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율포 해전 (1)
발해 동평부 영강현의 예인사. 영강진의 동남쪽에 인접한 지역인데, 오늘 이곳으로 수많은 발해 내각의 고위 인사들과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 발해 최초의 대형 제철소 착공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사실 공사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공사 주체인 공상부 측은 먼저 물줄기를 바로잡는 공사부터 들어갔다. 영강현은 우수리강의 중류 유역에 자리해 있는데, 이 구간의 우수리강은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사행천의 형태를 띠고 있어, 공업용수 확보를 위해 관개공사부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일관 제철소 형태로 건설될 예정이라, 꽤 넓은 부지를 대상으로 토목공사를 실시해야 했다. 물론 이 공사엔 여진족 포로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착공식 행사가 끝나자 이하륜과 홍은, 허균 이렇게 셋은 영강제철소 부지를 둘러보며 제철소를 화제로 담소를 나눴다.
“샛골광산에서 철광석을 캐기 시작했다고 들었네만.”
사적인 자리라, 허균이 편한 말투로 친구 이하륜에게 물었다.
샛골광산은 예인사 동북쪽에 자리한 철광산으로, 현재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벌써 조금씩 철광석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랬지. 지금부터 부지런히 캐서 모아 놔야지.”
“봉산탄광도 벌써 돌아가고 있다지?”
“그렇네.”
발해에서 가장 중요한 석탄 자원을 보유한 봉밀산 지역을 발해 정부는 ‘봉산진’이라 바꿔 불렀다. 그에 따라 탄광도 봉산탄광이 된 것이다.
발해 정부는 올해 초 다시 행정구역을 개편, 국토의 동북 지역에 동평부를 신설했는데, 미타호 대평원과 우수리강 동편에 있는 영강현, 이만현, 대관현 등이 동평부에 속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혜민평원은 자연스레 홀한부 관할이 되었고 봉산진이 속해 있는 혜민평원 동부에 봉산현이, 평원 서부에 혜민현이 설치되었다. 이들 지역에,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기 시작함에 따라 취한 조치였다.
“물론이지. 이제 거기에다 석탄화학 공장을 짓기 시작했으니 몇 년 지나면 해탄이란 게 나올 거네.”
“해탄… 그렇지, 강철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재료라고 했지.”
봉산 탄전에 역청탄에 매장되어 있어 해탄, 즉 코크스를 생산하는 석탄화학 공장이 세워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제철소를 세우는데 참으로 많은 준비가 필요했군.”
남쪽 미주 방향에서 오고 있는 수레 행렬을 보며 허균이 말했다.
“그러게.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이 남았지만, 그간 참 많은 일을 해냈다는 생각도 들어. 저쪽 봉산하고 남쪽의 미주와 솔빈진을 연결하는 도로 공사가 마무리된 것만도 해도 큰 성과지. 게다가 하구동의 무연탄 탄광도 석탄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하구탄광은 솔빈부 동녕현에 자리해 있는데, 발해 최초의 무연탄 탄광이라 그곳 역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이하륜과 기계장들은 수송 효율을 높이기 위한 증기 인동기(트랙터) ― 끄는 힘을 제공하는 동력기라 해서 인동기로 명명 ― 모델의 개발을 끝냈다. 그에 따라 조만간 경흥기계공사에서 인동기의 대량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처럼 증기기관의 구동에 쓰일 석탄 자원과 광산, 그리고 자원과 인력을 수송할 도로 등의 인프라 건설이 완료되자 비로소 제철소 건설에 들어간 것이다.
“영강현 인구가 늘고 있어 다행일세. 여긴 삼남 출신 이주자들이 많이 정착했다고 했지?”
오랜만에 영강을 방문한 허균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영강진은 물론, 그 주변 지역에 부쩍 늘어난 여러 개척촌 모습을 보고 몹시 고무되어 있었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미타호 대평원 쪽에 평안도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잖은가? 겨우내 꼼짝없이 여기저기서 더부살이하다가 이제 토지 배정 작업을 시작했으니, 조만간 그 지방도 사람들로 북적거리겠지.”
이곳 북방에서 발해력으로 3월이면 여전히 추운 날씨였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이주민에게 집터와 농토를 배정해야 제때 주택 건설과 개간 작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래도 이주민이 더 많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 전후 조선이 전쟁 후유증을 극복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야. 세수도 꽤 부족하니 백성들을 쥐어짜겠지. 힘없는 백성들이야 대안이 없다면 그저 앉아서 당하는 수밖에 없으나, 우리 발해라는 훌륭한 도피처가 있는데 가만히 있을까? 더구나 조선 조정이 우리 발해를 역적 도당이니, 오랑캐와 진배없는 흉포한 도적 떼니 하며 괴물로 취급했지만, 그런 소문도 빠르게 불식되어 가고 있다고 들었네. 우리 태왕 형님이 대마도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도 벌써 많이 알려진 모양이더라고.”
조선 내에서 발해에 대한 온갖 악소문은 관과 양반 계층을 통해 생산되고 전파되었다. 양반층의 시각에서 발해는 용납할 수 없는, 악마의 나라나 다름없었다. 신분제를 철폐한 데다, 이미 종교화되고 있는 유교 질서와 의례를 상당 부분 부정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해가 파견한 첩자는 물론, 그들과 연계된 상인들, 또 발해에 우호적인 이들 덕분에 이런 악소문도 점차 극복되고 있었다. 아울러 조선 조정의 거듭된 실정으로 인해 민심은 조정과 빠르게 유리되고 있는 형국이었다.
“에휴! 기하는 언제나 돌아온담? 무슨 왕이 반년을 넘게 자리를 비우고 그래. 여기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태건 이야기가 나오자 홍은이 한숨부터 내쉬었다.
“의정대신이 있으니 마음 놓고 원정 나가셨겠지요. 더구나 의정대신 뺨치게 능력 좋은 황후님도 계시고.”
허균이 웃으며 대답했다.
“호호! 참정대신님은 소설가라 그런지 말씀도 잘하셔.”
이제 허균은 학부대신이나 참정대신이란 직위보다 소설가로 더 유명해졌다.
홍길동전은 벌써 불후의 명작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장생전이 나왔다. 또 허균은 고구려와 발해의 위인 설화에도 관심을 가져 주몽전, 광개토태왕전, 을지문덕전, 대조영전 등을 연달아 내놓았다. 물론 형 허성이 수집한 자료와 정보가 이 소설들의 밑받침이 되었다.
“의정대신님. 군부에서 보낸 파발이 도착했습니다.”
의정부 비서관 김정언이 이하륜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김정언은 황진의 측근 중 한 사람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예, 평안도 동부 산지에 자리한 세 고을에서 또다시 백성들이 봉기했고, 봉기를 주도한 자들로부터 우리 발해에 귀속되길 원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세 고을이면 어디…….”
“영원군과 맹산현, 양덕현입니다.”
이들 세 고을은 평안도와 함경도 경계에 자리한 산골 지방이었다. 지형이 험하고 인구도 적어, 오죽하면 세 지역 중 하나인 양덕을 두고, ‘부임한 현감은 할 일이 없어 사슴을 벗 삼아 지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들고일어난 주민들을 제어할 병력도 거의 없었다. 더구나 아직 왜란이 종식되지 않아, 공권력의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크크! 익문사의 작품 같군.”
“요즘 평안도에서 벌어지는 일의 배후에 항상 익문사가 있긴 하지.”
허균도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어떻게 처결하실지…….”
“볼 거 있어요? 바로 병력을 파병해 우리 땅으로 만들어야지. 마침 종전이 코앞이니, 이렇게 쉽게 땅을 얻는 건 어쩌면 그 세 고을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네. 그러니 더더욱 가져와야죠.”
“예,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관을 보내겠습니다.”
“호호! 평안부가 더 넓어졌네요?”
황후 홍은이 몹시 기뻐했다. 홍은뿐만이 아니라 태건과 이하륜도 만주 땅이 넓어지는 것보다 조선 땅이 편입되는 걸 더 선호했다.
“그럼 평안도 산골 대부분은 우리 발해 영토가 된 셈이군.”
허균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정말 잘됐어. 안 그래도 여민부와 평안부를 연결하는, 새로운 도로 노선을 구상하고 있었거든.”
“아, 함흥과 희천을 연결하는 길 말인가?”
허균이 물었다.
“그랬지. 근데 엄두가 안 나더라고. 너무 노선이 길어서. 기존의 비좁은 관도는 있으나 수레가 두 대씩 다닐 만한 널찍한 도로는 아니니까. 그러니 그 험한 산지에 넓은 도로를 새로 내기 어디 쉽겠나?”
“맞네. 참으로 험한 산길이지.”
“그런데 영원이 우리 영토가 되면 마유령길을 활용할 수가 있지.”
“아, 그렇군. 마유령길! 평안도 영원에서 여민부의 정평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있지?”
마유령은 훗날 검산령으로 이름이 바뀌는데, 함경도 남부와 평안도를 연결하는 예로부터 통행량이 많은 길이었다. 허균도 당연히 마유령길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덕분에 평안부의 경영이 더 쉬워질 것 같군. 류진 도로청장한테 당장 얘기해야겠어. 바로 착수하자고.”
“그간 평안부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군.”
“당연하지. 사람과 물자가 오가기 힘든 땅을 두고 어찌 우리 땅이라 할 수 있겠어?”
“과연 그렇군. 참으로 타당한 말이네. 그런데 조선은 어찌 도로의 중요성을 간과했는지.”
허균은 새삼 조선과 발해의 사고방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 * *
서녘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갈 무렵, 왜란의 끝을 장식하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발해 해군 제3함대의 견제를 피하려 계속 남쪽으로 내달리던 왜 선단을 학섬 뒤에 숨어 있던 제2함대가 막아서며 시작된 전투였다.
2함대 사령관 고경봉은 대선 네 척과 중선 다섯 척으로 넓게 학익진을 펼친 다음, 좌현을 왜 선단 쪽으로 노출시키고 즉시 함포사격을 실시했다.
퍼펑! 퍼퍼펑!
2함대가 갑자기 학섬 남쪽에서 빠져나와 갑작스레 앞을 막고 함포를 쏘아 대자, 몹시 당황한 왜 수군의 선두 대열은 즉시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동쪽은 3함대가 막고 있으니, 2함대와 3함대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가려 한 것이다.
“후후! 어딜?”
고경봉의 2함대는 왜선들의 움직임에 맞춰 동북쪽으로 나아가며 계속 함포로 공격했다. 결국 선두에 선 왜선 수십 척이 2함대와 3함대의 포격에 당해 이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일단 진로가 막히자, 왜 수군은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육백 척이나 되는 대규모 선단이라, 통제도 쉽지 않았고, 또 그들 모두가 두려워하는 발해 함대가 진로를 막고 나선 바람에 몹시 당황한 것이다.
지휘 체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자 왜선들은 백여 척씩 무리를 지어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 대열에 가깝게 자리했다 크게 손상당한 배들은 숨을 돌리고자 서쪽 율포해변 쪽으로 이동했고, 후미에 처져 있던 왜선들은 아예 발해 함대를 피해 조명연합 수군을 상대하고자 배를 돌렸다.
이들은 조명연합 수군을 돌파한 다음, 대죽도와 가거도 사이 해협을 통해 빠져나갈 심산이었다. 중간 대열에 속한 배들도 나름대로 계속 2함대와 3함대의 사이 공간을 노리며 활로를 찾고자 했다.
“이런… 초반부터 난전이로군.”
고경봉은 전황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게 흘러가자 살짝 당황했다. 아직 불리할 건 없으나 눈앞에 보이는 게 다 적선이라, 어디부터 공격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였다.
“뭐, 우린 지시만 이행하면 되니까.”
고경봉이 태건에게 하달받은 명령은 3함대와 간격을 유지하며 눈에 띄는 대로 왜선을 격멸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2함대는 그 명령을 잘 이행하고 있었다. 특히 새로 합류한 경흥급 대선 안변함의 활약이 눈부셨다. 보유한 화포의 수가 북청급에 비해 많다 보니, 2함대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을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