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청천강 이북을 얻다 (2)
태건이 편전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흥궁의 홍익전.
태건이 편전에 들자, 의정대신 이하륜과 탁지부대신 홍진, 그리고 공석이었던 태왕부대신 자리에 오른 소동구가 태건을 찾아왔다.
홍진은 태건이 요구한 과제에 대한 답을 들고 와 태건에게 바쳤다. 홍진 역시 태건의 처남이자, 국가 재정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있어 내각의 요인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었다.
“쌀과 닭고기, 소금, 훈제 육류, 비누를 물가의 기준 품목으로 삼았군.”
태건은 보고서를 보며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해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화폐가 빠르게 대규모로 풀려 나가자 시중 물가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고 있었다. 그 현상이 꽤 심각해 경제를 모르는 이들조차 이를 우려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태건은 물가 관련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발해 서민 물가의 지표가 될 만한 물품을 선정하라고 탁지부에 요구했는데, 그 답이 처음 나온 것이다.
탁지부가 선정한 물품은 대부분 식료품이었다. 발해 경제가 여전히 먹고사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보니, 그렇게 선택된 것이다.
이들 중, 쌀은 예전에 화폐로 기능했거니와, 처음 화폐 가치를 정할 때 기준이 되었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들어가야 할 품목이었다. 닭고기 또한 발해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육류였다. 살아 있는 상태로 운송할 수 있어,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또한 잡곡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생산되는 점도 닭고기 거래 증가 현상을 부추겼다. 남아도는 잡곡을 닭 사료로 활용, 대량으로 양계하는 농가들이 늘어난 데 따른 결과였다.
닭 농장은 북방의 동해인 거주지를 포함해, 대규모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구릉지대에 골고루 분포해 있었다. 이처럼 닭의 유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동해인과 산지에서 양계업에 종사하는 주민의 생활도 꽤 풍요로워졌다.
장기 보관이 가능한 훈제 육류 역시 동해인이 많이 거주하는 북부 지방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었다. 양과 돼지고기가 주로 유통되었는데, 소는 여전히 농사에 필수적이라, 거래량이 매우 적은 편이었다. 소금 역시 필수품 중 하나였다.
그런데 특이한 건 비누였다. 물가 지표로 떠오를 정도로 발해 백성이 필수품으로 애용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질병 발병률이 대폭 낮아지는 효과도 나타났다.
“그런데 왜 의류는 하나도 없지? 겨울엔 털두루마기, 여름엔 삼베와 모시옷, 봄과 가을엔 면포로 만든 기성복이 유행하지 않나?”
털두루마기는 양털 털실과 동물 가죽을 써서 만든 코트 형태로, 무척 추운 북방의 겨울 날씨를 견딜 수 있도록, 황후 홍은이 고안한 제품이었다. 그 코트의 모양새가 두루마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털두루마기라 불리게 됐는데, 북부 지방 주민의 경우, 일인당 한 벌씩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
“아무래도 기성복은 통계가 뒤죽박죽이라 조금 더 조사한 다음에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홍진이 대답했다.
“그럼 면포는 어떤가? 아, 그건 어렵겠군. 이제 면포가 도매 물품이 되고 있다지?”
“예, 기하. 이제 기성복이 의류 공장과 지역 내 공방에서 생산되고 있어, 사가에서 옷감을 사서 직접 옷을 짓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시골 지역은 여전히 면포가 많이 유통되긴 합니다만, 물가의 척도로서 지위를 이미 잃은 상태입니다.”
“오호! 그렇다면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뀐 거네? 훌륭하군, 훌륭해. 면포가 화폐 노릇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태건은 이를 큰 변화로 받아들였다. 어쨌든 소매시장에서 옷감보다 기성복의 유통량이 늘었다는 건 곧 발해의 산업화가 진척되었다는 증거였다.
태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본 이하륜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기하, 사실 물가 상승의 주된 요인은 공급량이 아니라 유통망 문제입니다. 저 제철소가 완공되어 철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고물가 문제도 한결 완화될 겁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동종 업체 간에 가격 담합을 못하도록 통제해야죠. 또 도로 건설 공사를 꾸준히 진행하고, 화물선을 대폭 늘리는 등, 기존 수단을 잘 활용해 물류망을 개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도 이미 제정되었다. 또한 미래의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유통감사국도 탁지부에 설치되어 운용되고 있었다.
훗날 조선에서, 도고의 성장에 따른 매점매석과 관리 매수 등의 행위가 빈번히 일어나, 그 폐단이 자심했단 사실을 알고 있는 태건은 독점을 노린 매점매석과 가격 담합 등의 불공정 행위를 초반부터 강력하게 규제해 나갔다. 처벌 수위가 매우 높다 보니 상단들도 몹시 조심하고 있었다.
“그럼 하나 더 보태도록 하지. 물류비용이라도 조절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우정국 물류망에 더 투자하는 건 어떤가?”
전국에 걸친 배송망을 보유한 우정국 조직을 확대하면, 우정국 자체가 사실상 국가가 운영하는 물류회사나 다름없게 된다.
현재 대형 상단들은 자회사로 물류 회사를 하나씩 보유했고, 이들이 자사뿐만이 아니라 중소 업체나 일반 주민의 물류도 담당해 주고 있었다. 이들은 턱없이 비싼 가격을 부르기 마련이라, 태건이 그 대안으로 우정국을 제시한 것이다. 우정국이 저렴한 물류비용을 유지해 주면 결국 다른 민간업체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물류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적극적으로 계획을 짜 보지요.”
태건은 이하륜의 얘기 중에 제철소가 언급된 걸 기억하고, 그에 관해 물었다.
“의정대신은 근래 들어 영강진 제철소 공사 현장에 가본 적이 있나?”
“예, 한 달 전에 갔는데,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규모도 큰 데다, 처음 짓는 거라, 시행착오를 벌써 여러 번 겪었지요.”
“해탄 생산량은?”
해탄은 코크스였다.
“생산량이 벌써 본궤도에 올랐습니다. 봉산 해탄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지요.”
“철광석은?”
“마찬가지입니다. 영강진의 샛골철광산 생산량이 대폭 늘어나 철광석을 계속 비축해 두고 있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른 철광산도 찾아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잘했군. 근데 해탄을 벌써 활용 중이라고 했지?”
“예, 재래식 용광로에서 숯 대신 쓰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벌목량이 크게 줄었지요. 아, 그리고 광산과 관련해 희소식도 하나 더 들어왔습니다. 연해부의 장수 주석 광산 서남쪽에서 또 다른 주석광을 발견해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그 덕분에 주석의 생산량이 대폭 늘어날 예정이지요.”
“정말 좋은 소식이군.”
새로 발견된 주석 광산이 있는 곳은 미래 러시아의 ‘카베일로보’란 지역으로, 장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해 있다.
이하륜은 말을 마치자 소동구에게 눈짓을 보냈다. 태건 가문의 노비 출신으로서, 겸인 노릇을 했던 소동구는 일약 일국의 대신 자리에 올라, 노비 출신 백성들을 들뜨게 한 바 있었다.
“기하! 내각회의에서 내수사 설치 건으로 토론이 열렸고,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태왕실 자금원으로 금광 개발권을 설정했나이다. 그 대신 은광 개발권을 탁지부 소관으로 돌려 정부의 재정에 보태기로 했습니다.”
소동구는 마치 책을 읽듯 태건에게 고했다. 벌써 여러 번 연습한 티가 역력했다.
“좋다. 그리하라. 태왕실도 자금이 있어야 사업을 벌이지.”
태건은 흔쾌히 찬성했다. 그간 특별한 태왕실의 자산이 없다 보니, 태왕실 자체 사업을 벌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수사가 금광을 직접 경영하거나 지분을 갖고 개발권을 나눠 주는 방식으로 태왕실 자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은광도 철저히 국유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현재 국제 무역이 은본위제로 돌아가고 있고, 국내에서 은화 화폐도 쓰고 있다 보니, 은광 역시 나라가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 * *
건주부의 수장, 누르하치는 여허를 집어삼킬 궁리로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발해로 인해 동부와 동북부의 여진족을 흡수할 기회를 잃은 그에게, 여허는 마지막 남은 먹잇감이었다.
여허 측도 그걸 알고 있기에 계속 명 조정으로 사신을 보내 건주부를 견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의 요동총병관 이성량은 건주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여허의 간절함이 제대로 명 조정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량이나 명 황실도 건주부가 위협 요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보니, 계속 요동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사실 임진왜란과 서남부 양응룡의 난만 아니었다면 명이 벌써 나서고도 남았을 일이었다. 그래서 누르하치는 정복 대상인 여허 지역보다 오히려 이성량에게 더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수도 퍼알라로 엄청난 희소식이 들어왔다. 바로 명군과 발해군이 조선 땅에서 충돌했다는 소식이었다. 또한 명군이 발해군에 참패해 사로잡힌 다음, 겨우 목숨을 구걸해 황망히 요동으로 도망쳐 왔다는 소식도 연이어 전해졌다.
“하하하! 드디어 내가 원하던 일이 일어났어. 명과 후발해가 결국 맞붙었으니 말이야.”
“그러게요. 이제 공식적으로 후발해와 명은 적이 되었네요.”
동생 슈르하치의 표정도 몹시 밝았다.
“앞으로 명이 어떻게 나올까요? 과연 당장 발해를 도모할까요?”
장남 츄잉이 물었다.
“글쎄다.”
누르하치는 일단 판단을 유보했다.
“당장은 못 하겠지. 준비되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어쨌든 중요한 건, 체면을 구긴 명이 어떻게든, 또 언제든 후발해 응징에 나설 거라는 점이지.”
슈르하치가 대신 대답했다.
“후후! 조선 국왕도 좋아 죽겠군.”
누르하치는 이번 사건이 조선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 판단했다.
“영토도 잃고, 명국과 연결되는 육로도 잃었는데요?”
츄잉이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후후! 넌 아직 조선 국왕을 모르는구나.”
누르하치는 첩자들을 통해 조선 상황도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압록강 북쪽에 꽤 많은 조선 주민이 들어와 살고 있다 보니, 이들을 매수해 첩자로 쓰고 있었다.
“그자는 지금 궁지에 몰려 있지. 민심은 물론 신하들의 신뢰마저 잃었으니. 게다가 동족 국가 후발해가 잘 나가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거다. 그런 조선 왕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적, 그리고 전쟁이야. 땅이야 후발해를 토벌해서 다시 찾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후발해를 응징할 힘이 없으니 외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데, 마침 명이란 대국과 충돌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기쁘겠나?”
“정말 명과 후발해가 전쟁을 벌이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하늘이 준 기회입니다, 형님.”
“맞아, 하늘이 준 기회. 그러니 우리는 더욱 명에 굴종하는 척하자고. 요동 관리들에게 뇌물도 듬뿍 뿌리고. 그래야 저들이 마음 놓고 후발해와 싸울 생각을 하지. 둘이 싸우다, 둘 다 약해지면 금상첨화이나, 어쨌든 큰 충돌만 일어난다면 우리에게 무조건 유리하다.”
“그럼, 형님. 여허 도모할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자고요.”
“마땅히 그래야지. 이번 기회에 후발해가 폭삭 망하면 좋으련만.”
누르하치는 울라성 전투에서 발해의 전투 장면을 목도하고 큰 충격에 휩싸인 바 있다. 그래서 발해를 더욱 경계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명에게 그랬듯, 당분간 발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꽤 신경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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