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남부 전선 (1)
후금과 명, 조선, 이렇게 세 나라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 발해 측은 편의상 전선을 북부와 중부, 남부로 나눴다. 그래서 백두산 이북의 후금군 관련 전선이 북부, 요동의 명군 쪽이 중부, 조선 방면이 남부로 분류되었다.
남부 전선을 책임지고 있는 제3군단장 강대구 중장은 여민부 평강현 서남쪽 상현 고개에 세워져 있는 망루에 올라 철원 방향을 살피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조금 시끄럽겠어.”
그는 천리경에서 눈을 떼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결국 피를 보기로 작정한 모양이외다.”
제4사단장 이위 소장의 안색 또한 무척 어두웠다.
3군단은 모두 4개의 사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군단사령부와 제4사단은 중앙부라 할 수 있는 평강과 그 주변 고을을 담당했다. 그리고 황해부의 예성강 하구 전선에 제7사단, 안평선 철도 노선이 부설되고 있는 토산현 부근에 제8사단, 관동 동해안 지방에 제24사단이 자리해 있었다.
조선군 진영 역시 발해군의 배치 상태에 맞춰 전선마다 1만에서 3만가량의 중앙군과 지방군 병력을 붙여 놓았다. 이들 중 중앙군 비율이 가장 높고 병력도 많은, 그래서 주력으로 손꼽히는 부대는 당연히 이곳 철원 방면군이었다.
조선군은 철원 관아 바로 북쪽에 자리한 소이산 산줄기를 국경 방어선으로 설정, 능선을 따라 목책이나 석축을 쌓고 주둔해 왔다. 그곳에서 꼼짝도 안 하던 조선군이 결국 오늘, 국경 진지에서 나와 그간 비워 둔 철원평원으로 몰려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군 장수들은 자신들이 수적 우위에 있다는 점 하나 믿고 병사들을 다독였을 겁니다.”
“그렇게 믿고 싶었겠지.”
“허허!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이곳 철원·평강 전선의 조선군 병력은 모두 3만여 명이었다. 발해군 역시 제4사단에 군단사령부 병력 5천을 더한, 1만7천여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서부의 예성강 하구를 지키는 개성 방면군이나 토산 남쪽 삭녕 주둔군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예성강이란 천연의 국경선은 물론이고, 후방에 임진강과 한탄강 등의 큰 물줄기가 있어 발해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데 상대적으로 수월하리라 판단한 탓이다. 그래서 주력을 이곳 철원에 배치하는 건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철원이 뚫리면 한양이 몹시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실질을 중시하는 발해식이 아닌, 명분을 중시하는 조선식으로 사고해야지. 저들이 당장 원하는 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네. 체면치레지. 어쨌든 조선은 대국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 노력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강대구 역시 조선의 무관 출신이라, 조선의 사고방식을 명확히 꿰고 있었다. 그에 반해 발해에서 군 경력을 키워 온 이위 사단장은 조선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말을 많이 듣기는 했으나, 수많은 이들이 그런 하찮은 명분을 지키려 소중한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명을 상국으로 섬긴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다니.”
“후후! 그러니 망해 가는 거지. 도원정 부령!”
강대구는 고개를 돌려 군단 정보 담당자인 도원정 부령을 불렀다.
“네, 군단장님.”
“조선군 장수들이 이번에 다 바뀌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얼마 전 도원수가 새로 부임해 왔고, 그에 따라 조선군의 움직임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오늘 일도 집권 세력인 북인의 힘이 크게 약해진 데 따른 결과였다. 철원이 요충지다 보니, 조선 조정은 군 최고사령관으로 도원수를 임명했는데, 이번에 그를 포함 지휘부 전체를 경질한 것이다.
“그건 알고 있네. 전임 도원수는 북인 계열이었는데, 이번에 남인 계열 한익이란 자로 바뀌었다고?”
“예, 전임과 현임 도원수 모두 무장이 아닌 문신입니다.”
“새 도원수는 어떤 자인가?”
“왜란 때 명의 제독 마귀에게 말먹이와 식량을 제공한 공을 세웠다고…….”
도원정 부령이 말끝을 흐리자 강대구는 미소를 지었다.
“허허! 그게 다인가?”
“군무와 관련하여 그 정도의 경력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다른 신임 장수들의 신상은?”
“모두 파악해 두었습니다. 그자들이 휘하 장졸들에게 평소 습관처럼 쏟아 내는 언사의 내용도 수집했는데, 하나같이 표독한 데다 매우 호전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발해군 첩자들은 조선군 진영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장수들의 명단은 물론, 성향까지 확연히 파악하고 있었다.
“군단장님. 조선군이 곧 우리 일차 저지선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조선군의 움직임을 살피던 군단사령부 부관이 긴장된 표정으로 보고했다.
조선군은 좌우에 일만씩, 그리고 중앙부 후위에 일만, 이렇게 무리를 지어 역삼각형 형태를 유지한 채 움직이고 있었다. 각 진영의 후미에 배치됐던 기병들도 발해군 진지 중 비교적 평지에 자리한 곳을 노릴 심산으로 대열을 이뤄 방향을 잡았다.
“그럼 바로 위협사격을 가하게.”
“예, 군단장님.”
이 전술은 사전에 약속된 것이었다. 발해 화포의 인마살상력이 너무나 가공할 정도라, 조선군 진영에 화력을 그대로 투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퇴각을 유도하기 위해 화포의 위력만 보여 주기로 한 것이다.
퍼퍼퍼펑!
요란한 포성이 발해군 진영에 메아리쳤다. 또 거의 동시에 조선군의 진로 전방과 측면에 포탄이 떨어져 굉음과 파편을 흩뿌리며 폭발했다.
전진하던 조선군은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눈치 빠른 이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운이 나쁜 몇몇 병사는 파편에 다치기도 했다. 포탄은 분명 진영의 바깥쪽을 때렸지만 넓은 살상반경 탓에 부상자가 나온 것이다.
발해군의 포격이 멈추자 조선군 진영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멈추지 말라고 소리치는 군관의 모습도 보였고, 두려움에 잠식되어 대열에서 이탈하는 병사도 많았다.
유심히 전장을 살피던 강대구에게 도원정 부령이 다가왔다.
“군단장님.”
“뭔가?”
“토산현의 8사단에서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강대구는 도원정이 건넨 보고서를 받아 빠르게 훑어보았다. 내용은 몹시 짧았다.
“삭녕의 조선군 중 절반이 전선에서 빠져나갔다? 이게 도대체 뭔 일이지?”
도원정도 짐작 가는 게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 * *
철원의 어은동 북쪽에 자리한 중봉산 산줄기.
발해 육군 제4사단 직할 저격소대 소속 저격수 최훈 정교(상사)는 군복에 풀을 덕지덕지 꽂아 완벽하게 위장한 상태로 능선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소총 조준경으로 조선군 진영을 열심히 훑고 있었다.
“후!”
나직하게 숨을 토해낸 뒤, 다시 들이킨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조수 이천 참교에게 말했다.
“아직 거리가 부족하다. 근데 저 붉은 두정갑 갑옷에 붉은 상모 달린 투구를 쓴 자가 확실하지?”
“예, 확실합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철원 부사죠. 우군 대장도 겸하는데, 군무의 일을 잘 모르는 문관 출신이랍니다.”
이천 참교는 군단사령부에서 넘어온 첩보 자료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저격수가 저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수는 관련 자료를 숙지하게 되어 있었다.
퍼퍼펑!
이들이 계속해서 표적을 노리던 중, 갑자기 발해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그에 따라 어지러워진 조선군 진영의 움직임을 쫓느라 최훈도 바빠졌다.
“장졸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네요.”
“후후! 위협사격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거다.”
100미미 곡사포도 포격에 가세했기에, 이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대지가 움푹움푹 파여 나갔다.
두려움에 휩싸여 그대로 주저앉은 자, 납작 엎드린 자, 뒤로 돌아 도망가려는 자, 군관들의 독려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이 뒤엉켜, 조선군 대열은 엉망이 되었다. 기병도 마찬가지였다. 귀청을 찢을 듯한 폭발음, 공기와 땅의 진동에 말들이 놀라 날뛰는 바람에 기병의 대열도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이처럼 조선군 진영 전체가 혼란에 휩싸이자, 후방에 처져 있던 수뇌부들이 결국 앞으로 나섰다.
“오호라! 그래, 그래야지.”
최훈은 이 한마디를 내뱉더니 다시 숨을 참고 조준에 집중했다. 그가 노리는 이는 당연히 우군 대장이었다.
결국 조선군 우군 대장은 최훈이 설정해 둔 사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표적이 된 자는 노발대발하며, 흐트러진 진영을 수습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장의 보고를 듣느라 움직임을 멈췄다.
기회였다. 최훈은 오로지 그의 미간을 노렸다. 거리도 꽤 멀어, 탄환이 갑옷을 뚫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과 함께 조선군 우군 대장의 이마에 총탄이 적중하는 모습이 조준경에 잡혔다.
“성공!”
최훈은 나직이 한마디 한 후 다시 한 발을 장전했다.
머리가 터지며 철원 부사 겸 우군 대장이 쓰러지자, 깜짝 놀란 부장들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누군 대장의 상세를 살폈고, 누군 범인을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또 어떤 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변에 있던 방패병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탕!
최훈은 다시 한발을 더 격발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중했다. 부관 노릇을 하는 이였는데, 그 역시 얼굴에 맞고 그대로 절명했다.
탕!
“칫! 빗나갔다.”
다른 부관을 노리고 쏜 세 번째 총탄은 어깨에 맞았으나, 갑옷 위였기에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표적의 움직임이 심한 탓이었다.
“이제 가야 합니다.”
조수 이천이 재촉했다.
벌집을 건드린 꼴이었다. 조선군 진영도 발해군이 숨어서 저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고 사방팔방으로 병력을 풀었다. 아울러 지휘부 장수들 주변은 물론이고 머리 위쪽까지, 방패병의 커다란 사각 방패로 빈틈없이 메워져, 여기서 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래, 가자.”
두 사람은 슬금슬금 뒤로 기어 능선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곧 몸을 일으켜 빠르게 동북쪽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를 타고 달렸다.
어느 정도 발해군 진지와 가까워지자 최훈은 다른 대원들 상황이 궁금해졌다.
“다른 소오는 성공했나 모르겠네?”
소오는 발해의 저격소대나 특수 임무를 맡은 특임대에만 있는 부대 단위였다. 보통 ‘오’는 5인 체제를 뜻하는데, 그보다 작은 단위이므로 이들처럼 두세 명이 짝을 이뤄 나서는 경우 소오라 칭했다. 최훈과 이천은 4소오였다.
“다들 백발백중 실력자 아닙니까? 우리처럼 성공했을 겁니다.”
“5소오야 실패해도 상관없지만 다른 세 소오는 반드시 해내야지. 그래야 이놈의 전쟁이 일찍 끝나지 않겠어?”
저격소대 소속 4소오와 5소오는 조선군 좌군대장과 우군대장을 각기 노렸지만, 다른 세 소오는 이미 조선군 진영 후방 깊숙이 잠입해 있었다. 이들이 노리는 건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도원수 한익이었다. 가장 중요한 표적이라, 세 소오를 붙인 것이다.
두 사람 상현에 있는 진지로 복귀할 무렵, 조선군 진영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평원으로 나왔던 조선군 전체가 빠르게 후방의 철원 진지로 퇴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훈이 결과를 보고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막사 밖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더니 동료들이 덩실덩실 춤추며 막사로 들어왔다.
“와아! 잡았어요?”
최훈이 묻자 제1소오의 저격수 김이흠 특무정교(원사)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너 설마 내 실력 의심했냐? 표정에 의구심이 가득한데?”
“아, 아니요?”
“보면 모르냐? 조선군 애들 퇴각하는 거?”
“아! 그래서 그런 거였군요.”
“당연하지! 하하하하!”
김이흠은 호탕하게 웃었다. 적군의 총사령관을 잡았으니 진급과 포상은 따 논 당상이었다.
“정말 큰일 했네요. 허허! 총탄 한 방으로 적 대군을 물러나게 했으니, 정말 교관들이 가르친 게 사실이었어요.”
“그러게나 말이다. 막상 그 일이 일어나는 걸 보니 얼떨떨하긴 하네.”
김이흠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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