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급변하는 전황 (1)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
막사 밖으로 나와 늦겨울의 찬 새벽 공기를 마시자, 태건은 몸과 정신이 깨어나는 걸 느꼈다. 밤새 추위를 견디느라 고생한 병사들의,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태왕 기하. 공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밤새 병사들을 돌보던 신첨과 전지로가 다가와 태건에게 고했다.
“다들 간밤에 고생했겠군.”
“그래도 미리 진지를 만들어 둔 덕분에 찬바람 정도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식사는 했고?”
“예, 건량으로 간단히 해결했지요. 이 전투를 마친 후에 병사들을 배불리 먹일 생각입니다.”
신첨이 웃으며 말했다.
이들이 있는 곳은 악포곶 능선이었다.
악포는 왜어로 ‘와니우라’인데, 태건은 이곳을 성게진으로 바꿔 불렀다. 그러나 성게진으로 깊숙이 함입해 들어온 악포만 바다와 악포만 동쪽의 길쭉한 반도 지형인 악포곶은 원이름 그대로 불러 주었다.
태건은 왜 선단이 기착해 쉴 곳으로 성게진을 점찍었다. 성게만 내해에 있는 여러 포구 중에, 해안선이 육지 쪽으로 가장 깊숙이 들어와 있어 배를 숨기기 좋은 데다, 수심이 얕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게진은 대마도주 측에서 관리하던 포구였다. 그러므로 이곳 뱃길을 잘 아는 대마도 병사가 왜 선단에 타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왜 수군이 반드시 이곳을 선택하리라 예상한 것이다.
태건의 예상은 절반만 들어맞은 상황이었다. 군선은 물론 승선한 왜 수군 병력이 워낙 많다 보니, 왜 수군은 악포만뿐만이 아니라, 성게만 서쪽 끄트머리와 중간 지점에 있는 포구에도 나눠 정박했다. 또 3할 가량은 여전히 바다에 떠서 발해 함대를 경계하고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한 발해 측은 그곳에도 급히 육군 2개 대대씩 배치했다. 성게만 연안이 그리 넓지 않다 보니, 어제저녁에 때맞춰 병력을 움직일 수 있었다.
“살아남은 왜선의 수는?”
“240척 정도입니다. 어제저녁에 정찰병이 파악한 수입니다.”
태건의 질문에 전지로가 답했다.
“우리 함대가 육십 척을 격멸한 셈인가? 그럼 남은 적병의 수는 대략 15,000명 정도겠군.”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세키부네… 그러니까 관선이고, 안택선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한 그보다 작은 군선도 있으니까요.”
왜 수군 편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왜장 출신 전지로의 추산이라 믿을 만했다.
태건은 동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어스름한 새벽이다. 사물의 형태를 어렴풋이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동쪽 바다가 밝아오자, 태건은 바로 공격 명령을 발했다.
퍼퍼퍼펑! 퍼펑!
능선에 배치되어 있던 화포 부대들이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 산기슭에서 진을 치고 있던 발해 육군과 해병대 병력은 즉시 모든 원거리 공격 수단을 동원해 해변에 있는 왜군을 공격했다. 화살과 화승총 총탄은 물론, 비격진천뢰와 조란탄 등이 해변의 왜군 숙영지로 날아갔다.
왜병들은 이제 출항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발해 함대가 성게만 바깥에서 왜선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기에, 아직 어두울 때 성게만을 빠져나갈 심산이었다. 발해 함대의 눈을 피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보다, 어둠의 덕을 보아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 한 것이다.
“북과 징을 쳐라! 고함을 질러라!”
신첨이 명령은 빠르게 전달되었다. 그러자 습기를 잔뜩 먹은 새벽 공기 덕분에 발해 병사의 함성과 악기 소리가 더욱 크게 증폭되었다.
“북을 쳐라!”
“소릴 질러라!”
“와아아아아! 다 죽여라!”
신첨은 원하는 대로 전황이 흘러가자 활짝 웃었다.
“허허! 그래그래. 빨리 배를 타고 도주해야지?”
발해군이 쏜 불화살 덕분에 해변의 왜군 진지와 야산에 불이 붙자, 해변 상황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혼비백산한 왜 수군은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모두가 황급히 배에 올랐다. 이들 중 벌써 천여 명이나 되는 왜병은 발해군의 기습에 당해 배에 오르지 못하고 끝내 해변에 몸을 뉘어야 했다.
태건이 되도록 요란하게 공격을 퍼부으라고 지시한 이유는 발해군의 수가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육군과 해병대 병력을 합쳐 2개 연대, 오천 정도만 이 전투에 참전할 수 있었다. 초량진 본진은 물론 서부의 대포진과 사량진을 지킬 병력도 남겨 둬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공격 시간대도 왜군이 배에 오를 무렵으로 잡았다. 그래야 반격할 생각을 못하고 일단 배에 오르고 볼 거라 예상한 것이다.
태건의 바람대로 기습 공격으로 인해 죽거나 다친 병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왜 수군은 즉시 배에 올라 성게만 서쪽 해협을 통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해협은 성게섬과 남쪽의 짧은 반도 지형 사이에 자리해 있는데, 그 폭이 1장미 정도로 꽤 넓었다.
“이제 다 끝난 셈이군.”
태건은 이제 전투가 끝났다고 판단했다. 저렇게 혼비백산해서 빠져나가는, 발해 지상군의 기습 공격으로 인해 이제 이백여 척으로 줄어든 왜 선단을 발해 함대가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운용할 병력을 잃고 경황도 없다 보니, 사십여 척은 여전히 해안에 정박해 있었다.
그의 기대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서쪽 바다에서 불빛이 번쩍거리며 포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발해 함대 역시 해협 외해에서 매복해 있다가 왜선이 나오자마자 모습을 드러내고 사냥을 시작한 것이다.
* * *
이른 새벽, 순천도호부 율촌 ― 미래의 여수시 율촌면 ― 부근 산지.
황진과 김솔, 그리고 그의 부하들은 산봉에 올라 주변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이들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순천 왜성(왜교성)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 군이 웅거하고 있는 성이었다.
“저놈의 왜성이 경관을 다 버렸어. 이렇게 경치가 수려한 곳에 저런 흉물이 들어서 있으니 원.”
황진은 순천 왜성을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저 성을 볼 때마다, 우리 땅이 유린당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게 말일세, 쯧쯧!”
황진은 순천 왜성에서 시선을 거두고 광양만 바다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왜선들은 이제 묘도 안쪽의 왜성 앞바다로 모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왜선이 여전히 많이 있군.”
“그래도 많이 줄어든 겁니다. 저 왜성 앞 포구를 지킬 배만 남겨 두고 다 떠나갔으니까요.”
도도 다카도라의 집결 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현재 광양만에는 삼십여 척의 왜선만이 남아 조선 수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순천 왜성은 외성만 해도 세 개가 있고, 언덕 꼭대기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기거하는 천수각도 있을 정도로 꽤 큰 성이었다. 또 광양만 해변엔 항구까지 갖추고 있었다.
“아! 옵니다, 우리 수군이 와요.”
남쪽을 살피던 김솔의 부하가 소리쳤다.
남쪽, 전라좌수영 방향에서 여수만 뱃길을 타고 조선 수군 선단이 다가오고 있었다.
“허허! 통제사 영감이 단단히 마음먹었군.”
“정말 보유 전력을 다 끌고 왔군요.”
통제사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이후, 사력을 다해 수군 전력을 재건해 왔다. 그 결과, 판옥선 서른한 척에, 협선 쉰두 척을 보유하게 되었다. 명량 해전 당시에 비해 전력이 두 배 이상 증강된 셈이다.
김솔이 대마도에서 태건을 만나고 돌아와 그의 의중을 전하자, 통제사는 발해 측의 제안을 바로 수용했다. 황진과 비밀리에 만나 사전에 이야기한 바가 있어, 조선에 매우 유리한 이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통제사는 여수만과 광양만에 웅크리고 있던 왜선 대부분이 빠져나갔다는 첩보가 들어오자 곧바로 통제영을 기존 고금도에서 그보다 동쪽에 자리한 흥양현 발포진으로 옮겼다. 흥양현은 미래의 고흥군이고, 발포진은 고흥반도 남쪽 끝에 있는 수군 기지였다. 이순신 장군도 예전에 발포 만호로 근무한 적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진지를 황급히 구축한 다음, 이순신 함대는 다시 출진해 전라좌수영을 점령하고, 다시 순천 왜성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왜선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조선 수군은 이미 이곳의 왜 수군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오! 선단을 둘로 나눴군.”
황진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조선 수군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조선 수군은 전력상 왜 수군에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왜 수군을 모두 궤멸시킬 작정이었다. 그래서 단 한 척도 살려 보내지 않을 각오로, 광양만 입구에 도착하자 함대를 둘로 나눴다. 바로 광양만 입구에 떠 있는 가장 큰 섬인 묘도 때문인데, 이 섬의 남과 북에 있는 수로를 모두 봉쇄할 요량이었다.
“포위 섬멸할 의도네요.”
“허허! 그렇군.”
두 무리로 나뉜 조선 수군 함대는 묘도를 지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왜선을 화포로 깨부수기 시작했다. 아울러 선단을 다시 합쳐 포위망을 넓게 형성했다.
조선 수군의 내습을 알아챈 왜 수군은 싸울 의지를 잃고 즉시 해변을 향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순천 왜성에도 비상이 걸렸다.
조선 수군은 바다에 떠 있던 왜 군선을 하나둘 처리하며 순천 왜성을 향해 나아갔다.
확실히 조선 수군의 화포도 발해 함대에 필적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파괴되는 왜선의 모습이 황진의 눈에 생생하게 들어올 정도였다.
“하하하! 속이 다 후련하군.”
황진은 조선 수군이 일방적으로 왜 군선을 깨트리는 장면을 보며 몹시 기뻐했다.
광양만에 떠 있던 모든 왜선을 처리한 조선 수군은 이제 순천 왜성으로 접근, 왜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륙해서 지상전을 펼칠 수는 없어도 화포로 타격을 줄 수는 있어,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황 병사 영감님.”
해전에 몰두해 있는 황진을 김솔이 불렀다.
“무슨 일인가?”
“내이포를 염탐하고 온 이가 방금 도착했습니다.”
“내이포면 웅천현?”
“그렇습니다. 왜 수군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이지요.”
내이포 ― 혹은 제포라고도 하는데, 미래의 창원시 진해구 ― 는 왜관이 자리한 삼포의 하나로, 가덕도 서북부 해안에 자리했다. 부산포 앞바다가 발해 함대의 공격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보니, 현재 내이포가 왜 수군의 본영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 그럼 발해 함대와 치른 해전 소식을 들고 왔나?”
황진이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 역시 대마도 해전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발해 함대가 이기리라 예상했으나, 왜 선단 규모가 만만치 않아 몹시 걱정하던 참이었다.
“그렇습니다. 빨리 보고해 보게.”
김솔은 방금 산으로 올라온 부하를 재촉했다.
“대패했답니다. 하하하!”
황진은 처음 정찰 대원의 말을 이해 못했다. 활짝 웃으며 대패했다고 하니, 잠시 혼란이 온 것이다. 그러나 숨은 주어가 왜 수군이란 사실을 이내 깨닫고 그 역시 활짝 웃으며 되물었다.
“오! 그런가? 어느 정도길래.”
“왜선 대부분이 아주 걸레짝이 되어 나타났습니다요. 그런 몰골로 생환한 배가 겨우 백 척 남짓이었고요.”
“오호라! 백 척이 살아왔다면, 발해 함대가 대략 이백 척을 부쉈다는 말이지 않은가?”
“하하하! 그렇습니다. 병력도 만 명 넘게 잃었고, 귀환한 배도 한참을 고쳐야 겨우 쓸 수 있는 정도랍니다.”
“발해 수군의 피해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거기까지 알기는 어렵겠지.”
“그러나 초상집 같은 내이포 왜 수군 본영 분위기로 보건대, 후발해 해군이 대승한 거 하나는 확실합니다. 게다가 왜 수군 대장은 크게 다쳐 몸져누웠고, 우군을 맡은 왜장은 전사했다네요.”
왜 수군 대장 도도 다카도라는 이번 해전에서 조란탄에 어깨에 맞아 어깨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당했고, 우군장 가토 요시아키는 전사했다. 최고 지휘관마저 무사하지 못했을 정도로 왜 수군은 이번 해전에서 참패한 것이다. 그나마 전멸을 면한 건 풍향의 도움으로 왜 선단의 속도가 더 빨라, 발해 함대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