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영토 확장 전략 (3)
고려해운 소속 상선이 초량항에 입항하자, 항구 전체가 들썩거렸다.
늘 그렇듯, 휴가를 다녀온 육군과 해군, 해병대 장졸들과 새로 배치된 신병들이 먼저 배에서 내렸다. 그 뒤를 이어 서둘러 하선한 상인들은 황급히 화물을 하역하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조심하시오! 깨지기 쉬운 물건이니까.”
상인 하나가 기중기를 움직이는 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하역 작업이 한창일 때, 고려해운 사장 김예신과 고려상단 사장 김덕신이 뒤늦게 하역 현장에 들러 작업 장면을 지켜보았다.
“형님, 여긴 그새 발해 땅이 다 됐네요.”
초량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김예신이 사촌 형 김덕신에게 초량진에 대한 첫인상을 밝혔다.
“그러게. 아주 익숙하지? 집과 사람에, 게다가 저 장롱처럼 생긴 병영 건물까지 말이야. 꼭 슬해항을 보는 것 같단 말이지.”
두 사람은 이미 항구 주변을 둘러보고 오는 길이었다. 이들이 직접 이곳에 온 건 포르투갈 상인과 만나 거래를 트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대마도 상황도 살펴볼 겸, 직접 화물과 함께 온 것이다.
초량진에서 관리로, 혹은 부두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은 피로인들이었다. 이들이 바로 대마도의 첫 발해인 주민이었다. 그래서 복장이나, 거주지의 건축양식이 조선풍일 수밖에 없어 초량진 풍경이 발해와 다름이 없게 된 것이다. 다만 동북쪽 해안가에 지어지고 있는 서양식 건물만이 이국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역이 끝나자마자 화물은 고려상단의 초량진 지점으로 옮겨졌고, 상인들은 부지런히 포장을 뜯은 다음 이를 진열하거나 창고에 쌓기 시작했다.
“허허! 바쁘시군요.”
“아, 도독님 오셨습니까? 으헥! 저, 저 사람들은?”
하선하자마자 잠깐 인사를 나눈 강승덕이 웃으며 지점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포르투갈 상인 세 사람이 꾸부정한 자세로 지점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오오! 이 사람들이 그 포르투갈…….”
김덕신의 입에서 포르투갈이란 말이 나오자 서양인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맞소. 당장 고려상단 상품을 보고 싶다고 하도 채근해서 내 데려왔지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쪽으로…….”
김덕신이 강승덕과 서양 상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진열된 상품들을 본 포르투갈 상인들의 눈에 탐욕의 기색이 깃들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달려간 쪽은 도자기 진열장이었다.
“오오! 도자기 아니오?”
조선의 백자였다. 순수한 유백색 백자 이외에, 귀하다는 청화백자 제품도 있었다. 청화백자가 귀한 취급을 받는 건 안료 때문이다. 청화백자의 무늬를 그리는 데 들어가는, 독특한 푸른색 안료를 토청이라 하는데, 바로 코발트였다.
조선 도공들은 토청을 구하기 어려워 수입에 많이 의존해야 했다. 물론 전라도 순천에서 토청이 나왔다는 기록도 있으나, 중국에서 수입하려 애썼다는 기록이 더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생산량이 많지 않았거나 품위가 낮은 재료였을 가능성이 컸다.
발해가 건국한 이후 발해의 도공들은 토청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발해 동해부 회령현에서 토청 광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도자기의 본체를 만드는 태토의 재료인 양질의 고령토가 동해부 경성현의 생기령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었다. 즉 고품질의 청화백자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이 훌륭하게 갖춰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곳에 왜군에 잡혔다 풀려난, 호남과 영남 출신 도공들이 정착하자 도자기의 품질은 더욱 좋아졌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감탄사를 터트리며 도자기 감상에 여념이 없었다. 명나라의 청화백자가 인기 상품으로 떠오른 만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는, 조선 혹은 발해풍의 청화백자에도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다.
이들의 관심을 끈 제품은 또 있었다. 바로 면직물이었다.
“오! 이건 면직 원단이네요. 세상에 어찌 이렇게 촘촘할까?”
포르투갈 상인들은 기계로 짠 면직물의 품질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 이들은 인도산 면직물을 주로 취급해 왔기에, 일단 가격부터 물었다.
“이, 이건 도대체 얼마에 파는 겁니까?”
김덕신은 통역을 통해 가격 질문을 받고 잠시 망설이다, 그냥 북방에서 건주부 상인에게 파는 가격을 불렀다. 물론 은화로 환산된 가격이었다. 그러자 포르투갈 상인은 깜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 그렇게 저렴하다고요?”
사람이 일일이 짠 옷감과 기계가 대량 생산한 상품의 가격은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김덕신이 당황한 태도를 보이자, 도독 강승덕이 도와주었다.
“허허! 가격은 달라질 겁니다. 경매 형태로 진행할 거라. 그리고 경매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저들 이외에 다른 상인들이 더 들어오면 경쟁이 붙어 곧 가격이 오르겠지요.”
“아, 알겠습니다.”
김덕신과 김예신은 생전 처음 본 서양인의 모습을 보고 여전히 얼떨떨했지만, 고려상단의 상품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경계심이 이내 풀어졌다.
“저들이 말로만 듣던 색목인이로군요.”
“허허! 그렇소. 그런데 색목인 나라도 여럿 있다고 들었소. 오래전부터 중국에 들어온 색목인과 저들은 좀 다르지요. 더 먼 포르투갈이란 나라에서 왔으니까.”
“음, 그 얘긴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하께서 어떤 상품을 들고 가면 좋은지, 조언하며 저들에 대해 알려 주셨지요.”
“정말 기하 말씀대로 다 마음에 들어 하네요.”
김예신도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지켜보다 한마디 했다.
태건은 도자기와 면직물 이외에, 홍삼, 한지, 모직물과 다른 전통 공예품 등을 들고 가라고 조언했다.
“응? 저, 저들은 누구입니까?”
포르투갈 상인 하나가 구석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원에 관심을 보였다.
현재 초량항엔 화원이 상주하며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포르투갈 상선은 물론,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포르투갈식 건물, 변해 가는 항구 풍경 등을 그림에 담고 있었다. 이들이 그린 그림은 서울로 보내져 활판에 새겨진 다음 관보에 실리기도 하고, 책에 삽화로 실리기도 했다. 사진기가 없는 시대인지라, 이들이 바로 사진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화원 중 몇몇은 이키섬으로 건너가 이키섬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아, 저분들은 발해 조정에서 보낸 관원들이오.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지요.”
강승덕의 답변에 자신들끼리 즉석에서 토론을 벌였다.
“궁정화가와 같은 사람들인가?”
“그런가 보네.”
“오, 그런데 그림이 매우 독특하지 않은가? 명이나 일본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이야.”
“특이하긴 하네. 근데 우리 모습이 그려져 있군.”
“그럼 그림도 구해 갈까?”
“서책도 있는지 물어보세. 보니까 발해국은 한자가 아닌 다른 문자를 쓰고 있는 모양이던데. 그걸 갖고 가면 학자나 신부들이 좋아하지 않겠나?”
“그렇겠지.”
이들은 즉석에서 새로운 상품을 구입 목록에 추가했다.
이들 포르투갈 상인 덕분에 조선이나 발해의 화풍을 비롯해 한글이 서양 사회에 일찌감치 알려지게 된다.
* * *
건주부의 수도 퍼알라.
누르하치는 발해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자, 몹시 고무되어 제장 회의를 소집했다. 발해의 외부대신 이당이 만든 협상안이 발해 내각회의를 통과했고, 그게 사자를 통해 건주부로 전해진 것이다.
외부에 나가 있다 들어와 처음으로 발해의 제안을 들은 동생 슈르하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후발해가 웬일로 동맹을 제안했지요? 절대 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더니.”
“그게 맞아. 동맹 제안은 아니네. 울라 정벌 건에 한하여 일단 힘을 합치자는군. 한시적 연합인 셈이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후후! 동맹 관계를 맺는 게 어디 쉽겠나? 솔직히 우리도 후발해를 마냥 우리 편으로 보고 있진 않으니까. 하지만 저들도 울라를 그냥 두고 보기 어려웠던 모양이야. 얘길 들어 보니 동해부의 후르카와 도골을 비롯한 북부 워지, 그리고 사할리얀계 부족 여럿이 발해에 투항했다더라.”
누르하치도 북방 여진 부족의 상당수가 발해로 귀부한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사할리얀 계열 부족은 아직 발해로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서부 흑룡강 유역에 거주하는 이들이라, 발해는 아직 사할리얀에 관심이 없었다.
“어휴! 아깝네요. 후르카도 우리가 차지해야 하는데.”
“후후! 후르카에 욕심내다가 후발해에 미움을 산 것이네. 울라가 말이야.”
“그래서 저들이 발끈해 나선 거군요. 이웃한 후르카를 집어삼키면 후발해가 피곤해지니까.”
“맞아. 실제로 남후르카 자코타 암반이 후발해에 구원을 요청했다는군. 그 이후 다른 후르카 암반도 도움을 호소했고. 그래서 결국 후발해가 나서게 된 거지.”
“진정 기회입니다. 반드시 이 기회를 잡아 울라를 복속시켜야 합니다. 이 호기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겁니다.”
옆에 있던 구왈갸 피옹돈도 발해의 제안에 응하라며 간절한 표정으로 호소했다.
“그건 그렇지.”
“혹시 연합에 따른 조건 같은 건 붙지 않았습니까?”
슈르하치가 다시 물었다.
“당연히 있지. 숭가리강을 경계로 그 동쪽을 후발해에 넘기라더군.”
“음. 울라 땅의 절반을 떼어 가겠다는 말이네요?”
“맞아, 그 대신 우리한테 유리한 조건 하나가 더 붙었지. 울라 사람을 모두 데려가라는.”
“오! 그거야말로 바라던 바 아닙니까? 땅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늘릴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니까요. 그까짓 숭가리 동쪽 땅 줘 버리죠, 뭐.”
누르하치는 늘 인구가 부족한 게 한이었다. 그래서 타 부족을 정복하거나, 귀부하면 부족민 전체를 자신의 본거지로 강제 이주시키곤 했다. 이런 강제 이주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누르하치는 나라의 명운이라도 걸린 일인 양, 반드시 실행해 나갔다. 물론 그 정책에 반발해 빠져나가는 원주민도 있으나, 누르하치는 꿋꿋하게 이 정책을 밀고 나갔다.
그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 청이 명을 정벌해 중원으로 들어가자, 만주 땅이 텅텅 비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울라국 사람들을 모두 데려가란 발해의 제안이 너무나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동쪽에서 울라 호톤을 향해 진군한다고 했으니 우린 호이파 호톤에서 북쪽으로 치고 가면 될 것 같은데?”
울라 호톤(성)은 미래의 길림시 용담구에 있고, 건주부가 호이파를 복속시키고 차지한 호이파성은 미래의 매하구시와 화전시 중간 지점에 자리해 있었다.
“그런데 후발해가 이런 제안을 한 다른 이유도 있지 않을까요?”
장자 츄잉이 물었다.
“정확히 짚었다. 내가 보기에 명 때문인 것 같다. 후르카 어쩌고 하는 건 핑계에 불과하고.”
“흠, 역시. 후발해도 이번 전쟁이 끝나자 불안감을 느끼나 보네요.”
“당연한 일이지. 조선과 명이 한통속인 데다, 후발해는 칭제 건원을 했으니 명의 응징을 두려워할 수밖에.”
사실 건주부도 이번 전쟁이 종전되자 다소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울라를 치는 걸 한참 뒤로 미룬 상태였다. 그런데 발해가 연합을 제안하고 나서자 모험해 보는 쪽으로 여론이 급격히 기울게 된 것이다. 그만큼 울라를 쉽게 흡수할 수 있는 기회만큼 건주부에게 더 강력한 유혹은 없었다.
“어쨌든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다. 명이 뭐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눈 딱 감고 울라를 쳐야 합니다.”
구왈갸 피옹돈이 다시 나섰다.
“그래야지! 그럼, 언제쯤 가능할 것 같다고 회신해야 할까?”
“딱 한 달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 안에 정벌군을 반드시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어이두 바투루가 큰소리치며 나섰다.
“좋아, 그럼 바로 사자를 후발해로 보내기로 하지.”
“예, 알겠습니다.”
누르하치는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