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율포 해전 (2)
제3함대 역시 벌써 수많은 왜선을 격침하는 등 꽤 치열한 전투를 벌여 나갔다. 그러나 제2함대에 비해 더 많은 왜선이 몰린 탓에 빠져나가려는 왜선들을 모두 잡아 가둘 수 없었다. 함선 사이의 공간을 비집고 왜선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왜선들이 온전히 도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포위망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으나, 이번엔 반대편인 좌현에 배치된 화포들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퍼퍼퍼펑!
좌현 화포의 포문이 덜컹 열리더니 바퀴 달린 화포들이 불쑥 포구를 내밀고 빠져나가는 왜선들에게 철환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천신만고 끝에 포위망을 빠져나온 왜선들은 또다시 지옥을 맛봐야 했다. 그런데도 운 좋게 살아나가는 왜선들이 꾸준히 나왔다.
경흥함 선수루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태건은 천리경을 들고 왜 선단의 후미 쪽 상황을 살펴보았다.
“어휴! 저기야말로 난전이 펼쳐졌군.”
2함대와 3함대 전황은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왜선 입장에서 대선은 물론 아오지급 중선조차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덩치가 커서, 발해 함선을 공격할 수단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쪽의 조명연합 수군 쪽은 전황이 다르게 흘러갔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명 군선은 왜선에 붙잡혀 점령당하기 일쑤였다. 판옥선들도 왜선에 둘러싸인 채 화포와 화살을 쏘아 대며 맹렬히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왜선의 절반가량인 약 삼백여 척의 배들이 뱃머리를 돌려 조명연합 수군을 공격하고 있다 보니, 전황이 몹시 불리해 보였다.
“음, 역시 왜선들이 조명연합군을 노리는군. 거기가 약점이란 걸 아니까.”
“그렇네요. 북쪽 포위망을 뚫으면 가거도와 대죽도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왜 선단이 그쪽으로 몰렸어요.”
태미도 안타까워하는 심정으로 얘기했다.
태건은 북쪽을 한참동안 노려보다 나직이 한숨을 토해 냈다.
“도와주자.”
“예? 여긴 어떻게 하고요? 그럼 포위망이 풀리는데…….”
“여기 지휘를 악양함에 넘기고 경흥함과 부령함만 가서 도와주자. 저렇게 방치하면 조선 수군이 위험해진다.”
“음, 알겠습니다. 우리 두 척이 빠지면 그만큼 왜선들이 빠져나갈 공간이 생기는 거고, 그러면 조명연합 수군에 가해진 압력도 한결 줄어들겠죠?”
“그렇겠지. 어차피 저 많은 왜선을 모두 수장시키는 건 불가능하니까, 살려 줄 놈들은 살려 주자고. 그래야 우리 피해도 줄어들지.”
“예, 오라버니.”
태미는 즉시 이사로 함장을 호출했다.
* * *
황진도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했다. 해전은 처음이나, 뛰어난 활 실력만큼은 바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가 방금 쏜 화살이 우현 쪽에 붙은 왜선 지휘관의 왼눈에 박히자, 왜선 지휘관은 그대로 즉사했다. 갑옷으로 온몸을 칭칭 두른 탓에 얼굴만 노렸는데 정확히 적중한 것이다.
퍼퍼퍼펑!
왜선이 바짝 붙어 있는 상태에서 대장선이 화포를 발사하자, 좌현에 붙은 왜선 한 척이 여기저기 부서져 나갔다. 결국 그 왜선은 왜병들의 비명을 뒤로한 채, 천천히 침몰하기 시작했다.
“좋았어.”
잠시 숨을 고른 황진이 김솔에게 물었다.
“통제사 영감은 항상 이렇게 싸우나?”
“아닙니다. 이런 모습은 처음입니다.”
김솔은 다소 겁에 질려 있었다. 이순신 통제사는 늘 적함과 거리를 두고 원거리 무기인 화포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전투했다. 그러나 오늘은 조명연합 수군 중에서 맨 앞에 서더니, 그대로 왜선 무리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어휴!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자고 하시더니 이렇게 저돌적으로 나갈 줄이야.”
“그런데 발해 국왕께선 이를 어찌 알았을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
“마지막으로 알현하던 날,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뭐? 허허! 정말 대단하군. 이크!”
황진은 더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세키부네 한 척이 대장선과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대장선은 재빨리 방향을 틀어 장전한 채 대기하고 있는 우현을 왜선 쪽으로 향하게 했다.
“방포하라!”
퍼퍼퍼펑!
“휴! 다행이군.”
황진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철환 세례를 받은 그 세키부네는 벌써 반파되어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위, 위험합니다. 지금 아군은 보이지 않고 죄다 왜선입니다.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군요.”
김솔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아무리 판옥선이 튼튼하고 크다지만, 판옥선과 비슷한 크기의 아타케부네 몇 척이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고, 세키부네는 몇 겹으로 대장선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들 아타케부네로 인해 시야마저 제한받고 있어, 더욱 사면초가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황진도 나직이 한숨을 내쉬더니 장대 쪽을 바라보았다. 이순신 통제사는 꿋꿋한 자세로 지휘에 여념이 없었다.
퍼퍼펑! 퍼펑!
“헉! 이 소린?”
김솔은 깜짝 놀라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남쪽에 있던 아타케부네와 세키부네들이 포탄에 얻어맞아 파편을 사방으로 튕겨 내고 있고, 왜병들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도 같이 들려왔다.
“오오오! 저게 뭐야?”
“헉! 저, 저건?”
“뭔 배가 동산만 하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전투에 열중이던 수군 병사들이 그대로 얼어붙은 채 멍하니 동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드디어 와 줬군.”
“그러네요.”
병사들과 달리 황진과 김솔은 금세 경흥함을 알아보았다. 발해 함선들은 배마다 고유한 깃발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퍼퍼펑! 펑!
다른 방향에서 다시 포성이 울렸다. 그러자 동쪽을 가로막고 있던 왜선들이 부서져 나가기 시작했다. 동쪽에서 접근한 배는 부령함이었다.
“와아아아아! 발해 배다!”
병사들도 이제 경흥함과 부령함을 알아보고 환호성을 터트렸다. 배의 크기로 보나, 또 왜선을 공격한 사실로 보나, 오늘 처음 본 저 큰 배들이 발해 함선이란 걸 알아차린 것이다.
경흥함과 부령함이 접근하자 대장선 주변에 있던 왜선들은 발해 함선들의 포탄에 얻어맞으면서도 즉시 대장선과 멀어지더니 동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왜선들은 부령함 곁을 지나 줄줄이 동쪽으로 나아갔다. 부령함은 이를 두고 보지 않고 이 왜선들을 공격했으나, 왜선의 수가 많다 보니 탈출에 성공한 배들이 더 많았다.
일단 물꼬가 트이자, 조명연합 수군을 공격하던 왜선들 모두가 새로 난 통로로 몰려들었다. 왜선들이 꼬리를 물자 대장선도 잠시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왜 선단의 후미가 보이자 통제사의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저놈들을 추격하라!”
이순신은 결코 저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단 한 척이라도 더 잡으려고 부하들을 독려했다. 다시 힘을 얻은 대장선이 빠르게 왜 선단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발해 함선들도 왜선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묘하게도 경흥함과 부령함이 같이 움직이다 보니 대장선이 두 함선의 중간에 자리하게 되었다. 마치 대장선을 호위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미 탈출에 성공한 왜 선단은 대죽도와 가거도 사이의 해협을 빠져나갔고, 이들을 추적하는 경흥함과 부령함, 조선 수군 대장선도 이 해협으로 진입했다.
조명연합 수군은 여전히 후미에 머물러 있었다. 왜선 무리가 홍수라도 난 것처럼 무리를 이뤄 움직이자, 감히 덤벼들 수가 없었다.
“아, 경흥함이 배를 돌립니다! 뒤에 또 한 무리의 왜선이 나타났군요.”
김솔이 소리쳤다.
경흥함은 왜 선단의 추적을 단념하고 배를 돌리더니 뒤를 따라붙는 왜선들을 노렸다.
경흥함의 함포사격에 왜선들은 줄줄이 부서져 나갔다. 그런데도 왜선들은 멈추지 않았다. 활로가 열렸으니, 죽기를 각오하고 해협을 지나려 했다.
이윽고 부령함도 경흥함 곁으로 다가와 왜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들 두 함선이 막아서자 공포감에 휩싸여 뱃머리를 돌리는 왜선도 있었으나, 이들은 곧 뒤따르던 조명연합 수군의 먹잇감이 되었다.
경흥함과 부령함의 활약을 지켜보던 황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전방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대장선은 왜선을 추적하고 있었다. 황진은 한숨을 내쉬더니 장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제 그의 차례가 온 것이다. 더구나 날도 저물고 있어 결행하기에 좋은 시점이었다. 그러자 김솔도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 * *
율포 남부와 동부 근해의 전황은 여전히 치열했다. 경흥급 대선 두 척이 빠져나가 3함대의 화력이 다소 약화되자, 왜선들은 무리를 짓더니 일제히 3함대의 북쪽 우익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고경봉은 즉시 아오지급 중선 두 척과 북청함을 이끌고 3함대를 지원하러 나섰다.
“그새 큰 틈이 생겼군.”
무리를 지어야만 발해 함대를 상대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인지한 왜 수군이 한쪽으로 몰림에 따라 3함대도 틈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마치 봇물 터지듯 왜선들이 무리를 지어 그 틈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물론 이는 태건이 어느 정도 의도한 바였다. 북쪽으로 몰린 왜선이 빠지게 하여 조선 수군의 희생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북청함과 안원함, 훈융함은 3함대의 우익인 북쪽으로 나아가 왜선을 맹렬히 공격해 다시 포위망을 좁히려 했다.
“이, 이런… 훈융함에 신호해! 너무 왜선 무리에 가까이 붙지 말라고!”
고경봉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훈융함이 그만 돌풍을 받아 선회하지 못하고 계획한 것보다 더 북쪽으로 홀로 나아간 것이다. 원래 계획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무리를 지어 포위망을 빠져나오고 있는 왜 선단의 측면을, 나란히 움직이며 공략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 척의 배는 북쪽으로 향하다 동쪽으로 선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선회하는 각이 더 컸던 훈융함은 결국 왜선 무리에 휩싸이게 되었다.
발해 함대가 출범한 이래, 이처럼 소속 함선이 위험에 처한 적은 없었다. 대선도 아닌 중선 한 척만이 적진에 고립된, 일대 위기 상황이었다.
“안 되겠다. 빨리 구하러 가자!”
“예, 사령관님!”
북청함과 안원함은 훈융함을 구출하고자 바깥쪽 왜선부터 맹렬하게 공격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이, 이런…….”
왜군이 쏜 여러 발의 불화살에 적중되어 돛에 불이 붙은 훈융함의 모습을 보자, 고경봉은 크게 탄식했다.
훈융함의 승조원들은 급히 돛을 내리고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한 바람으로 인해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퍼퍼펑! 퍼퍼펑!
다행히 왜선들은 전투보다 탈출에 집중하고 있어, 대부분 훈융함을 그냥 놓아둔 채 오로지 앞만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불이 붙은 와중에도 훈융함은 급히 뱃머리를 돌려 북청함을 향해 다가왔다. 돛 대부분을 잃어 주로 관성에 의지해 움직이다 보니, 속도가 너무나 느려 고경봉의 속을 바짝 태웠다. 훈융함의 불길은 더욱 거세져 돛은 물론 돛대에도 불이 붙었다. 그러나 화재에 대비해 물을 잔뜩 먹여 놓은 갑판만큼은 아직 온전한 상태였다.
북청함과 안원함은 훈융함을 호위해 황급히 전장에서 몸을 뺐다. 그 덕분에 왜 선단은 더 이상 방해받지 않고 포위망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훈융함의 화재가 겨우 진압되자, 북청함과 안원함은 다시 전장으로 접근했다.
“오! 경흥함과 부령함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함결 함장이 소리쳤다. 날이 꽤 어두워졌으나, 불에 붙은 왜선이 많아 이들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뒤따르던 조명연합 수군이 가거도와 대죽도 사이의 해협 가까이 접근함에 따라, 후미에 처진 모든 왜 선단이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에 경흥함과 부령함이 남하해 포위망을 다시 봉합하려는 것이다.
두 함선을 보자 겨우 숨을 돌린 북청함은 이제 2함대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려 했다.
“억! 저, 저게 무슨 일이죠?”
함결 함장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놀랍게도 경흥함 우현 쪽에 조선 수군 대장선이 바짝 붙어 있었는데, 경흥함이 갑자기 대장선을 향해 함포를 발사한 것이다.
“이, 어떻게 이런 일이…….”
고경봉도 깜짝 놀랐다.
“태왕께서 왜?”
“글쎄요. 이게 무슨 변고인지.”
결국 조선 수군 대장선은 선체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불까지 붙더니, 끝내 가라앉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