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나화 발해 특구 (1)
2년 후 건흥 12년, 서기 1607년 5월 초.
파야카해협 연안에 자리한, 발해 육군이 관리하는 비아진 교역소.
제5연대장 아을기 정령은 해변 언덕에 서서 수평선을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체념하는 표정으로 제1대대장 홀민 부령에게 물었다.
“여기선 사하란섬이 보이지 않네?”
“더 북쪽으로 가야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이들이 자리한 곳은 파야카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에서 남쪽으로 약 100장미 거리에 있는 해변 지역이었다.
“올해는 얼음이 일찍 녹았나, 유빙이 대부분 사라졌는데?”
“정말 드문드문 보이네요. 아무래도 날이 일찍 풀려서 그런가 봅니다.”
홀민 부령은 동해 니마차 부족 출신으로, 홀한현에서 나서 자랐기에 본관을 ‘홀한 홀씨’로 정했다. 홀민과 아치랑귀 부족 출신인 아을기 연대장은 동해어에 능하다 보니, 원주민과 접촉면이 넓은 최북방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파야카해협의 결빙기는 11월부터 3월까지 총 5개월 정도인데, 5월에도 흑룡강 하구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이 관측되곤 했다.
파야카해협은 미래의 타타르해협으로, 해안에 파야카(니브흐) 부족이 주로 거주한다는 점을 고려해 태건이 붙여 준 이름이었다. 훗날 이곳에 붙게 될 비아진이란 지명도 그랬다. 파야카를 한자로 ‘비아객’이라 표기한다는 점에 착안해 붙인 이름이었다. 비아진은 미래 러시아 하바롭스크 주의 ‘데카스트리’란 항구도시에 해당했다.
이곳 비아진은 발해 육군이 설치한, 역참을 겸한 교역소 중 최북단에 자리했다. 군은 그간 꾸준히 흑룡강 남쪽 강변을 따라 하류 쪽으로 진출하며 10장미에서 30장미 간격으로 역참을 세우고, 역참로를 개척했는데, 마침내 바다가 보이는 이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사실 이곳은 흑룡강 강변에서 다소 벗어난 지역이었다. 비아진으로 오기 직전에 만난 강변 지형이 늪으로 변한데다, 그 늪과 연결된, 그 폭만 무려 45장미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와 대면해야 했다. 그래서 부득이 늪지대 진입을 포기하고 호수 남쪽의 산지로 우회하여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곳 비아진 해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연대장님. 이쪽으로 와 보시지요.”
부장 최강구 부령이 아을기를 불렀다.
“왜?”
“이거요. 비석입니다.”
최강구가 가리킨 곳을 보자, 한글이 선명하게 새겨진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어~! 드디어 찾았군. 역시 제2함대가 세운 비석이 맞군. 해군이 준 지도가 대체로 정확한 것 같지?”
제2함대는 예전에 탐험차 동해안을 따라 흑룡강 하구까지 항해하며, 곳곳에 비석을 세웠는데, 대개 항만을 조성할 만한 곳이 선택되었다. 아을기는 이곳 지형을 조사한 뒤, 비아진이라 확신했다. 해군은 이미 파야카해협을 여러 번 탐험했기에, 내륙은 몰라도 해안선만큼은 정확하게 조사해 지도로 만들었고, 그것을 육군에 제공했다. 그래서 아을기는 혹시 비석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한 것이다.
“흑룡강 하구까지 얼마나 더 남았다고 했지?”
“이백에서 삼백 장미는 더 가야 할 겁니다. 해군 지도에 그렇게 나와 있네요.”
최강구 부장이 대답했다.
“어휴! 아직도 멀었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먼 데 있는 교역소를 앞으로 어찌 관리할지 눈앞에 캄캄하군요.”
“뭐가 걱정인가? 얼음 얼기 전이라면 강에 배를 띄울 수 있으니 문제가 없지. 이곳 비아진 같은 곳은 바다를 통해 보급품을 받을 수도 있고. 그리고 겨울이 되면 흑룡강 전체가 평평한 빙판길이 되잖나? 조금 추워서 그렇지, 역참마다 들르며 쉬엄쉬엄 이동하면 겨울에도 원만히 보급받을 수 있을 거네. 문제가 될 시기라고 해 봐야 결빙기나 해빙기 직전이지. 길이 진창인데다, 잔설도 많이 쌓여 있으니까.”
“제대로 된 도로가 건설될 때까지 그 몇 달 동안 자급자족하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원주민 도움도 받고요.”
홀민이 웃으며 말했다.
“뭐, 그래야지. 그래도 원주민이 호의를 보여 줘서 참 다행이야.”
원주민은 발해군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이미 보호리까지 와서 거래하던 이들이라, 더 가까운 곳에 교역소가 열렸다며, 크게 기뻐했다. 발해군은 결코 원주민의 땅과 재산을 빼앗지 않기 때문에, 사이가 나쁠 이유가 없었다.
이처럼 교역소가 잘 운영되는 이유는 발해 상단의 집요함 때문이었다. 이들은 악천후와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이곳 북방까지 상행을 이어 왔는데, 그 이유는 바로 모피 때문이었다. 호랑이와 표범 가죽 가격을 미래 대한민국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각기 1억 3천5백만 원과 2억 원에 해당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어, 단 한 장이라도 얻으려 상행을 나오곤 했다.
주둔군 병력도 가끔 호랑이와 표범을 잡아 상인들에게 그 가죽을 넘겼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의 절반은 사단 재정에 보태졌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사냥에 성공한 단위 부대 병력이 나눠 갖곤 했는데, 육군본부도 이런 관행을 용인했다. 그런 뜻밖의 보상이 있다 보니, 북방 역참로 개척 작전에 투입된 병사들도 군말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우리 사단 사람들이 다들 고생이지.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러게요. 좋은 시절은 다 갔네요.”
최강구 부장은 다른 연대 동료들이 직면한 상황을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다.
현재 제7연대와 8연대는 흑룡강을 건너서, 제5연대와 똑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사할리얀계 부족들의 귀부로 일란 북쪽, 흑룡강과 송화강 사이에 자리한 땅이 발해 영토로 편입되자, 태건은 국경선을 흑룡강이 아닌, 흑룡강 너머 북쪽에 자리한, 산지가 시작되는 곳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이 산지는 외흥안령산맥 ― 러시아는 스타노보이산맥이라 이름했고, 몽골인은 수흐바타르산맥이라 칭했다 ― 의 남쪽에 자리한 산지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형태의 산맥이었다. 발해는 이 산줄기에 ‘어웡키산맥’이란 이름을 붙였다. 어웡키(에벤키) 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그간 일란과 회원 등지에서 한가하게 지내던 이들 두 연대는 갑자기 바쁜 일과와 마주해야 했다. 이들이 역참로를 개척해야 하는 땅의 폭이 무려 100장미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 개척 작전이 완료되면 또다시 흑룡강 이북에 자리한 평원 지대가 발해 영토로 들어오게 된다.
그 길이가 무려 600장미, 폭이 100장미에 달하는 이 광활한 평원을, 태건은 아무르평원이라 명명했다. 파야카나 어웡키 부족은 흑룡강을 ‘큰 강’이란 뜻을 지닌 ‘아무르강’ 혹은 ‘다마르강’ 등으로 지칭했기에 이 이름을 쓴 것이다.
“연대장님! 배가 나타났습니다.”
홀민 대대장이 깜짝 놀라며 바다 쪽을 가리켰다.
“오호! 드디어 2함대가 왔군.”
얼마 전 사단사령부에서 전령이 와서, 이곳 비아진에서 2함대로부터 보급받은 다음 움직이라는 명령을 전달해 줬기에, 제5연대 소속 병력은 이곳에서 역참과 교역소를 건설하며 2함대가 오길 기다린 것이다.
* * *
류큐국의 수도, 수이성(류큐어 발음으로, 슈리는 일본어) 서남쪽에 자리한 나화(나하) 포구는 사실 육지가 아닌 작은 섬들의 집합이었다. 그러나 퇴적물이 쌓여 육지화가 진행 중이라 육지와 연결된 섬이 많았다. 그래서 류큐국은 제방을 길게 쌓은 다음 제방을 따라 항구를 조성해 도시다운 면모를 갖춰 가고 있었다.
나화 남쪽에는 대호라는 길쭉하게 생긴, 수량이 매우 풍부한 호수나 다름이 없는 바다가 있는데, 훗날 만호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이 바다와 연결된 대호 덕분에 나화는 천혜의 항구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3함대 사령관 태미는 새로 창설될 34전대의 기함인 초량함의 선수루 갑판에 서서 대호와 나화항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여긴 그새 또 바뀌었네요?”
“얼마 만에 오셨지요?”
초량함 함장 겸 34전대장으로 내정된 송희립 참장이 태미에게 물었다.
“한 일 년 된 것 같네요.”
태미는 그간 결혼식도 올릴 겸, 약 1년 동안 안식년을 가졌다. 함대 사령관으로 쉴 새 없이 달려온 데 따른 보상이었다. 혹자는 결혼도 했으니 이제 서울에서 지내며 태건을 보필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태미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심지어 이하륜조차 태미의 복귀를 지지했다.
“일 년이면 그러고도 남지요. 우현 쪽을 보십시오.”
송희립은 고개를 돌려 대호의 남쪽 연안을 가리켰다. 그곳이 이 배의 목적지였다.
“놀랍네요. 벌써 배들이 저렇게 많이 드나들고 있다니.”
현재 34전대는 경흥급 대선 두 척과 아오지급 중범선 한 척으로 구성된, 아직 편성이 진행 중인 부대였다. 송희립은 전대장으로 내정되자마자 34전대가 담당하기로 한 류큐왕국 해역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초계 임무를 수행해 왔다.
“우리 34전대가 쓸 기지도 벌써 완공되었습니다. 상관도 계속 생겨나고 있고.”
“나도 그 얘길 전해 들었어요. 근데 꽤 빨리 공사가 진척되었나 보네요?”
“유구국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뭐, 우리도 품삯을 충분히 지급했지만, 그래도 사람 모으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송희립의 걸걸한 목소리는 묘하게 정감을 불러일으키고 사람 맘을 편하게 한다. 사실 태미는 쉰을 훌쩍 넘은 데다, 이순신 장군의 부장으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송희립을 부하로 두는 상황을 몹시 부담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송희립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태미를 편하게 해 주었다. 더구나 그간 3함대를 이끌며 남해부 해역에서 맹활약한 태미를 존중하는 마음도 있었다.
드디어 초량함과 대마함, 울릉함은 금성진의 금성항에 도착했다.
금성진은 류큐국이 발해에 내준 특별 구역으로, 나화 서쪽 끝에 자리한 땅이다. 땅의 형태는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기울어진 삼각형 모양인데, 그 높이와 밑변의 길이가 모두 3.5장미 정도로, 마카오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였다. 서쪽은 태평양 해변이고 동북쪽은 대호와 접해 있다 보니 동남쪽만 류큐국과 육지로 연결되었다. 21세기의 이곳은 나하공항과 일본 육상자위대 및 항공자위대 주둔지였다.
2년 전, 류큐를 방문한 태미는 상녕왕과 협상을 벌여 이 땅을 얻어 냈다. 물론 몇 가지 조건이 붙었다. 먼저 발해와 류큐왕국이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고 류큐 상인에게 초량을 개방해야 한다는 점, 또 발해 함대가 정기적으로 류큐 해역을 순찰하며 해적을 퇴치해 줘야 하고, 발해 상단들도 이곳에 진출해 상관을 열어야 한다는 조항 등이었다.
금성진은 미개발지였다. 항구로 성장 중인 대호의 맞은편 연안에 자리해 있다 보니, 왕래하기 어려워 소수의 어민만 거주하던 땅이었다.
“저기 보십시오. 많은 이들이 마중 나와 있네요.”
금성항 부두엔 옹대성과 마청우를 비롯해 꽤 많은 류큐국 인사들이 나와 있었다. 심지어 수백 명의 류큐 백성들도 몰려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뭐, 이렇게까지…….”
태미는 너무나 많은 환영객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3함대 사령관 이전에 공주님이잖습니까? 이곳에서 공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어쩌다 만난 서양인들도 공주님 안부를 묻곤 했지요. 허허허!”
“아, 그, 그래요?”
태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런데 서양 상인들도 저곳에 들르기 시작했나요?”
태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1년간의 공백을 빠르게 따라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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