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스페인과 접촉하다 (2)
제3함대는 주인선과 함께 초량항에 입항했다.
남해부 도독 강승덕은 갑자기 왜선이 항구에 들어오자 다소 놀랐으나, 주인선을 임대한 자들이 스페인 사람이란 태미의 말에 듣고 이내 일의 내막을 이해했다. 그는 태건의 조언을 들은 바가 있어 필리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스페인령 필리핀의 대표 자격으로 온 이는 도독의 부관 가르시아였다. 또한 왜인 통역과 함께, 그가 빌린 주인선의 선주도 동행했다. 그는 미츠이 히사시란 자였는데, 예전에 전지로가 왜인 무사 사카타였던 시절에 만난, 포르투갈 신부와 상인을 태건에게 데려온 자였다. 그런데 결국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 그를 발해와 인연을 맺게 한 것이다. 미츠이는 왜 상단주 신분이었으나, 발해와 교류하고 싶은 간절한 염원에 주인선의 선장 자격으로 배에 탔는데, 결국 초량항에 들어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독부로 안내된 가르시아는 단도직입적으로 스페인이 원하는 바를 강승덕에게 밝혔다.
“스페인령 동인도 도독께선 귀국과 교역하길 원합니다. 이곳 초량항을 외국에 개방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인지요?”
“맞소. 여긴 개항지요. 아직 발해와 전쟁 중인 왜국을 제외한 나라의 상인들은 자유로이 이 항구로 들어와 발해와 교역할 수 있소.”
“오오! 그럼 우리 스페인도 교역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소. 언제든 오시오. 주인선을 빌려 타고 오셨던데, 그 또한 상관없소. 어쨌든 교역의 주체는 귀국이니.”
강승덕 도독의 태도는 한없이 관대했으나 왜만큼은 차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막상 눈앞에서 그런 일을 당하자 미츠이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결국 그는 양국 관계가 정상화될 때까지 스페인의 상행위를 도우며 곁에서 이득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미츠이가 불편한 표정을 짓자 강승덕의 관심이 그에게 옮겨 갔다.
“그대는 누구요?”
순간 미츠이는 이를 기회라 여겼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나가사키와 하카다에 거점을 두고 있는 미츠이 상단의 상단주 미츠이 히사시입니다. 귀국 발해와 교역하고 싶어 찾아왔는데, 아직 때가 아닌 것 같군요.”
“음, 왜인 상단주라… 뭐, 그렇소. 아직 때가 아니지. 그보다 먼저 물을 게 있는데, 혹시 미츠이 상단은 이번 전란에서 어떤 일을 담당했소?”
강승덕은 유도신문을 하듯, 참전했을 거란 전제하에 물었다. 화들짝 놀란 미츠이는 재빨리 대답했다.
“우, 우린 이번 전쟁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미츠이 상단은 그간 나가사키와 루손, 마카오 등을 오가며 무역에 주로 종사했을 뿐입니다.”
“루손이라면 여송국?”
강승덕은 마닐라가 자리한 루손섬을 한자어로 ‘여송’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 예. 그렇습니다.”
강승덕은 미츠이 상단에 대한 호기심이 해소되자 다시 가르시아에게 물었다.
“그럼 스페인 측은 무엇을 가져와 교역할 생각이오?”
“글쎄요. 아직 귀국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흠. 잠깐만 기다리시오.”
강승덕은 책상 서랍을 열어 문서 하나를 꺼내 한번 훑어보더니 가르시아에게 물었다.
“음, 뭐냐 아바, 아바카? 그런 게 있소?”
“오오!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아바카는 소위 ‘마닐라삼’이란 식물로 옷감과 밧줄의 재료로 쓰였다. 대항해 시대에 필수품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바카는 필리핀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태건은 그간 밧줄 재료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발해도 삼이 나오기 때문에 그걸 활용했는데 그 양이 적은 데다, 품질이 마닐라삼만큼 좋지는 못했다. 그래서 남만 무역 길이 열리면 마닐라삼을 수입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스페인 상인이 찾아오면 수입할 상품 목록에 아바카를 포함시켜 강승덕에게 건네준 것이다.
“우리 태왕께서 알려주셨소.”
“오, 놀랍군요. 아바카의 존재를 아시다니.”
말은 놀랍다고 하지만 그만큼 마닐라삼이 유명했기에 가르시아는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음, 그리고 밀랍도 많이 나온다던데.”
“하하! 맞습니다. 밀랍도 우리의 주요 수출품이지요. 또 있습니까?”
가르시아는 강승덕이 필리핀의 주요 거래 품목을 콕 짚어 말하자 크게 고무되었다.
“수입 대상 목록에 소목과 물소 뿔도 있군.”
“허허! 물론 당연히 있지요.”
밀랍은 양초의 원료였고, 소목은 붉은색 염료이자 천연 항생제 및 항응고제로 쓰이는 약재이기도 했다. 물소 뿔은 각궁의 주재료인데 그간 발해는 물소 뿔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측에도 각궁을 가져오라 이미 부탁해 둔 상황이었다.
“그럼 스페인 측은 어떤 발해 상품을 원하오?”
“도자기와 면직물 얘길 들은 바는 있으나, 직접 보고 판단하길 원합니다.”
“그러시다면 항구 앞 상가로 가 보시오. 그 거리에 발해 상단들이 입점해 있으니까.”
“아! 좋습니다. 당장 보고 싶군요.”
“그럼 같이 가실까요? 오늘 처음 왔으니 내가 직접 안내하겠소.”
가르시아는 도독이 직접 발해 상단을 소개한다고 하자 몹시 기뻐했다.
현재 초량항 서남쪽 거리엔 발해의 3대 상단, 즉 고려상단과 피오상단, 함강상단이 대마도 지사를 개설해 입주해 있었다. 이들 모두가 거선을 소유하고 있어 대외무역이 가능했다. 피오와 함강상단은 고려상단과 포르투갈 상인 간에 첫 거래가 일어난 직후 진출했는데, 도자기와 면직물 이외에 다른 상품들도 가져와 반응을 떠보고 있었다.
여진족과 관계가 좋은 피오상단은 모직물과 모피, 홍삼 등을 들고 왔고, 함경도의 전통 장인과 거래를 많이 하는 함강상단은 도자기와 각종 수공예품을, 그리고 고려상단은 기존에 취급했던 제품 이외에 비누와 같은 세제류와 유리 제품, 신식 종이 등의 공산품도 가져왔다.
가르시아와 미츠이는 상관 세 곳을 둘러보고 몹시 흥분했다.
“상상 이상이군. 상품이 참으로 다채롭고 품질도 다 좋아 보이지 않소?”
가르시아가 흥분된 어조로 미츠이에게 말했다.
“맞습니다. 특히 도자기 품질이 너무 좋습니다. 온 김에 아예 도자기를 많이 사서 갑시다. 셈은 저희가 따로 치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첫 방문이라 전통적인 제품에 집착했다.
동아시아에서 스페인이 중국에서 주로 수입했던 상품은 도자기와 차, 비단이었다. 그 외에 다른 사치품도 많이 거래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발해가 획기적인 제품을 세상에 줄줄이 내놓을 예정이라, 동아시아에 진출한 서양 상인들은 행복한 비명을 지르게 될 터였다.
* * *
태미가 이끄는 제31전대 함선들은 나가사키 해역을 벗어나 서쪽으로 향했다.
“참 아깝단 말이야.”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다. 태미의 혼잣말을 들은 이사로가 물었다.
“뭐가 아깝습니까?”
“나가사키.”
“하하하! 왜선 말이지요?”
“응. 지난번엔 그래도 앞바다에서 만나 몇 척 격멸했는데, 이젠 그것도 못 하게 되었으니.”
태미는 여전히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개항장이 있는 나가사키엔 큰 배들이 많았다. 며칠 전에 본 주인선도 몇 척 보였다. 그러나 주인선에 외국인 선원이 많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확인도 안 한 상태에서 건드릴 수는 없었다.
태미는 장산도(히라도섬) 해역의 경계를 32전대에 맡기고 오랜만에 남쪽으로 향했다. 나가사키를 비롯한 규슈 중부 해안 지방의 사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항해 때 나가사키 인근 해역을 지난 적이 있는데, 그때 남쪽의 시마즈 ― 사쓰마와 오스미, 휴가 지방의 일부를 점유한 가문으로 그 영토가 미래의 가고시마현에 해당 ― 영지로 향하던 왜선을 만나 공격한 적이 있었으나, 나가사키항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포구 부근까지 접근해 나가사키항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고 나온 것이다.
“그럼 이제 당분간 세토내해 진입 작전은 없는 겁니까?”
“그래야지. 태왕 기하의 명이 떨어졌으니.”
태미의 3함대는 예전에 규슈 남부 해안을 돌아 세토내해로 진입해 스오 지방 ― 미래의 야마구치현 호후시 ― 해변을 공격한 적이 있고 이를 태건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태건은 왜국의 내전이 임박했으니 당분간 세토내해로 진입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발해 함선의 출몰로 인해 왜국의 정세에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1전대 함선들은 몇 시간의 항해 끝에 드디어 작은 섬과 만나게 되었다. 화도 즉 카바섬이었다. 그러자 태미는 서남쪽으로 침로를 변경해 계속 나아가게 했다. 화도가 나타난 이후, 우현쪽 수평선엔 계속해서 섬 지형이 나타났다. 그렇게 한두 시간을 나아가자 드디어 육지가 모습을 감추고 서쪽에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휴! 다 왔군.”
“그럼 저 섬이 그 고토열도의 끝에 자리한 섬이네요?”
“맞아. 바로 후쿠에섬이지. 고토 영지의 거성이 있는 섬.”
태미의 이번 항해 목적 중의 하나는 바로 고토열도를 정찰하는 일이었다.
고토열도는 장산도와 마찬가지로 서남에서 동북 방향으로, 나란히 떠 있는 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섯 개의 큰 섬과 그 부속 섬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들 중 가장 큰 섬이 바로 후쿠에섬이므로 태미가 후쿠에섬부터 찾게 된 것이다.
태미는 후쿠에섬 해안으로 다가간 뒤, 해안선을 따라 계속 움직였다. 후쿠에섬의 서남부 해안엔 별다른 게 없었다. 조그만 어촌만 점점이 분포할 뿐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반도를 감돌아 나오자마자 태미가 찾는 목표물이 눈에 들어왔다.
“호호호! 찾았다. 왜성!”
“아, 저거로군요. 고토란 영주 놈이 산다는 데가.”
“맞아. 포로들 말 들어 보니, 성 이름이 에가와라고 하던데?”
이제 왜국에 대한 지리 지식은 대부분 포로를 통해 얻고 있었다. 포로의 출신지가 다양하다 보니 발해 측은 이들로부터 각 영주들의 됨됨이와 영주성의 위치, 영지의 지리에 대한 지식 등을 얻게 되었다.
태미는 고토열도의 다이묘인 고토 하루마사를 곱게 보지 않고 있었다. 지난 왜란 때 참전한 데다 피로인을 데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섬 주민의 정체성도 한몫했다.
장산도(히라도)처럼 고토열도 주민의 정체도 왜구에 가까웠다. 지리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고토열도가 규슈 서부에서 가장 외곽에 자리한 섬이다 보니, 중국으로 가는 무역선이나 외교사절이 탄 배는 고토열도를 기항지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국 동해안을 약탈해 온 왜구들도 득실거리게 되었다. 심지어 수십 년 전, ‘왕직’이란 중국 출신 왜구 두목이 이곳을 본거지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의 분탕질이 얼마나 심했는지, 명나라 조정의 큰 골칫거리였을 정도였다.
그런 왕직에게 땅을 내줬으니 고토 가문 자체의 정체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3함대가 후쿠에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포구 전체가 들썩거렸다. 고토 영지는 그간 발해 함대의 공격을 받은 적이 없어, 여전히 많은 배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태미가 즉시 공격 명령을 발하자, 발해 함대는 후쿠에항에 정박해 있는 함선부터 깨부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수십 척의 배를 파괴한 함대는 그 다음으로 에가와성을 노렸다. 고토 영지의 거성은 해변에 바짝 붙어 있어 공격하기에 무척 수월한 편이었다.
에가와성의 천수각이 무너져 내리자 태미는 공격을 중지시켰다.
“이제 장산도로 돌아가자!”
“예, 사령관님.”
“휴! 병력과 배만 충분하면 고토 영지도 단박에 점령할 텐데. 아깝군.”
태미는 아쉬움을 느꼈다. 태미가 보기에 고토열도는 너무나 매력적인 땅이었다. 고토열도의 본섬인 후쿠에섬은 매우 넓어, 거제도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다. 또한 백오십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열도 전체의 면적은 대마도와 비슷할 정도로 넓었다. 그러므로 고토열도를 취하면 또 하나의 대마도를 얻는 셈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사로가 웃으며 말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