 대마도 부근 해역 전체가 왜 원정군의 보급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우라항은 조선 주둔 원정군의 전진기지이자 후방 보급창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발해 군선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겨우 여섯 척이지 않습니까? 그 배로 우리의 해상 보급로를 다 봉쇄하긴 어려울 겁니다. 저들이 쓰시마의 북쪽에서 활동한다면 우린 남부 항로를 이용하면 그만입니다.”
부관 이나바가 그의 불안감을 잠재우려 애썼다.
“근데 과연 우리가 그 배를 상대할 수 있겠어? 남만선만큼이나 큰데?”
“숫자로 밀어붙여야지요. 저들이 아무리 커도 우리가 겹겹이 포위해 옴짝달싹 못하게 한 다음, 뱃전을 기어올라 공략하면 능히 저들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배까지 나포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그럼 공성전이나 다름없겠군.”
“예, 아무래도 덩치가 있으니.”
“서쪽으로 간 함대는 우리의 연락을 받았을까?”
“예, 서신이 도착했을 겁니다.”
“그럼 바로 되돌아오겠지?”
“그럼요. 당연히 본진이 당했는데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휴! 한마디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군.”
“그러게요.”
발해 함대의 출현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왜군에게 그야말로 날벼락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이 바로 들어왔다.
똑똑! 벌컥!
부관이 문을 두드리더니, 허락도 받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뭔가?”
“그, 급보입니다. 우리 수군이 명량에서 조선의 이순신 함대에 그만 대패하여…….”
“뭐,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조선 수군이 남아 있어 봤자 얼마나 된다고?”
부관은 바로 무릎을 꿇고 보고서를 부관 이나바에게 건넸다. 보고서를 든 이나바의 손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말이 되나?”
이나바는 도저히 보고서 내용이 믿기지 않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는 패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소규모 전투에서 당한 것 정도로 생각했다. 왜 수군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이순신 장군을 상대했기에, 작은 패배 정도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경악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배, 백여 척이 분멸되거나 침몰했다니.. 더구나 적선은 겨우 열세 척이었고?”
“뭐라? 열세 척에 백여 척이 당했다고?”
듣고 있던 히데야키도 깜짝 놀라 물었다. 이나바는 비로소 보고서 내용을 차분하게 읽어 주기 시작했다.
진도 울돌목에서 벌어진 명량해전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날 전투였다. 13척의 판옥선이 3백여 척의 왜선을 상대해서 이긴, 말도 안 되는, 기적과 같은 전투였다. 이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왜선 백여 척을 격침하거나 분멸했지만, 조선 수군의 피해는 한 척도 없었다.
울돌목은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해협으로, 남해의 끝이자 서해가 시작되는 절묘한 위치에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바로 입구에서 왜 수군의 서해 진출이 좌절된 셈이었다.
이나바와 히데아키는 망연자실한 채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배들은?”
히데아키가 물었다.
“지금 순천이나 남해로 후퇴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이들이 받은 보고서는 해전에 참전한 도도 다카도라 대장이나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 왜장들의 정식 보고서가 아닌 육지에서 활동하는 첩자가 작성한 보고서였다. 그러므로 그 내용이 매우 객관적이고 정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보고서 끝부분에 조선 수군에 대한 보고도 있네요. 전투가 끝나자 조선 수군이 서해 쪽으로 빠져나갔답니다.”
“그럼 저들도 우리 수군을 무서워한다는 뜻인가?”
“글쎄요. 아직 군선 수가 적으니 배를 더 모으러 떠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라도 서해안의 아군에게 조선 수군의 건재함을 알리려고?”
히데아키는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무력시위에 나섰다는 생각도 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서해안으로 후퇴했다고 해도, 우린 저들을 응징할 방법이 없을 겁니다.”
이나바는 상황을 직시했다. 분멸된 배들 대부분은 전선일 가능성이 컸다. 아울러 대부분 크고 작은 손상을 당했을 테니, 수리부터 해야 하므로, 이순신 함대를 쫓을 수 있는 여력이 전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발해 함대의 출몰 소식을 접하면 바로 부산포로 오겠지?”
“그럴 겁니다.”
“휴! 그럼 한양 진공 전략은 물거품이 되겠군.”
“그러게요. 날씨도 이제 쌀쌀해지고 있어, 월동을 걱정해야 할 때라…….”
원래 왜군은 수군의 지원을 받으며 한양까지 쾌속 진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진도에서 막혔기 때문에 왜군은 보급을 걱정해야 하는, 임진란 때의 익숙한 상황과 또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실제로 명량해전 이후, 충청도 직산 ― 미래의 충남 천안시 관내 지역 ― 까지 나아갔던 왜군은 직산 전투에서 조명연합군에 패배한 직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돌연 남부의 왜성들로 후퇴해 월동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왜 수군 역시 동쪽으로 물러났다. 한마디로 명량해전이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물론 이번 정유재란의 목적이 임진년 당시처럼 조선을 굴복시키고 명까지 나아가는 게 아닌, 조선의 남부 지방을 할양받는 것이기 때문에 북진에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왜군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발해 해군에 의해 부산포와 대마도 해상 보급로가 위협당하는 상황까지 추가로 발생했으니, 왜군 수뇌부의 고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명량해전으로 인해 저울추가 살짝 기울기 시작한 상황에서, 발해의 참전은 기운 쪽 접시에 추를 하나 더 얹은 셈이 되었다.
히데아키와 이나바는 이제 전황이 급격히 불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