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규슈의 세력 재편 (3)
사가 지방의 오기 벌판.
오기는 서부 산악 지대와 사가 평원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지역이다. 그러므로 오기 지역부터 규슈를 대표하는 곡창지대인 사가 평원이 시작되는 셈이다. 사가 평원은 한반도의 호남평야에 비할 정도로 넓은 벼농사 지대로, 현재 나베시마 가문과 구로다 가문이 나눠 차지하고 있었다.
전장을 둘러본 해병대 사령관 전지로 중장과 육군 제9사단장 박민 소장은 더 이상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오기 벌판에 펼쳐진 지옥도와 같은 풍경 때문이었다.
북부 영지의 명운을 건 대회전이 펼쳐졌기에, 전투 양상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그 결과 왜의 북부 영지 연합군 진영에서 무려 1만을 넘는 전사자와 2만여 명의 부상자 및 포로가 나왔고, 나머지는 무라나카성으로 황망히 후퇴한 상태였다.
“초반에 적 기병의 돌격은 조금 매서웠지요?”
박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때문에 우리 군에서 약간의 사상자가 나왔지요. 기병을 그렇게 쓰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했소.”
왜 연합군은 오기 벌판에 진을 친 채 발해군을 기다렸다. 발해군은 전과 마찬가지로 남로와 북로, 2개 경로로 진격했다. 북로를 담당한 육군은 다쿠란 곳으로, 남로를 담당한 해병대는 롯카쿠강 하구를 거쳐 왔다.
남북 양쪽에서 발해군이 등장하자마자 왜군 진영은 전과 다르게 기병부터 출진시켰다. 그래서 발해군이 기병에 대응하는 사이, 또다시 전군을 돌격시켰다. 지난 전투에서 화포에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어, 처음부터 신속하게 발해군과 붙어 접전을 펼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왜군의 변화된 전술을 발해군은 어렵지 않게 파훼했다. 기병으로 적 기병을 상대하게 했고, 빠르게 방열을 마친 화포들이 곧바로 사격을 개시한 것이다. 물론 왜군이 서두른 덕분에 전과 달리 곳곳에서 접전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발해군의 화초와 화승총, 편전의 위력이 여전해 난전 양상까지 진행되진 못했다.
심지어 보병 간, 단병접전도 간혹 펼쳐졌는데, 고된 훈련을 거친 발해 살수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아 전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진 못했다. 그들은 몸에 익은 방식으로 왜 무사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해 나갔다. 특히 당파수와 등패수, 장창수 등이 한 조를 이뤄 펼친 협공 전술은 제 키보다 긴 장도를 휘두르며 덤벼드는 왜 무사들에게 큰 효과를 발휘했다.
결국 전투가 지속될수록 사상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왜군 지휘부는 후퇴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퇴 과정에서 역시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전장 자체가 허허벌판이다 보니, 신무기인 박격포가 더욱 위력을 발휘했고, 기마대도 특유의 기동력을 살려 큰 활약을 할 수 있었다.
궁기병이나 다름없는 발해 기병들은 뛰어난 기사 실력을 발휘해 초반에 별다른 피해 없이 왜 기병을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그러나 왜 기병의 기습으로 발해군 진영에서 약간의 사상자가 나온 점은 옥에 티라고 할 만했다. 이에 크게 분노한 발해 기병은 왜군이 후퇴하자마자 무자비할 정도로 왜병을 도륙한 것이다. 더구나 발해군은 왜 기병보다 무려 3배나 많은 3,300여 기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육군 9사단 소속 기병은 1,300여 기에 불과했으나, 해병대 1사단은 2,000여 기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다시 포로와 적 부상자를 이만이나 얻었네요.”
박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태왕 기하의 허락을 얻어 부상자를 방면할까요? 허허! 그래도 포로가 만 명이나 남네?”
전지로도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몸이 성한 포로를 놓아줄 수는 없으니, 또 포로를 관리할 병력을 남겨 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그러고 보면 초기에 잡힌 포로들은 참 복 받은 셈이군.”
항왜 출신이 아닌,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태건을 따랐던 전지로는 같은 일본인으로서 지금 붙잡힌 포로들을 동정해 주고 있었다. 초창기, 함경도에서 붙잡힌 포로들은 대부분 항왜병으로서 군에 복무할 기회를 얻어 현재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으나, 저들은 북방으로 끌려가 탄광이나 채석장, 도로 공사와 같은 가장 위험하고 힘든 현장에서 노역할 운명이었다.
“앞으로 나베시마 측이 어떻게 나올까요?”
박민의 질문에 전지로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데라자와의 길을 걷지 않을까요?”
“도주한다는 거죠?”
“이미 확연한 전력의 차이를 인지한 이상, 싸울 의지를 잃었을 겁니다. 우리 화포의 위력을 봤으니 알량한 거성 믿고 버텨 볼 생각도 없을 테고.”
박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어휴! 그래야죠. 이런 전투를 또 한다면 우리도 질릴 것 같습니다.”
박진도 더 이상 이런 전투는 하기 싫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대회전이다 보니 참상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전장을 정리하는 발해 병사 중에, 끔찍한 적군 시신을 보고 구토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터지는 포탄, 즉 박격포탄과 화초 등이 사용됨에 따라 수반된 현상이었다.
“그나저나 이 지역 농민들은 어떻게 나올까요?”
“두려움에 잠식된 자들은 떠날 테지. 그러나 6할 이상은 남을 거요. 아니, 더 많이 남을 가능성도 있지.”
“왜 그렇습니까? 보통 외국군이 쳐들어오면 피난을 떠나지 않나요?”
“저 농민의 8할은 농사짓는 노비나 다름없어요. 어디 가든 저들 처지가 달라지겠소?”
전지로는 왜국의 속내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왜인 농민들은 왜 이렇게 바짝 마르고 왜소합니까?”
박민은 전투 과정에서, 혹은 이동 중에 접한 농민과 농민병을 보며 느낀 점을 물었다.
“사실 그 때문에 우리가 쉽게 이긴 겁니다. 적군 대부분이 졸지에 붙잡혀 나온 농민이었으니까.”
“음, 그러고 보니…….”
“이곳 다이묘들이 농민을 대하는 원칙은 딱 두 가지요. 재산이니 죽이지 말라. 그렇다고 살리지도 말라.”
“예? 살리지도 말라니요?”
“잘 살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딴생각을 품으니까요. 그러니 죽지 않을 정도만 남겨 두고 수확물 대부분을 세금으로 거둬 가는 거지요.”
이런 혹독한 착취로 인해, 에도 시대 중기 이후로 소위 ‘마비키’라는 잔혹한 풍습이 일본 전역을 휩쓸었다고 한다. 인두세를 감당할 방법도 없고, 육아에 신경 쓸 여력과 시간이 없다 보니, 부모가 영유야를 살해하는 풍습이 생겨났는데, 그게 바로 마비키였다. 그래서 매해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여아들이 주로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 발해가 이주민에게 주는 혜택을 저들에게도 똑같이 보장한다면 북방으로 이주할까요?”
“우리를 신뢰하게 되면 흔쾌히 응할 겁니다.”
“추운 지방으로 이주하는 데도요?”
“이곳에서 받는 고통 정도면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죠. 추위는 또 금방 적응할 테고. 그러나 지금은 우리 말을 믿지 않겠지요?”
“신뢰를 얻는 거야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긴…… 그간 우리가 행한 걸 보면 곧 그리 되겠어. 오도열도와 송원현은 아직 우리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확인할 수는 없으나, 장산도와 일기도, 대마도 사례를 보면 맞는 말이네요.”
발해가 점령한 지 시간이 다소 지난 이들 세 개 도의 현지 주민들은 발해를 어느 정도 신뢰하고, 발해 법도 순순히 잘 따르고 있었다. 그래서 일기도와 장산도에서, 벌써 북방 이주를 원하는 주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남성 인구가 태부족한 대마도는 북방 이주 대신 초량진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어쨌든 이주 정책에 도움 될 매우 유용한 정보네요.”
“허허! 태왕께선 이미 알고 계시오. 우리가 사가 지방을 모두 점령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이곳 주민을 대상으로 한, 북방 이주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실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역시 기하십니다, 하하!”
박민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 * *
고니시 유키나가는 나카가와 영지를 정복하고 귀환한 동생 유키카게와 가신들을 크게 칭찬했다.
“허허! 다들 수고 많았네. 첫 번째 원정을 성공리에 마쳤군.”
“그러나 아쉽게도 나카가와 히데시게를 놓쳤습니다.”
유키가게가 아쉬운 감정을 토로했다. 나카가와 영지의 주인은 중과부적임을 깨닫고, 전투가 벌어지자마자 가신과 가병을 이끌고 구로다 영지로 도주했다. 그 덕분에 구마국은 병력을 보존한 채, 나카가와를 취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구마국의 석고 수는 이제 육십만에 달하게 되었다.
“북쪽은 어떻게 되갑니까?”
유키가게는 북부 연합군과 발해 간에 벌어진 전투 결과에 관해 물었다.
“네가 귀환하기 바로 직전에 전령이 와서 알려 줬다. 발해가 또다시 대승했고, 나베시마는 영지를 버렸다고 하더군.”
“예? 나베시마가 영지를 버려요?”
깜짝 놀란 유키가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발해가 승전할 것은 예상했지만, 나베시마가 이렇게 빨리 영지를 포기하리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너무나 압도적으로 패배한 데다, 패잔병만으로 도저히 발해군을 막아 낼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게지. 그래서 가병 수천을 이끌고 고바야카와 영지로 도피했다더라.”
“그게 언제 일이죠?”
“사흘 전의 일이다.”
“근데 구로다한테 가지 않고요?”
“구로다 측보다 고바야카와가 더 급하니, 두 가문이 합의했겠지. 하지만 고바야카와라고 해서 과연 언제까지 무사할까?”
“그렇겠네요. 남은 군사도 별로 없을 테니까.”
“그래도 믿는 구석이 하나 있지. 이번 전투 이후 발해군은 나베시마 영지를 흡수하느라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거다. 그 사이 도쿠가와 가문에 구원병을 청하지 않을까?”
“아, 그런 수가 있군요.”
“그런데 구로다는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
이번엔 유키나가가 동생에게 물었다.
“글쎄요. 일단 버티지 않을까요?”
이들 고니시 형제가 화제로 삼고 있는 곳은 바로 구로다 가문이 점유하고 있는 사가 평원 땅이었다. 발해군이 무라나카성과 하스이케성을 점령하고 나면 곧바로 구로다 가문의 사가 평원 영지 ― 예전의 모리 히데카네의 영지 ― 를 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너라면?”
“저라면… 그 땅을 내놓고 동부로 물러날 겁니다. 사가 평원에서 버티며 발해군과 싸워 봤자 피해만 누적되어 본거지인 동부도 지키지 못하겠지요. 그럴 바엔 군을 물린 다음, 동부의 험한 산악 지형에 의지해 발해군을 막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음,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럼 우린 어떻게 할 겁니까? 구로다부터 치나요?”
유키나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거기보다 분고 남부를 치자. 일단 손쉬운 먹잇감부터 처리하자고.”
분고 남부 ― 미래 오이타현의 남부 ― 지방은 군소 영지와 도쿠가와 가문의 직영지 등, 고만고만한 영지들이 난립해 있는 곳이었다. 원래 그곳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는데, 나카가와 영지를 합병함으로 인해 길이 열려 사정권에 두게 된 것이다.
“하하! 좋습니다.”
“후후! 순식간에 규슈 정세가 반전되었어. 이제 우리 구마국에 유리한 국면이 펼쳐진 셈이지. 발해가 나베시마와 구로다라는 두 거인의 발목을 잡아 준 덕분에 말이야.”
고니시 유키나가는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