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첫 충돌 (1)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일을 만드는 이나 직접 실행하는 자들이나 다들 몇 번씩 코피를 쏟을 정도로 바쁘고 고된 나날을 보냈다. 그새 뜨거운 여름도 훌쩍 지나갔고 가을 추수철이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다.
탕! 타탕! 타탕!
요란한 총소리가 노구진 골짜기를 뒤흔들었다.
이 소총 부대 훈련장이 자리한 곳은 노구산 기슭이고, 이 훈련장의 동쪽 맞은편 골짜기엔 비밀 공방촌이 한창 조성되고 있었다. 그래서 태건은 이 두 지역을 묶어 새로이 노구진이라 명명했다.
“표적 확인!”
권관 박민의 지시에 방금 사격을 마친 소총수들이 총을 자리에 내려놓고 표적을 향해 다가갔다.
박민의 품계는 정8품으로, 종9품이 맡게 마련인 권관 직에 비해 계급이 훨씬 높은 편이었다. 그는 태건의 조선통신사 동료로 처음 경흥에 도착했을 때 서수라보 권관을 맡았는데, 이번에 태건에게서 별동군 중대장이란 새로운 자체 보직을 받았다. 기존의 조선 군 체계에 없는 보직이었다.
“이크! 빗나갔다.”
“오호, 그래? 그럼 각오해야지?”
“에휴! 할 수 없지요. 또 땅바닥과 인사하게 생겼구만.”
화약을 아끼려다 보니 실제 사격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실사격에서 표적을 맞추지 못했을 경우 꽤 혹독한 벌이 뒤따랐지만, 병사들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그 어떤 힘든 훈련도 기꺼이 받을 정도로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했다.
“자, 다음 열 장전 준비! 늦게 장전하는 자, 셋은 역시 같은 벌에 처한다. 준비~ 장전!”
소총수들은 실사격 훈련보다 장전 훈련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화승총의 장전 절차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장전 시간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전력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어휴!”
어느 병사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장전이 시작되면 몸이 기억하는 빠른 손놀림과 함께 자동으로 입에서 한숨이 나오곤 했다.
“어허! 어디서 한숨이야? 살수들 훈련하는 거 봤지? 다들 복 받은 줄 알아!”
박민의 말에 병사들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살수는 크게 장창병과 등패병으로 나뉘는데, 매일 다치는 이가 나올 정도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특히 살수 병과에는 번호 출신 여진인들이 다수 차출되어 있었다. 물론 소총수 병과에도 일부 포함되었다.
이처럼 태건은 자신의 사비를 들여 벌이는 일엔 반드시 번호 출신 장정을 포함시켰다. 또 보직을 줄 때도 조선인과 번호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조선인 병사들도 이들의 출신을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이 동료로 대했다. 같이 고생하다 보니 어느새 전우애가 싹튼 것이다.
“자, 그럼 준비된 소총수부터 사격을 시작한다. 방포!”
탕! 타타탕!
이윽고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병사 하나가 총에 묻은 먼지를 쓱쓱 닦아 내며 말했다.
“이게 내 총이란 말이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게 어찌 자네 총인가? 나라 총이지. 나라가 빌려준 거지.”
“그게 그거 아닌가?”
“둘 다 틀렸네. 정확히 말하자면 부사 나리 총일세.”
“아! 생각해 보니 그렇군.”
병사들은 이번에 지급된 화승총을 제작하고 보급한 주체가 태건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간 개성 장인들은 총열을 비롯한 부품들을 나눠 제작해 왔는데, 태건이 부탁한 1차분 500정이 완성되자 일단 그 물량부터 먼저 보냈다. 아울러 그들 역시 조만간 살림을 정리하고 경흥으로 오기로 했다. 노구진 공방촌 조성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어, 그곳에 기거하며 후속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먼저 도착한 부품들은 선발대로 와 있던 장인들에 의해 조립되었다. 장인들은 조립 후, 특별히 안전을 위해 고안한 발포 실험 과정을 거친 다음 태건에게 모두 넘겼다. 그게 바로 사흘 전의 일이었다.
그전까지 소총수 보직을 받은 이들은 태건이 일본에서 구해온 세 정의 조총으로 훈련해 왔다. 아울러 기마병과 함께 담력을 키우는 훈련도 받았다. 화승총의 살상력이 유지되는 거리가 대략 50보(60m) 이내라, 기마병이 그 거리 안쪽까지 돌격해도 꿈쩍 않는 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 검술 훈련도 받아 왔다. 총을 쓸 수 없는 경우, 검으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근데 우리 부사 나리, 저러다 알거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우리 부사 나리? 허허허! 아주 부사를 연모하고 있구만. 그렇게 좋나?”
“예끼!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근데 우리 마누라는 정말 그런 것 같더라. 부사 나리만 보면 아주 얼굴이 다 익은 홍시마냥 빨개진다니까.”
“그건 우리 집도 마찬가지일세.”
경흥에서 태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일단 지방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는, 공정한 일처리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송사에 임하면 공정하게 판결했고, 행정 업무 또한 그랬다. 특히 조선의 만년 적폐라 할 수 있는 군역과 결부된 일은 칼같이 원칙을 지켜 더욱 인심을 샀다. 현재 조선의 군역과 관련된 군정은 그 문란함이 도를 지나친 상황이었다. 그에 따른 반사이익이 지방관과 향리, 양반에게 돌아갔다. 그 때문에 노비로 전락하는 양인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
태건은 심지어 사재를 털어 월급까지 주기 시작했다. 사재로 모집한 병력이야 그렇다 쳐도, 공식적인 복무 대상자인 정군에게도 적은 양이나마 쌀이나 면포로 월급을 지급했다. 남쪽에서 부방 온 이들도 같은 대우를 해 줬다. 그 때문에 병사들의 사기가 높은 것이다.
또한 경흥부 재정은 물론, 자비까지 투입해 각종 공사를 대거 벌임에 따라, 주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점차 두둑해진 점도 민심을 얻은 요인으로 꼽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화상단 소속 상인들까지 꾸준히 들어와 각종 생필품을 싼값에 공급해 주자, 주민들의 생활은 더욱 윤택해졌다.
하지만 태건을 아끼는 이들은 그의 이런 행동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그가 벌이는 여러 일들로 인해 태건이 너무 빨리 낙마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돈을 펑펑 쓰는 것도 문제지만, 북병사한테 보고하지 않고 일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 더 치명적이었다.
특히 소총수 양성이 그랬다. 극비 중의 극비 사안이다 보니, 병사들은 외부에 자신의 병과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특별 교육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태건은 조선의 계급 및 지휘 체계가 너무 복잡하다며, 자체 군 운영 체계까지 도입한 상황이었다.
“이제 추수철이니, 우리 훈련도 곧 끝나겠군.”
“그렇겠지. 추수기엔 쉬겠다고 약속했으니.”
“야인들만 조용히 넘어간다면야······.”
“예끼! 말이 씨가 되네.”
“히엑! 미, 미안. 에구, 요놈의 주둥이!”
말이 헛 나온 한 병사는 재빨리 입을 손으로 찰싹찰싹 때려 댔다.
* * *
이제 본격적인 추수철이 되자, 경흥 땅 전체가 정신없이 돌아갔다.
태건은 읍성 동남쪽에 자리한 능평이란 곳으로 나왔다. 그의 옆에는 오랜만에 경흥으로 돌아온 김명신을 비롯해 태미, 홍은과 공식적으로 태건의 경호대장이 된 전지로가 자리를 잡았다. 아울러 바쁜 와중에도 태건의 초대에 응한 수많은 농민이 나와 있었다.
“자, 이제 탈곡기를 준비하시오.”
한 장인이 크게 소리치자, 대기하고 있던 다른 장인 몇몇이 가을걷이를 마치고 말라 버린 논바닥에 멍석을 깔았다. 그와 동시에 두 명의 장인이 끙끙거리며 기계를 들어 멍석 한쪽에 갖다 놓았다.
경흥을 비롯한 육진 지방에 논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땅이 척박하고, 하절기가 짧다보니 밭작물 위주로 재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 능평은 자연의 혜택을 받은 곳인 셈이다.
태건은 부임 초기 농토를 둘러보다 적게나마 논이 존재하는 걸 보고 크게 기뻐했다. 자신의 지식이 사실로 판명 났기 때문이다. 경흥에서 벼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두만강 이북 지역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조선 후기 간도 이주민들이 논농사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조선 중기에도 그게 가능한지 다소 의심하던 참이었다. 태건의 계획에서 벼농사 가능 여부는 매우 중요했다.
장인들은 낟가리에서 볏단을 내린 다음, 벼 포기를 한 움큼씩 집어 들었다.
“자, 이제 탈곡을 시작합니다요. 잘 보시오.”
장인 하나가 먼저 탈곡기에 달라붙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탈곡기에서 웅웅 소리가 났고, 굽은 철사가 촘촘히 박힌 통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장인이 손에 든 벼 몇 포기를 그 위에 갖다 대자 낟알들이 순식간에 털려 나와 멍석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오! 저렇게 탈곡을 한다고?”
“와, 발로 밟기만 하면 되는 거네?”
깜짝 놀란 농민들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앞으로 몰려나왔다. 김명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내 이 기계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허허! 정말 놀랍군요. 이 신기한 기물을 이 만호님이 만드셨다고요?”
탈곡기는 이하륜의 작품이었다. 지난여름, 관리들이 추수철 일손 걱정을 하자, 이하륜이 설계도를 그려 장인에게 넘겼는데, 벌써 몇 대 제작되어 세상에 처음 선보이게 된 것이다.
“도대체··· 부사 나리의 의형제 분들··· 아니, 의남매라고 해야 하나? 매번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군요. 다들 천재인가 봅니다.”
태건과 이하륜 이외에 홍은도 김명신의 뇌리에 떠올랐다. 셋은 친남매나 다름이 없을 정도로 절친했다. 아울러 새로운 기물을 고안할 줄 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어떻습니까? 장사가 될까요?”
“누가 이런 기물을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뜯어 보고 다들 따라 만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만.”
그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장인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복제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니 복제품이 나오기 전까지 바짝 이익을 보셔야죠. 그딴 거 나와도 찾는 이가 더 많을 테니 한동안 괜찮을 거예요.”
홍은이 앳된 목소리로 대신 대답해 줬다.
덕산동 ― 천덕산 아래에 자리한 공방들과 태건 식솔들의 거주지에 붙은 이름 ― 에 자리를 잡은 홍은의 비누 공방도 경흥에서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비누 제조 비법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않아, 비누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송화상단 사람들은 이곳 경흥으로 와야 했다.
“아, 그럼 처음부터 이걸 널리 보급할 생각으로······.”
“뭐, 그런 면도 있고.”
이번엔 태건이 답했다.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느새 유리 제품도 만드셨고.”
결국 홍은은 유리의 개발에도 성공했다. 태건과 이하륜의 지식까지 더해지자 개발의 마지막 단계를 쉽게 넘어섰던 것. 유리 공방 역시 덕산동에 자리를 잡고 간단한 제품들부터 시범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경흥은 두만강 하구와 동해를 끼고 있어, 주된 원료인 모래는 물론 소다, 즉 탄산나트륨을 얻기에도 용이해 유리 생산에 매우 유리한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강변이나 바닷가에 지천으로 널린 게 모래였다. 또 탄산나트륨은 해초나 해안 식물을 말린 다음, 불로 태워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인 입장에서 보면 이 모두가 군침을 흘릴 만한 제품들이었다. 유리는 물론 지금 보고 있는 탈곡기도 그랬다.
“이거 진짜··· 제가 투자한 건지, 나리께서 제게 투자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전자가 맞아요. 송화상단은 그 투자에 대한 대가를 받기 시작한 거고.”
태건의 말은 사실이었다. 벌써 송화상단의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재물이 경흥에 투입된 상태였다. 하지만 경흥에서 상행위를 통해 얻은 이익도 적지 않았고, 홍은이 만들어 준 비누를 통해 계속 돈을 벌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쏟아져 나올 신제품들이 송화상단을 살찌울 예정인데, 벌써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고 많았어요.”
태건은 미소를 지으며 탈곡기를 만든 장인들의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그러자 장인들은 환하게 웃으며 답례했다.
“저희도 기쁘게 작업했사옵니다. 게다가 저 농민들을 보니 더욱 보람을 느낍니다.”
농민들은 어느새 발판식 탈곡기 주변에 모여 기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땡땡땡땡!
읍성 망루에서 요란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데도, 선명하게 들렸다. 아울러 뒷산 봉수대에서 연기도 피어올랐다. 또한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태건을 향해 달려오는 연락병의 모습도 보였다. 비상사태가 벌어진 게 분명했다. 태건은 바로 말에 올라 연락병을 향해 마주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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