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초량진 방어전 (2)
결국 왜군은 밤이 이슥한 시간이 되자, 일제 공격을 개시했다. 전장이 된 곳은 당연히 초량진 서부 지역이었다.
발해군 방어진지는 서쪽 산지의 능선을 따라 동쪽이 열린 형태의 말발굽 모양으로 펼쳐져 있고, 3천여 왜군 병력이 이 진지를 삼면으로 둘러싸고 공격하는 형국이었다. 발해군은 진지가 자리한 능선에 횃불을 줄줄이 밝히고, 불화살도 대량으로 준비해 두었다.
태건과 태미, 그리고 호위대는 서남쪽 능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태건과 황진은 갑주를 갖춰 입고, 아예 활은 물론 주 무기인 월도와 검까지 가져왔다. 여차하면 전장으로 뛰어들 기세였다.
왜군은 허술한 목책 정도는 단숨에 넘을 수 있다는 듯이, 고함을 지르며 능선을 향해 달려왔다. 이런 전술이라면 낮에 전투를 치러도 다를 게 없으나, 왜군은 발해군의 화살 공격이 두려워 야간 전투를 선택했다. 아울러 단병접전에 자신이 있는 왜군은 어둠의 도움을 받아 단 한 걸음이라도 빨리, 또 단 한 병사라도 많이 조선군 진지에 도달하고자 했다.
왜군 선두가 화포의 유효사거리에 도달하자, 발해군의 주력 화포인 자모포가 드디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퍼퍼퍼펑! 펑!
요란한 포성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왜군 진영에서 찢어지는 듯한 병사들의 비명이 들렸다. 밤의 눅눅한 공기 탓에 포성과 비명이 너무나 생생하게 귀에 들어왔다.
황진은 깜짝 놀라 태건을 바라보았다.
“조란탄이군요?”
“그렇습니다. 저렇게 밀집대형으로 접근하는 보병 부대를 상대로 조란탄보다 좋은 수단은 없지요.”
“아니, 그보다 사거리가 더 길어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위가 여전히 어둠에 휩싸여 있음에도, 황진은 횃불 덕분에 왜군이 어느 지점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실루엣처럼 그 움직임이 살짝 눈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군이 자모포를 쓰는 건 아시지요?”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내가 탔던 북청함에도 실려 있는데요.”
“저 자모포는 전에 쓰던 것에 비해 3할 정도 유효사거리가 향상되었어요.”
“어쩐지… 사거리 연장도 놀라운 일이지만, 화포의 수는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군요.”
“의정대신이 많이 챙겨 줬지요. 대마도 거점을 지키려면 무조건 화력전을 펼쳐야 한다며.”
“허허! 태왕께서 여기 계시니 많이 챙겨 준 모양입니다.”
“여기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발해군의 편제가 모두 여기와 다르지 않게 될 겁니다.”
원래 발해 육군은 연대 단위로 화포 중대를 하나씩 편성해 왔다. 그러다 화포 대대를 하나 두거나, 대대마다 화포 중대를 하나씩 편성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었다. 조선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화포를 배치한 셈이다. 그리고 그 편제가 대마도 원정군에 가장 먼저 적용된 셈이었다.
“화력전이라니. 허허! 듣고 보니 정말 흥미로운 말입니다.”
이제 자모포에 이어 대완구와 소완구를 통해 발사된 비격진천뢰도 왜군 병력의 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황진의 얼굴에 불그림자가 일렁거린다. 발해군은 계속해서 화포로 공격함은 물론, 전장 곳곳에 미리 쌓아 둔 검불과 관목 더미에 불화살을 쏘아 화공을 펼쳤다. 마침 초겨울이라, 바짝 마른 숲 자체가 화공 재료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전체가 불덩이가 되었다.
이제 화포의 조란탄에 당해 쓰러지는 숫자보다 불타 죽는 왜군들의 수가 더 많아졌다. 몸에 불이 붙은 왜병들은 단말마와 같은 비명을 지르며 땅을 굴렀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왜군은 후퇴하지 않고 오히려 더 빠르게 전방을 향해 뛰었다. 도주에 성공한 포로를 통해 개활지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활지로 뛰어가면 살 수 있다고 지휘관들이 선동하자, 왜병들은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렸다.
왜병들이 목책 앞 개활지에 모습을 드러내자 드디어 화승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타타타탕! 타타탕!
소총수에 이어 사수들도 나섰다. 편전과 일반 궁시가 왜병들을 향해 날아갔다. 발사 속도가 워낙 빨라, 사수들 모두가 엄청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산 전체에 불이 붙어 있어 주변이 대낮처럼 밝다 보니, 활의 정확도도 매우 높았다.
마침내 이번에 새로 제작한 화초도 선을 보였다. 아직 적병과 접전을 펼치지 않고 있는 살수들이 투척을 담당했다. 이들은 헝겊으로 만든 심지에 불을 붙인 다음, 화초 몸통에 매단 노끈을 잡고 쥐불놀이를 하듯 몇 바퀴 빙빙 돌렸다.
이렇게 원심력을 얻자, 병사들은 적진을 향해 화초를 힘차게 던졌다. 자칫 잘못 투척하면 아군 진영에 떨어질 수 있어 투척기를 별도로 만들지 않고, 아예 화초에 끈만 매달아 투척기를 대신하게 한 것이다.
화승총과 화살에 수많은 왜병이 당했는데도 개활지는 어느새 왜군들로 가득 들어찼다. 산불이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들 왜군 무리를 향해 불붙은 화초가 동시에 하늘을 나는 장관이 펼쳐졌다.
“음, 무시무시하군.”
황진은 화초 만드는 과정은 물론, 화초를 시험하는 장면을 지켜봤기에 저 불꽃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위력을 갖는지 잘 알고 있었다.
펑! 퍼펑! 퍼펑!
심지의 길이가 비교적 짧아 땅바닥에 떨어지자마자 화초들이 바로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대나무 통 안에 든 화약이 폭발하며 같이 들어있던 철편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철편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와 몸에 박히자 왜병들은 비명을 지르며 픽픽 쓰러졌다. 짧은 기간임에도 화초가 워낙 위험한 무기라 투척병들은 고된 훈련을 거듭했고, 그것이 훌륭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황진은 입을 쩍 벌렸다.
“노, 놀랍군요. 화력전이라는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전세가 기울었어요.”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아군의 피해 없이 승리할 수 있지요.”
화승총과 활, 화초와 같은 개인 화기는 물론, 화포로 발사하는 조란탄 세례 속에서도 살아남은 왜군은 그래도 꾸역꾸역 목책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뒤쪽이 불바다라 방어진지를 뚫으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기댄 행동이었다.
그로 인해 결국 살수들도 나서게 되었다.
“그럼 소장도…….”
바로 눈앞에서 전투 장면이 펼쳐지자, 피가 끓는지 지켜만 보고 있던 황진 장군도 검을 뽑아 들더니 적병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전장에 도달한 황진은 눈앞에 있는 적을 닥치는 대로 베어 나갔다.
“역시 놀라운 무예 솜씨야.”
“그러네요. 정말 이름난 맹장답네요.”
태미도 감탄사를 터트리더니, 검을 움켜쥐고 바로 뛰쳐나가려 했다.
그러나 태미가 전장에 뛰어들 일은 없었다. 황진의 활약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항왜 출신 해병대원들이 일제히 일본어로 항복하라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왜병들은 곧바로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이 지옥과 같은 전장에서 항복하면 살려 준다는 말만큼 달콤하게 들리는 말은 없었다.
* * *
이번 전쟁으로 인한 산불은 아침이 되어서야 꺼졌다. 다행히 발해군 진영엔 산불로 인한 피해가 전혀 없었다. 넓게 조성해 놓은 개활지에 연료가 될 만한 게 별로 없다 보니, 일종의 맞불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개활지 바깥의 상황은 처참했다. 특히 간밤에 분 북서풍으로 인해 대마도 동북부 지역의 피해가 컸다.
이번에도 포로들이 대거 동원되어 전장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왜군 전사자의 시신을 매장해 주고, 무기를 챙겼다. 또다시 산불이 날 수 있어 잔불을 제거하는 작업도 펼쳤다.
태건은 다시 지휘관 회의를 소집했다. 전지로 해병대 사령관이 먼저 간단히 간밤의 전투 결과에 대해 보고했다.
“적 병력 3천 중 5백을 사로잡았는데, 이들 중 3백은 부상자들입니다. 살아 돌아간 자는 이백 정도로 추산되고, 나머지는 모두 전사했습니다.”
“허허! 어마어마한 전과로군요.”
고경봉이 너무나 감탄한 나머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전지로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아군도 피해가 있었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화초 투척 과정에서 두 건의 실수가 일어나 십여 명이 다쳤습니다만, 다행히 목숨까지 잃은 이는 없었습니다. 대기 중이던 부사관이 재빨리 비상조치를 적절히 취해 준 덕분에……. 불행 중 다행이나, 이 또한 훈련 성과라 할 만합니다.”
“도입한 지 얼마 안 된 무기라 걱정했는데, 결국 예상했던 사고가 일어났군. 앞으로 투척 훈련을 단단히 시키게.”
“예, 기하!”
전지로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보고가 끝나자 태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육군과 해군, 해병대 지휘관들에게 천천히 계획한 바를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능선 진지에 성벽을 조성하는 게 어떻겠나? 이곳 대마도는 왜구가 끊임없이 드나드는 곳이라, 섬 전체를 점령한다 해도 군이 주둔하는 거점만큼은 석성과 같은 튼튼한 방어시설이 필요하네. 그래야 방어 병력의 수도 줄일 수 있으니까.”
“예, 기하!”
“알겠습니다, 기하.”
전지로를 비롯한 지휘관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리고 다음 배편으로 육군 1개 대대와 함께 신첨 5군 사령관이 온다고 했으니 이들이 도착하자마자, 해병대는 육로를 이용해 대포진을 즉시 점령하도록! 이곳은 육군에 맡기고. 왜 주둔군 병력 대부분이 이곳에서 죽거나 잡혔으니, 지금 대포진은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그러니 그리 어려운 작전은 아닐 거네. 그래도 작으나마 왜성이 있으니 반드시 공성포를 가지고 가게.”
“예. 기하.”
태건은 이제 일본식 지명을 버리고 대마도 곳곳에 새로운 지명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우라는 발해식 한자 읽기 그대로 대포진이 되었고, 북쪽의 도요항과 와니우라는 북포와 성게진으로 바꿨다. 성게진은 성게섬 남쪽에 자리한 포구라, 섬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럼 며칠 후면 출진하겠네요?”
“그렇겠지. 계획된 일정에 따르면.”
태미의 질문에 태건이 답했다. 다음 배편 도착 예정일은 사나흘 후였다.
“계획한 바대로 향후 육군 제5군 1개 연대 병력이 모두 도착하면, 그다음으로 이곳 사량진과 주량만을 점령하고.”
사량진은 사스나만 연안 지역이고, 주량만은 초량진 바로 남쪽에 자리한, 꽤 큰 만 지형으로 미래의 스시만(주지만)이었다. 사량진과 주량만을 연결하는 동서 횡단 거리가 대략 9장미인데, 남북의 폭도 비슷했다. 태건은 일차적으로 이 지역 전체를 발해의 대마도 거점으로 개발해 나갈 계획이었다.
“이제 초량진의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으니 2함대와 3함대는 더 멀리, 더 자주 초계 항해에 나서도록 하라. 이제 전보다 더 강하게 왜군의 보급선을 압박하도록. 만나는 병선을 모조리 깨트려 버리고, 상선이라면 모두 나포해 오게. 다만 부산포나 거제도 방향에서 오는 상선엔 피로인이 타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고.”
“예, 기하.”
2함대와 3함대가 아무리 자주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러 나선다고 해도 바다는 넓고, 기항지로서 반드시 들르게 될 대마도의 해안선은 길고도 복잡했다. 그러므로 왜군의 보급선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최소 2할 혹은 3할 정도만 차단해도 왜군은 심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 그 과정에서 군선의 피해가 꾸준히 누적됨에 따라, 왜군 진영의 수군 운용에도 빨간불이 켜지게 되어 있었다.
태건은 이번 대마도 육지 전투를 언젠가 한 번 직면해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 고비를 잘 넘었기에 이제 그다음의 위협적인 상황이 전개될 때까지 꽤 긴 시간을 번 셈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대마도 북부 해상의 제해권을 본격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