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청진제철소
건흥 15년, 서기 1610년 봄.
동해부 경성현 주을온사에 자리한 생기령 공업단지. 이곳은 발해에서 제일가는 도자기 생산지로 정평이 나 있었다. 생기령에 품질 좋은 고령토가 매장되어 있다 보니, 생기령 북부에 들어서기 시작한 도예촌은 점차 경계를 넓혀 이제 경성 부근까지 확대되었다.
여기서 생산된 도자기는 일본과 구마, 타이잔, 류큐 등의 동북아 국가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와 인도,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그래서 생기령 도자기는 이제 명의 도자기와 더불어 세계 시장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도예 산업 분야로 인력과 상인이 몰리고 물산도 풍부해지자, 주변의 풍부한 목재 자원을 이용해 사업하는 제재소와 가구 공장도 생겨났다. 그 뒤를 이어, 노동 집약적 산업이라 인구가 많은 곳이면 으레 생겨나기 마련인 의류 관련 제조 업체도 속속 들어서 지금의 대규모 공업단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새로 동해부 도독으로 부임한 우극과 역시 이번에 광무부 대신으로 임명된 마치카는 생기령 계곡의 서편에 있는 언덕에 올라, 생기령 광공업단지를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북해부 도독을 맡았던 마치카는 그 자리를 전 농업부 대신인 주경천에게 넘겨 주고 생소한 분야인 광무부를 맡게 되었다. 그래서 전임자인 우극 도독과 같이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농업 전문가인 주경천이 북해부 도독을 맡게 된 이유는 당연히 아리벌 평원을 개발하기 위함이었다. 그간 북해부 인구도 많이 늘어, 발해의 3대 평원으로 손꼽히는 아리벌에도 꽤 많은 농민이 정착했다. 그래서 농업 지식이 풍부한 주경천이 북해부 도독에 부임한 것이다. 그는 아리벌을 벼농사 지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몇몇 농업부 관리도 차출해 갔다.
“이 비석이 바로 북관대첩비요. 혹자는 생기령 대첩비라고도 하지요.”
우극이 한쪽에 서 있는 비석을 가리키며 마치카에게 알려 주었다.
“얘긴 들었습니다. 여기서 왜군과 엄청나게 치열한 전투를 치렀지요?”
“예, 우리 태왕께서 무장으로 용맹을 떨치던 때의 일입니다. 그래서 그때 같이 참전했던 이라면 당시 기하의 전신과 같던 모습을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리곤 하지요. 이 비석 앞에 서면 더욱 그렇게 된답니다.”
마치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태건이 북방에서 친정 다니던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 열차가 들어오고 있네요.”
연기를 푹푹 뿜어내며, 화물열차가 생기령역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이자, 우극이 몹시 반가워했다.
현재 동해남부선은 청진과 경성을 지나 이곳 생기령까지 부설되었다. 전에 비해 공사 속도가 매우 빨라진 셈이다. 자재의 생산과 수송이 신속히 이뤄졌고, 더 많은 노동력이 투입된 덕분이었다.
“오랜만에 본토로 와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난 그새 천지개벽이 일어난 줄 알았어요. 그렇게 빨리 달리는데도 부드러운 승차감이란 정말…….”
마치카는 증기기관차를 타 본 소감을 밝혔다.
언제부턴가 발해인들은 바다 너머에 있는 땅, 즉 해외 영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육지 영토를 본토라 지칭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있던 저도 그랬으니, 뭐, 더 말할 나위가 있겠어요? 허허!”
우극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번에 개발할 탄전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곳 북쪽에 있어요. 조금 있다 주을온광업사 대표와 함께 가시지요.”
“예, 그러지요.”
두 사람이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생기령 탄광 때문이었다. 생기령 탄전 지대엔 아직 개발하지 않은 광구가 많이 남아 있었다.
광무부가 갑자기 이곳을 주목한 이유는 증기기관차와 청진제철소에 설치된 증기기관의 연료로 쓸 석탄의 수급 문제 때문이었다.
청진제철소는 5년 반의 공사 기간 끝에 작년 가을 준공했다. 이 제철소는 영강제철소의 두 배에 달하는 철강 생산량을 자랑할 정도로 꽤 크게 지어졌다.
청진제철소로 들어가는 철광석 대부분은 조산시 철주동에서 수송해 오고, 해탄(코크스)은 철도를 통해 동평부 봉산에서 가져오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증기기관에 들어갈 연료용 석탄도 필요하기에, 청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생기령 탄전 지대에서 수급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아울러 무산 광산에서 생산될 철광석을 이용하기 위해 청진과 무산을 연결하는 무청선 철도 역시 부설 중이었다.
이처럼 청진에 대형 제철소가 들어섬에 따라 청진은 올해 초에 부령현에서 시로 독립되었다. 당연히 제철소와 여러 제강 계열 업체가 엄청나게 많은 노동력을 끌어들인 덕분이었다. 이에 더해 청진 주변에 금광을 비롯한 여러 광산이 벌써 개발되었고, 청진항에 경흥급 대선도 능히 접안할 수 있을 정도로 항만 시설이 잘 갖춰지자, 광업과 해운 관련 종사자도 빠르게 늘고 있었다.
“세 번째 제철소도 지어질 거랍니다. 알고 있었소?”
우극이 물었다.
“벌써 건설에 들어간다고요? 어디입니까?”
“여민부의 이성현이지요.”
“이성현? 거길 선택한 이유가 있어요?”
“북청과 단천에 꽤 품질이 좋은 철산이 있으니까요.”
이성현(미래의 이원군)은 북청과 단천 중간에 자리해 있었다. 그래서 북청 철광산과 단천 철광산 자원을 활용하고자 이성에 제철소를 짓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 제철소 부지 측량과 이성항의 항구 건설 작업부터 착수한 상태였다.
“아, 그럼 그곳에서 쓸 석탄도 이곳 생기령 탄전 지대에서 대 줘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길주와 명천 등지에도 생기령 탄전과 비슷한 품질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어요. 거기도 개발해야 할 겁니다.”
오랫동안 광무부대신 자리에 있었기에 우극은 이곳 일대에서 발견된 탄전에 관한 정보를 훤히 꿰고 있었다.
생기령은 물론이고, 길주, 명천, 성진 등지에 분포해 있는 탄전 지대를 ‘함북남부탄전’으로 묶어 부르는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연탄, 즉 갈탄의 품질은 웬만한 아역청탄을 뛰어넘어 역청탄에 버금갈 정도로 열량이 높았다. 수분은 다소 많은 편이나, 불이 잘 붙고 매연이 적어 가정용 연료는 물론 증기기관차와 증기선 연료로 쓰기에 매우 적절했다. 그래서 청진제철소와 향후 이성제철소에 이 탄전 지대에서 채굴한 석탄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그럼 네 번째 제철소도 계획되어 있소?”
마치카가 물었다.
“그럼요. 네 번째는 아마 황해부에 들어설 겁니다. 물론 당장은 어렵지만, 서부 지역에도 철강재를 공급할 제철소가 필요하니 계획이라도 세워 둬야죠.”
제4제철소 후보지로 당연히 황해부가 선정될 수밖에 없었다. 철광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옹진과 같은 남부 해안 지방과 북부 황주현, 이 두 지역 중 어디를 후보지로 결정할지 고심 중이었다.
* * *
조선의 철원도호부 관아.
도호부사 심현은 죄인에게 압수한 은화를 손에 들고 상세하게 살피고 있었다. 은화엔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얼굴 등이 양각되어 있었다.
“이게 일 원이라고?”
“그렇습니다. 꽤 큰돈이지요.”
수석 보좌관 격인 좌수 김헌수가 대답했다. 그는 조정에 바칠 장계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꽤 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여러 죄인의 심문을 참관한 덕분에, 발해에 관해 풍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은화니까. 이게 얼마나 퍼져 있지?”
“상인들 말을 들어 보니 엄청나게 많이 들어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왜은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니 후발해 은이 암암리에 통용되고 있지요. 우리 상평통보는 금액도 적은 데다, 아직 유통량이 많지 않으니까요. 은화도 여전히 부족하다 보니 자연스레 후발해 은이 널리 퍼지게 된 겁니다. 더구나 이 은화로 후발해 산물까지 살 수 있으니 축재용으로도 인기가 있답니다.”
“어허! 이런. 진정 큰일이로고.”
변방을 지키는 장수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바로 밀무역 상인을 잡아내는 일이었다. 이번에 체포한 자는 발해 여민부의 금성현과 조선 강원도 김화현의 중간에 자리한, 중현이란 국경을 이루는 고개를 통해 발해를 드나들며 밀무역하다 덜미가 잡힌 자였다.
이들 상인이 취급하는 상품은 너무나 많았다. 자칫 소지하다가 걸리면 치도곤을 당하는 발해 신문을 비롯해, 조선에서 귀하게 대접받는 모피와 면직물 등을 주로 사 왔다. 심지어 요즘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라면이나 과자, 설탕과 같은 식품류도 주 수입품 중 하나였다.
또 어떤 상인은 인삼을 가져다 팔아 발해 은화를 가져오는 이도 있었다. 발해 은화에 대한 신뢰가 높다 보니, 웃돈이 붙어 거래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조선에 대한 발해의 경제와 문화 침투 현상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후발해로 이주한 자들이 몰래 방문해 사달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니, 그 뿌리가 깊을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후발해 군은 국경을 아예 단속하지 않는답니다.”
“그게 진짜 문제일세. 누구든 맘만 먹으면 넘어갔다 돌아올 수 있으니.”
“더구나 국경 지대의 맹수를 모조리 구축해 놓아 탈주자와 상인 모두가 걱정 없이 후발해로 들어간답니다.”
변경을 지키는 발해군은 조선군에 아예 관심이 없다는 듯, 어떤 군사적 충돌도 일으키지 않았다. 심지어 맹수 구축이 주된 임무인 것처럼 행동했다. 신형 소총이 보급된 이후, 맹수 구축 효율성이 더욱 높아져, 사람이 오가는 변경 지대에서 이제 더 이상 호환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쯧쯧! 백성들이 온통 후발해에 홀려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휴! 솔직히 그럴 만도 하지요. 조사하면 할수록 더 뼈저리게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좌수 김헌수가 속내를 토로했다.
“그러게. 압수한 물품을 보니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더군. 라면과 국수에 과자……. 음. 지금도 그 맛이 참.”
심현은 군침을 삼켰다.
심현 부사처럼 변방을 지키는 관리치고 발해의 가공식품을 먹어 보지 않은 이는 없었다. 압수품의 절반 정도는 조정으로 보내나, 절반은 어차피 상해서 버릴 것 맛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관리들이 몰래 나눠 갖곤 했다. 그래서 이들은 더욱 문화 침탈의 심각성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두렵습니다. 우리 양반이야, 후발해를 성현의 가르침을 버린 상놈의 나라나 준 오랑캐로 무시하지만, 백성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후발해로 이주한 소작농이 죄다 부농으로 변신하고, 노비 또한 방면되어 역시 부농이 되지요. 나라에서 준 땅은 넓은데 일손이 부족해 농사를 다 짓기 어려울 지경이라면, 조선 기준에서 죄다 부농인 셈이지요. 또 신분의 차별이 철폐되어 누구나 공부하고, 누구나 관리가 된답니다. 과연 백성이라면 어디를 더 원하겠습니까?”
김헌수의 말은 조선의 양반 처지에서 너무나 아픈 부분을 찌르고 있었다. 지배계급인 양반의 지위와 혜택도 결국 피지배계급이 존재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 물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조선의 백성들은 모두 발해를 이상향으로 여겼다. 조선 조정의 악의적인 선전과 세뇌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조선 체제가 유지되는 건, 무지렁이 백성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인만큼은 모두 발해 편이었다. 이들이 발해의 매혹적인 상품을 조선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풀었고, 그와 함께 발해에 대한 정보도 퍼트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태건이 의도한 바가 벌써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병사들도 문제지?”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조정에선 삼국동맹 합류 문제로 논쟁하고 있으니……. 쯧쯧!”
심현은 혀를 끌끌 찼다.
“지금은 오로지 개혁에 힘쓸 때인데, 후발해와 싸우는 삼국동맹 체제에 편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다니, 참으로 한심할 따름입니다. 내부에서 벌써 무너지고 있는데, 그런 논쟁이 무슨 소용인지.”
두 사람 모두 북인에 가까운 관리들이었다. 그래서 삼국동맹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당파적 시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변방을 관리하다 보니, 발해의 위상은 물론이고, 조선의 허점을 더욱 명백히 체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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