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제2함대의 활약
평안도 민란이 발생한 이후, 이하륜은 아예 군부 회의에 직접 참석해 지휘관들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다. 특히 오늘은 민간 상선 편을 이용해 대마도를 다녀온 육군 5군 소속 장교의 브리핑도 있었다.
“…그래서 육전에 쓸 무기도 많이 필요하니, 다음 항해 때 추가로 보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장교의 보고를 들은 최철주는 즉시 답을 주었다.
“비격진천뢰와 대완구, 중완구를 더 보내야 할 것 같군. 현지의 해병대 보유량이 많지 않을 테니.”
그간 대마도에 보낸 보급품 대부분은 생활에 필요한 식량과 의류, 건설자재를 비롯해 화약, 포탄 등이었다. 이하륜도 잠깐 고민하더니 특별한 제안을 했다.
“화초라고 들어보셨어요?”
“화초요?”
최철주는 물론 제5군 사령관 신첨 참장과 이천호 해군 통제사 등 모든 지휘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종대왕 시기에 개발된 무기인데, 대나무 마디 하나에 화약과 철편 등을 집어넣은 다음 헝겊 심지를 꽂아 만든 무기죠.”
“오! 그거 괜찮네요. 개인용 무기 아닙니까?”
최철주는 이내 화초가 어떤 무기인지 짐작해 냈다. 화초는 수류탄이나 다름없는 무기였다. 발해의 화약 생산량이 큰 폭으로 늘어나 이런 무기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셈이죠.”
“그런데 우리 발해엔 대나무가 나지 않으니…….”
“울릉도와 대마도를 얻었잖아요?”
“아! 그렇지. 울릉도가 있었지. 대마도도 있고.”
최철주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말했다.
조선시대 울릉도 지도를 보면 대밭, 즉 ‘죽전’이라 표기된 곳이 다섯 곳이나 나온다. 심지어 대밭으로 유명한 ‘죽도’ ― 죽서도라 불리기도 함 ― 란 부속 섬도 있었다. 이런 점만 보아도 미래의 일본이 바위섬인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라 우기는 게 얼마나 억지 주장인지 알 만했다. 아울러 대마도엔 울릉도보다 더 몸통이 두꺼운, 화초를 만들기에 적합한 대나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러니 대나무를 제외한 재료를 많이 보내 주시죠.”
“좋습니다.”
“그나저나 평안도의 일이 잘 풀리면 좋으련만…….”
“잘될 겁니다. 제가 오랫동안 평안부에서 근무하며 그쪽 민심을 살펴봤는데, 평안도 백성 대부분이 우리 발해에 귀속되길 바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이번 민란도 그런 염원이 작용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신첨이 대답했다.
“막아선 조선군에 대한 반발심보다 우리 발해에 귀속하려는 욕망이 커서 그렇다?”
“예, 장담할 수 있습니다. 함경도만큼이나 평안도 역시 조선 조정에 불만이 많은 지방이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인구 대비 양반 수가 가장 적은 곳이라고.”
“들은 적이 있긴 한데…….”
“그래서 과거를 봐서 관리가 되는 것보다 장사해 돈을 버는 걸 선호하는 풍조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 차별 이외에도 타지에 비해 향리의 수탈이 너무 심해 백성들의 불만이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지요. 평안도 사람들 입장으로 보면, 우리 발해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신분의 차별이 없다는 점을 부러워하더군요.”
“오! 그렇다면 쉽게 풀리겠군.”
“예. 다섯 고을을 얻는 건 어렵지 않겠죠. 그보다 그 너머 고을에 사는 백성들의 실망이 아주 클 겁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거기까지 노리면 우린 즉시 조명연합군을 상대해야 할 테니까.”
평안도 민란 건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되자, 본 안건이라 할 수 있는 건주부 관련 사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인안부 인안현 ― 미래의 돈화시 ― 으로 사령부를 옮긴 제1군으로부터 급보가 들어왔는데, 바로 건주부가 호이파국을 침략했다는 소식이었다. 심지어 구원을 청하는 호이파 사자가 사령부로 찾아왔다는 보고도 들어왔다.
이하륜은 이 사건을 그리 큰 사건으로 간주하지 않았으나 군부 인사들 상당수는 그렇지 못했다.
“누르하치는 야심이 큰 자입니다. 그러니 호이파를 도와 누르하치 세력을 견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주부의 성장 속도를 조금이라도 제어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최철주의 의견이었다.
“우린 이미 해서여진의 일에 간섭하지 않기로 건주부와 약조했습니다. 그걸 깨자고요?”
이천호 해군 통제사가 반론을 제기했다.
“맞아요. 국가 간의 약속인데, 그걸 어길 수는 없지요. 또 불간섭이 태왕 기하의 뜻이기도 하고.”
이하륜도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은 전혀 없었다. 어차피 남의 일인데다, 명의 대항마로서 건주부가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대부분 숙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서여진의 울라와 여허가 가만히 있겠소?”
“울라라면 몰라도 여허는 나서지 못할 겁니다. 경계를 맞댄 몽골 부족 호르친과 구왈차가 건주부와 가까운 사이니까요. 병력을 호이파로 보내면 저들이 빈틈을 노릴 수도 있지요.”
최철주의 질문에 이하륜이 대답했다.
“그럼 울라라도 도우면 호이파를 지켜 낼 수 있지 않겠소?”
“글쎄요. 울라가 과연 도울 수 있을지…….”
현재 울라의 버일러는 부잔타이였다. 군주였던 형 만타이가 치정 사건으로 살해당한 후, 건주부에 포로로 잡혀 있던 부잔타이가 풀려나 군주로 등극한 것이다. 그게 겨우 작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음, 어려울지도 모르겠군요. 울라도 왕위 계승 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상으로 여력이 없을 테니. 더구나 오랫동안 포로로 잡혀 있던 부잔타이 군주가 바로 누르하치 군을 상대로 싸운다는 건 좀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예,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호이파가 누르하치에게 병합될 가능성이 크니, 서부 국경 방비를 더 튼튼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지요. 안 그래도 그 문제로 태왕 기하와 상의한 일이 있었죠. 이번에 왜의 재침으로 조선에서 이주민이 꽤 많이 넘어오고 있지 않습니까?”
“예. 벌써 이, 삼십만을 훌쩍 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민부와 평안부가 북적거린다고.”
“이주민을 받아들이면 그만큼 병력 자원도 늘게 되니까, 그간 장비의 부족으로 입대를 유보시켰던 장정들까지 대거 받아들이시지요. 앞으로 일 년 이내에 2만 5천 정도를 더 늘렸으면 좋겠습니다.”
“2만 5천이면… 많긴 하네요.”
최철주는 무거운 짐을 새로 지게 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방침이 결정되면 군부 사람들은 그야말로 일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
“재정이 풍족하니 해 볼 만합니다. 그러니 군수 분야 업체에 보급품 생산량을 늘리라고 미리 주문을 넣어야죠.”
“그럼 그 병력을 어떻게 배치할 생각입니까?”
“5천은 당연히 제5군의 몫이죠.”
“예, 당연히.”
“그리고 1군과 3군에 1만씩 더 배치하면 되겠지요. 건주부와 울라 국경 쪽을 보강해야 하니까요.”
“여민부의 4군 전력도 증강해야 하지 않습니까?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니.”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5군이 지원하게 될 겁니다.”
신첨이 미소를 지으며 대신 대답했다.
“하하! 그렇지. 그러라고 5군이 창설된 거지.”
이하륜이 다시 얘기를 이어 갔다.
“아울러 병력 증원과 동시에 사단 체제를 도입할 생각입니다.”
“오호! 이제 드디어 사단 체제로 들어가는군요.”
최철주도 향후 재편될 군 조직의 청사진을 공유하고 있어 사단 체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야죠. 왜란 이후에 정세가 급변할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열심히 대비해야죠.”
“음, 알겠습니다.”
최철주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앞으로 발해군이 상대해야 할 적은 예전의 야인여진과 같은 소규모 부족 단위가 아니라, 국가들이었다. 그러므로 군사력을 꾸준히 증강해야 할 필요가 있다.
* * *
퍼퍼펑! 퍼펑!
제2함대의 기함, 북청함의 함포들이 불을 뿜으며 포탄을 쏘아 대자, 포구 곳곳에 정박해 있던 수십 척의 왜선들이 갈가리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고경봉 사령관은 그 장면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예전에 여기가 왜구 소굴이었다지?”
“예,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제2함대의 두 번째 출동에서 첫 목표는 이곳 니타만이었다. 이곳 역시 조선과 가까운 포구라 왜구의 소굴로 유명한 곳이었다.
대마도 전체가 왜구의 소굴이 된 건, 당연히 대마도에 쓸 만한 농토가 적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타지 왜구들의 경유지인 이유도 있었다.
대마도보다 더 큰 왜구 소굴이라 할 수 있는 이키섬과 고토열도, 규슈 본섬의 해안 지대를 출발한 왜구 선단들은 항해 일정상 대마도를 들를 수밖에 없었다. 왜구선이 범선이 아닌 노꾼들의 힘으로 움직이는 배이므로 선원의 휴식을 위해 일정 거리마다 기항지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마도가 왜구로 득실거릴 수밖에 없었다. 즉 대마도 자체 왜구도 존재하나, 경유하는 왜구로 인해 더욱 그렇게 보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대마도는 전쟁으로 인해 몹시 피폐해 있고, 왜구도 씨가 마른 상태였다. 대마도 전역이 병참기지 역할을 담당하다 보니, 섬의 인적, 물적 자원 대부분이 징발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력난이 심각했다.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는 무려 오천이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조선으로 원정을 나가 있었다. 이 시기 대마도 인구를 대략 2만에서 3만 정도로 추산할 수 있는데, 5천을 징병했다면 청년 장정은 물론 나이 든 남자들까지 모두 전쟁터로 끌고 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대마도 왜구 또한 이 전쟁으로 쓸려 나가게 된 것이다.
니타만을 벗어난 제2함대는 계속 남쪽으로 항해해 드디어 목적지인 아소만에 도착했다.
아소만을 기준으로 대마도가 남북으로 둘로 나뉠 정도로, 아소만은 대마도를 움푹 먹어 들어간 꽤 넓은 바다인데, 이 만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지협의 존재로 인해 대마도가 가까스로 하나의 섬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훗날 그 지협에 운하가 생겨, 대마도는 남도와 북도로 분리될 예정이었다.
태건은 2함대에 아소만의 몇몇 거점을 모조리 분쇄하란 명령을 내렸다.
태건이 특별히 짚어 준 곳은 모두 세 곳으로, 아소만 서남부 해안에 자리한 두지포와, 동쪽 끝 지협 지형에 있는 훈내곶(오후나코시), 그리고 북쪽 해안에 있는 니로군이란 곳이었다.
세종 시기에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기록을 기억하고 있는 태건은 지금도 다를 바가 없으리란 판단에 이들 세 곳을 공격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고경봉의 제2함대는 아소만을 누비고 다니며, 두지포를 시작으로 병선이건 민간 선박이건 가리지 않고 소규모 어선만 제외하고 모조리 부숴 버렸다. 포구의 시설 또한 공격 목표가 되었다. 현재 대마도 전체가 조선으로 원정 떠난 왜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이런 시설 하나하나가 화근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협이 자리한 훈내곶까지 공격한 2함대는 아소만을 빠져나와 다시 초량진으로 향했다.
세종 대 당시 이종무 원정대는 훈내곶에 목책을 설치해 남도와 북도 간의 연결을 차단한 다음, 토벌전을 벌였다고 한다.
제2함대의 아소만 해변 공격으로 이제 대마도 주민 전체가 발해 함대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다. 인구 밀집지인 대마국부와 그 부근 지역도 훈내곶에서 멀지 않아 발해 함대의 출현 소식은 더욱 빠르게 전파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