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종전 (1)
이키섬의 북부 해안에 자리한 가츠모토성.
이 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조선 침략을 위해 지어진 성으로, 규슈의 나고야와 대마도 사이에서 중간 기항지 역할을 하던 곳이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포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엔 수많은 왜선이 떠 있는데, 도무지 성한 배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몰골이 형편없었다. 이곳까지 항해해 온 것조차 용하다 느껴질 정도로, 다들 크고 작은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지난 율포 해전은 그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총사령관인 그조차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그가 탄 아타케부네도 포탄을 몇 발 얻어맞고야 말았다. 그런데도 주변에 포진한 다른 배들이 대신 희생해 준 덕분에 무사히 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율포 해전에서 무사히 몸을 뺀 왜선들은 대마국부 주변 해안에서 짧은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이곳 이키섬으로 넘어왔다. 발해 함대의 추격이 두려워 최소한의 휴식 시간을 가져야 했다. 다행히 발해 함선들 역시 보급품이 고갈되어 초량진 해군기지로 귀환하는 바람에 이들은 무사히 이키섬까지 도주해 올 수 있었다.
문이 열리더니 그의 가신 이나바가 방으로 들어왔다.
“어, 어떤가?”
이곳 가츠모토 성은 중간 집결지였다. 그래서 귀환에 성공한 배들은 모두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어 누가 살고 죽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나바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정보를 취합해서 오는 길이었다.
“겨우 이백여 척만 생환한 것 같습니다.”
“이백여 척이라…….”
너무나 적은 수였지만 히데아키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전멸을 면한 것만 해도 다행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가토 기요마사와 도도 다카도라, 시마즈 요시히로, 다치바나 무네시게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전사한 것 같습니다.”
“가, 가토 우군장까지? 그럼 고니시 유키나와 좌군장은 생환했나?”
“그렇습니다. 방금 만나고 왔습니다만, 그 역시 크게 다쳐서…….”
“휴! 끔찍하군.”
히데아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난 전투에서 너무나 많은 배를 잃었다. 병력 또한 대략 사만가량 잃었다. 배마다 왜병을 가득 채워 태웠기에 이런 어마어마하게 많은 숫자가 나온 것이다. 이들 대부분 물귀신이 되었고, 일부만이 잡혀 포로가 되었다.
“이제 후환이 걱정되는군.”
“그러게요. 조선의 판옥선이야 먼바다까지 나오지 않아 다행이나, 후발해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 해역을 지킬 배와 병력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
“후후… 그렇겠지. 다들 자기 살 궁리하기에도 바쁠 테니.”
이미 전쟁이 끝난 이상, 이제 다이묘들이 예전처럼 똘똘 뭉쳐 위기에 대응할 리가 없었다.
“휴! 정말 할 말이 없군요.”
이나바의 앞날을 점치는 말을 듣자, 암울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어디야. 그 지옥에서 말일세.”
“예, 저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 전투만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이나바가 대답과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또다시 두려움이 엄습해 온 것이다.
* * *
대마도 초량진에 자리한 해군 병영.
황진이 병영 문을 열고 들어오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 둘이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황 병사 영감.”
“영감은 무슨… 지금은 발해로 망명해 식객 노릇이나 하고 있거늘.”
황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눈앞에 있는 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다들 건강해 보이는군.”
“허허! 뭘 한 게 있다고요. 그저 물에 빠졌다 나왔을 뿐인데요.”
너털웃음을 웃는 중년의 사내는 송희립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측근 중의 측근으로 마지막 해전, 율포 해전 때에도 대장선에 승선해 있었다. 그는 황진에 비해 세 살 정도 적은 데다, 조선에 있을 당시 황진의 마지막 직위가 자신보다 훨씬 높아 황진을 상관처럼 대했다.
“자네는 어떤가?”
황진은 고개를 돌려 젊은 청년에게 물었다.
“예, 저도 좋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완으로, 이순신 장군의 조카였다.
“어휴! 어찌나 일이 바쁜지 이제야 찾아왔네그려.”
“무슨 일로 그리…….”
“포로 때문이야. 바다에서 건진 포로가 얼마나 많은지 잘 알지 않나? 배가 가라앉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많은 포로를 태우고 귀환했으니.”
이번에 발해 함대가 잡은 왜군 포로는 무려 사천여 명에 달했다. 해병대 병력을 태울 공간을 왜군 포로로 가득 채워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모두 구해 오지 못한 상황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물에 빠져 죽었거나 조명연합 수군의 포로가 되었을 터였다.
물론 헤엄쳐 거제도로 들어간 왜병도 꽤 많았다. 초기에 배가 반파되자 전투를 포기하고 율포 해변에 내린 왜병 무리도 있었다. 그로 인해 조선군은 이들을 토벌해야 하는 과제를 추가로 떠안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 측 피해도 조금 있었거든. 배 한 척이 크게 파손되었고, 사상자도 나왔지. 발해 해군이 출범한 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더군.”
“그 짧은 기간 동안 수군을 이렇게 훌륭하게 육성하다니. 정말 태왕의 능력이 대단하군요.”
송희립은 진심으로 탄복했다. 그 역시 경흥급 대선을 타고 대마도로 왔기에 발해 함대의 위용을 몸소 체감한 상태였다.
“통제사 영감은 어떻게 지내시나?”
황진은 슬쩍 본론으로 들어갔다.
“바닷가 언덕에 올라 바람을 쐬고 계실 겁니다.”
“여전히 우리 발해 사람과 만나지 않을 생각이신가?”
“그렇습니다. 누구와도 만나지 않겠답니다.”
“태왕 기하도?”
“그렇습니다.”
“허허! 통제사 영감답군. 절대 타협하지 않는 태도가 말일세.”
황진은 율포 해전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그는 김솔과 함께 이순신 장군을 설득하러 장대에 올랐다. 그러자 이순신 장군은 황진을 힐끔 보더니 배를 돌리라고 명령했다. 다시 조명연합 수군에 합류하려 한 것이다.
황진은 이순신 장군에게 말했다.
‘통제사 영감. 이제 이 전투를 발해 수군에 맡기시지요. 발해 수군이 얼마나 많은 왜선을 격멸했는지 아시지 않소?’
‘아직 전투가 멀었소. 통제사로서 어찌 전투 중에 몸을 뺀단 말이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안 될 일. 난 결코 조선에 등 돌릴 수 없소.’
‘영감. 돌아가면 죽습니다.’
‘돌아가지 않고 죽으면 되지 않소?’
황진의 간절한 설득에도 이순신은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미 살기를 포기한 상황이었다. 가족과 부하들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국왕의 질투도 문제였지만, 이미 발해와 합동작전을 펼친 상황이라, 역모죄의 올가미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전투 중에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황진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결국 황진은 설득하길 포기하고, 송희립과 이완, 김솔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이들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은 훗날 죄를 청하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윽고 어리둥절해 있는 이순신 장군에게 달려들어 끌어안더니 같이 바다로 뛰어내렸다.
이게 신호탄이 되어 대장선에 탄 모든 이들이 배를 버렸다. 대장선에 바짝 붙어 있던 경흥함과 부령함은 재빨리 줄사다리를 내려 이들을 구했다. 이순신 장군도 이때만큼은 순순히 배에 올랐다.
대장선 수군 장졸들을 모두 구하자, 경흥함은 대장선을 함포로 쏘아 침몰시켰다. 아울러 부유물 위로 대장선 깃발까지 얹어 놓아, 나중에 이를 발견한 이들이 대장선이 왜선에 당했다고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대는 어떤가?”
황진이 이완에게 물었다.
“숙부님을 살릴 수 있다면 뭐든 못하겠습니까?”
“병사들은?”
“모두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귀환하면 일개 병졸조차 벌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 말했더니, 왜 그런지 잘 이해하더이다. 통제사 영감이 그간 얼마나 큰 고초를 겪었는지 다 알고 있지요. 더구나 발해 수군과 연합작전까지 펼친지라, 다들 후환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번엔 송희립이 대답했다.
“대장선 장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숙부님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순순히 발해 함선으로 올라탄 겁니다. 대장선에 탄 장졸만이라도 챙기고자… 저를 포함해서요.”
이완이 덧붙여 말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속내를 이미 확연히 읽고 있었다. 사실 그에게 이순신은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친부를 일찍 여의고 숙부 슬하에서 자란 탓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숙부님은 어떤 경우가 되어도 발해 분들과 접촉하지 않으려 하십니다. 만약 첩자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장군의 가족은 물론, 휘하 장졸들의 가족이 큰 고초를 겪게 될 테니까요.”
“그거야 내가 더 잘 알지. 더구나 통제사 영감이 건사해야 할 식구가 얼마나 많은데.”
황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오랫동안 수군의 최고 지휘관으로 살아온 이순신 장군은 잃을 게 너무나 많은 인물이었다. 친족은 물론이거니와 휘하 장졸과 그 식솔들의 삶까지 책임져야 했다. 더구나 눈에 불을 켜고 트집을 잡아 처벌하려는 군주가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예. 저도 진주성의 일을 들었습니다. 그 얘길 듣고 수군 장수들 또한 다들 분개했지요.”
송희립과 김완도 그간 황진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럼 통제사 영감은 어떻게 지내길 원하시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자네는?”
황진이 송희립에게 물었다.
“저야 통제사 영감과 함께 있어야지요.”
“허허! 충심이 대단하군.”
“황 장군께서 권해 주시지요.”
“이곳 대마도에서 지내도 좋네. 왜란이 끝났으니 우리 발해는 이곳을 모두 정벌하고 영토로 삼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꾸준히 발해에서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올 거네. 물론 나라에 신물이 난 조선 백성들도 배를 타고 여기로 망명할 수도 있겠지.”
“과연 그렇겠군요.”
“울릉도도 괜찮네. 거기에 살던 왜인들을 모두 내보냈으니까. 아니면 북방으로 가도 괜찮고. 어떤 선택을 하던 조선 첩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해 주겠네. 물론 나라에서 생활도 보장해 줄 테고.”
“그런 특혜를 주면 통제사 영감이 거부할 텐데요.”
송희립이 조심스럽게 황진에게 물었다.
“특혜 아니네. 모든 이주민이 발해로 들어오면, 가족들 모두가 먹고살기 충분할 만큼 토지를 받으니까. 발해야 넘쳐나는 게 땅이지.”
“아,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암 그렇지. 또 대장선에 탔던 장졸 중에 출사하길 원하는 자가 있다면 발해 수군에 자리를 마련해 주겠네.”
“음, 고맙습니다. 많이 배려해 주셔서.”
붙어먹고 살 땅과 일자리를 주는 게 특혜가 아니라, 모든 이주민에게 주는 혜택이라 하니 이들은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이려 했다.
“우리 태왕 기하의 명이었네. 사실 태왕께서 그런 얘기도 하셨지. 직접 대마도로 친정 나온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통제사 영감을 구하기 위함이었다고.”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헉!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이완과 송희립이 깜짝 놀라 동시에 되물었다.
“조선 국왕이 재차 통제사직을 제수했단 얘길 듣자마자 통제사 영감의 운명을 예감하셨지. 그래서 직접 가서 구해야 한다고 했네. 물론 왜란이 길어질수록 백성들의 고통이 자심해질 테니, 하루라도 빨리 왜란을 끝내고자 하신 점도 있고.”
“음, 참으로 놀라운 일이군요. 앞날을 훤히 내다보며 모사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심려가 깊은 분 같습니다.”
“그렇지. 아무튼 난 충분히 전달했으니, 통제사와 잘 상의해서 결정하게.”
“예, 영감.”
황진은 다시 미소를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