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결단 (2)
제2함대 소속, 아오지급 중선 서수라함.
태건은 선수에 서서 점차 가까워지는 조선의 남해안 쪽을 살폈다. 처음엔 수평선 위에 기다란 띠처럼 보이던 해안선이었다. 그러다 점차 복잡한 모양새로 바뀌더니, 이제 섬과 뭍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해졌다.
서수라함 함장 정천검 부령이 태건에게 다가왔다.
“태왕 기하. 견시수가 3함대를 발견했습니다.”
그의 말에 태건은 돛대 위를 바라보았다. 견시수는 천리경을 들고 계속 전방을 살피고 있었다.
“맨눈으로 아직 볼 수 없을 겁니다. 3함대는 현재 가덕도 앞에 있습니다.”
“아직 전투가 시작되진 않은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정말 이 해전이 왜란의 마지막 전투였으면 좋겠군.”
정천검 함장은 고개를 숙이고 군례를 올리더니 선미루의 선장 자리로 돌아갔다.
그간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연합 수군이 노량해전 ― 실제 역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간단히 끝났으나, 태건은 이를 노량해전이라 칭했다 ― 을 치른 이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진 왜군 측은 모든 배에 병력을 모두 승선시킨 후, 대략 350척씩 두 무리로 나눠 1차로 철군을 강행했다. 물론 그중 한 무리는 도중에 발해 함대에 발각되어 백여 척을 잃었으나, 나머지는 무사히 규슈의 나고야(낭고야)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육지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여전히 조선 땅에 남아 있는 절반의 병력이 조명연합군과 전투를 치른 것이다. 그러나 종전을 앞둔 탓에 이미 기강이 해이해진 명군이 소극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조명연합군의 육지전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해, 꽤 많은 왜병을 놓아주게 되었다.
나고야항에서 병력을 내려놓은 왜 선단은 다시 조선으로 향했는데, 밤을 틈타 동수로와 서수로를 건너는 방식으로, 발해 함대의 감시망을 피해 무사히 조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왜 수군 선단은 조선 땅에 남은 모든 원정군 병력을 배에 태웠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물론이고, 고니시 유키나와와 가토 기요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다치바나 무네시게, 도도 다카도라 등도 후발대에 속했다. 반면 우키타 히데이에와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선발대로 돌아간 상태였다.
이렇게 왜 원정군 후발대의 철군 준비가 한창일 무렵, 조선 수군 측에서 김솔을 통해 연락이 왔다. 거제현의 당포 ― 미래의 통영시 서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포구 ― 에서 2함대 서수라함에 승선한 김솔은 대마도 초량진으로 와서 태건을 알현하더니, 이순신 장군의 밀명을 전했다.
‘통제사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이번에 연합작전을 펼치길 원한답니다. 이름난 왜장 대부분이 이번에 철군하는 배편에 승선한다는 첩보가 들어왔기에 이들을 모두 잡았으면 좋겠답니다. 그래야 후환도 없고,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 백성과 장졸들의 넋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며…….’
김솔은 이순신 장군의 말투 그대로, 출사표나 다름없는 전언을 또렷이 태건에게 들려주었다.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아 말로 전한다며 왜 연합작전을 펼쳐야 하는지, 또 어떻게 진행했으면 좋은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던 태건은 김솔을 호출했다. 공식 언행 이외에 그의 속내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 기하.”
“황진 장군의 제안에 관한 언질은 없었나?”
“예, 오로지 이번 해전 관련 얘기만 있었습니다.”
“흠, 어쩌자고…….”
“예?”
김솔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태건의 말에 깃든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건이 재차 질문했다.
“이번 연합작전에 관해 휘하 장수들은 아는가?”
“측근 장수 몇몇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직접 얘기를 들은 바는 없으나, 통제영이 돌아가는 구조상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우리 발해 함대와 연합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겠군. 사후에, 어떤 식으로든.”
“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통제사와 그 측근 장수들 모두 다 역모죄를 뒤집어쓸 텐데?”
“아… 예.”
김솔도 이미 알고 있고, 그걸 염려하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대승하면 뭐 하겠나? 그 공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역모죄만 남는데.”
김솔의 표정이 무척 우울해졌다. 그 역시 이를 각오하고 그간 발해 함대와 연락을 주고받는 일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자넨 발해로 오게. 대마도든 북방이든, 그 어디서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편하게 살게 해 줄 테니.”
“감사합니다, 태왕 기하. 그럼 혹시 제 부하들도…….”
“당연히 그래야지. 남아 봤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존재들일 테니.”
“고, 고맙습니다. 기하!”
김솔은 매우 감격해했다.
“그 대신 이번에 돌아가면 통제사와 황 장군 곁에 바짝 붙어서 통제사를 같이 설득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김솔은 황진 장군이 어떤 제안을 했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태건의 말을 통해 대충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 * *
전투가 임박해 오자, 남해도 동쪽에 자리한, 창선도 적량 앞바다에서 대기 중이던 명과 조선 연합 수군 함대는 일찌감치 출항, 한산도를 지나 견내량으로 향했다. 일종의 토끼몰이 작전으로, 왜 선단이 정박해 있는 해역의 두 출구 중 하나를 우선 봉쇄해, 자연스레 왜 선단을 발해 함대가 진을 치고 있는 가덕도 해협으로 몰아가고자 한 것이다.
왜 선단 역시 발해 함대를 상대하려면 똘똘 뭉쳐서 가야 했기에, 선발대를 보내지 않고 각 집결지로 모여든 지상 병력이 모두 승선할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에 건너온 왜선 총수가 육백여 척이었기에 선단을 나누지 않고 같이 출발할 생각이었다.
이들은 그 정도로 발해 함대에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백오십 척 이상을 발해 함대에 제물로 안겨 주어, 다른 배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방식이라, 왜 선단에 승선한 왜병의 생존 확률은 2할 정도였다. 매우 잔인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그게 가장 이로운 전술이라, 아무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그저 운이 따르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명연합 수군 함대가 견내량을 넘어 왜 수군 세력권 해역으로 들어섰다는 첩보가 전해지자, 왜 수군은 출항을 서둘렀다. 원래 발해 함대의 눈을 피하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조명연합 수군의 등장으로 조금 더 일찍 떠나게 된 것이다.
집결지 앞바다에서 대기 중이던 모든 왜선이 합류하자 웅천의 내이포 앞바다는 이제 왜선들로 가득 들어찼다.
“하하하! 놈들은 결국 우리와 싸우길 원치 않는군.”
견내량과 가까운 곳에 있는 고성의 적진포와 당항포, 진해의 구산포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왜 선단이 싸우길 포기하고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자, 삼도수군통제사 대장선에 승선해 있는 황진은 활짝 웃었다.
이제 대장선 내에서 그가 누구인지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장선의 군관들만큼은 이번에 발해 함대와 연합해 작전을 펼친다는 점을 숙지하고 있어, 그를 발해의 사자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갑판의 전투 병력이 그에 관해 물으면 그저 ‘통제사 영감을 도우러 온 벗’이라고 둘러댔다.
“근데 일단 도주가 아니라 집결이 목적인 것 같습니다.”
태건의 명에 따라 황진의 곁을 지키던 김솔이 말했다.
“그런가?”
“발해 수군에게 들었습니다. 저들이 발해 수군을 상대할 때마다 뭉쳐 싸우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요.”
“음, 그럼 발해 수군을 돌파하기 위한 진형이란 말이군.”
“예, 그렇습니다.”
조명연합함대도 명나라 수군 덕분에 꽤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다. 진린 도독이 지휘하는 명 수군은 사선과 호선 등을 끌고 왔는데, 판옥선보다 크기도 작고 공격력도 약한 배였다.
그러나 판옥선의 수가 겨우 서른다섯 척인데 반해, 무려 삼백여 척에 가깝다 보니, 왜 수군이 함부로 덤벼들 수가 없었다. 조선 수군도 협선까지 모두 끌고 와 전투를 지원하게 하여, 연합군 선단의 규모는 더욱 커 보였다.
거제의 칠천도 북쪽을 돌아 나가자 시야가 탁 트이더니 내이포 앞바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왜선으로 뒤덮여 있는데, 출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지, 왜 선단 전체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왜선이 가거도 쪽으로 움직이고 있네요.”
“역시 가거도 길목을 돌파할 생각이군.”
왜 선단 육백여 척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치 내이포 바다 전체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왜 선단과 조명연합 수군 함대 간의 거리는 아직 꽤 멀었으나, 워낙 많은 배들이 움직이고 있어 방향이나 속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적선이 시야에 들어오자 통제사 이순신은 전속력으로 왜선을 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평소의 그와 달리 매우 저돌적인 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그러자 자연스레 조선 수군이 선두에 서고, 명 수군이 뒤처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속도가 빠른 왜선을 따라가기에 버거워 보였다.
“명 수군이 더 문제로군.”
“이번에 같이 따라나서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철군하는 왜적과 싸울 필요가 없지 않냐는 의견이 많았답니다.”
실제로 노량해전 당시, 진린 도독은 왜군을 놓아주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순신을 존경하게 된 진린은 마지막 전투까지 따라나서 같이 싸워 주었다.
“그런 생각을 할 만하지.”
다소 뒤처지긴 했으나 명 수군은 차분하게 조선 수군을 따라가고 있었다. 단지 속도만 내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 * *
경흥함 선수루 갑판.
태건과 태미는 가거도 해협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공동작전 계획에 따르면, 왜 선단이 나올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통로가 너무 넓다는 점이었다.
가거도와 거제도 사이의, 이 해협의 길이는 대략 7.5장미인데, 그 중간에 대죽도와 저도라는 작은 섬들이 박혀 있었다. 그래서 3함대는 이들 중 동쪽에 있는 대죽도 남쪽에 자리를 잡았다. 아울러 2함대는 거제도 동부 해안과 가까운 부속 섬인 학섬 ― 미래의 이수도 ― 의 남쪽 해역에 포진한 채, 왜 수군이 해협으로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더구나 벌써 날이 서서히 저물고 있어 자칫 왜 선단을 놓칠 수도 있었다. 고민에 빠진 태건은 다시 해도를 꺼내 들었다.
“조명연합 수군과 우리 발해 함대가 그냥 전방과 후방, 양쪽에서 적선을 공격하자는 전술만으로 조금 부족한 게 있어. 왜선들을 확실히 잡자면 더 정밀한 전술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복안이 있어요?”
태미가 물었다.
“가거도와 저 앞 대죽도 사이, 바닷길의 폭이 너무 넓단 말이야. 그냥 최대한 많이 피해나 주고 끝내자면 기존 작전대로 하면 되겠지. 그러나 더 나은 방법도 있을 것 같다. 일단 우리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자. 가거도와 대죽도 사이 해협 안쪽으로 들어가 왜선의 선두 대열을 위협하는 거지.”
“아, 그러면 놈들은 대죽도와 저도, 혹은 저도와 거제도 사이 해협으로 빠지겠네요?”
“바로 그거야. 그럼 우린 저들과 나란히 항해하며 계속 측면을 봉쇄해, 놈들을 남쪽으로 움직이게 유도하자고. 그다음 2함대가 이수도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서 왜군의 전방을 봉쇄하는 거지.”
태미는 태건의 얘기에 푹 빠져, 같이 뚫어져라 해도를 바라보았다.
“아, 그럼 오라버닌 저들을 율포 앞바다에 가두고 공격할 생각이네요?”
“맞아. 율포 해안선이 서쪽으로 푹 파인 모양새이니, 왜 선단을 그 해역에 몰아넣자는 말이지. 우리 발해 함대가 동쪽과 남쪽을 틀어막고, 조명연합함대가 북쪽 후미를 노리면 되지 않을까?”
율포 ― 미래의 거제시 장목면 율천리 소재 ― 는 훗날 구율포로 이름이 바뀌는데, 왜란 시기의 명칭은 율포진이었다.
“좋네요. 그럼 즉시 실행할게요.”
태미는 이사로 함장을 불러 제3함대를 이동시켰다.
선두에 선 경흥함을 필두로 제3함대를 구성하는 총 아홉 척의 함선들은 가덕도와 대죽도 사이의 해협을 지나 내해로 들어섰다.
“아! 왜선이 보이네요.”
내해로 들어서자마자 부리나케 움직이고 있는 왜 수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태미는 곧바로 3함대를 그들을 향해 돌진하게 했다.
그러자 왜 선단 측에서도 즉시 반향이 일어났다. 그 모습이 마치 화들짝 놀란 사람의 행태와 닮아 보였다. 발해 함대가 가덕도 안쪽으로 들어온 적이 없기에 마음 놓고 움직이다 갑자기 대죽도 쪽에서 등장하자 당황한 것. 그에 따라 선두의 움직임이 다소 어지러워지더니 왜 선단 전체가 동남에서 정남 방향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태건의 의도대로 대죽도와 거제도 사이 해협으로 통과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확실히 놈들은 싸울 생각이 없군. 얻어터지더라도 되도록 많이 돌아가는 게 이롭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네요. 육백 척이나 되면 덤벼들 만도 한데.”
“게다가 조명연합 수군이 뒤따르고 있으니 충돌을 극도로 피할 수밖에 없지.”
“어쨌든 우린 놈들과 나란히 남쪽으로 가면 되겠네요?”
“그러자. 남쪽에 있는 2함대가 막아설 때까지.”
“예, 오라버니.”
태미는 굳은 표정으로 왜 선단을 응시했다. 태미는 이제 개전 이래 가장 규모가 큰 해전을 앞두게 되었다. 그것도 종전을 코앞에 둔, 묘한 시점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