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전쟁 준비 (3)
조선의 전쟁 준비 상황은 매우 지지부진했다. 목표로 잡은 5만은커녕 3만도 채우기 힘들었다. 물론 전국에 퍼져 있는 병력을 모두 모으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였다. 그러나 극심한 식량난으로 인해 여전히 민란이 빈번히 일어나고, 도적 떼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원정군을 모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조선 국왕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발해군과 명군이 평안도에서 충돌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로 발해에 넓은 강토를 빼앗겼고, 명과 통하는 육로마저 막혀 버렸다. 이런 큰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크게 망신당해, 왕의 입지가 흔들리게 된다. 아니, 정확히 말해 이미 망신당한 상태라, 어떻게든 만회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신하들이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권을 잡은 북인은 물론, 다소 밀려난 동인마저 극구 만류하고 나섰다.
“전하! 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왜란이 끝난 지, 겨우 4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농토는 여전히 황폐한데다, 잡혀갔거나 죽거나, 아니면 북방으로 도주한 백성이 많아 농사지을 이도 부족한 현실입니다. 하물며 군을 모으고 군비를 확충하는 일이 어디 쉽겠습니까?”
이조판서 유영경이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새로 대사헌 자리에 오른 정인홍도 특유의 강직한 어조로 고했다.
“지금 북방 역도 무리가 강성한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또한 지난 왜란의 후유증이 자심한데도 그자들과 전면전을 벌이는 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는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니 부디 재고하시길 앙망하나이다.”
정인홍의 발언은 국왕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천하가 다 아는데 왜 국왕인 너만 모르느냐?’고 힐난하는 얘기처럼 들렸다. 그러자 국왕은 허언증 환자처럼 자신의 신념을 사실인 양 설파하기 시작했다.
“북방 역도가 강하다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그자들은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이득을 취한, 썩은 고기나 탐하는 이리 떼나 다름없는 자들이다. 그들이 감히 대국인 명나라 군대를 이기리라 보는가? 무기도 조악한데다 절반은 오랑캐나 다름없는 자들에게 엄정한 군기를 기대할 수 있겠나? 막상 명군과 싸움이 붙으면 분명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국왕은 평안도에서 벌어진 양국 간 서전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전하! 북방역도 무리를 이번 기회에 토벌해, 그자들이 점유한 땅을 반드시 주상 전하의 품으로 돌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명도 대군을 동원한다고 했으니, 이번 전쟁에서 우리 연합군이 반드시 승리하지 않겠습니까?”
“지당한 의견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역도를 토벌하고, 내친김에 변방을 괴롭히는 노추 무리까지 토벌한다면, 북방의 근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노추란 누르하치를 이르는 말이다.
몇몇 서인 계열 신하들이 국왕을 두둔하고 나섰다. 심지어 어떤 이는 전쟁 불가론을 외치는 북인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논조를 펴기도 했다.
그러자 북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하, 북방역도의 군세가 무려 20만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간 꾸준히 세작을 풀어 정보를 수집해 온 승정원이 이미 확인해 준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를 경시하겠습니까?”
기자헌도 공세에 가담했다.
발해군 군세가 약 20만이란 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육군 사단만 12개에, 해병대 6개 연대, 3개 함대의 편성이 완료된 해군 병력까지, 현역의 수가 대략 15만에 이르고, 여기에 소집된 예비군을 더하면 20만을 훌쩍 넘기게 된다. 더구나 발해는 단단히 무장한 경관 병력도 꽤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조선은 이 사실도 알고 있어 예비군 대신 이들을 병력으로 집계했다.
“과인도 들은 바가 있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오랑캐 접경을 지키느라 이번에 참전하기 어렵지 않겠소? 더구나 명군은 최고의 정예병이나 역도 무리는 한낱 오랑캐나 다름없으니, 그 결과는 명약관화할 것이오.”
국왕의 자신감은 어느새 사라졌다. 말이 내포한 바는 강하나 어조만큼은 힘이 빠진 상태였다. 그 역시 20만이란 숫자에 당혹감을 느낀 것이다. 알면서도 현실을 외면한 결과였다.
“전하, 북방 역도의 세력을 경시하면 이는 분명 오판하는 겁니다. 저들은 왜의 규슈로 쳐들어가 많은 왜장의 영지를 점령하고, 피로인까지 구해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북방 경계가 흑룡강에 이르렀습니다. 저들의 영역이 추운 북방에 치우쳐 있다고 하나, 태고 이래 농사를 지은 적이 없는 너른 허허벌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그 땅이 얼마나 기름진지, 곡식을 심기만 해도 잘 자라, 생육기간이 짧은데도 능히 꽃을 피우고 알곡까지 맺는답니다. 사람은 적고 수확량이 많으니 곡식이 남아돌아, 그걸로 가축을 키운다는 소문도 파다합니다. 그게 바로 인구가 적은데도 병력을 20만이나 양성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전면전을…….”
“그만하라!”
결국 국왕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정인홍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사실 정인홍은 절대 발설해선 안 될 말을 내뱉은 셈이었다. 발해의 실상을 밝히는 건 암묵적으로 조정의 금기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어도 결코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될 말, 봐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 이유는 국왕과 신하 모두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써 발해를 ‘반오랑캐’, ‘상놈들의 집단’ 혹은 ‘도적 떼’라고 애써 낮춰 보고 있는 형편이었다. 또 그런 논리를 지속해서 백성들에게 주입해 세뇌하고 있었다.
“그대는 조선의 신하인가, 역도 수괴 건의 신하인가?”
“전하!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어찌 소신을 역도의…….”
정인홍은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이 솟아오르자, 말을 몹시 더듬었다. 그러나 그 역시 해야 할 말은 끝까지 하는 이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지 않았습니까? 적도의 실태를 알아야…….”
“그만하라니까!”
“전하! 소신의 충심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눈치를 보고 있던 서인 계열 신하들이 이를 기회로 여기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했다.
“전하! 역도를 두둔한 대사헌 정인홍을 당장 파직하고, 역모를 꾸민 건 아닌지 국문에 부쳐 밝혀야 합니다.”
“전하! 당장 정인홍을 하옥하옵소서.”
결국 이렇게 조정 회의는 정인홍 탄핵 건으로 시끄러워졌다. 그 덕분에 자연스레 남은 국력을 쥐어짜 전란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쪽으로 국정의 가닥이 잡혔다.
북인의 영수 격에 해당하는 정인홍이 탄핵당했음에도 북인들의 표정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이들은 사전에 전면전을 반대했다는 점을 명확히 표명하고 싶어 했다. 그런 명분이라도 챙겨 둬야 향후 정국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동인 계열 인사들도 알고 있어 북인과 같이 반대론을 지지한 것이다.
* * *
이하륜이 영강진에서 돌아와 태건 부부를 찾았다. 그 덕분에 세 사람은 오랜만에 함화전 밀실에 모여 몰래 술까지 곁들이며 회포를 풀었다.
똑똑!
“오! 학부대신이 왔나 보네?”
“들어오게!”
“예, 기하!”
허균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방안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들 의남매 삼인방은 일국의 태왕과 황후, 의정대신이 되어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너무나 돈독했고, 말과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그렇다고 잔소리할 의향은 전혀 없었다. 이런 털털한 자리에서 새로운 상품과 기술이 탄생했고, 그로 인해 발해 백성이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니, 황후님도 어찌…….”
“왜요? 황후가 됐다고 오라버니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나요?”
홍은 역시 변함이 없었다. 더구나 살짝 취기까지 있어 속내가 그대로 말로 드러났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됐고! 술부터 받게.”
이하륜이 술 한잔을 따라 주었다.
허균은 술을 받자마자 공손한 태도로 잔을 비운 다음, 이하륜에게 물었다.
“기관차와 화차 개발은 어찌, 잘되어 가나?”
“잘되고 있지. 안 그래도 그 얘길 하고 있었네.”
“엥? 그 얘긴 벌써 끝났고 무기 개발 얘기로 넘어갔는데?”
홍은이 눈치 없이 나섰다. 호기심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허균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이었다. 그럼 결국 이하륜은 입이 아프도록 설을 풀어야 한다.
“무기? 또 신무기를?”
“음, 지연신관이라고, 반드시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우리 태왕 기하와 얘길 나누고 있었지.”
“후후! 결국 회포를 푸는 자리가 아니었군요?”
“하나만 하는 건 우리한테 사치일세. 하려면 두 가지를 같이 해야지. 더구나 이런 비상시국에.”
태건이 웃으며 대답했다.
“근데 지연신관이 뭡니까?”
“비격진천뢰랑 비슷한 원리라네. 시간을 두고 터지는 거. 이번에 개발한 박격포탄과 조금 다르지.”
이하륜의 대답에 허균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격진천뢰를 예로 드니 바로 이해한 것이다.
지연신관 또한 뇌관이 나왔기에, 개발이 가능하게 된 기술이었다.
태건과 이하륜이 지연신관 개발을 서두르게 된 이유는 당연히 이번 전쟁 때문이다. 군부는 남해부에서 벌어진 여러 전투에서 고전적인 수류탄인 ‘화초’가 크게 활약하자, 병기도감에 많은 양을 주문해 놓았다. 두 사람도 이를 눈여겨보고 수류탄 개발의 동기로 삼게 되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지연신관인 셈이다.
이하륜은 수류탄의 원리를 허균에게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그게 세상에 나오면 정말 무서운 무기가 될 것 같네. 화초 안에 철편을 넣었다고 해도 결국 대나무 통 아닌가? 그걸 철통으로 만들어 터트리면 포탄이 따로 없겠군.”
“바로 그거지. 병사 하나하나가 포탄을 던진다고 생각해 보게.”
“어휴!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네, 그려. 그런 무기까지 나온다면 이제 창과 칼이 쓸모없어지는 거 아닌가?”
“뭐, 그 정도까지는. 거기까지 가려면 말이야…….”
“볼트. 아니지, 그 뭐냐, 후, 후미…….”
홍은이 또 새로운 정보를 발설했다. 볼트액션식 소총을 말하려다 후미장전식 소총이란 용어를 떠올렸는데, 그마저 제대로 생각나지 않아 말을 더듬거렸다.
“황후님! 그건 아직…….”
형수 어쩌고 하며 거침없이 대하던 이하륜이 갑자기 격식을 갖춰 대답하자 홍은이 멋쩍게 웃으며 후퇴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올 게 많다는 말이에요.”
실제로 볼트액션식 소총 또한 개발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병기도감 장인들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데, 아직 강선을 파는 기술을 시험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 기술 역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북해도 소식은 들었지?”
태건은 대답하기 곤란한 신무기 화제에서 벗어나고자 다른 얘깃거리를 가져왔다.
“예, 기하. 마치카 도독은 물론 주둔군 모두 아주 잘하고 있더군요.”
얼마 전, 이내진(하코다테)에서 아이누인과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이내진 부근에 아이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에 자연스레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자 마치카는 산더미처럼 많은 곡식을 실어다 이들에게 주며 땅을 팔아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아이누인들은 흔쾌히 승낙했다. 이처럼 아이누인과 복잡한 협상도 가능하게 된 건 마쓰마에 영지를 점령하며 통역이 가능한 인재를 얻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해도에 잔류한 왜인은 고작 2천 정도인데, 이들 모두가 사전에 약속한 바에 따라, 아리벌로 넘어간 상태였다.
“전 그보다 제주도 일이 궁금했습니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 구마국 측에서 우리 요청에 응하기로 했으니, 곧 파병해야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제주도마저 우리 발해 영토가 된다고 생각하니.”
“크크! 벌써 우리가 차지한 것처럼 말하네?”
이하륜이 웃으며 반문했다.
“우리가 마음먹어서 안 된 일이 있었남?”
허균도 이제 친구인 이하륜을 닮아 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