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조산만 공방 (2)
태건은 손원표의 의문을 차분하게 풀어 주었다. 하지만 양력의 개념까지 이해시키기는 다소 어려웠다.
“휴! 어쨌든 시험해 보면 알 수 있겠네요. 하지만 부사 나리 말대로 정말 역풍 항해도 가능하다면 격군들 없이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겠는데요?”
“바로 그거요. 내가 원하는 것이.”
태건은 동력선의 개발이 너무나 요원하기에 서양식 범선을 당분간 활용할 생각이었다. 서양식 범선을 도입해야만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노 젓는 격군이 필요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 알겠습니다요.”
손원표는 비로소 태건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다시 그림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 배에 붙은 누각이 너무 높지 않습니까? 갑판의 위치도 수면에서 너무 높은 것 같고. 다소 불안정해 보이는데요.”
카락의 선수와 선미에는 꽤나 높은 누각이 올라가 있었다. 또 전투에 유리하도록 갑판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그걸 고려해 고쳐서 설계해도 괜찮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 배는 왜선 같습니다만, 저 남만 배를 베껴 만든 것 같군요.”
손원표는 주인선이 그려진 그림으로 시선을 옮긴 뒤 간단히 평했다.
“잘 보았어요. 주인선이라고 왜국 상인들이 남만과 무역할 때 쓰는 배랍니다.”
“흠. 놀랍군요. 왜가 이런 걸 다 만들다니······.”
“어떻게, 가능할까요?”
“글쎄요. 일단 설계를 다시 한 다음, 작게 모형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 봐야 확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런 첨저선이라면 이곳에서 배를 띄울 수나 있을지······.”
손원표는 선소 앞의 수심이 깊지 않다는 점을 우려했다.
“일단 판옥선부터 만드시지요. 하지만 그 배가 많이 필요할 것 같진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동해안은 대개 수심이 깊은 편이라 판옥선 같은 평저선보다 첨저선이 더 어울리니까.”
첨저선은 배 밑바닥이 뾰족해 속도가 빠른 반면, 바다에 잠기는 부분이 많아 수심이 얕은 곳에서 운항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수심이 낮은 서해와 남해에서 활약하는 조선 수군은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인 판옥선을 주로 활용하고 있었다.
손원표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는 아직 첨저선을 본 적이 없었다. 태건은 그의 고민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에,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돌려 전지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전지로는 품에서 그림을 꺼내 손원표에게 건넸다.
“이, 이건 뭡니까?”
“첨저선의 밑바닥 부분 그림이오.”
“오! 이걸 어떻게······.”
“배 만드는 곳에서 자주 보던 거라. 안에 타 보기도 했고. 그래서 기억나는 대로 얘기했더니 화원이 이렇게 그려 주었소.”
전지로는 어눌한 조선어로 성심껏 답해 주었다.
* * *
태건은 경원부로 오라는 북병사 한극함의 호출에 응했다. 그는 아오지보 너머로 아직 가 본 적이 없기에, 이번 기회를 활용해 주변 지리를 살피고자 했다.
태건은 몇 명의 측근과 같이 경원을 향해 출발했다. 아오지보를 지나 경원부 경내로 진입, 상각산 맞은편에 자리한 아산보를 비롯해 건원보와 안원보를 두루 살핀 후, 경원부 읍성으로 들어갔다.
관청 정문 앞에 이르자, 음악 소리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같이 흘러나왔다. 합석한 관기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완전 잔치 분위기인데요?”
이하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좋은 일이 있나 보다. 그렇다면 승진인가?”
태건 일행이 들어서자, 술기운에 벌써 얼굴이 벌게진 한극함이 활짝 웃으며 태건을 맞이했다.
“허허! 태 부사 왔는가? 어서 오게. 팔지령 전투 때 고생했다고 들었네만 잘 수습했나?”
팔지령 전투 소식이 북병사의 장계를 통해 이미 올라갔지만, 조정은 아직 그에 대해 가타부타 반응이 없었다. 그런 고생을 하라고 왕명이 내려진 바 있기에, 조정 대신들도 눈치만 보고 있었다.
“네. 잘 처리했습니다.”
태건은 공손히 군례를 올렸다. 그다음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자를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오 부사님도 별래무양하셨는지요.”
“후후! 이제 부사가 아니라네. 북병사 영감이지.”
한극함이 호칭을 바로잡아 주었다.
“아, 그렇습니까? 승진 축하합니다. 북병사 영감.”
태건은 이미 예상했기에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덤덤하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오천태는 태건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기대에 어긋나자 못마땅한 표정으로 태건을 쏘아 보더니 결국 말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강외 영토를 수호하겠다며 큰소리 펑펑 치더니, 이번에 아주 대패했더군. 아군 사상자 수가 무려 기백 명에 달한다고 했지? 주상 전하께서 관리 추천권까지 주는 성은을 베푸셨거늘, 태 부사는 도대체 뭐 하는 건가?”
“허허! 대패라니! 대승이지. 죽은 적도들의 수는 염두에 두지 않는가?”
사실까지 왜곡한, 태건에 대한 오천태의 일방적인 공격에 한극함이 타이르듯 나섰다.
“하지만 아군 사상자가 너무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근래 들어 이런 경우는 없었지요.”
“아직 성채도 건설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 정도면 잘 방어한 거지. 더구나 전투가 순식간에 끝나는 바람에 우리 북병영에서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지 않나? 그러니 이만 넘어가세.”
한극함은 태건을 적극적으로 감싸 줬다. 이미 북병사 직위에서 내려온 마당이라, 말로 은혜를 베풀고 있는 셈이었다. 태건은 이쯤에서 한마디 해야 한다고 느껴 입을 열었다.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내 반드시 엄중히 책임을 추궁할 것이네.”
태건이 잘못을 시인하자 오천태는 더욱 기세등등해서 으름장을 놨다.
“예. 북병사 영감.”
태건은 오천태와 벌인 실랑이가 마무리되자, 시선을 돌려 한극함에게 물었다.
“그럼 영감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일단 한양으로 가야지. 남쪽의 관찰사나 경직을 제수받을 예정이라 들었네.”
“축하드립니다, 영감. 그럼 신임 경원부 도호부사는 언제 옵니까?”
“날세.”
자리에 앉아 있던 원희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도 태건의 토벌 작전에 참전한 공을 인정받아 이번에 부령부사에서 경원부사로 승진이 되었다. 한마디로 한극함과 오천태, 원희, 이렇게 셋 모두 태건의 덕을 본 셈이었다.
태건은 이들과 한동안 술자리를 같이해야 했다. 떠날 사람인 한극함은 태건에게 말로 빚을 갚을 심산으로 계속해서 태건의 편을 들어주었다. 원희도 마찬가지로 태건에게 은근슬쩍 고마움을 표했다.
술자리가 파하자, 대기하고 있던 이하륜과 함께 비로소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태건은 술상을 다시 봐 달라고 부탁했다.
몹시 기분이 상한 이하륜은 술잔을 연거푸 비웠다. 태건이 오천태에게 괴롭힘당하는 장면을 마당에서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태건은 다른 면에 신경 쓰고 있었다.
“우리로 인해 처음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 것 같다.”
“무슨 말이야?”
“한극함 북병사 말이다. 원래 북병사 직위에 있다 왜란을 맞을 운명이었지. 그래서 매우 안 좋은 결말도 기다리고 있고. 개인사나 역사적으로 모두······.”
“그랬나? 형 기억력은 정말이지······. 그럼 원희 부사는?”
“모르지. 부령 부사에서 경원 부사로 바뀌었으니 그게 어떻게 작용할지.”
“오천태는?”
태건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형 표정 보니까, 역사가 진짜 바뀌긴 했나 보네. 그나저나 앞으로 오천태가 사사건건 시비 털 텐데 어떻게 대응하지? 아무리 봐도 형과 오천태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조정에 들어간 거 같아. 그래서 왕이 신나서 오천태를 북병사로 임명한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다. 내 임기는 아직 창창하게 남아 있고, 경흥부 내 관리 추천권이 내게 있으니, 오천태가 할 수 있는 건 꼬투리 잡아서 고자질하는 것밖에 없다.”
“에효! 그게 바로 문제라고. 정말 생각만 해도 짜증나네.”
“그냥 조금 성가신 존재 정도라 생각해라.”
“그럼 우린 내일 바로 돌아갈까?”
“그래야 할 것 같긴 한데, 이왕 경원까지 온 김에 거길 들렀다 가자. 바로 코앞이잖아.”
“오케이! 나도 무척 궁금했거든.”
이하륜도 태건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 * *
호남 일대를 돌며 인재를 모으던 허균은 한양에 들러 이복형 허성의 집을 찾았다. 술상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로 오랜만에 즐거이 회포를 푼 두 형제는 주변을 물린 뒤 밀담에 들어갔다. 허성은 다소 못마땅한 표정으로 허균에게 물었다.
“그래서··· 태 부사에게 네 미래를 모두 맡기기로 한 것이냐?”
허균이 그의 부인인 안동 김씨와 홀어머니, 그리고 가솔들까지 모두 경흥으로 보냈다는 얘길 전해들은 허성은 그의 동생이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예, 형님. 하루하루가 즐거운데 어찌 그 길을 마다하겠습니까? 천성에 따라야죠.”
“에휴! 말을 말아야지. 애들도 아니고, 즐거우면 다냐?”
허성이 비록 태건을 높게 평가한다고 하나, 그의 가신이 되겠다는 동생을 마냥 좋게 볼 수만은 없었다.
“대과까지 보길 바랐거늘······.”
“과거에 급제해 출세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낱 당파 싸움의 제물이 되고 말겠지요. 임금은 왕권을 강화하려 당쟁을 격화시키고, 신하는 또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그걸 알면서도 놀아나 주고 있지 않습니까? 관직을 원하는 자는 많으나,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니 상대 당여를 모함하고 죄를 뒤집어씌워 끌어내릴 수밖에. 그게 사람이 할 짓입니까?”
“그만하게.”
허성은 거침없이 조선 조정의 모순을 성토하는 허균을 제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허균은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그 결과가 어떤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내 호남을 돌며 그 절절한 사연들을 모두 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원혼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지··· 또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은 못 살겠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조선의 현실입니다. 그럴 바엔 새외로 나가 새로운 뜻을 펼치는 게 선비된 자로서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제 선택이 끝내 이 땅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허성도 태건의 계획에 대해 알고 있기에 허균을 말릴 수가 없었다.
“휴! 아우 선택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고맙습니다, 형님. 제 뜻을 지지해 주셔서.”
“이번에 팔지령 전투 소식을 들어 보았느냐?”
“예, 형님. 이번엔 피해가 조금 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적 대병을 궤멸시켰지 않습니까?”
“그랬지. 지난 전투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태 부사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 하지만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네. 내가 보기에도 분명 대승을 거뒀지만, 현 조정에서 누구 하나 태 부사의 공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주상 전하도 마찬가지지. 심지어 우리 남인도 입을 다물기로 했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지?”
허성의 걱정 어린 조언에 허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형님. 부작용을 우려하는 거지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특히 전하의······.”
“맞네. 그러니 더욱 조심하라 전해 주게. 아우도 그렇고.”
“알겠습니다. 사실 태 부사는 그런 상황을 이미 예견했더군요.”
“태 부사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 이번에 북병사로 오천태가 임명된 것도, 전공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도, 다 주상 전하의 뜻이야. 서인도 그걸 알기에 틈만 나면 태 부사의 공을 깎아내리고, 탄핵하거나, 벌을 줘야 한다고 주청하고 있지.”
허균은 눈살을 찌푸렸다.
“모든 게 역겨울 따름입니다. 형님도 이런 시궁창에서 고생하지 말고, 왜란이 발발하면 경흥으로 오시지요.”
허성은 고개를 저었다.
“난 너무 많은 관계에 묶여 있다. 또 여기 남아 할 일도 많고. 그게 내 운명이구나.”
허성은 태건과 같은 위험한 이에게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걸 자신이 없었다. 아울러 남인의 주요 구성원이기에 자신의 행동 여하에 따라 다른 이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갈 수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허균도 그걸 알고 있기에 작별 인사차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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