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제주도를 얻다 (2)
조천진성 남쪽 들판. 이곳에서 발해군과 조선군이 단단히 진형을 유지한 채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제주목사가 끌고 온 병력은 고작 삼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열 배에 달하는 적군을 향해 다짜고짜 덤벼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비좁은 조천진성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어정쩡하게 수비대형을 취한 채 주저앉게 된 것이다.
더구나 조선군 구성원의 대부분은 아직 적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군관이건 병졸이건 간에 발해군을 접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제주목사 조강만큼은 처음부터 적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태미의 3함대가 조사차 한 번 다녀갔을 때부터 발해군이 결국 오리라 예견했다. 그는 지난 왜란에서 활약한 무장이었기 때문이다.
발해군 역시 월등한 수적 우위에 있음에도 어떤 적대 행위도 하지 않고, 변화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6사단장 박민은 천리경으로 조선군 진영을 상세히 살폈다.
“에휴! 저런 병사들을 데리고 무슨 전투를 하겠다고.”
21연대장 정민홍 정령도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했다.
“쯧쯧! 올봄에 심한 기근이 들었다고 하더니. 병졸들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네요.”
병사들은 하나같이 빼빼 마른데다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다. 꽤 오랫동안 굶주린 게 분명했다. 그래서 병장기에 의지해 겨우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륙작전을 마친 22연대 병력마저 합류해, 발해군 병력은 무려 6천에 달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조선군 진영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이미 발해군의 처분만 기다리는 포로 신세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허허! 포기했군. 그럼 21연대에서 연락관을 뽑아 보내게. 가서 협상할 생각이 있는지 물으라고 해.”
“예, 사단장님.”
정민홍 연대장은 연대 본부 간부 하나를 뽑아 조선군 진영에 사자로 보냈다. 그가 조선군 진영에 도착해 그곳 지휘관과 잠시 대화하자, 마침내 박민이 기다리던 변화가 일어났다. 대담하게도 제주목사 조강이 직접 박민과 대화하고자 찾아온 것이다.
“난 제주목사 조강이오. 그대는?”
“발해 육군 제6사단장 박민 소장입니다.”
“사단장이면 어떤 직위요?”
“대략 1만 병력을 지휘하는 무관 관직이오. 조선으로 치면 병마절제사 정도 될 것 같군요.”
“정삼품?”
“그렇습니다.”
“그럼 나와 같군요.”
제주목사 역시 정3품 관직이었다. 어느새 조강의 입가에 엷은 웃음기가 맺혀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젊군. 젊은 무장들이 일으킨 나라라 그렇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과연 그렇군.”
조강은 자신과 같은 지위에 오른, 이제 겨우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 박민을 보고, 소문이 사실이란 걸 실감했다.
“후발해군이 결국 제주까지 왔구려.”
“원래 늦추려 했는데, 제주도에 기근이 심하게 들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태왕 기하께서 서둘러 출병하라 명하셨소.”
“기근 때문에? 휴! 맞소. 여기 사정이 몹시 급하긴 하지.”
박민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투항하실 겁니까?”
“그래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난 저 모든 병사를 저승으로 이끌게 될 테니. 그보다 고맙소. 공격하지 않고 기다려 줘서.”
조강은 바다 쪽을 힐끗 보며 말했다. 3함대가 계속 위협 사격만 해 준 점이 고맙다는 말이었다.
“동족이잖습니까? 어찌 함부로 인명을 해하겠습니까?”
“동족? 그렇지, 우린 동족이지. 후후!”
홀가분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던 조강은 미소까지 머금었다.
“자, 그럼 나와 우리 병사들은 이제 포로가 된 것이오?”
“포로라니요? 일단 제주목사로서 직무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역시…….”
“양 진영 간에 불필요한 충돌이 생기지 않게 해야지요. 그리고 굶주리는 백성부터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식량이 그리 많소?”
“그렇습니다. 앞으로 계속 북쪽에서 실어 올 겁니다. 아, 남해부의 식량 생산량도 만만치 않으니, 거기서 가져올 수도 있겠군요.”
일기현과 장산현, 오도현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양도 꽤 많은 편이었다. 남방 영토를 얻음에 따라, 다소 부족했던 쌀 생산량마저 대폭 늘어나자 벌써 발해의 쌀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올가을, 우루평원에서 추수가 시작되면 쌀값이 더욱 떨어질 게 분명했다.
“남해부?”
“왜한테 빼앗은 땅과 울릉도가 포함된, 발해의 새로운 남방 영토를 관장하는, 조선의 도에 해당하는 지방 기구라고 보면 됩니다.”
“음, 알겠소. 그럼 일단 제주목부터 시작합시다. 아니, 저 병사들부터 먹여 주시오.”
조강은 측은한 표정으로 조선군 병사를 가리켰다.
제주목사 조강은 사실 처음부터 발해에 호의적이었다. 아울러 조선 조정에 대한 불만도 매우 큰 편이었다. 그 역시 무장이다 보니, 지난 왜란 시기에, 또 전후 논공행상 과정을 지켜보며 조선 국왕의 처사에 신물이 나 있었다.
조강의 결단 덕분에 발해는 힘들이지 않고 제주도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령을 통해 조강이 발해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남부의 대정현과 정의현 역시 곧바로 투항 의사를 밝혀 왔다. 결국 제주도 전역이 발해 영토로 편입된 것이다.
* * *
제주 대정현의 모슬포. 대정현은 제주도 서남부에 있는 고을이고, 모슬포는 현청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포구였다. 오늘 모슬포는 대정현 주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농사를 짓다 나온 농사꾼은 물론이고, 어린 동생을 등에 업은 아이,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제주목사 조강과 함께 제주도 서부 애월포를 거쳐 대정현으로 온 박민 사단장은 대정현감 고연실에게 물었다.
“저 정도면 대정현 백성이 다 모인 건 아니오?”
“허허!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참으로 많이 모였군요. 그런데 저라도 나와 봤겠습니다. 언제 저런 장관을 또 보겠습니까?”
고연실이 해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모슬포에서는 제32전대 소속 함선들을 타고 온 육군 제24연대 병력과 물자의 하선작업이 한창이었다.
대정현 주민들은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범선의 출현에 놀라 까무러칠 뻔했고, 또 그 배가 조선인이 건국한 발해라는 나라에 속한 배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심지어 제주도가 이제 발해에 속하게 되었다는 대정현 관원의 설명은 아예 믿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다들 조선군과 다소 복식이 다른 옷을 입고 있는 발해군 병사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아울러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박민과 고연실 현감이 나누는 대화도 어느새 주변에 있던 주민들의 입을 통해 곳곳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박민이 뭐라고 하면, 다소 시차를 두고, 주민들이 그 말에 걸맞은 수군거림과 표정으로 반응하곤 했다.
“그런데 정말 저 군량을 우리 주민에게 나눠 줄 겁니까?”
“당연히 그래야지요.”
“저, 정말 고맙습니다, 영감.”
고연실은 조선의 관행대로 박민을 영감이라 불렀다.
군량을 주민에게 나눠 준다는 말만큼 반가운 소식은 없었다. 어느새 이 말이 빠르게 퍼져 모든 주민이 알게 되었다. 주민들은 크게 기뻐했고, 심지어 이제 살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우리 대정현 고을은 물산이 풍부한 편입니다만, 곡식이 많이 나지는 않습니다.”
“알고 있어요. 귤과 소금이 많이 난다고 들었소.”
“예, 그래서 기근이 들면 타격이 큰 편이지요. 그런데 군량을 나눠 주면 저 병사들은 어떻게 합니까?”
“또 실어 오면 되지요.”
“허허! 걱정하지 말게나. 발해는 식량이 썩어날 정도로 많다는군. 그러니 이번 기근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 구호 식량을 가져오기로 했네.”
조강이 부연해 설명하자, 고연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계, 계속 실어 온다고요?”
“그렇네. 자네도 알다시피 왜놈의 땅까지 점령하지 않았나? 거기가 또 곡창지대라더군.”
“전 사실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흉악한 왜놈의 땅을 북방에 치우쳐 있는 발해가 무슨 수로 점령한다고.”
“아무튼 사람 수에 맞춰 동등하게 식량을 분배할 테니, 대정현령이 계획을 짜 보시오.”
“예, 예.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박민이 식량 분배와 관련해 지시하자, 고연실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이번엔 백성들의 입을 통한 것이 아닌, 대정현 이속들이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큰 희망을 주는 소식이기에,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에게 먼저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와아아! 고맙습니다.”
“허허허허! 우린 이제 살았네, 살았어.”
“살다 살다 이런 일도 겪는군, 그래.”
먹을 건 없지만 잔치가 벌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 장정들은 더 이상 구경만 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이더니 해변으로 몰려갔다. 하선 작업을 거들려고 나선 것이다.
“내가 더 놀라운 얘길 해 줄까?”
조강이 고연실에게 말했다. 그의 얼굴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예? 더 놀랄 얘기가 있습니까?”
“있지. 발해도 세금을 걷겠지?”
“다, 당연히 그렇죠.”
대답하는 고연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귤밭으로 향했다. 제주도 주민을 괴롭히는 건 공물이었다. 뭍에서 나지 않는 특산물이 많다 보니, 조정에서 너무나 과중한 공물을 요구했다. 귤의 경우, 너무도 귀하다 보니 귤이 열릴 때면 심지어 열매 수까지 기록해 보고할 정도였다. 그래서 태풍이 와서 대량 낙과하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농민이 져야 했다. 그 결과, 이 무거운 공물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뜨거운 물을 귤나무에 부어 죽이는 농민이 속출하곤 했다.
그래서 세금 이야기가 나오니 귤부터 떠올린 것이다.
“발해는 공납이란 게 없네.”
“예?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공물이 없다니요?”
“나라에 공물을 바치는 제도 자체가 없다는 말이네.”
“그,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럼 세금은 뭐로…….”
“백성들이 직접 내는 세금은 소득세와 인두세, 두 가지가 있는데, 소득세는 보통 소출의 1할만 부담하면 된다는군. 그러나 소득 규모가 크면 2할까지 부과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네.”
고연실은 아직도 미심쩍은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박민이 웃으며 확인시켜 주었다.
“맞소. 우린 개국 이래 계속 그래왔소.”
“그, 그럼 인두세는요?”
“그건 지방 기관에서 쓸 수 있도록 일 년에 두 번, 아주 적은 양만 내면 되오.”
“세상에…… 그러면 어떻게 나라 살림을 유지합니까?”
“그 대신 상인들이 많이 내지요. 그 정도로 상업이 활성화되어 있으니까. 또 관리나 월급 받는 직장인들도 내고.”
“그럼 우리 귤 농사짓는 농민들은 귤 수확량의 일 할만 나라에 세금으로 내면 되는 겁니까?”
“그렇소.”
박민이 대답하자, 곁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전이 큰 소리로 주민에게 알렸다.
“여러분~! 발해는 공물을 바치는 제도가 아예 없다고 하오! 수확량의 일 할만 세금으로 바치면 된다고 했소.”
이 소식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었다.
대정현 주민들은 크게 기뻐하며, 자신들도 모르게 박민을 향해 넙죽넙죽 절을 했다. 박민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처럼 제주도 주민들의 민심은 빠르게 발해에 우호적으로 변해 갔다. 대정현뿐만이 아니라 제23연대가 상륙한 정의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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