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9
19화. 경흥도호부 (3)
‘그러고 보니 관련 인물들이 모두 실존해 있군.’
태건의 뇌리에 수많은 이들의 현재와 미래 행적이 떠올랐다. 지금은 나라를 구할 이도, 나라의 운명을 말아먹을 이들도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시기였다.
현재 전라좌수사로 제수되어, 왜란에 대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 그랬다. 아울러 그에게 녹둔도 사건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씌운 당시의 북병사 이일은 서인 세력의 천거를 받아 남쪽으로 내려갔다. 원균 또한 이웃한 종성부사 직위에 있는데, 곧 남쪽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 역시 서인이 강력하게 밀고 있는 장수였다.
“어디가 가장 취약하다고 생각합니까?”
“무이보도 좀 신경 쓰이지만 역시 녹둔도 아니겠소? 다른 곳이야 성채가 튼튼하고 병력도 나름 촘촘히 배치된 편이라 적도들이 감히 범하기 어려우나, 녹둔도는 턱없이 허술하니까. 나와 조산보 만호가 병력을 보충하고 방어 시설도 손봐야 한다고 수차례 북병사 영감에게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소.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칠 모양이외다.”
전임 부사는 넋두리하듯 그간 쌓인 불만을 토로했다.
“병력 수는 모두 얼마나 됩니까?”
“남쪽에서 오는 부방 병력이 오락가락해서 항상 일정하진 않소. 대략 천 명 정도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알다시피 여긴 난이 벌어지면 주민들까지 동원되는 곳이라, 그 경우라면 수가 대폭 늘어나게 되오.”
태건은 자신의 지식과 어느 정도 일치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경흥부의 인구는 일만 명에서 일만 오천 사이를 오르내렸다. 또 전임자의 말대로 인구수의 변동이 큰 편이었다. 삶의 토대가 척박하여 이곳을 벗어나려는 백성이 많았다. 또 조정은 반대로 이곳에 인구를 채워 넣으려 애쓰다 보니, 시대별로 변동 폭이 컸다. 병력 수도 인구 추이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 대에는 고작 500여 명에 불과했지만 2천여 명을 훌쩍 넘을 때도 있었다.
* * *
태건을 비롯한 새로 부임한 변장들은 임지로 가서 자리를 잡기에 앞서 경흥의 주요 군사기지를 함께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 때문에 전임 무관들은 아직 한양으로 떠나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이보의 보루가 튼튼하나, 보시다시피 강변에 바짝 붙어 있어 늘 야인들의 표적이 되어 왔습니다. 그 때문에 가장 신경 써서 방어에 임하고 있는 곳입니다.”
최철주는 정중하면서도 상세하게 설명해 나갔다. 그의 직위는 정6품 여과로, 현지인이 맡게 되어 있는 토관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자였다. 경흥부의 토관은 모두 스물여섯 명인데, 문관 열 명과 무관 열여섯 명으로 구성되었다. 최철주의 직위가 높은 만큼 나이도 꽤 많다 보니 태건은 그의 능력이나 인물됨과 관계없이 그를 일단 중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역시 신임 도호부사에게 잘 보이려 나름 애쓰고 있었다.
“저 대안 지방이 바로 그 유명한 알동이란 곳이고 저 산줄기 너머 북쪽에 팔지란 곳이 있습니다.”
대안은 바다나 강의 반대편 기슭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무이보와 알동이란 곳이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알동과 팔지라······.”
이곳 무이보 동북쪽에, 산지로 둘러싸인 너른 부채꼴 모양의 평야 지대가 있는데, 그곳에 여덟 개의 호수가 연달아 펼쳐져 있다고 하여 조선 측은 팔지라 호칭했다. 아울러 그 남쪽에 알동이란 마을이 있는데,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와 관련 있는 유적지라 남쪽에서 온 시인 묵객들이 이곳 무이보에서 알동을 보며 시를 짓곤 했다.
“그럼 저기에서 거주하는 야인들도 번호인가요?”
“번호라··· 글쎄요.”
여과 최철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솔직하게 말했다.
“원래 번호였는데, 지금은 벗어났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번호란 두만강 국경 안쪽으로 들어와 살거나 바깥쪽에 바짝 붙어사는 여진족들로 조선에 적지 않게 동화된 이들을 말함이다. 조선은 이들을 국경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취급했다. 그래서 번호를 성 주위에 살도록 허락하는가 하면, 다른 호전적인 여진족들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그 대신 이들을 통해 외부 여진족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심지어 침략 조짐을 사전에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하여 번호를 처벌하는 일도 있었다.
번호라 해도 부족 별로 성격이 많이 달라, 국경의 방비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외부의 여진족 무리와 합세해 변경을 침략, 약탈하는 무리도 있었다. 이하륜과 다른 무관들은 그의 말뜻을 이내 이해했다.
무이보 일정이 마무리되자 태건 일행은 무이보 주변에 있는 한 번호 마을로 들어갔다.
“조선인이나 번호나 다를 바가 없군요.”
“저들도 근본이 농민이라 그렇게 보일 겁니다. 또 상인들도 번호 마을로 들어와 저들의 특산품인 인삼과 짐승 가죽을 사 가고 있지요. 그 상행이 호인들은 물론 조선인들의 생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여진족의 특산품은 만주 인삼이었다. 품질은 당연히 조선의 것이 좋았지만, 여진족 인삼의 유통이 더 활발하게 일어났다. 조선의 인삼 무역은 관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호랑이와 표범, 담비 등의 모피들은 매우 귀해,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상품이었다.
번호 마을을 빠져나오자 태건은 생각난 게 있어 정강빈에게 물었다.
“정 만호, 토지 문제는 잘 해결됐나?”
“그렇습니다.”
정식 거처가 마련될 때까지 태건이 데려온 이들은 일단 성내 민가와 관청에서 더부살이를 하기로 했다.
정강빈은 태건의 지시에 따라 태건 식솔들의 거주지와 작업장 부지 등을 이미 물색해 놓았다. 경흥 읍성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기존 주민들 거주지를 피하다 보니, 천덕산 남쪽 기슭으로 부지를 정하게 되었다. 태건은 그곳에 휘하 노비들의 거처와 함께 흙벽돌 공장과 숯가마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송화상단의 김명신도 읍성 내에 상단 지부를 개설하려 바삐 움직이고 있고, 이번에 데려온 공방 장인들도 태건 식솔들의 거처로 정해진 천덕산 부근에 일단 자리를 잡기로 했다.
그래서 태건은 일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인부를 고용, 읍성과 천덕산 산자락에 들어설 새로운 마을을 연결할 도로부터 건설할 생각이었다.
“최 여과님.”
“예. 부사 나리.”
“이제 곧 농사철이라 사람이 얼마나 많이 모일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매월 쌀 두 말을 일한 대가로 지급할 테니, 일꾼 좀 모아 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시킬 겁니까?”
월급으로 쌀 두 말은 적지도 많지도 않은 양이었다. 조선의 머슴이 받는 1년 치 새경, 즉 연봉이 쌀 세 가마(15말)였으므로, 머슴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 수준이었다.
“도로를 정비하고, 내 식솔들 거처를 짓는 일들이오. 또 일부는 공방에서 일하게 될 테지. 공적인 부역 성격도 있지만 아무래도 사사로운 일도 걸려 있다 보니······.”
“그래서 사비로 지출할 생각입니까?”
“마땅히 그래야지요. 직접 와서 보니 경흥부 재정이 형편없던데.”
“에휴! 송구스럽습니다.”
여과 최철주는 태건이 재물을 탐하거나 백성을 수탈하는 관리가 아니라는 점에 다소 안도했다. 최철주 자신은 물론 부중의 모든 주민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식솔을 데려왔기에, 경흥부 재정이 얼마 못 가 파탄나리라 걱정했지만 이 신임 부사는 공사 구분이 명확한 이였다.
“번호도 상관없어요.”
“예, 그리 처분합지요.”
“그럼 조산보로 가볼까요?”
태건의 다음 일정은 조산보였다. 모두 무관들로 구성된 일행은 일제히 말에 올랐다.
* * *
여진족은 크게 건주여진과 해서여진, 야인여진, 이렇게 세 분파로 나뉘어 있다. 또 이들 분파는 여러 부족 혹은 작은 씨족 단위로 구성된다. 현재 압록강 이북에 자리 잡은 건주여진만이 누르하치에 의해 하나로 통일된 상태였다.
해서여진 부족들은 건주여진의 북쪽, 즉 송화강과 흑룡강 중류 지방에 자리해 있고, 하다와 예허, 울라, 호이파 등 네 개의 부족 국가로 나뉘어 있다.
마지막으로 야인여진은 동해여진이라고도 하는데, 두만강 유역, 연해주, 송화강과 흑룡강 하류에 두루 분포되어 있었다. 건주와 해서에 비해 문명화가 덜 되어 있고, 분파도 많다 보니, 셋 중 세력이 가장 약한 편이었다.
야인여진을 이루는 세 부족은 와르카(울량합)와 워지(울적합), 후르카인데, 두만강 부근의 조선 국경 근처에 거주하는 이들은 워지와 와르카 계열이고, 번호 역시 이들과 같은 일족이었다. 이들 중 농경을 주업으로 삼는 와르카인들은 조선과 가까운 국경 부근에 주로 거주하고, 수렵과 목축에 능한 워지인들도 두만강 하류 지역까지 내려와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와르카와 워지인들의 세력권이 자연스레 겹치게 되었다. 후르카는 이들보다 훨씬 더 북쪽에 자리 잡고 있어, 조선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야인들은 주로 와르카와 워지 사람들일 수밖에 없었다.
“강 건너편이 바로 시전 부락입니다. 예전에 번호 노릇도 했지만 벌써 여러 번 배신한 자들입니다. 녹둔도 둔전도 저들에 의해 수차례 약탈당했고요.”
태건 일행은 조산보에 올라 최철주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조산보에 주둔 중인 병사들은 주로 수군이고, 그 수는 대략 150여 명 정도였다. 야인들 중에 해적질을 업으로 삼는 이들도 간혹 있어 두만강 하구에 이처럼 수군 주둔지를 조성한 것이다. 하지만 선박의 크기와 수, 병사들의 무장이 형편없어, 조산보 만호로 부임하게 된 이하륜은 크게 실망했다.
조산보 남쪽에는 서수라보가 있는데, 이곳엔 소수의 장교와 병졸만이 주둔 중이었다. 서수라보는 동해를 향해 뻗어 나온 반도 지형 끄트머리에 자리해 있는데, 외적의 침입을 막는 용도보다 경계를 위해 설치한 시설이었다.
태건의 시선이 동남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녹둔도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녹둔도를 한참동안 살피다 다시 시전부락이 있는 강 건너편 지역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최철주가 입을 열었다.
“전에 보셨던 팔지와 저 시전 부락을 볼 때마다 농민들은 군침을 흘리게 마련입니다. 두만강 유역 중, 조선 경내보다 건너편 땅이 더 기름지고 넓기 때문이죠.”
“그렇군요. 그럼 녹둔도로 건너가 볼까요?”
“예. 그럼 내려가 배에 오르시지요.”
태건은 녹둔도로 들어가 섬 내부를 둘러보았다. 지금은 두만강 하구를 막고 있는 섬이지만, 앞으로 계속 토사가 쌓여 연해주 땅과 붙게 될 섬이었다. 야인들의 침입이 잦아 중앙에 책루가 세워져 있고, 농민들은 벌써 들어와 농사일에 여념이 없었다. 이처럼 농민들은 동절기에 나갔다가 농사철에 들어오는 식으로, 이주와 거주를 반복해 왔다. 물론 근본이 둔전이라 병사들 또한 같이 농사를 짓게 되어 있었다.
책루에 오르자 시전 부락이 더 가까이 보였다.
“앞으로 병력 수를 대폭 늘릴 생각인데, 최 여과 생각은 어떠신지.”
“이곳으로 부임하는 부사분들은 누구나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아무래도 군역 인원과 재정에 한계가 있다 보니 이내 포기하고 말지요.”
“필요하면 내 사재라도 투입할 생각인데······.”
태건은 자신의 사재라고 말했지만 일부에 해당될 뿐이고, 사실상 대부분은 김명신이 감당해 줄 예정이었다.
“예에? 군역에 사재까지 쓰신다고요? 엄청나게 큰 비용이 들 텐데, 왜 그렇게까지······.”
“내년에 반드시 왜란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마땅히 대비해야죠.”
“그런 얘길 저도 들어봤습니다만, 여긴 북쪽 끝인지라.”
“여기까지 올라올 겁니다. 아울러 왜란을 틈타 일부 번호나 저 북쪽 울적합들이 신나서 날뛰지 않겠습니까?”
“아···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부민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추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모아 봅시다. 번호도 상관없어요.”
“번호도? 흠, 그럼 얼마까지 생각하십니까?”
번호가 언급되자, 최철주는 병력 확보에 자신감이 생겼다.
“이천오백은 되어야지요.”
“헉! 그렇게나 많이······?”
최철주는 깜짝 놀라 입이 쩍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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