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남해대학교 (2)
남해대학교 개교식 행사는 매우 성대하게 진행됐다.
허균의 개교 선언에 이어 학과를 소개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예술학부에 조소과와 회화과, 음악과, 연희과가 개설되었는데, 서양과 발해 예술로 세부 전공을 나눠, 총 4개 학과 8개 전공이 생겨났다. 또 해양학부의 경우, 항해과와 조선공학과, 해양지리학과, 이렇게 3개의 과가 속해 있는데, 이들 중 해양지리학은 정밀한 해도 제작과 항로 개척 업무와 관련한 전공이었다.
인문학부는 포르투갈어, 영어, 스페인어, 한어(중국어), 일본어 등 5개 외국어학과 이외에 발해 문학과와 역사학과도 개설되어 총 7개 학과를 보유했다.
행사가 끝나자, 허성이 허균에게 물었다.
“다음 차례는 어디지?”
“동해부에서 운영할 슬해대학교가 올가을 개교하지요.”
“아, 맞다. 거긴 공학 쪽이 강하다고 했나?”
“예. 이미 큰 공업학교가 있으니, 개교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더 규모를 키워 종합대학교로 개교할 생각으로 조금 늦어진 거죠.”
“그다음으로 세워질 대학교는 시간이 좀 걸리겠군.”
“예, 아무래도 교수진이 부족하니까요.”
현재 인문학부 교수의 경우, 발해대학교 졸업생 중에서 교수 희망자를 선발하는데, 저서나 논물을 집필해야만 자격이 주어지고, 이를 기존 교수와 총장이 심사해서 통과된 자에게 교수 자격을 부여하고 있었다. 신임 교수에게 5품관 관리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졸업생 대부분은 교수직을 희망했다. 일반 관리가 되면 7품관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공학 계열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에서 익힌 기술과 지식을 이론화하는 책을 쓰거나 교재를 만들어야만 교수 자격이 주어졌다.
허균은 내친김에 나머지 대학교 설립 계획을 쭉 풀어 주기 시작했다.
“일단 부립대학교 설립을 우선시하고 있죠. 그래서 현덕부의 광명대학교와 여민부의 북청대학교가 다음 차례로 개교할 종합대학교입니다. 그 이외에 단천공업대학교, 조산공업대학교가 곧 개교할 예정입니다. 이들은 공업학교가 곧바로 대학교로 승급된 경우이니, 곧 학교를 열게 될 겁니다. 또한 사범학교도 꽤 많이 개설될 예정이지요.”
현재 사범학교 개교가 준비되고 있는 곳은 함흥과 광명진이었다.
“평안부의 요청도 남해부 못지않게 절실해요. 그래서 평양이나 안주 중 한 곳에 사범학교를 세울까 고민 중입니다.”
현재 평안부의 중심지는 평양이 아닌 안주였다. 평양이 유서 깊은 도시이긴 하나, 지리적으로 안주가 더 평안부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저, 안녕하십니까? 전 천주교 발해 남해교구장 세스페데스라고 합니다.”
꽤 유창한 고려어로 세스페데스가 허균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그의 옆에는 강승덕 도독이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분들이 참정대신님을 꼭 뵙고 싶다고 하여 데려왔습니다.”
“그래요? 아, 반갑습니다. 우리말을 아주 잘하시네요.”
세스페데스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허균이 발해를 건국한 개국 공신인데다, 친왕인 태원보다 더 권력 서열이 높은 관료라고 소개받았기 때문이다.
세스페데스에 이어 몬테로와 코엘료가 연이어 허균에게 인사했다. 심지어 스페인령 필리핀의 구스만 도독의 부관 가르시아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인사를 나눴다.
“이분들이 서양인 교수들을 데려왔습니다.”
강승덕은 이들이 남해대학교의 개교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강승덕이 장을 마련해 주자, 이들은 마치 아이가 부모에게 졸라 대듯 요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이들 요구의 공통점 중 하나는 남해부 내의 개항장을 더 늘려 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스페인 측의 가르시아는 제주도를 열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들 역시 제주도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남해부에서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허균은 이들의 요구를 일축했다.
“태왕께서 시기상조라 판단하셨소.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보시오.”
“그럼 경매에 올리는 상품량을 더 늘려 주십시오. 지금 우리나라 상인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몬테로가 나서서 다른 요구 사항을 밝혔다.
“어떤 상품 말이오?”
“라면…….”
“뭐? 푸하하하!”
“하하하! 라면이라니. 하긴 나도 그 생각이 나긴 했지.”
몬테로는 얼떨결에 라면부터 얘기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사욕이 앞선 탓이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도자기였다. 그다음이 성냥이었고, 연필과 펜도 이들 못지않았는데, 의의로 면직물과 모직물의 요구량도 꽤 많았다.
허균이 이를 의아하게 여기자, 강승덕이 설명해 주었다.
“면직물과 모직물이 바로 저들 배에 실려 서양까지 가는 건 아닙니다. 저들이 확보한 이들 직물 제품은 일단 명과 구마국, 왜국에서 팔리는데, 그게 조금 재미있습니다. 구마국과 왜국에선 대금으로 은을 받고, 중국에선 금으로 받지요. 그런데 금과 은의 교환비가 다르다 보니, 마카오와 구마국의 오야노, 왜국의 사카이를 몇 번 왕복하면 꽤 많은 은이 모인답니다. 그걸로 다시 우리 발해의 인기 상품을 사는 거죠. 아니면 그간 벌어 놓은 은과 금을 갖고 인도로 가서 후추를 사서 귀환하면 떼돈을 번다고 들었습니다.”
“오호! 그거, 참 재미있네요.”
허균은 어느새 발해를 대표하는 고위 관료가 아닌 학자나 작가로 변신했다. 그의 과도한 호기심 탓이다.
“왜? 소설로 쓰시게?”
옆에서 듣고 있던 허성은 이미 아우의 속내를 훤히 읽고 있었다.
“소재가 너무 좋지 않습니까? 배를 몰고 세상천지를 누비고 다니는 무역상 이야기. 이걸로 큰돈을 번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이걸 읽은 발해 청년들의 사고와 활동의 폭이 넓어지지 않겠습니까?”
“허허! 맞네. 그런 면에서 좋은 영향을 줄 것 같군.”
이렇게 해서 허균은 새로운 소설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이름하여 ‘김참령전’이었다. 이 작품 주인공의 모델이 된 인물은 해군 예비역 참령 ‘김홍선’이란 자였다. 3함대에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부하들과 함께 전역해, 발해 정부의 투자를 받아 ‘삼우해운’이란 해운회사를 차린 인물로, 아오지급 중범선을 개량한 상선을 한 척 확보해 영업을 시작한 상황이었다.
허균은 이번 방문 기간 끝 무렵에, 김홍선을 비롯해 이번에 발해 상단으로 편입한 왜국 출신 미츠이 히사시와 만나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눈 후,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미츠이 히사시는 발해로 귀화한 후 이름을 복수길로 바꿨고, 사명도 ‘삼정상단’으로 개명했다.
훗날, 이 두 회사는 남해부를 대표하는 무역 및 해운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 * *
남해부 동평현 우루평원 북부, 우루강(지쿠고강)의 지류 호만강 유역.
육군 제4군단장 신첨은 전투를 앞두고 군단사령부 및 제9사단 간부들과 함께 적진 상황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영주 고바야카와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랍니다. 수년간 지속된 우리 발해의 위협 때문에 떠나는 가신이 꽤 많이 나온 모양입니다. 특히 작년에 우리 대표단이 피로인을 데려오려고 조슈번을 방문한 이후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답니다.”
남해부에 주둔 중인 발해 육군은 이제 규슈 지역 내에서 마지막 남은 목표인 고바야카와 영지의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간 우루평원 내 3개 현, 즉 영취현과 보화현, 동평현의 안정에 힘을 쏟고 있던 발해군이 또다시 정복전에 나서게 된 건, 구마국과 사전에 약속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양국은 규슈 북부에 남은 두 영지, 즉 호소카와 영지와 고바야카와 영지를 동시에 공격해 서로 연계하지 못하게 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구마국도 현재 호소카와 영지로 진격 중이었다.
사령부 부관 중의 하나인 이위 정령의 보고를 들은 신첨이 물었다.
“저들도 에도 정권이 등을 돌렸단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군.”
“우리 발해가 에도 측과 교섭을 시작했다는 걸 알면, 삼척동자라도 눈치챘겠지요. 더구나 저들의 거듭된 구원 요청을 에도가 계속 무시하지 않았습니까?”
이번 작전의 주력 부대로 선정된 제9사단의 장호 사단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항복을 권유하면 들어줄 수도 있겠네?”
“저라면 그럴 것 같군요.”
그새 남해부 주둔군 상황에도 다소 변화가 있었다. 또다시 해병대 제9연대와 10연대가 추가되며 기존 제7연대와 8연대를 묶어 해병대 제3사단이 창설되었는데, 제3사단 사령부는 제주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현재 제주도엔 새로 결성된 제9연대와 제10연대가 주둔 중이고, 나머지 해병대 병력은 여전히 규슈 서남부와 남부의 여러 도서, 즉 증도열도와 향남제도 ― 옥구도(야쿠시마)와 종자도(다네가섬) 등이 포함된 오스미제도 ― 를 비롯해, 장단현, 오도현, 장산현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육군 제5사단은 대마도와 일기현, 당진현, 송원현, 해중현에 주둔 중이고, 제6사단은 우루평원 3개 현의 군정을 담당했다.
신첨의 시선이 고바야카와 영지가 그려진 작전 지도에 가 닿았다. 꽤 넓은 땅이고, 또 기름진 땅이었다. 그래서 인구도 많았다. 석고 수로 보면 최소 30만 석이고, 실제로 그보다 더 많다는 얘기도 있었다. 우루평원 못지않게 유용한 땅이라, 반드시 취해야 할 지방으로 처음부터 선정되었다.
“어휴! 저긴 또 얼마나 걸릴까?”
신첨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우루평원을 점령한 이후, 장교들 모두가 행정 관리로 변신해야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왜인들과 소통하고, 또 그들을 이주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꽤 많은 우루평원 거주 농민들이 북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육군뿐만이 아니라 해군 제2함대와 민간 상선들은 이주 농민들을 태우고 북쪽의 청량진항(블라디보스톡)과 아란포항(나홋카)을 쉴 새 없이 오가야 했다.
이들의 주된 이주지는 우수리강 유역이나 미타호 주변의 평원 지대, 연해부 해안 지대였다. 그로 인해 청량진이나 비취도를 비롯한 정의부 해안 지역 역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곳에도 규슈 출신 농민들이 일부 정착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신첨은 제4군단 사령부와 제9사단 병력을 이끌고 국경을 넘어 고바야카와 영지로 진입했다. 발해군은 고바야카와 영지를 동서로 가르며 북쪽 바다로 흘러가는 미카사 강 유역을 따라 천천히 나아갔다. 이처럼 영지의 한복판으로 진입했는데도, 대항군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해안가에 자리한 고바야카와 가문의 거성인 나지마성 앞에 이르자, 결국 고바야카와가 보낸 사절이 발해군을 마중 나왔다.
고바야카와는 발해군의 예상대로 조건부 항복을 요구했다. 상당량의 재산을 챙길 수 있게 배려해 달라, 또 가신과 휘하 무사들이 모리 가문의 조슈번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첨은 고민할 것도 없이 이들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인구 30만을 훌쩍 넘는 고바야카와 영지가 발해 영토로 편입되었다. 발해 측은 훗날, 미카사강을 경계로 삼아, 서부를 박주현, 동부를 축주현이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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