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북해도 진출 (1)
사령관실을 나와 북청함 선수루에 오른 고경봉은 바다를 보며 한껏 숨을 들이켰다. 신선한 바닷바람이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이제 완연한 봄, 항해하기에 너무나 좋은 날씨다. 제2함대는 현재 정리부 아란포에 자리한 함대 사령부를 출발, 북해도로 향하고 있었다.
그간 대마도에서 활약했던 2함대는 지난해 가을, 태건과 함께 본토로 귀환했다. 그 이후 미래의 연해주 동부 해안 지방 개발 일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현재 아란포(나홋카)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계속 인구가 유입되는 중이고 개발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어, 곧 진주(아르튬)와 청량진(블라디보스토크), 하마진(라즈돌노예) 등을 제치고 정리부를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컸다. 또한 그 동쪽과 동북쪽에 자리한 개포와 무수막, 비파진, 양지진 등 해군 임시 기항지에도 꽤 큰 개척촌이 생겨났다.
특히 양지진 서북쪽, 양지강(루드나야강) 중류 유역에 자리한, 아연과 주석, 납 광상이 있는 장수 ― 미래 러시아의 달네고르스크 ― 광산의 개발이 시작되어 물자와 사람이 계속 오가고 있었다. 오지인데도 장수광산의 개발을 서두른 이유는 당연히 지금까지 찾아낸, 발해 유일의 주석 광산이기 때문이었다.
이들 지역에 정착한 이들은 대개 경상도와 강원도 어촌 출신 주민들로 어로와 농사를 같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하다 보니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물론 이들에겐 특혜에 가까울 정도로 꽤 넓은 토지가 배당되었다. 아직 육로가 없고, 오로지 바다로만 외부 세계와 통할 수 있기에, 이들은 정착 초기에 큰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곳에 비해 더 넓은 땅을 제공한 것이었다.
이처럼 점차 연해주 해안 지방에 정착민이 생겨나자 태건은 정리부 북쪽과 연해대간 이동 지역, 즉 솔빈부와 동평부 동쪽 땅에 새로 ‘연해부’를 설치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도 적고 아직 현조차 제대로 설립되지 않았으나, 이들 해안 지역 주민의 삶을 뒷받침하는 행정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파진에 연해부청을 두고, 그곳을 중심으로 무수막과 비파진, 양지진을 관리하는 한편, 더 많은 개척촌을 조성하는 업무를 맡겼다.
그러던 중, 고경봉은 태건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들어가 이번 임무를 하달받게 되었다. 아울러 제3함대처럼 경흥급 대선 두 척과 아오지급 중선 한 척을 받아 2함대를 2개 전대 체제로 편성했다.
편성이 끝나자, 2함대는 태건의 명령을 이행하고자, 새로 창설된 해병대 제3연대 병력을 벽해도에서 태우고 북해도로 향하고 있었다.
“사령관님! 전방에 육지가 보입니다.”
견시수의 외침을 듣자, 고경봉은 천리경을 들어 동쪽을 살폈다.
“오! 드디어 도착했군.”
2함대는 아란포항에 잠시 들른 다음, 동남쪽에서 아란만을 감싸고 있는 반도 지형인 동란곶을 감돌아 나오자마자 계속 정동 방향으로 항해했다. 도착하면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천천히 나아가며 북해도 남부의 해안지형을 살필 목적이었다.
“저 동남쪽에 있는 섬 이름이 뭐더라?”
고경봉의 질문에, 이번에 제21전대장으로 임명된 함결 전대장이 대답했다.
“단마도일 겁니다. 예전에 3함대가 발견해 해도에 그렇게 표기해 놨더군요.”
“아, 맞다. 섬 모양이 단마를 닮아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했지?”
“예, 지도를 보니 바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마도는 미래의 오쿠섬으로 북해도 서남부 해상에 있는 제법 큰 섬이었다.
이제 해안선이 매우 가까워지자 함결은 변침을 명했다.
“45도로 변침하라!”
함결은 북해도 서부 해안과 평행하게 움직이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가자 드디어 전방에 거대한 반도 지형이 나타났다.
“저게 바로 하늬곶이지?”
고경봉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저 해안선을 타고 넘어가면 곧 목적지가 나옵니다.”
하늬곶은 미래의 샤코탄반도이고, 제2함대의 목적지는 반도 뿌리 부분에 있는 반디(오타루항)라는 곳이었다.
* * *
태건의 뜬금없는 호출에, 남둘루 부족의 암반이었던 캉구리와 칵두리는 노역장에서 빠져나와 관리자들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탓에 이들은 다른 암반과 달리 포로로서 지금까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말을 타고 바깥바람을 쐬니 기분이 아주 좋군.”
“그러게요. 근데 왜 기하께서 우릴 부른 걸까요?”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강제 노역에 복무했음에도, 발해에 대해 그다지 불만이 없었다. 노역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는 암반 출신인 이들을 배려해 중간 관리자로 복무하게 조치해 줬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과 같은 추장급뿐만 아니라 일반 남둘루 출신 포로의 대우도 꽤 좋은 편이었다.
오히려 위생을 중시하는, 극성맞은 관리자들 탓에 포로가 되기 전보다 더 자주 강제로 목욕해야 했는데, 이제 그게 습관이 되어 일정 기간 씻지 않으면 스스로 못 견딜 정도가 되었다. 공짜로 제공되는 의복과 음식도 훌륭했다.
게다가 매월 1원씩 월급이 지급됨은 물론, 가족 면회도 자주 허용되었다. 심지어 형기가 만료되면 발해인으로 동화되어 살 수 있도록 한글과 고려어 학습도 시켜 줬다. 그 덕분에 캉구리와 칵두리도 이제 고려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본관 성씨를 ‘솔빈 나목씨’로 정하고, ‘나목구리’와 ‘나목두리’라는 발해식 이름도 얻었다.
“낸들 알겠나? 헉! 언제 저렇게…….”
캉구리는 저령 고갯마루에 오르자마자 눈에 한가득 들어온 서울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캉구리 암반. 여기가 어딘지 아시오?”
동행한 관리는 여전히 입에 붙은, 그의 원이름을 불러 주었다.
“서울이군요.”
“허허! 그렇소. 가끔 이 고개에 오를 때마다 우리도 무척 놀란다오.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정말 볼 때마다 달라지는 것 같소.”
건국 이후, 꾸준히 개발되고 있는 서울은 이제 수도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여전히 훈춘강 이남, 즉 강남 지역은 빈 땅이 많았으나, 강북 지역은 벌써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이들은 다시 말을 달려 건흥궁 앞에 이르렀다.
“오! 툴런 암반 아니오?”
“허허! 반갑소. 그간 잘 지내셨소?”
수이푼 부족의 툴런 암반은 이들과 달리 노역에서 제외되어 솔빈부 하마현 하마탄사 사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뭐, 그럭저럭요.”
“어? 형님. 저 사람은 여오더허이 암반 아닙니까?”
“음, 그렇군. 야란 사람도 온 모양이다.”
여오더허이는 야란의 암반으로, 그 역시 포로 신분으로 노역하고 있었다.
이윽고, 이들은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고 건흥궁 홍익전으로 안내되었다.
홍익전에 들어서자마자 태건을 향해 배운 바대로 예를 표했다.
“태왕 기하를 뵙습니다.”
태건은 미소를 지으며 이들을 맞이했다.
“다들 건강은 어떻소?”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캉구리가 다른 이들을 대신해 대답했다.
“나목구리 암반의 노역형이 아직 일 년 남았나?”
태건이 태왕부 비서관 우정언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기하.”
“흠, 거의 끝나가는군.”
끝나간다는 말에 캉구리와 칵두리, 그리고 여오더허이는 서러운 감정이 올라와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리 대우가 좋다고 해도 포로는 포로였다.
마지막으로 포로가 된 이들의 형기가 일 년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로, 현재 발해 내 여진족 포로의 수는 급감한 상태였다. 대부분 형기를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래서 그 노동력 공백을 현재 왜군 포로들이 메워 주고 있었다. 대마도와 일기도(이키섬)에서 노역하는 이들을 제외한 왜군 포로들은 배에 태워져 발해 본토로 건너와 있었다.
“내 그대들에게 제안할 것이 있소.”
이런저런 안부를 묻던 태건은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제안을 거절해도 괜찮소. 강제하는 게 아니니까 돌아가서 부족 구성원들과 잘 협의해 보고 결정하시오.”
무엇인지 몰라도 강제하지 않겠다고 하니, 암반들의 굳은 표정이 이내 풀어졌다.
“북해도라고 아시오?”
“부, 북해도요?”
북해도란 명칭을 붙인 이가 태건이니 이들이 알 리가 없었다.
“그럼 사하란섬은?”
역시 금시초문이라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사하랸 우라라고 해야 하나?”
드디어 아는 이름이 나오자 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예, 압니다. 북방에 있는 큰 강이 아닙니까?”
캉구리가 의구심이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강 하구에 큰 섬이 있다는 건 아는지?”
“예, 들어봤습니다. 꽤 큰 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하란섬이오. 사하란섬의 남쪽 바다를 건너면 또 다른 큰 섬이 나오는데, 그곳의 남쪽을 왜인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하오. 어딘지 알겠소?”
“아, 그 얘기도 들어보았습니다.”
“그 섬이 바로 북해도요.”
“음, 그렇군요.”
태건은 우정언에게 손짓해 걸개 지도를 가져오게 했다. 우정언은 지도를 펼친 다음, 차근차근 태건을 대신해 설명해주었다.
“음, 섬이 아니라 육지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렇게 큰 섬이라면.”
근본이 해양 민족인 야란족의 여오더허이가 바로 북해도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맞아요. 그래서 난 우리 본토에 이어 북해도를 두 번째로 중요한 영토로 보고 있소. 물론 지금은 우리 것이 아니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캉구리가 물었다.
“평야가 넓고 땅이 비옥하기 때문이오. 기후도 북방에 치우친 곳치고 온난한 편이지. 게다가 목축하기에 좋은 땅이 많지. 방목도 가능하고.”
태건은 특별히 여진족 암반들을 위해 유목과 목축을 강조해서 얘기해 주었다. 캉구리는 태건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태건이 먼저 물었다.
“본토에도 빈 땅이 많은데 굳이 바다를 건너가 땅을 개척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오?”
“솔직히 그렇습니다.”
“뭐, 미래를 위한 일이라 칩시다. 물론 유황의 수급이 급한 면도 있고.”
“아, 유황이요?”
캉구리는 태건이 왜 서둘러 북해도로 진출하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뭐, 겸사겸사.”
사실 유황의 수급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그럼 저희가 거기로…….”
칵두리는 이미 태건의 의도를 알아챘다.
“그렇소. 만약 그곳으로 이주를 원한다면 남은 노역을 면제함은 물론, 부족 단위로 땅과 자치권을 주겠소. 물론 풀려난 장정들은 가족 단위로 같이 가게 될 테고.”
“음, 자치권이라니…….”
캉구리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그에겐 여전히 암반의 지위를 되찾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었다.
“물론 발해 법은 물론, 북해도를 다스릴 행정기관의 명을 따라야 하는 전제가 있소. 그러므로 현재 본토의 동해인 현령보다 조금 더 강한 권한을 갖게 될 것이오.”
“호, 혹시 그러면 우리가 자체 병력을 육성해 원주민과 싸워야 합니까?”
“우린 정복자가 아니오. 원주민과 왜 싸우려고 하나? 서로 협력해서 잘 살아야지.”
“음.”
캉구리는 당시 조선인과 남둘루가 왜 싸우게 됐는지 되짚어 보았다. 생각해 보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먼저 싸움을 걸고 약탈한 쪽은 남둘루였다.
“우리 군이 같이 갈 거요. 그러니 분쟁이 생기더라도 군이 해결할 거고, 군이 여러분의 안전을 지켜 줄 겁니다.”
우정언이 부연해서 설명해 주었다.
“오! 그렇다면 더욱 좋군요.”
“북해도는 땅이 넓은데도, 원주민의 수는 극히 적어요. 그러니 그들이 사는 곳을 피해 정착하면 그만이고, 행여 그들이 사는 땅이 꼭 필요하다면 제값을 주고 사야지.”
“음, 그렇군요. 저, 그런데 식량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충분한 생활 기반을 획득할 때까지, 우리 해군이 정기적으로 오가며 식량과 여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해 줄 겁니다.”
우정언이 다시 친절히 조건에 대해 덧붙여 알려주었다.
“어떻소?”
태건이 암반들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아직 형기가 남은 캉구리와 칵두리, 여오더허이는 벌써 반쯤은 넘어온 상태였다. 반면에 이미 잘 적응해 살아가고 있는 툴런은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럼 돌아가 같이 노역하는 장정들은 물론, 부족민들과 만나 얘길 나눠 보고 결정하시오.”
“음, 알겠습니다. 기하.”
암반들은 복잡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태건에게 예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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