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논공행상 (1)
고토열도 점령 소식이 전해지자, 발해 관료들은 또다시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그리하여 이들 백오십 개 가까이 되는 섬을 오도열도라 칭하고, 이들을 오도현으로 묶기로 했소. 오도현은 대마현, 일기현, 울릉현, 장산현에 이어 남해부의 다섯 번째 현이 되었소. 이는 태왕께서 뜻하신 바요.”
손중일 내부대신은 내각회의 때 태건의 전언을 이렇게 전달해 주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허균은 이하륜에게 쪼르르 다가오더니 그를 끌고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갔다. 해소하고픈 호기심이 너무나 많은 탓이었다.
“자넨 오도열도에 대해 얼마나 아나?”
“조금은 알지. 조선통신사 일원으로 오사카에서 꽤 오래 머물렀잖아? 그때 얼마나 지루했겠나? 그때 왜국에 대해 참 많이 공부했지.”
“허허! 알다마다.”
허균은 이하륜과 태건이 일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걸 통신사를 경험한 탓이라 여기고 있었다.
“오도열도 크기가 대마도와 비슷하다고 들었네만.”
“그러니 이번에 엄청나게 큰 땅을 또 얻은 셈이지.”
“거길 취해서 좋은 점이 뭔가?”
“아주 많네. 거긴 제주도보다 더 남쪽에 있지. 그러니 어떻겠어?”
이하륜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기후가 몹시 따뜻하겠지?”
“그럼 발해에서 키울 수 없는 작물이 나겠군.”
“아, 그럼 면화? 그렇군. 면화 재배지가 부쩍 늘어나겠군.”
면화를 재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허균은 몹시 감탄했다.
현재 산업적인 측면에서 발해의 최대 현안은 면직물이었다. 생활에 유용한, 또 신기한 물품들이 발해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으나,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히 의식주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 서양의 산업혁명기처럼 발해 역시 면직물 산업이 크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장용 증기기관은 물론, 방직기와 방적기, 재봉틀이 대거 생산 보급되었고, 그런 대형 공장을 소유한 제조 업체도 무려 여덟 개로 늘어났다. 경흥방적과 경흥방직 역시 예전에 민영화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원료가 되는 면화의 수급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여민부 함흥 이남 지역에서 면화가 재배되고, 건주부 상인을 통해 꽤 많은 물량을 수입하고 있으나 제조 업체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해부의 일기도에서 벌써 면화 농사가 시작되었고, 3대 상단이 조만간 장산도를 방문해, 현지 농민에게 혜택을 주며 면화 농사를 권고할 예정이란 말도 돌고 있었다.
“단마와 동백도 잘 자란다고 들었네. 살충제 원료로 쓸 제충국도 그렇고. 아, 그리고 거기 해산물이 꽤 맛있다는 말이 있더군.”
이하륜이 해산물 얘기까지 덧붙이자 허균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해산물이라면 아주 물릴 지경이네. 강릉 사람인 내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말 다하지 않았나?”
“하하! 생각해 보니 그렇네?”
발해는 이미 수산 대국이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땅이 너무나 많았다. 동해를 따라 곳곳에 어항이 자리했고, 조선업의 성장이 빠른 만큼 소형 어선도 많이 제작되어, 해산물이야말로 발해인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
“우리 태왕의 뚝심이 참 대단하지?”
이하륜이 익살맞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게. 난 처음 대마도를 취하는 거 정도는 충분히 이해했네. 하지만 그다음은 너무 과하다 생각했지. 이곳 북방에 현안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관리하기도 힘든, 저 먼 남쪽에 섬 영토를 자꾸 만드니 걱정되더라고. 뭐,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들 그렇게 수군거렸지.”
“그러니까 더 많은 땅을 얻어 자체적으로 먹고살게 해야지.”
“바로 그거야. 그게 바로 기하의 전략이었지. 이제 정말 그렇게 될 것 같군. 일할 사람만 더 늘어나면 식량도 거기서 충분히 생산해 자급자족하겠지. 자네 말대로 오히려 북쪽에서 나지 않는 농산물까지 얻게 되었으니 좀 좋은가?”
“농업뿐만이 아니야. 거기에도 탄전이 있고, 철장도 있겠지. 그러면 자체적으로 산업도 일으킬 수 있네. 더구나 남만과 교역로가 열리며 우리 발해의 고민이 모두 해소된 점은 잘 알고 있지? 우리 속을 썩였던 염초와 물소 뿔, 밧줄 재료를 모두 얻게 되었네. 아울러 우리 면직물과 도자기 등이 많이 팔리게 되면 그만큼 많은 은이 들어올 테고. 또 궁극적으로 우리가 왜국 영토를 취하며 그들의 국력을 삭감하게 되었지. 난 그게 가장 마음에 들어.”
“그렇군. 참으로 놀랍네그려.”
허균은 또 한 번 감탄사를 터트렸다.
똑똑!
“뉘시오?”
문 두드리는 소리에 허균이 물었다.
“나요.”
대답과 동시에 문을 열고 법부대신 조경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이어 익문사 독리 권형과 외부대신 이당이 줄줄이 들어왔다.
“엥? 또 회의?”
“아, 그게 아니라 긴히 얘기나 나눌까 하고.”
조경린이 권형에게 눈짓하자 그가 서류 하나를 이하륜에게 건넸다.
“응? 조선 조정의 논공행상 보고서?”
이하륜은 제목만 보고도 깜짝 놀랐다. 그는 이미 태건과 대화를 통해 조선의 논공행상이 앞으로 4년 뒤인 1604년에나 마무리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려 4년이나 앞서 실시된 것이다.
“예, 여러모로 심각한 내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내각회의 때 얘기하긴 좀 그렇고, 조선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얘기 좀 나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권형을 대신해 외부대신 이당이 대답했다. 조경린까지 끌고 온 이유는 사헌부 출신이라 이곳에 있는 이들에 비해 비교적 조선 조정 사정에 밝기 때문이다.
* * *
조선의 한성부.
이조정랑 이이첨(1560년생)이 정인홍이 묵고 있는 가옥을 찾았다. 정인홍(1535년생)은 형조참의란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병을 핑계로 아직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근래 들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수상하자, 서울로 올라와 친지의 집에 묵고 있었다.
이이첨과 정인홍은 소위 북인 당파의 영수 격인 이들로, 2년 전 왜와 종전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인 세력을 맹렬히 비판했다. 결국 남인 영수 류성룡을 탄핵하는 데 성공해 정치적인 입지를 키워 가고 있었다.
이이첨이 정인홍을 찾은 이유는 당연히 이번에 발표된 논공행상 관련 문제 때문이었다. 성격이 괄괄한 이이첨은 몹시 분노해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처사입니까? 전장에서 목숨을 바쳐 싸운 무장들과 의병장을 도외시하고 국왕을 호종했던 마부와 내시를 대거 공신의 반열에 올리다니요! 더구나 선생과 곽 장군도 공신에서 빠지지 않았습니까?”
정인홍은 곽재우, 최영경 등과 함께 남명 조식의 수제자로, 실천을 중시하는 조식의 제자답게 영남의 의병장으로 맹활약한 인물이었다. 이이첨은 세자 광해군의 측근으로, 온갖 험지를 같이 다닌 덕분에 광해군의 신뢰가 두터운 이였다.
“나도 들었네. 정말 전하가 너무했더군.”
자신만 연루되었다면 내가 한 일이 뭐가 있냐며, 정인홍은 분명 겸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논공행상 조치는 너무나 기괴했다. 호종공신 즉 임금의 피난길을 따라다닌 자들을 무려 여든두 명이나 공신으로 세웠으나, 전장에서 싸운 선무공신을 겨우 열여덟 명만 책봉했을 뿐이다. 호종공신 중에는 마부 여섯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장에서 맹활약한 웬만한 장수들보다 마부의 공이 더 크다는 의미였다.
논공행상이 무려 4년이나 앞당겨 발표되었지만, 실제 역사와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게 임금의 뜻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논공행상을 미룬 건,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논공행상은 조선 전체에 격랑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사관들도 격렬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호종공신이 여든 명이 넘는다니 과하다. 그중에 내시가 스물네 명이며 미천한 자들이 또 스무여 명이다. 얼마나 외람된 일인가? ― 선조실록 1604년 6월 25일.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절개를 세운 사람이 없지 않다. 정인홍, 김면, 곽재우는 영남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김천일, 고경명, 조헌은 충청과 호남에서 죽었다. 그들의 공적은 너무도 찬란하고 열렬하여 충의의 기개를 고취했다. 그러나……. (후략) ― 공신 교서를 발표 내용을 적은 사관의 논평.
정인홍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도망간 게 창피했던 게지. 그러니 도망 다니는 걸 도운 이들을 대거 공신으로 세운 거네. 도망을 정당화하려고.”
정인홍은 주어를 생략해 얘기했다. 국왕을 입에 올려 직설적으로 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입니까? 한마디로 왜란을 극복하게 해 준 건 명군이란 말 아닙니까? 우리 관군과 의병은 한 게 없고요.”
이이첨도 몹시 총명한 자였다. 그래서 이번 공신 교서에 숨어 있는 국왕의 속내를 정확히 읽어 낸 것이다.
“이게 말이 됩니까? 나라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쳤습니까?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신 이순신 통제사를 비롯해 수많은 의병과 승병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는데, 이게 다 명군 덕분이라니요!”
정인홍에 비해 스물다섯 살이나 젊은 이이첨은 정인홍과 달리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훗날의 이이첨은 여러 정치적 행보 문제로 그의 됨됨이에 대해 많은 지적이 잇따랐으나, 현재의 이이첨은 그럭저럭 곧은 인물로 유명했다. 정인홍 역시 이이첨과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사헌부 관헌 시절, 상대의 신분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불의한 경우라면 그 누구든 비판했고 탄핵했다. 그런 강직한 성품 때문에 정인홍을 싫어하는 이가 많았다.
“모두 맞는 말이네. 정상적인 나라라면 해선 안 될 일을 한 거지. 백성을 배반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달리 정인홍의 발언 수위가 무척 높다 보니, 이이첨의 흥분이 오히려 가라앉았다.
“배반이라… 그렇군요. 국왕이 백성을 배반한 거로군요.”
“더구나 때가 안 좋아.”
“때라니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이는 발해 말일세. 발해가 있지 않나? 반면교사로.”
정인홍은 북방 역도가 아닌 ‘발해’라 불러주었다. 이이첨 역시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맞습니다, 발해. 그들은 지금도 왜와 싸우고 있답니다. 피로인을 데려오려 백방으로 애쓰고 있고요.”
주전파인 북인들이 보기에, 발해는 조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더 아는 소식이 있나?”
발해 이야기가 본격화되자 정인홍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사실 그가 한성부로 들어온 이유 중의 하나가 발해 관련 소식을 듣기 위함이었다.
“발해가 대마도를 차지한 건 아시지요?”
“당연히 알지.”
“그 외에 일기도는 물론 송포 가문의 영지까지 정벌했답니다. 낭고야 왜성을 부숴 버리고, 박다도 공격했다고 합니다. 또한 북방에서 여진을 쳐서 넓은 영토를 차지했답니다.”
“사실인가?”
“예, 확실합니다. 발해로 보낸 첩자들이 거기서 발행한 신문이란 걸 가져오고 있으니까요.”
“신문?”
“관보와 비슷한 겁니다. 언문으로 발행되는데 관과 민간에서 여러 종 발행된다고 합니다. 백성들은 그걸 읽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알게 되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신문을 통해 백성이나 언관들이 발해 조정의 정책을 맹렬히 비판하기도 한답니다. 신문에 그런 내용이 참으로 많이 실려 있습니다.”
“그걸 어찌 아는가?”
“승정원에서 비밀리에 그 신문이란 걸 모으고 관리하는데, 그곳 관리를 통해 내용이 새 나오고 있지요.”
“놀랍군.”
정인홍은 공신 책봉 관련한 왕의 교서보다, 발해 정세와 신문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곧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일깨웠다. 근본이 유학자인 그였다. 그래서 많은 면에서 발해가 맘에 드나, 발해를 온전히 인정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충’을 어길 수는 없었다. 물론 그 충의 대상은 국왕이 아닌 조선이었다.
“발해 때문에 더욱 큰 격랑에 휩쓸리겠군. 너무 대조되니 말일세.”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이이첨의 근본 입장도 정인홍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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