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고뇌하는 에도막부(1)
건흥 10년, 서기 1605년 3월. 왜국 혼슈 서북부 연안 해역.
발해 해군 제2함대 사령관 고경봉은 여전히 북청함의 선미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작은 섬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섬이 더욱 작아지자 그는 미련을 털어 버리고 몸을 돌렸다.
“푸하하하! 그리 욕심이 나십니까?”
웃음을 찾느라 입을 오물거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21전대장 함결은 결국 폭소를 터트렸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뱃사람치고 저렇게 좋은 징검다리를 누가 갖고 싶지 않겠어?”
이들은 어제 도비시마란 섬을 기항지로 삼아 하루 휴식을 취하고 나온 길이었다. 도비시마는 미래 일본의 야마가타현에 소속된, 서부 연안 해상, 즉 동해에 떠 있는 작은 섬이었다. 북해부의 이내진항에서 무려 310장미 거리에 있다 보니, 휴식도 취하고 섬 형편도 살필 겸 들렀다 온 것이다. 소수의 주민이 거주 중인 남의 나라 땅이었으나 발해 함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전대장! 오랜만에 본연의 임무로 돌아오니 좋지?”
“어휴! 말해 뭐 하겠습니까? 한동안 여객선 선장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함결 전대장은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 생각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간 민영 해운사가 부리는 여객선의 수가 꽤 많이 늘어나, 해군 관계자들도 ‘전역하면 여객선을 몰며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냐?’란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을 정도였다.
수년간 제2함대 소속 21전대와 23전대 함선들은 남해부 규슈의 북방 이주 희망자들의 운송 업무를 수행해 왔다. 백만이 넘는 인구 중 무려 7할에 달하는 70만 왜인들을 북방으로 이주시키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국가적 중대사였다.
이들이 이 일에서 벗어나 본연의 해군 임무로 복귀한 건 그간 덩치를 꾸준히 키워 온 해운사 여객선들이 국비 지원을 받으며 이 수송 임무에 대거 투입된 덕분이었다. 그런데도 23전대는 여전히 그 임무에서 몸을 빼지 못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북방의 빈 땅 곳곳에 인구가 채워지고 있었다. 평안부와 황해부에 거주하는, 소작농이나 빈한한 편에 속하는 자작농 가족들도 더 나은 기회를 찾아 계속 이주 중이었다. 그 덕분에 인안부와 홀한부, 동평부, 연해부, 정리부 등 그간 인구가 턱없이 부족했던 지방에 꽤 많은 정착촌이 생겨났다. 특히 연해부 지방의 경우 동해안을 따라 영역이 계속 북방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북해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황해부 주민들이 들어온 이후로 꾸준히 인구가 유입된 덕분에, 고려인 인구만 2만을 훌쩍 넘기게 되었다. 소수의 왜인을 포함해 아이누인 등 이민족이 주로 거주하던 이내진의 인구 구성비도 변해, 이제 고려인이 우세를 점했다.
심지어 유황 광산이 있는 황점산 덕분에 빠르게 성장 중인 모란 지방에도 고려인 주민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군 주둔지가 있어 안전이 보장된 덕분이다. 이곳에서 아이누인과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다 보니, 상인 위주로 정착하고 있었다. 모피 또한 중요한 거래 품목 중 하나이나, 주거래 품목은 당연히 유황이었다.
국가가 직접 관리하던 유황 유통 사업을 작년부터 민간에 넘기자, 상인들이 나서서 아이누인과 직접 거래하기 시작했다. 유황광은 채굴업에 종사하는 아이누 부족 공동체 소유라, 채굴 사업엔 개입하지 못하는 대신, 상인들은 유황을 싼값에 사들여 본토에 풀었다.
발해 정부가 유황 사업을 민간에 넘긴 이유는 남해부 향남제도에 속한 유황도에서 유황이 대량으로 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황은 화약의 원료로 쓰일 뿐만 아니라, 약재나 각종 수공업 공정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유황의 수요는 의외로 많은 편이었다.
“비도를 지나왔으니 이제 해안선 가까이 접근해 볼까?”
“예, 전대장님.”
함결 전대장의 지시에 북청함 함장이 대답했다.
“120도로 변침하라!”
도비시마를 발해 측은 고려어 한자음 그대로 읽어 ‘비도’라고 했다.
“그런데 왜 기하께서 이번 항해를 명령하셨을까요?”
변침을 마치자 함결이 고경봉 사령관에게 물었다.
“글쎄다. 태산국을 지원해 주려고?”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요즘 에도막부 애들, 약이 바짝 올랐을 테니까요.”
발해 측은 도쿠가와 정권을 ‘에도막부’라 칭하고 있었다. 그러자 왜인들도 자연스레 그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나 등장할 ‘막부’란 말이 더 일찍 쓰이게 된 것이다.
타이잔국의 독립은 왜국 전체에 엄청나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구마국 독립 당시도 그랬으나, 모리 가문의 경우는 더 큰 충격을 선사했다. 본토 중의 본토인 혼슈에서 일어난 일이고, 여전히 왜국 곳곳에 반대파인 도요토미를 지지하는 영주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고니시 가문이야 어차피 처음부터 반기를 들었던 데다, 거리가 먼 규슈에서 건국했기에 충격이 한결 덜한 편이었다.
도쿠가와는 이제 예전처럼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지방 세력들이 대거 떨어져 나갈 수도 있고, 독립을 꿈꾸는 제3의 세력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가신 영지들에서 병력을 모아 타이잔국의 북쪽 접경 지방인 하마다번과 동부 접경 비젠오카야마번에 병력을 보내, 타이잔국의 동진과 북진을 저지하게 했다. 하마다번은 에도막부의 직할령이고 비젠오카야마번 ― 미래의 오카야마현 ― 은 이케다 타다시카가 번주였다.
“그렇겠지. 우리 발해 눈치 보느라, 태산국을 치기도 어려울 테니까.”
고경봉이 짚은 부분이 바로 에도막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막부 측은 타이잔을 보호국으로 받아들인 발해의 조치에 대해 항의하는 밀사를 남해부로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발해의 태도는 굳건했다. 피로인의 대규모 송환 이후 지금까지 발해 해군은 여전히 세토내해로 진입하지 않고 있었다. 즉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는 것이다. 아울러 발해와 왜는 여전히 전쟁 중이란 사실을 잊지 말라고 재확인해 줬다. 또 보호조약은 타이잔이 침범당하는 경우에만 유효하단 원칙도 알려주었다. 그러자 밀사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섬 하나가 나타났다. 발해식 지명으로 속도, 즉 아와시마였다. 그곳을 지나 몇 시간 더 항해하자 드디어 우현 쪽에 목적지가 나타났다. 바로 사도가 섬이었다.
고경명은 21전대 함선들을 사도가섬과 시바타번(미래 니가타현의 일부) 사이에 있는 해협으로 진입시켜, 시바타번 해안선을 따라 항해한 다음, 사도가섬을 향해 나아가게 했다.
사도가섬 서남부 해안이 전방에 모습을 드러내자, 함결이 고경봉에게 물었다.
“저기에서 금과 은이 그렇게 많이 난다고 했지요?”
“명령서에 그렇게 쓰여있더군. 금이 많이 나고, 은 또한 왜의 다른 대형 은광 못지않게 많이 난다고.”
사도가섬은 에도막부 직할지로, 여기서 금맥이 발견된 건 4년 전의 일이었다. 그래서 에도막부 기간 내내, 막부의 보물 창고로 기능하게 된다. 태건도 그 사실을 알기에 제2함대를 사도가섬으로 보내 막부를 위협한 것이다.
“허허! 그럼 우리 함대가 이곳에 출몰한 사실이 알려지면 난리가 나겠는데요?”
“그걸 노리는 거지. 그래야 놈들이 더 적극적으로 피로인을 모아 방면해 주지 않겠어?”
태건은 더 늦기 전에 왜국에 남아 있는 피로인을 모두 데려오려고 했다. 그래서 일단 일본 서북부 해안과 사도가섬 인근 해역에 함대를 보내 무력 시위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저들이 과연 응할까요?”
“그래야 할 걸세. 안 그러면 저 사도가섬을 우리가 빼앗는 수도 있으니까.”
고경봉은 탐욕이 깃든 눈으로 사도가섬을 바라보았다.
* * *
동해부 경흥현은 인구가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어느새 3개 행정구역으로 나뉘게 되었다. 아오지사와 옛 경흥 중심지를 합쳐 경흥시가 되었다. 또 조산사와 서수라사, 웅상사, 굴포사 등 동해안 지역이 하나로 합쳐져 조산시로 독립했다. 그리고 나머지 지역이 하나로 묶여 안화시가 되었다. 경흥현에서 무려 3개의 시가 탄생한 셈이었다.
이들이 모두 시로 승격된 이유는 대규모 공업단지 덕분이었다. 안화시의 경우 수리항(미래의 라진항)을 중심으로 조선업이 크게 성했고, 조산시 역시 조산동과 노구동에 걸쳐져 있는 공업단지로 인해 일찌감치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태건의 첫 터전인 경흥시는 원래 인구가 많았다. 그리고 회동에 들어선 수공업 단지가 많은 사람을 끌어모은 데다, 아오지 지역에서 여러 탄광이 개발되고, 대규모 화학 플랜트가 들어섬에 따라 제1호 도시인 슬해시만큼이나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도시가 되었다.
아오지에 들어선 이 석탄화학단지는 경기현 국화동의 제1단지보다 더 규모가 크기 때문에 타지에서 젊은 노동력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5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된 이 제2석탄화학단지는 벌써 활발하게 가동되며, 원자재와 중간재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태건과 이하륜은 오늘 특별히 이 화학 플랜트의 가장 서쪽에 자리한, 새로 조성 중인 시설을 살피기 위해 현장을 방문했다.
이 시설은 석탄으로 석유를 만드는, 석탄액화 공장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국 독일은 석유를 구할 길이 없자, 석탄액화 시설을 대대적으로 늘려 전쟁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때 쓰인 기술을 태건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태건은 베르기우스법으로 알려진 액화 기술을 이곳 아오지 단지에 적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틈틈이 이곳을 방문해 장인들을 돕고 있었다.
“수소 포집 장치는 문제없이 돌아가지요?”
태건의 질문에 고려화학공사 사장 문경진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벌써 여러 번 실험했습니다. 하지만 저장 시설이 시원치 않아, 지금은 대부분 그대로 배출 중입니다.”
석탄액화 시설이 석탄화학 플랜트 내에 있다 보니, 공정에 필수적인 재료인 수소를 얻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수소를 액화할 만한 기술이 없다 보니, 고압의 기체 상태로 저장하는, 강철로 만든 임시 저장 시설만 있어, 본격적으로 시설을 가동하기 전까지 공중으로 배출할 수밖에 없었다.
태건은 공정들을 차례차례 살폈다. 석탄액화 과정 중 첫 번째를 차지하는 건 석탄을 먼지처럼 부수는 공정이었다. 그리고 고온 고압 상태에서 고압 수소를 불어넣어 액화하는, 가장 중요한 공정이 그 뒤를 이었다. 그래서 생산된 석유를 저장하는 시설도 건설되고 있었다. 마지막은 이 석유를 정제해서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를 비롯해 여러 석유 제품을 얻는 공정인데, 여기에 들어가는 시설은 정유 공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현재 석탄액화 시설은 이미 완공되어 실험을 거듭하고 있고, 정제 시설은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시설을 모두 둘러본 태건과 이하륜은 공단 남쪽에 자리한 동산에 올라 제2석탄화학단지, 즉 고려화학공사 제2공장을 조망했다. 올해 초 준공된 공장들은 벌써 연기를 뿜어내며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형님. 나프타야 최대한 많이 생산되고 또 그걸 죄다 써먹겠지만, 다른 제품은 어쩌지요?”
이하륜이 물었다.
이 인공 석유 제조 공장을 건설한 이유 중 첫 번째가 바로 나프타를 양산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합성수지와 합성고무, 합성섬유 제품의 생산을 본격화할 심산이었다. 특히 상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포장재로 쓰일 비닐의 양산이 시급했다. 심지어 어부들 어획량을 늘리려면 합성수지로 만든 그물을 보급해 줘야 한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플라스틱과 비닐 재질의 신제품들이 필요했다.
“일단 모아 둬야지. 석유 가스는 바로 이 단지 내에서 연료로 재활용하고.”
“그럼 작은 내연기관부터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벌써 내연기관을?”
“예, 언제 완성될지 모르나, 어차피 연료까지 확보된 마당이니 시도해 볼 필요는 있죠. 소형 2행정 엔진이라도 개발해 놓으면 휴대용 기계톱 정도는 제품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기술이 축적되다 보면 나중에 내연기관 자동차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좀 먼 얘기다. 만들면 뭐 하겠어? 연료 공급이 어려운데. 석탄화학산업으로 석유를 만들어 쓰는 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잖아?”
“비용 면에서 보면 그렇긴 하죠. 그러자면 유전을 개발해 석유를 뽑아 써야 할 테니까.”
“작은 내연기관 정도면 여기서 소량으로 생산되는 연료유 제품을 활용하기에 괜찮을 것 같긴 해.”
“예, 천천히 개발해 볼게요.”
이하륜은 스스로 또 다른 과제를 짊어졌다. 석유가 생산된다고 하자, 욕심이 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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