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하늬제도와 동남아 정세 (3)
포르모사섬 남부 끄트머리에 자리한 영국령 포틀랜드 케이프 지역.
영국 동인도회사는 처음 항구로 쓸 포틀랜드항(미래의 후벽호) 부근을 점령한 직후부터 계속해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그래서 동부와 서부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15㎞ 정도를 더 나아가 거점으로 삼기 충분할 정도의 땅을 확보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파이완족 원주민의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저항하면 죽임을 당했고, 붙잡히면 노예가 되었다. 원주민의 고혈을 쥐어짠 덕분에 시설도 빠르게 건설되고 있었다.
포틀랜드 케이프를 얻은 이후 헨리 미들턴은 가야섬과 이곳을 번갈아 오가며 일을 처리해왔는데, 그는 이곳에 머무는 걸 더 선호했다. 열대 기후대에 속한 가야섬에 비해 아열대 지방인 이곳이 훨씬 쾌적하기 때문이다.
포틀랜드 케이프를 얻은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포틀랜드 항은 벌써 항구 기능을 수행할 정도로 개발되었고, 거주할 집이나 사무실도 조금씩 형태를 갖춰 나갔다.
“본사도 기뻐하겠지?”
헨리 미들턴이 동생 데이비드에게 물었다. 포르모사에 거점을 만들자고 졸랐던 데이비드는 줄곧 이곳에 머물며, 형의 부재 시 대리인 노릇을 수행해 왔다.
“그럼요. 지금 한창 답변이 오고 있을 겁니다.”
거리가 너무나 멀다 보니, 본사 혹은 영국 왕실의 답변을 받는 데 몇 년씩 걸리곤 했다. 그걸 고려해도 지금쯤 포르모사에 거점을 마련했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졌을 테고, 이를 승인한다거나 식민지 총독으로 헨리 미들턴을 임명한다는 답신이 한창 오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다음엔 마카타오를 노리자고?”
“예. 반드시 그곳까지 정복해야, 제대로 된 영토를 얻는 겁니다. 여긴 비좁아서 크게 발전하긴 어렵죠.”
마카타오는 포틀랜드 케이프 바로 서북쪽에 인접해 있는 평야 지대로, 미래의 가오슝 지방이었다.
“맞는 말이긴 해.”
“동북쪽 해안의 푸손도 염두에 두어야 해요. 그 정도까지 차지해야 어엿한 식민지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푸손은 미래의 타이동 지방이었다. 데이비드는 포르모사 남부에서 꽤 넓은 영역을 영토로 만들 심산이었다.
“발해가 페스카레도스섬을 개방한다던데?”
“거기도 무조건 진출해야 합니다. 동북아시아 모든 나라의 상인이 거기로 모일 텐데, 당연히 우리도 상관을 열고 영업해야죠. 분명 이득이 될 만한 사업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런데 발해 역시 북서쪽 땅에 공을 들이는 모양이던데.”
헨리 미들턴은 담수현 ― 발해는 포르모사 북서쪽 땅을 담수현이라 명명하고, 담수진, 갈란사, 봉첨사, 기륭사로 나눴다 ― 에 대한 발해의 움직임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예, 여러 회사가 진출해서 사탕수수 사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발해 주민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군 병력과 상인만 거기서 거주하는 모양입니다.”
“후후! 거긴 원주민이 주민이잖아?”
“그런 셈이죠. 그들과 정식으로 거래하며 지낸다고 들었어요.”
“그럼 저들이 더 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할 가능성은?”
“글쎄요. 발해 상인과 얘기해 본 적이 있는데, 발해는 영토가 너무나 넓어서 영토 확장에 그리 욕심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영토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 불가사의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답니다.”
“특이하군.”
“아무래도 지난 전쟁 때문인 듯합니다. 응징 차원에서 땅을 빼앗기도 했다던데요.”
“그렇겠지.”
“그리고 저들도 동남아 진출을 노리고 있는 듯합니다. 류큐와 포르모사에 여러 거점을 확보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요?”
“음, 일리가 있는 말이야. 만약 그 일이 진짜로 일어난다면 우리 향신료 무역에 큰 변수가 발생할 것 같은데?”
“당연히 그럴 겁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절대로 발해에 밉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맞아.”
현재 동남아 해역에서 향신료 무역 패권을 두고 더욱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보르네오 서부 수카다나 왕국의 수도 수카다나에도 추가로 거점을 마련, 전체적으로 동남아 북부 지방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역시 동북아에서 발해에 의해 축출된 이후, 미래의 인도네시아 지방에 집중해서 세력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 두 회사는 육두구 산지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반다제도에서 대규모 해전을 벌이게 되었다. 반다제도는 말루쿠제도를 구성하는 도서로 남쪽에 자리해 있었다.
네덜란드 측은 사활을 걸고 이 전투에 임해 영국 회사를 쫓아내는 데 성공, 반다제도의 육두구 무역 독점권을 얻었다. 그러나 이 전투의 여파로 정향이 많이 생산되는 암본과 스람, 떠르나떼, 띠도레 등의 중부와 북부 말루쿠제도에서 입지가 크게 약해졌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세상의 이치대로, 이들 지역을 영국과 스페인, 포르투갈 등과 함께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이제 말루쿠제도 중북부는 이들 여러 서양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다. 물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또한 암본과 스람, 부루 등 반다제도에서 가까운 섬들의 지배권부터 다져 나갔다.
“그러면 이번 기회에 내가 직접 페스카레도스로 가 보는 게 좋겠군. 그곳 해군 제독과 인사도 나눌 겸.”
“그게 좋겠습니다. 저랑 같이 가자고요.”
“그래.”
이들 두 형제는 송희립을 만날 심산으로 하늬제도를 향해 떠나기로 했다.
* * *
조선 국왕은 편전 내에 진열된 온갖 물품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물건들이었다.
국왕은 연화라는, 발해산 신발을 신어 보았다.
“발이 정말 편하군. 가볍기도 하고. 이걸 어디서 만들었다고 했소?”
“북청상단이란 상인 무리입니다. 그 때문에 항간에서 연화라는 제품명 대신, 회사 이름을 써서 북청화라 칭하기도 한답니다.”
도승지 류희분이 대답했다. 류희분 역시 북인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이 말랑말랑한 재질은 뭐지?”
국왕은 신발을 벗어 세밀하게 살핀 다음, 고무 밑창 부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연청이랍니다. 그걸 처음엔 숯을 구울 때 나오는 목초액에서 뽑아냈는데, 지금은 석탄에서 추출한답니다.”
발해 산물에 대한 도승지의 지식은 매우 깊었다. 도승지의 임무 중 하나가 발해 신문은 물론이고,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월간 잡지를 읽고 정리해서 그걸 국왕에게 보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국왕은 발해의 외교와 정치, 군사 분야에 주로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발해 물산이 해일처럼 조선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터라, 그간 놓친 지식을 오늘 모두 따라잡을 심산이었다.
“석탄에서? 그럼 연청을 만든 이는 누구요?”
“그게… 후발해 태건이…….”
“흠.”
국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건과 관련된 건 모두가 믿기 힘든 일투성이였다.
국왕은 다시 다른 제품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건 연청화로 미래의 고무신이다. 이 제품을 개발한 회사는 송화상단이다. 북청상단이 연화를 개발해 특허를 내자, 송화상단도 연청을 이용한 연청화를 송화연청화란 상품명을 붙여 출시했다. 이 연청화 역시 발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짚신이 빠르게 연청화로 대체되고 있을 정도였다.
발해 사람들은 두 제품의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자, 연화(운동화)를 북청화로, 연청화(고무신)를 송화신이라 부르곤 했다. 즉 회사명 혹은 상품명이 제품명이 되는 현상이 발해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편전에는 신발 제품 외에도 라면, 국수, 과자, 사탕 등의 각종 가공식품과 세제류, 의류, 성냥, 문방구, 유리 제품 등의 공산품이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이들 모두가 철원도호부의 심현 부사와 같은 지방관이 압수해 올린 물품이었다.
“이런 물건들이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고?”
“지방관들의 장계가 약간 과장된 면이 있으나 어느 정도 사실일 겁니다. 소신 또한 저 물건 중 몇 점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병조판서 기자헌이 대답했다.
“그럴 테지. 궁에서도 비누와 성냥, 연필 따위를 구해 쓰고 있으니까.”
비누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홍은이 만들어 퍼트렸기에 조선에서도 이미 일반화된 상품이었다. 발해산만큼 품질이 뛰어나지 못하지만, 조선 내에서도 제품이 자체 생산되고 있을 정도였다. 청결을 중시하는 조선인에게 비누야말로 딱 어울리는 제품이었다.
“심지어 백성들 사이에서 단마와 방울마로 인해 태건을 칭송하는 경향도 생겨났답니다.”
대사헌 이이첨도 말을 보탰다.
국왕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단마와 방울마를 조선으로 가져와 퍼트린 이가 태건이란 사실을, 조선 조정은 너무나 부정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시기부터 이미 기정사실화되어 전국에 널리 알려졌기에 이를 왜곡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조선 처지에서 단마(고구마)와 방울마(감자)만큼 고마운 존재도 없었다. 이 두 구황작물은 현재 조선 전체에 퍼진 상태였다. 영토마저 경기도 이남으로 축소되었기에,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단마 역시 전국에서 재배가 가능한 작물이 되었다. 이 두 작물로 인해 이제 아사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 인구도 폭증하고 있었다.
현 국왕이 아무리 열심히 개혁 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조선의 고질병인 지방관의 부패나 삼정의 문란 현상이 쉽게 해소될 순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동력의 상당 부분이 발해로 빠져나가 생산력이 크게 줄어들다 보니 백성들은 여전히 무거운 조세 부담을 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굶는 이가 줄어든 건 오로지 단마와 방울마 덕분이었다. 세금을 주로 곡류에 한정해서 산출하다 보니, 지방관에게 곡식을 털리고도 먹을 식량이 남게 된 것이다.
국왕도 이런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아무리 양반들이 후발해를 상놈의 나라니, 오랑캐와 다를 바 없는 나라니, 떠들고 욕을 해도 백성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고 있나이다.”
대사헌 이이첨의 말에 국왕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양반들은 어찌 그리도 어리석은가? 조선 백성의 태반이 소위 상놈인데, 상놈이라 욕한다고 그게 먹히겠나? 오히려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뿐이지.”
“소신의 생각도 같습니다, 전하.”
좌의정 정인홍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국력, 군사력 모두 후발해에 뒤진다는 걸 이제 시골의 코흘리개 아이들마저도 알게 된데다, 저런 물품들이 돌아다니며 백성들에게 후발해에 대한 환상을 심어 주고 있지요. 이대로 가면 분명 우리 조선은 더욱 저들에게 잠식될 겁니다.”
정인홍은 잠식이란 표현을 썼으나, 사실 이 자리에 있는 국왕과 신하들 모두 흡수된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럼 좌의정은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보시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차라리 문호를 열고 발해와 교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빨리 격차를 따라잡아야 길이 열릴 겁니다.”
실행하기 불가능한 정책이었다. 문호를 여는 순간, 조선이 발해를 따라잡는 속도보다 잠식당하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란 사실을 알기에 국왕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의견은 없소?”
기자헌과 이이첨은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그들도 생각이 있으나 차마 발설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침묵할 수만 없어 기자헌이 한마디 얘기했다.
“우리 조선이 삼국동맹에 참여하는 일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가 막아야 한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만큼 참여 요구가 거세기 때문이다. 백성이 아닌, 지배계급인 양반과 관료 사회의 여론은 이미 삼국동맹 쪽으로 완전히 경도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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