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압록강 전선 (2)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전장을 지켜보던 진태종은 어느덧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휴, 이런 경험은 처음이군.”
그간 발해군 지휘관 자격으로 참전한 어떤 전투도 이번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 그때도 화승총과 화포를 보유했으나 화살이 더 큰 역할을 했고, 병장기를 부딪치는 치열한 격전도 치렀다.
그러나 지금 발해군이 벌이고 있는 전투는 이 시대에 생소한 화력전이었다. 초전에 화력으로 적진을 짓이기고 시작하는, 새로운 개념의 전투인 셈이었다.
전장은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다.
명 기병이 충분한 거리에 들어오자 아직 참전하지 않은 제10사단마저 공격에 가세한 것이다. 이제 10사단 진영에서도 화승총 총탄과 편전, 화초가 명군을 향해 날아갔다. 주변 언덕에서 발사된 박격포탄 역시 여전히 명군 대열의 중간 열과 후미 부분에 계속 떨어져 내리며 지속해서 명군의 병력을 줄여 나갔다.
이제 삼한동 벌판 전체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모두가 명군이 흘린 피였다. 그런데도 명 기병은 멈출 줄을 몰랐다. 여전히 절반가량의 병력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결국 난전이 벌어지겠군.”
진태종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명 기병대의 선두 열은 결국 10사단 보병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해 놓은 목책 장애물 지대에 도달했으나, 이 장애물로 인해 그들의 속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 때문에 명 기병 선두 열은 화승총과 편전, 화초의 먹잇감이 되었다.
워낙 수가 많다 보니 공격받는 와중에도 꽤 많은 명 기병들이 장애물 지대를 통과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들은 곧 창날이 숲을 이룬 것 같은, 발해 장창병 대열과 마주해야 했다.
히히히힝!
장창병에 찔린 말은 구슬픈 비명을 질러대며 쓰러졌고, 땅에 떨어진 기마병은 단병접전에 특화된 발해 살수에게 당했다.
이윽고 명 기병 모두가 속도를 잃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하자, 진태종이 다음 단계의 명령을 발했다.
“기병대를 출진시키게!”
“예. 사령관님.”
기병대 출진 명령이 떨어지자, 제10사단 보병 배후에서 대기 중이던 제10사단과 제14사단 소속 4천여 기병이 출진했다. 이들은 장창병과 목책 장애물에 막혀 우왕좌왕하고 있는 명 기병을 순식간에 덮쳤다. 이들로 인해 또다시 대학살극이 시작되었다.
“이제 항복하지?”
진태종은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이제 명 기병대의 수는 5천도 남지 않게 되었다.
결국 명 진영에서 나팔 소리가 들리더니, 후미 대열에 있던 기병들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후퇴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전진하며 당했던 것만큼, 후퇴할 때도 발해군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뒤쪽에 처져 있던 2천여 기의 기병만이 살아나갔을 뿐, 나머지는 결국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기병들은 대개 전위에 선 자들이었다. 살아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판단이 들자,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말에서 뛰어내린 다음 바로 무릎을 꿇었다.
발해군의 대승이었다. 발해군 주력이 강을 건넜다는 첩보를 입수하자마자 이들을 제지하기 위해 명 원정군 중 가장 강력한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중갑 기병 2만여 기를 뽑아 보냈는데, 이들 중 1할만 살아 돌아오고 나머지는 전사했거나 포로가 된 것이다.
진태종은 넋을 잃고 난장판이 된 전장을 응시했다.
전장은 관성대로 흘러갔다. 이미 전투가 끝났기 때문에 병사들은 그간 해 오던 대로 포로를 포박하고, 이리저리 날뛰는 적군의 말부터 붙잡았다. 이번 전투에서 포획한 말만 사천여 마리에 이를 정도로 많아, 발해 병사들을 더욱 바쁘게 했다.
또 어떤 병사들은 주인을 잃은 명군의 병장기를 챙기고, 또 일부는 땅을 파고 적병의 시신을 묻어 주기도 했다. 발해 병사들이 전투 후유증을 겪을 틈이 없어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많아 보였다.
“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진태종은 결국 한숨을 토해 내며 한마디 했다. 양사원도 혀를 내두르며 대답했다.
“우리 군이 이렇게 강한지 몰랐습니다. 그간 훈련만 해 왔던 신무기가 실전에서 활용되니 이런 결과를 낳는군요. 그래서 기하께서 그토록 열심히 신무기를 개발하셨던 모양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 사상자는 거의 없잖은가? 하지만…… 적에게 자비란 없군.”
“그러게요.”
“도주한 적 기병들은 어디로 갔을까? 본대로 갔나?”
“그럴 겁니다. 관전 방향이 막혀 있으니 청성진 건너편 감천동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요?”
“그나저나 걱정이군. 청성진 쪽으로 적군이 집결하는 모양이던데.”
진태종의 예측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연락관을 맡은 김응진 부령이 압록강 부교를 건너오더니 태건의 명을 전하기 시작했다.
“포로를 관리할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적 기병대가 온 길을 그대로 되짚어 가서 감천동과 소전성에서 발이 묶인 적 좌군 본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감천동과 소전성에 묶여 있다고? 상세히 설명해 보게.”
“예. 3만에 달하는 좌군 본대가 청성진의 아군에게 화포 공격을 한 차례 받자, 일부는 감창동 배후 언덕으로, 또 일부는 초전성으로 넘어가 대기 중이랍니다. 아울러 적 중군 중 절반가량이 감창동으로 접근 중이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 수구진의 건너편, 안평하구에서 진을 친 채 도강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가만! 그럼 5만을 넘는 적병이 우리 중군을 상대로 포진 중이란 말 아닌가?”
“그렇습니다. 적 중군의 절반인 2만5천과 좌군 3만이 포진해 있지요.”
“그럼 우리 중군이 위험한데? 아무리 강을 격해 있다고 하나.”
“예, 그래서 우리 좌군에서 15사단을 보내 줬지요.”
연락관 김응진의 대답을 듣자, 진태종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적병의 수가 자그마치 5만5천이요. 그런데 고작 2개 사단과 총사령부 병력으로 저들을 상대하다니, 너무 위험한 거 아니오?”
“하하! 안 그래도 사령관께서 그런 얘길 할 거라며 이렇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전투를 이미 치러 봤잖은가, 그래도 모르겠나’라고요.”
김응진이 폭소를 터트리며 대답하자, 진태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참으로 기하는…….”
“하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정말 미래를 보시는 분 아닙니까? 어떻게 사령관께서 그런 말을 할 줄 미리 아시고, 답변까지 준비해 보내셨을까요? 어떻습니까?”
“허허! 이해했네. 자네도 저길 보게나. 우리가 크게 이겼지. 피해도 거의 없이.”
“이미 보았습니다. 남쪽 강변에서 지켜봤지요. 늦게나마 승전을 축하합니다. 사령관님.”
“아, 그래서 연락관도?”
진태종은 연락관의 여유로운 태도가 어디서 온 것인지 이해했다.
“아울러 사령관님의 병력이 소전성 쪽으로 치고 들어가면 우리 중군에 몰릴 적 병력도 분산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기하의 안위가 걱정된다면 서둘러야 할 겁니다.”
“알겠네. 그런데 전장 정리가 좀 그렇군. 포로와 포획된 말도 꽤 많아서.”
“그럼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놓고 먼저 움직이시지요. 곧 평안부 경관 병력이 보급대와 함께 올 겁니다. 그들에게 남은 일을 맡기시지요.”
평안부에도 경관 병력이 꽤 많이 늘어나 1만에 달할 정도가 되었다. 비록 활과 냉 병기로 무장했으나, 모두가 전장을 횡행했던 예비역들이라 무력도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게다가 다들 기마대로 구성되어 기동력도 뛰어났다. 이들은 이번 전쟁에서 보급대의 호위 임무와 더불어 군 병력을 보조하는 임무까지 맡게 되었다. 이처럼 평안부에 경관 병력이 많은 이유는 평안부가 발해의 전방 지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 그러면 되겠군. 안 그래도 보급이 조금 걱정됐거든. 이번에 탄약과 화살을 많이 써서.”
진태종은 이제 안심하고 진군할 수 있게 되었다.
“휴! 그래서 우리 우군이 주공이라 말씀하신 거였네요.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왜란 때 황진 휘하에서 활약했던 양사원은 자신에게 나라 역사에 아로새겨질 만한 중책이 주어졌음을 실감하고 감격해하며 말했다.
“그렇지. 우리가 빨리 움직여 적 우군과 중군을 친다면 이번 전쟁의 양상이 확 달라질 거네. 관전 방면으로 진출한, 다른 우리 소속 부대도 그렇고.”
“그래서 다들 우군에 소속된 분들을 부러워하고 있지요.”
김응진 부령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 * *
압록강 남쪽 강변에 자리한, 의주 경내의 수구진.
제13사단장 공도명 소장은 명군이 새까맣게 몰려 있는 강 건너편 안평하구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황급히 의주 진지를 나와 동쪽으로 달려온 13사단은 이제야 수구진과 그 주변 방어진지에 병력 배치를 완료한 상황이었다.
“정말로 많군. 저쪽 강변이 다 적병들로 뒤덮인 것 같네, 그려.”
부장 이규홍 참장도 혀를 내둘렀다.
“안평하구부터 초전성까지, 이 구간에 포진한 적 좌군과 중군을 모두 합하면 무려 8만이랍니다. 우린 3만 8천이고요.”
발해군도 만만치 않게 많은 병력이 포진해 있었다. 가장 서쪽에 이들 13사단, 그다음으로 15사단과 발해군 총사령부, 16사단이 차례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퍼퍼펑! 펑!
“엇! 청성진 쪽입니다.”
이규홍 참장이 손으로 동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감창동 배후 산속에 머물고 있던 명군이 일제히 몰려나오자 결국 포격을 시작한 것이다.
“응? 이쪽도?”
13사단의 건너편 안평하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산속에 들어갔던 명 군사들이 갑자기 뗏목을 들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도강에 쓸 뗏목을 만드느라 산속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
공도명 소장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들 기다려라. 침착하게, 침착하게…….”
어차피 모든 명령을 깃발이나 징과 북 등으로 발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공도명은 부하들에게 지시하듯 혼자 중얼거렸다. 강변 진지에 포진해 있는 모든 발해 병사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압록강 전체를 가득 메운 채, 강을 건너오고 있는 적병을 보고 흥분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침착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안평하구와 수구진 간의 거리는 1.5에서 2장미 사이였다. 청성진과 감창동 사이의 거리보다 훨씬 멀었다. 게다가 북쪽 강변 전체가 모래밭이었고, 강 중간에는 모래톱과 하중도가 분포되어 있었다.
“화포를 썼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무 곳에나 떨어트려도 효과가 클 것 같은데요. 저렇게 밀집된 상태로 강을 건너고 있으니.”
이규홍 참장이 긴장감이 어린 음성으로 한마디 했다.
“태왕 기하의 말씀을 잊었나? 우리 박격포탄은 모래밭이나 뻘밭, 물에는 효과가 없다고. 땅에 떨어질 때 충격을 받아야 폭발하니까. 더구나 강 건너편은 우리 주력인 60박격포의 유효 사거리에서 한참 벗어나 있고. 80박격포는 아슬아슬하게 들어와 있지만, 지금 써 봐야 효과가 별로 없을 거네. 모래밭에 떨어질 포탄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으니, 포탄 낭비지.”
“휴! 적병이 너무 많습니다. 저 많은 수를 언제 다 줄일지…….”
“너무 걱정하지 말게. 기하께서 수립해 준 작전대로 실행하면 될 테니까.”
태건과 총사령부 부장들은 사전에 구역 단위로 전술을 미리 짜놓고, 이를 각 사단장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어떤 부대든 특정 구간을 맡게 되면 그 작전에 따르게 되어 있었다. 그중 이곳 수구진 작전이 가장 복잡한 편이었다. 그러므로 공도명의 역할이 중요했다.
공도명은 이제 때가 이르렀음을 감지하고 곧 첫 번째 명령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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