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군사력 증강 대책 (1)
발해력 건흥 3년, 서기 1598년 무술년 1월.
새해 첫날 밤 내린 눈으로 인해 서울 별부는 별천지가 되었다.
북쪽의 봉황산부터 시작해 남쪽의 야춘산 산줄기, 동남쪽의 사제산성까지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지가 온통 흰 눈을 뒤집어쓰자, 창문에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졌다. 언제나 인파로 붐비기 마련인 봉황광장에서 들려오는 마차 달리는 소리, 사람들 수다 소리, 눈 치우는 소리도 정겹게 느껴진다.
“뭐 해요? 갑자기 일하다 말고.”
휴식을 방해하는 홍은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하륜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건이 친정 나간 덕분에,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일에 몰두해야 했다.
“에휴! 그래. 일, 일이나 해야지.”
이하륜은 창문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손에 들고 있는 태건의 편지를 다시 읽어 내려갔다. 편지라기보다 사실 국정 과제 명세서였다.
“식품 산업 육성을 시작하자고? 참으로 꼼꼼도 하셔. 급한 일도 많은데, 뜬금없이 식품공학을 언급하다니. 이거 수상한데? 혹시…….”
이하륜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홍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홍은이 씩 웃더니 손을 들었다.
“네, 인정! 내가 원흉!”
이하륜은 슬쩍 홍은을 째려보다 이내 꼬랑지를 내렸다. 이제 홍은은 황후이자 그의 형수였다.
“에이, 원흉은 무슨… 이것도 급한 일이니까 지시했겠지. 다 군 보급과 관계있는 일이니까요.”
“맞아! 군용 식량 개발. 그거 급하잖아요? 그렇게 해서, 어? 맛있는 음식이 개발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렇긴 하네.”
태건은 바쁜 와중에도 전투식량과 구황 식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원양항해 할 일이 많은 해군은 물론, 수많은 전투를 치를 육군에게 보존 연한이 길면서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할 식품의 개발이 절실했다.
아울러 발해 국민을 위한 구황 식품의 개발도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아무리 나라에 대풍이 들었다고 해도, 물류가 원활치 못한 문제가 있다 보니 쫄쫄 굶는 이들도 생겨날 수밖에 없다. 특히 함경도와 평안도 산악 지대, 연해주 동부 해안 지대가 그랬다. 그러므로 비상식량으로 장기간 저장해 둘 수 있는 식품이 필요했다.
“그래서 형님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쪽을 동시에 제안했군. 콩기름 얻는 방법도 적혀 있네?”
“콩기름이요? 그거 그냥 콩을 짜면 나오는 거 아닌가?”
발해에서 가장 생산량이 많은 농작물은 콩과 옥수수이고, 그다음은 방울마(감자)였다. 아울러 남쪽에서 귀한 취급을 받는 밀이나 귀리, 수수도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이들을 이용한 식품 개발이 필요했다.
“아니래. 그러면 양이 너무 적어 낭비가 심하다네. 그래서 콩을 갈아 가루로 만든 다음, 유기용매를 넣어 기름 성분을 추출해서 정제한다는데? 그럼 기름이 엄청 많이 나온대.”
“유기용매라면 어떤 거?”
“헥세인을 쓰는데, 여기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군. 고려화학공사에 의뢰해야 할 것 같은데?”
“콩기름이 대량 생산되면 만들 수 있는 게 많겠네요? 튀김도 그렇고.”
“그보다 라면부터 개발해 봐야지. 내가 일단 수동식 제면기부터 설계할게. 그다음엔 그걸 응용해 식품공학 차원으로 접근해 봐야지.”
이하륜은 전통적인 국수 제면 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손잡이를 돌려 국수를 뽑는 장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비록 가정용이긴 하나 일단 이 기계를 만들어 보급하고, 차후에 동력을 이용한 기계장치까지 개발할 생각이었다.
“라면이나 국수 건면 정도면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하니까, 군용 식량으로 딱 맞겠네.”
“거기에 건빵도 추가해야지. 단백질로는 기존의 어포와 육포가 있으니까, 이들의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형님은 목축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으니까 양젖이나 염소젖 따위를 이용한 치즈와 버터 개발도 생각해 보라고 하셨어.”
“음, 그것도 괜찮겠네요.”
“휴! 할 일이 또 엄청나게 늘어났군. 밀가루 음식을 개발하려면 또 제분기도 별도로 만들어야 하잖아?”
“맞다. 제분기. 그 생각을 못 했네?”
“아무래도 이번에 중요 정책 회의만 주관하고 국화사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내정을 참정대신에게 맡기고.”
학부대신 허균은 일종의 명예직인 참정대신도 겸하게 되었는데, 참정대신 자리가 바로 태왕과 의정대신이 동시에 자리를 비웠을 경우 국정 책임을 맡는, 국가 권력 서열 3위의 자리였다. 조선으로 치면 좌의정에 해당하는 직위였다.
경기현의 국화사 골짜기엔 고려화학공사의 석탄화학 플랜트뿐만이 아니라, 다른 중공업 분야의 공장들도 잔뜩 들어서 있었다. 아울러 태건과 홍은, 이하륜이 언제든 연구에 들어갈 수 있도록 국립 공학 연구소도 이미 설립되어 있었다.
“조금만 더 연구에 박차를 가하면 기폭제와 뇌관 개발도 성공할 것 같아. 그러니 이번 기회에 아예 연구소로 들어가 끝을 봐야지. 이번에 새로 추가된 식품공학 관련 과제도 연구할 겸.”
“그래요. 나도 자주 가서 도울게요.”
“황후님이 돕는다면야 고마울 따름이지.”
이하륜은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대마도 북부의 초량진 행궁.
발해 원정군이 서둘러 마련해 준 태건의 처소는 이제 행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행궁 이외에도 주변의 골짜기마다 주둔군 병영이, 또 항구 앞에 많은 건물이 들어섰다. 아울러 대선도 능히 접안할 수 있는 부두도 어느새 완성되어 있었다. 이렇게 초량진이 번듯하게 발해 거점 도시이자, 항구로 빠르게 자리를 잡게 된 건, 이제 2,500명에 달하게 된 왜군 포로의 노역 덕분이었다.
“삼포 선착장 시설과 병영도 곧 완공될 겁니다.”
육군 제5군 사령관 신첨이 태건에게 보고했다.
“남부 진지는?”
“사량진에 기존 시설이 있어 일단 이를 제18연대 사령부가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주량진 진지와 병영 또한 곧 다 지어질 테니, 이제 병사들도 편히 쉴 수 있을 겁니다.”
현재 발해 육군 제5군은 그간 꾸준히 증원되어 4개 연대 1만여 병력으로 편제가 완료된 상태였다. 그래서 제17연대와 제18연대가 대마도에 주둔하게 되었고, 19연대와 20연대는 서울에 남아 본연의 예비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날씨도 추운데 다들 고생이 많군.”
“괜찮습니다. 기하. 그래도 이곳 겨울은 따뜻한 편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이제 주량진 진지 공사가 마무리되면 사량진과 주량진 사이 지역에 몇 개의 방어 거점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임시로 쓸 시설 정도로 조성하게. 왜란이 종결되면 대마도 전체를 정벌할 생각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기하! 제3함대가 항구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근위대장이 태건에게 고했다.
“벌써 돌아왔다고?”
태건은 3함대가 며칠 일찍 입항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항구로 나갔다.
부두로 가 보니, 벌써 경흥함이 입항해 있었다.
“역시 전투를 치른 모양이군.”
태건은 3함대 사령관 태미를 비롯해 승조원들의 피로에 찌든 얼굴을 보자, 바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했다.
그간 제2함대와 3함대는 소규모 해전만 치렀기에, 오늘 3함대처럼 며칠씩이나 일찍 귀항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태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즉시 경과를 보고했다.
“이키섬과 대마도 사이에서 큰 해전을 치렀어요.”
“대규모 해전을? 적선 규모가 꽤 컸나 보네?”
“예, 오라버니. 무려 200여 척이었어요. 정말 처음 경험한 규모였죠.”
“그렇게나 많이? 그럼 우리 피해는?”
태건은 깜짝 놀라 황급히 바다 쪽을 살폈다. 다행히 여섯 척 모두 무사히 돌아와 있었다.
“다들 무사해요. 지난번 해전처럼 적선에 둘러싸일 우려가 있어 겨우 30여 척만 격멸하고 바로 돌아왔지요. 저들도 더 이상 우릴 추격하지 않고 바로 대마국부 쪽으로 갔어요.”
“그럼 최소 170척이 조선으로 건너갈 거란 말인데.”
“안택선 크기가 꽤 크더라고요. 그 수도 많았고. 우릴 염두에 두고 보낸 선단이란 생각이 들던데.”
“음, 그럼 왜 관백이 큰맘 먹고 보낸 건가?”
“정말 그렇게 보였어요. 나눠 보내면 우리에게 각개격파당하니까 뭉쳐 보낸 것 같습니다.”
태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놈들도 어떻게든 수를 내야 하니까 결국 움직였군. 생각 같아선 당장 우리 발해 함대를 치고 싶겠지만, 그보다 보급이 더 급하다고 여긴 것 같군.”
“어쨌든 보급품을 보내는 데 성공한 셈이네요?”
“성공했지. 30척만 제물로 내어주고 바다를 건널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럼 왜 본토에서 더 올 가능성이 있을까요?”
“글쎄, 그건 모르겠다.”
태건은 왜군이 정유재란을 앞두고 선박 건조에 힘써, 무려 3천여 척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전투에 동원된 적은 없어 얼마나 더 많은 왜선이 출몰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저들이 2백 척씩 무리를 지어 다닌다면 이번처럼 별다른 성과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겠군.”
“그럼 앞으로 2함대랑 같이 다닐까요?”
“아니. 하던 대로 하자. 소규모 선단도 계속 오가고 있으니까. 특히 그 소규모 선단엔 분명 피로인들이 타고 있을 테니까, 단 한 척이라도 놓치면 곤란하지.”
“예. 그러지요.”
제2함대와 3함대의 활약으로 그동안 수많은 피로인을 구출했는데,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울릉도와 대마도에 분산 수용되었다.
* * *
새해 들어 처음 열린 국가 정책 회의.
이번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로 떠오른 건 당연히 평안부의 일이었다. 새로 얻은 다섯 고을의 방어와 이주민 구휼 대책의 마련이 시급했다.
“지난해 정유년 이후 유입된 인구는 대략 50만 정도로 추산됩니다. 이와 별도로 지난달 평안부로 다섯 고을이 편입되며 또 인구가 늘어났고, 민란 틈바구니에서 평안도 서부 지역을 통해 평안도 주민은 물론 남부 출신 조선인이 대거 유입되었지요. 그 수가 대략 20만에 달할 겁니다. 즉 이들 20만은 다섯 고을의 편입에 따라 늘어난 인구로 보면 됩니다.”
내부협판 ― 차관에 해당하는 직책 ― 현양건이 인구 증가 추세에 대해 보고했다. 그는 동해부 하다현령 직에 있다가 얼마 전 내부협판으로 임명되었다.
“그새 인구가 70만이 늘었다는 말이네요? 그럼 현재 발해 총인구가 대략 330만?”
이하륜이 물었다.
“예. 지금도 계속 늘고 있으니 조만간 350만에 도달할 겁니다. 예전에 비해 인구 유입 추세가 더 가파르게 진행된 셈입니다.”
“이주민들, 식량 수급에 문제는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형편이 좋은 이들은 소유한 식량을 소지한 채로 우리 발해로 넘어왔으나, 도망치듯 넘어온 이들이 더 많아서요. 그러나 나라의 식량 비축분이 많아 올해 가을 추수기까지 새로운 이주민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드디어 혜민평원과 미타호대평원, 우수리강 유역 등에도 정착촌을 조성할 수 있겠군요.”
이하륜이 언급한 지역은 여전히 텅텅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예. 거기뿐만이 아니라 인안부와 홀한부의 다른 지역에도 꽤 많이 정착시킬 수 있을 겁니다.”
“잘됐군요.”
내부의 보고가 끝나자 곧바로 공상부의 보고가 이어졌다. 공상부는 평안부 물류 대책부터 들고나왔다. 평안부 전체가 험준한 산악 지대에 자리해 있어, 물류 대책을 빨리 마련하지 않으면 얻은 영토를 다시 잃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