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포르모사섬 (1)
태건은 지폐를 뚫어져라 세세하게 살피더니, 손가락으로 비벼 보기 시작했다.
의정대신 이하륜은 그 모습을 미소 띤 채 지켜보았으나, 담당 기관장인 탁지부대신 홍진과 전환국장 방혹은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초조한 눈빛으로 태건의 손동작을 쫓고 있었다. 늘 신속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태건답지 않게 꽤 오랫동안 만지작거린 탓이다.
태건이 비로소 고개를 들자, 방혹이 나서서 주화 시제품도 바쳤다.
“오! 새로 제작된 은화와 동전이네?”
“예, 기하. 5전에 해당하는 은화와 1전 및 50푼짜리 동전입니다.”
방혹이 대답했다.
“괜찮군. 그럼 지폐는 1원과 50전 두 종류이고, 10전 이하 화폐는 모두 주화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1원짜리 기존 은화는 어찌 되오?”
“당연히 지폐와 같이 유통됩니다.”
“금액이 더 큰 금화는?”
“무조건 회수할 예정입니다. 금을 비축하고자 지폐를 발행했으니까요.”
“그럼 백성들 대부분이 지폐 대신 은화를 원할 수도 있겠네요?”
“예, 되도록 지폐 사용을 유도하겠지만 수요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어쨌든 시중에서 은화도 계속 거둬들여, 발해은행에 쟁여 두거나 국제 결제 수단으로 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좋군.”
“지폐 품질은 어때요?”
이하륜이 태건에게 물었다.
“아~주 좋아! 꽤 거칠게 구겨도 봤는데 별로 헤지지 않더라고. 이 정도 내구성이면 괜찮을 것 같군. 수고했어.”
발해에서 새로 통용될 지폐는 면섬유로 만든 것이었다. 더구나 발해가 가진 모든 인쇄 기술을 총동원하여 위폐 제작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하게 인쇄되었다.
가장 액면가가 큰 1원짜리 지폐의 경우, 화원이 그린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어진(상상도)을 넣었고, 50전 지폐에는 장수태왕 그림을 넣었다. 옛 발해의 태조태왕 대조영도 추천되었으나, 물가가 오르면 액면가가 더 큰 지폐가 발행될 예정이기에 뒤로 미루기로 했다.
또한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로 1원이란 금액이 표시되었고, 발해은행권이란 발행 주체도 새겨졌다. 아울러 ‘이 지폐의 소지자가 원하면, 1원에 해당하는 금이나 은으로 바꿔 주시오’라는 작은 크기의, 정중한 문구도 삽입되었다.
지폐라는 게, 그 본질이 계약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문구를 넣은 것이다. 그래서 발해 백성은 한동안 이 지폐를 ‘금은표’라 부르게 된다. 그들 역시 금과 은으로 바꿀 수 있는 계약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 문구만 보아도 발해가 화폐제도로 금은 복본위제를 채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성들이 지폐 수령을 거부하진 않을까?”
태건이 홍진에게 물었다.
“탁지부도 그 점이 걱정되어 광범위하게 여론을 수집해 보았는데, 별달리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1원과 50전은 꽤 액수가 커서, 일반 백성보다 상인들이 주로 활용하고 있지요. 예전부터 ‘환’이란 지전을 썼던 상인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발해의 하급 관리 첫 월급 ― 발해 인건비의 기준점 ― 은 10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인구 증가에 따라 노동력도 풍부해지고, 사회가 빠르게 분화함에 따라 그보다 낮은 월급을 받는 직업도 많이 늘어나, 초임이 7원 이하인 직업도 흔해졌다.
그러므로 1원이면 꽤 큰 금액이기 때문에, 1원권 지폐가 범용 화폐로 기능하긴 어려웠다. 1원의 절반 금액인 50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일반 소매 시장에선 여전히 주화가 주로 유통될 가능성이 컸다.
“예금은 어떤가? 많이 이용하나?”
“예. 예금 역시 상공업자들이 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발해 조정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보니, 돈을 맡기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에 따라 일반 백성들도 조금씩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저축하는 추세가 나타났지요.”
홍진이 대답했다.
“계좌 만들 때, 인장과 함께 지문을 등록하게 한 점도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하륜이 의견 한마디를 덧붙였다.
발해 조정은 은행저축제도에 관한 믿음을 얻으려 지문 등록제까지 도입했다. 인장도 위조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이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사람마다 고유의 지문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중에서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럼 앞으로 새 주민증을 발행할 때 지문 등록제를 잘 써먹을 수 있겠군.”
“예. 충분합니다. 지폐를 만들 때 쓴 면섬유 재질도 개발되었고, 유지 피복 입히는 것도 가능해질 테니까요.”
유지는 곧 비닐로, 비닐이 기름종이를 대체하자 이 신소재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므로 유지 피복은 곧 비닐 코팅을 뜻했다. 주민증 발행 시, 지문을 등록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아직 사진 기술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에, 그게 당사자를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탁지부 관련 안건이 마무리되자 홍진과 방혹이 편전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곧바로 참정대신 허균이 알현을 청했다.
“또 왔네?”
태건은 허균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예, 기하. 부디 저를 남해부로 보내 주십사~ 간청드리려고. 저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기회에 고위직을 대거 물갈이해야 합니다. 현재 인사 적체 현상이 너무 심해, 관리들의 의욕이 저하되고 있습니다.”
“음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허균은 며칠 전부터 대신들을 물갈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지방관인 도독들을 대신으로 발탁하고, 대신들 일부에게 다른 보직을 만들어 주거나, 지방관으로 바꿔 보내야 한다고 했다. 일종의 순환보직제를 주장한 셈이었다.
첩보 담당자들이 따라가기도 벅찰 정도로 보직이 자주 바뀌는 조선에 비해 발해의 고위직 관료들은 꾸준히 같은 직위를 유지해 왔다. 신생국이라, 행정체계를 새로 세워 가야 하는 처지이기에 체계가 잡히기까지 변화를 주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허균이 스스로 재상직을 내려놓고 남해부 도독을 맡아 보겠다고 하자, 이런 논의가 공론화되었다. 허균뿐만이 아니라 다른 대신들도 허균의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럼 의정대신이 새로운 인사안을 짜 보게. 내가 그걸 참조해 결정할 테니까.”
태건은 이하륜에게 인사 개편 초안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예, 그러지요.”
“기하! 익문사 독리 권형과 군부대신 황진이 입시했나이다.”
밖에서 태왕부 비서국장 우정언이 고했다.
“들어오시오.”
늘 그렇듯, 두 사람이 같이 들어오면 태건은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심각한 외부 첩보를 입수했을 경우, 대개 두 사람이 같이 알현을 청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권형이 굳은 표정으로 고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몽골 릭단칸의 차하르부와 후금 간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국경인 사르모론 계곡에서 작은 충돌이 계속 발생한데다, 동투메드 부족 문제로 불이 붙어, 결국 전면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동투메드 부족은 차하르부의 세력권에 속한 부족이었다. 그런데 후금에 붙은 동몽골 부족장들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 소속 부족장들이 후금에 귀부하기로 결정하자, 결국 릭단칸이 발끈해 나섰다. 이 전쟁이 원래 1620년대에 일어날 일인데, 무려 10여 년이나 일찍 발발한 셈이다.
“다시 후금이 세력 확장을 재개했군. 명의 움직임은 어떻소?”
“예. 명은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명은 우리 발해를 고립시키려 후금을 포함한 삼국 동맹을 추진 중이나, 그렇다고 후금이 더 강성해지는 걸 원치 않기에 차하르의 릭단칸에게 군자금 조로 은화 수만 냥을 지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양다리를 걸쳤지요. 그 은화를 릭단칸이 독식하는 바람에 휘하 부족장들의 불만이 컸고.”
“예, 기하. 그게 동투메드 부족이 돌아선 또 하나의 이유인 것 같습니다.”
“쯧쯧! 후금의 칸이 동족의 칸보다 낫다고 생각했군.”
“누르하치가 몽골 부족을 잘 회유한 것 같습니다. 신의를 지키고, 또 후대해 주니 차하르를 등지는 사례가 자꾸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황진 군부대신이 자신의 의견을 보탰다.
“맞아요. 그게 두 군주의 차이점이지요.”
이하륜도 황진의 의견에 찬성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태건이 이하륜에게 물었다.
“그저 지켜보는 게 능사 아니겠어요?”
“후후! 내 생각도 그래. 굳이 개입할 이유가 없지. 후금이 강성해지는 게 불리한 일을 아니니까.”
황진이 태건에게 물었다.
“만약 후금이 차하르에게 승리함은 물론이고, 삼국 동맹까지 성사되면, 후금이 가장 위험한 나라로 대두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하시오?”
태건이 웃으며 물었다.
“허허! 그건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놔두자는 거지요.”
“예, 기하. 그 대신 제1군단과 2군단에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명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익문사도 첩보 수집만큼은 철저히 해 주시오.”
“예, 기하.”
발해는 당분간 북방 정세에 수동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매년 인구도 눈에 띄게 증가하는 데다, 모든 면에서 국가 체계가 자리 잡기 시작한,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 내정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었다.
* * *
포르모사(대만) 북부, 후베(단수이) 지역에 자리한 호른 요새 ― 미래의 단수이구 홍모성으로 후베는 원주민 식 지명.
뜨거운 바람이 요새 성벽 위를 휩쓸더니, 반 베르비크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그는 바다처럼 넓은 담수강(단수이강)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제 내린 폭우로 황토를 잔뜩 머금어 누렇게 변한 강물이 유유히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확실히 끝내주는 곳이야.”
“항구 입지가 그렇다는 얘기죠?”
할리 크라베란 회사의 간부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래. 하구에서 꽤 안쪽으로 들어왔는데도 저렇게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으니 말이야.”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서 이곳까지 거리는 대략 3장미였다.
이들이 있는 호른 요새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미래의 타이베이시 단수이구(담수구)에 진출해 건설한 방어 시설이었다. 팽호(펑후)제도에 마련된 거점이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아예 포르모사 본섬에 새로운 거점을 구축하고자 했다. 왜와 구마, 타이잔, 류큐는 물론이고 발해와 교역이 활발해져, 북방무역이 명나라를 상대로 한 교역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자 더 북쪽으로 진출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래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만큼 좋은 땅은 없었다. 그 너머 북쪽에서 땅을 얻자면 결국 발해의 동맹국인 류큐왕국과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르모사 원주민만 굴복시키면 식민지화할 수 있는 포르모사, 그중에서도 천혜의 항구 입지를 보유한 이곳 호른 요새가 첫 번째 목표가 되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이곳에 상륙하자마자 펑후제도에서 붙잡은 원주민 노예를 동원해 호른 요새부터 축조했다. 아울러 홍이포(컬버린포)도 곳곳에 배치해 두었다. 발해는 홍이포를 공성포라 명명했지만, 홍이란 말 자체가 원래 네덜란드인을 지칭하던 용어였다. 그러므로 홍이포는 네덜란드인을 통해 전해진 화포인데, 태건이 그걸 일찌감치 개발해 활용한 것이다.
이 시기 네덜란드의 대만 북부 진출은 바뀐 역사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원래 한참 후에나 일어날 일이었다. 또 포르모사 북부는 스페인이, 남부는 네덜란드가 차지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네덜란드가 먼저 북부를 점령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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