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무역선 어화진호 (2)
이조판서 기자헌이 대답했다.
“상공업이 활성화된 덕분입니다. 이득이 있으면 세금이 따른다는 원칙에 따라, 거대한 부를 축적한 상공업자들이 조세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고 있어, 소농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할 필요가 없답니다. 그런 실상이 조선에도 널리 알려져 더욱 이탈자가 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발해의 사례가 알려짐에 따라 조선도 상공업을 활성화할 심산으로 실제보다 더 빨리 상평통보를 주조했다. 25년이나 일찍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아직 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아울러 은광도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명과 통하는 육로가 끊기다 보니, 이제 명이 은을 모두 빼앗아 갈 거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덕분이었다. 확실히 현왕은 선왕 선조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여전히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그는 또 다른 중대한 선택을 앞두게 되었다. 바로 외교 현안과 관련한 논쟁인데, 그로 인해 정파 간의 충돌이 극심해졌다. 싸울 명분이 필요했는데, 그걸 때마침 제공해준 모양새가 되었다. 그건 우습게도 후금과 관련한 논쟁이었다.
“전하, 근데 후금에 사신을 보내는 문제는 어찌 처결하실는지요?”
사실 오늘 회동의 주요 현안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이첨이 묻자 국왕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휴! 글쎄. 대사간은 어찌 생각하오?”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오랑캐와 손을 잡고 동족을 치겠나이까? 아무리 후발해가 법도가 없는, 오랑캐나 다름없다고 할지라도 동족의 나라 아닙니까?”
조선 조정에 파문을 일으킨 주체는 명이었다. 명은 이미 내통하고 있는 후금에 조선까지 더해, 삼각 동맹을 맺자고 제안했다. 다른 관계는 이미 구축되어 있으니, 조선과 후금 관계만 정리하면 되는 셈이라, 후금이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한마디로 발해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인 셈이었다. 그 정도로 명은 지난 요동전쟁 이후 발해를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다.
“소신은 이 사안을 아예 논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나이다. 우리 조선은 육로가 막혀 후금은 물론 명과 교역조차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동맹에 가담해 봐야 훗날 등 떠밀려 참전해 많은 인명을 잃게 될 겁니다.”
기자헌은 아예 논하지도 말자고 했다. 그러자 왕이 반문했다.
“그건 어렵소. 조만간 명에 답을 줘야 하니까.”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결정을 해도 결국 우리나라에 손해될 일만 있고, 조정도 분열을 면치 못할 겁니다.”
명은 왜란에서 나라를 구해 준, 재조지은을 입은 나라였다. 그 때문에 사대주의와 관계없이 무조건 명을 신봉해야 한다는 신념이 조선 지배층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명이 원하므로 당연히 후금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 주로 꼬장꼬장한 지방 사림들이 그랬다. 중앙의 경우 서인과 남인들도 이편에 섰다.
그러나 집권당인 북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 외교적 결정으로 인해 또다시 발해와 전쟁을 치른다면 조선은 반드시 망국에 이르리라 판단했다. 그렇다고 그런 명분을 내세울 수는 없으니 동족 핑계를 댔다. 오랑캐와 손잡고 어찌 동족을 해하겠냐는 논리였다.
그러자 반대편 당파는 왜인과 여진족이 발해 백성으로 대거 포함되었다는 점, 또 문묘도 설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오랑캐와 다름없다는 논지를 펼쳤다. 즉 동족의 자격이 없다는 논리였다.
문묘는 공자와 그 제자, 대 유학자들을 모신,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설인데, 발해는 사대주의를 배격하는 국가이기에 국가 차원에서 문묘를 세우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정체성을 중시하는 유학자들은 성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발해를 야만 국가 혹은 반드시 토벌해야 할 적으로 인식했다. 더구나 재조지은을 입은 명과 전쟁까지 치렀으니, 유림에게 발해는 동족 이전에 적이었다.
북인 관료나 국왕은 실용을 중시했기에, 또다시 발해와 전쟁하는 위험천만한 선택을 피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논리도 내세웠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나마 조선 백성의 대다수가 친발해 성향을 갖고 있다 보니, 지배 계층의 여론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서인과 동인도 조금은 자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휴! 큰일이로고. 할 일이 많은데, 이런 소모성 논쟁이나 하고 있으니.”
국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구마와 태산이란 왜 신생국의 수교 요청에 대해선 어찌 처결하실지…….”
기자헌이 새로운 의제를 꺼냈다.
발해의 보호국 지위에서 벗어난 두 나라는 왜와 발해 간에 강화가 성립되자, 이번 기회에 조선과 다시 교역을 재개하고자 했다. 그래서 올해 초 사자를 보내 지난 전란에 참전한 점을 깊게 뉘우친다며 용서를 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아울러 교역을 재개해 달라는 요청도 덧붙였다.
이 문제로 또다시 찬반양론이 크게 나뉘었다. 북인과 남인은 당연히 찬성했다. 막부는 몰라도 두 신생국은 이미 다른 나라이고, 사과까지 했으니 받아들이자고 했다. 그러나 서인은 오히려 반대표를 던졌다. 왜국이라면 이를 가는 백성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자 한 것이다.
“그건 반대하는 신료들을 일일이 설득해서라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장 구리와 유황을 구하자면 저들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아니면 무슨 수로 화약을 만들겠습니까?”
이이첨이 강경하게 나갔다.
“맞는 말이오. 명과 육로가 끊긴 지금, 우린 고립무원의 처지에 있소.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물산을 얻을 길은 저들 두 신생국과 교역하는 수밖에 없소.”
왕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 역시 유황 자원의 수급을 가장 큰 문제로 인식했다.
“화약을 만들지 못하면 어떻게 나라를 지키겠냐는 논리를 내세우면 저들도 물러서지 않겠습니까?”
기자헌도 같은 생각이었다.
왜와 교역이 단절되었다고 해도 조선에 유황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듯 어둠의 경로가 있었다. 왜국 상인이 몰래 남해안으로 넘어와 조선 상인에게 유황과 구리 등을 팔곤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밀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 *
퍼퍼펑! 퍼펑!
느닷없이 코레아호의 화포들이 어화진 호를 노리고 불을 뿜었다. 포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포구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크헉! 저, 저놈들이!”
“기, 기습이다! 필수 인원만 남고 나머진 선실로!”
박술 선장과 안철진 항해사는 네덜란드 측의 기습에 대경실색했다. 그러나 둘 다 해군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라, 두 사람의 대응은 매우 기민했다. 안철진은 상갑판에 있는 선원들을 향해 소리치더니 번개처럼 2층 갑판에 있는 화포실로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아직 거리가 있어 네덜란드 화포의 명중탄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놈들이 감히 발해 배를 건드려?”
박술 선장은 크게 분노했다.
“젠장! 이래서 원해에서 큰 배와 마주치면 무조건 화포를 장전해 두란 규칙이 정해졌군요.”
조타수도 해군 갑사 출신이었다.
“맞는 말이다. 이런 황망한 일에 대비하잔 거였구나.”
그런 규칙은 있으나 꽤 오랫동안 해군 생활을 한 선장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퍼펑! 펑!
어화진호 화포도 반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겨우 포탄 세 발만 날렸을 뿐이었다. 민간 상선이라 우현과 좌현에 각기 3문씩 겨우 6문만 보유한 탓이었다.
“180도로 변침하라!”
박술은 일단 도주하는 게 상책이라 판단했다.
“예, 180도 변침!”
조타수는 재빨리 키를 돌렸다.
쿵! 파직!
결국 명중탄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화진호의 상갑판에 포환이 명중해 구조물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또 한 발은 우현 뱃전을 뚫고 들어갔다. 그로 인해 2층 갑판에 있던 선원이 다쳐 비명을 질러 댔다.
“제기랄! 화력이.”
코레아호는 30문이나 되는 화포를 보유해 화력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또한 배수량도 1,200톤으로 500톤인 어화진호보다 두 배 이상이나 컸다.
굉음을 동반해서 계속 명중탄이 나왔고, 어화진호는 점차 누더기가 되고 있었다. 벌써 목숨을 잃은 선원도 나왔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속도도 문제였다. 덩치 탓에 코레아호가 훨씬 빨랐다. 이대로 가면 곧 따라잡힐 게 분명했다. 그렇게 거리가 좁혀지면 화포 수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코레아호에게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화포실로 달려갔던 항해사가 돌아왔다. 안철진 역시 상황을 인지하자 절망감에 휩싸였다.
박술 선장은 선원들을 떠올렸다. 80여 명이 승선한 이 배엔 해군 출신 동료가 열 명 정도 승선해 있고, 나머지는 순수한 뱃사람들이었다. 제주도 출신 선원이 삼 할이고, 나머지는 대마도 현지민이었다. 이들 중 육군을 포함해 군 생활을 한 이는 모두 합해 봐야 20명도 되지 않았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놈들은 우리 배를 빼앗으려 이 짓을 벌인 거겠지?”
선장의 물음에 안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하지요. 해적이라고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항복하면 우릴 죽일까?”
“저놈들한텐 사람도 돈입니다. 노비로 부리거나 다른 곳에 팔아넘길 겁니다.”
“어쨌든 죽이지는 않겠지?”
“예, 아마도.”
“그럼 항복할 수밖에 없겠군.”
안철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어화진호는 백기를 게양하고 포문을 닫아 버렸다.
* * *
코레아호 선장 루벤 비서는 어화진호에서 백기가 오르자 이빨이 드러나도록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발해라고 해 봐야 뭐 별거 없군. 크크크!”
그는 사상 최초로 발해 배를 잡은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우쭐거리는 그를 부선장 리암 보스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장이나 배수량을 비교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저 배가 화물을 많이 싣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리암 보스는 흘수선이 꽤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어화진호에 화물이 없을 거라는 점을 간파했다.
루벤 비서는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사, 상관없다. 저 배는 분명 나화에서 거래를 마치고 왔을 테니까 은화를 많이 갖고 있겠지.”
“지사장님이 이 일을 과연 좋아할까요?”
리암 보스는 반 바르비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었다.
“후후! 당연히 좋아하시지. 동아시아에서 저런 배를 얻기가 어디 쉽겠어? 더구나 돈과 노예도 얻을 수 있고.”
“그러다 발해 해군에 들키면요?”
“안 들키게 해야지. 배는 인도 쪽으로 돌리고, 선원은 말루쿠나 반텐 쪽으로 끌고 가서 노예로 삼든지, 팔아 버려야지.”
루벤 비서는 신나서 떠들어 댔다.
그는 동아시아 해역에서 해적 행위를 금지한다며, 발각 시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발해 당국의 위협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세상 모든 종족이 정복 대상일 뿐이고, 배를 타면 해적질은 당연하단 신념을 갖고 있던 그는 결국 오늘 사고를 치고야 말았다.
부선장 리암 보스는 그를 끝까지 말렸다. 반 바르비크가 허튼 행동하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했다는 점도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나 루벤 비서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그간 당한 수모에 대한 분풀이로 생각했다.
“그러게 왜 이 먼바다까지 나와. 여긴 우리 바단데. 여기로 나올 거면 이런 일을 겪을 걸 각오했어야지. 크크크!”
결국 루벤 비서 선장은 해괴한 논리까지 동원했다.
이윽고 어화진호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선장은 갈고리 달린 밧줄을 던져 두 배의 뱃전을 붙이게 했다. 덩치의 차이로 인해, 상갑판의 높이가 꽤 차이가 났다.
코레아호 선원들은 화승총을 장전한 채, 어화진호 선원을 조준했다. 화승에 불도 붙여 두었다. 그걸 본 어화진호 선원들은 손을 들어 확실히 항복 의사를 표명했다.
두 배 사이에 판자가 걸쳐지고, 선장과 선원들은 미끄럼틀을 타듯 판자를 타고 어화진호로 건너가 배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