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1
31화. 피오성 (2)
태건과 이하륜은 경흥에 도착하자마자 홍은을 불러들여 밀담을 나눴다.
“이제 곧 겨울이니까, 군사보다는 기술 개발 쪽에 집중하자고.”
“휴! 그거야 늘 하던 일이잖아.”
이하륜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사실 가장 바쁘게 보내는 이는 이하륜이었다. 참모장이라는 무장으로써의 직무는 물론, 조산만 공방을 오가며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나도 그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말이다.”
“알았어, 형. 근데 뭐가 가장 급하지? 여기서 지내며 각자 생각한 게 있을 거 아냐.”
“의식주 관련된 건 모두 다!”
홍은이 재빨리 대답했다.
“정말 미치겠다고.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모두가 다! 거기다 응? 망할 놈의 이하고 벼룩은 어떡하냐고!”
홍은이 사정하듯 태건을 보며 말했다. 태건의 지식이라면 생활의 불편을 해소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홍은의 얘길 듣자 태건과 이하륜도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쾌적한 생활에 대한 기억이 없으면 상관없겠지만, 그렇게 살아온 이들이라 조선 시대의 삶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
“일단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자고. 증기기관부터 시작할까?”
태건의 제안에 이하륜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야 할 것 같아. 원래 수력을 활용할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젠장! 여긴 겨울이 되면 개울이고 호수고 간에 다 얼어 버리잖아. 그걸 생각 못한 거지.”
“정말? 오빠 바보 아냐?”
“에효! 그러게 말이다. 누구랑 너무 다르지?”
이하륜이 이 말을 하며 태건을 바라보자, 그는 은근슬쩍 눈길을 피했다.
“뭐야? 형도 그랬어?”
“에이, 설마.”
“아닌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 아무튼 송화상단이 면화를 생각보다 많이 모아 왔으니 서둘러야 할 것 같다. 큰소리 펑펑 쳐 놨는데, 창고에서 면화를 썩히고 있으면 좀 그렇잖아?”
“서두르긴 해야지. 어쨌든 입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니까. 일단 내가 휘트니 조면기하고, 방적기, 방직기를 개발해 볼 테니까, 증기기관은 같이 만들어 보자고.”
휘트니 조면기는 면화의 씨를 빼는 기계로, 1793년 미국인 휘트니가 개발했다. 또 이하륜은 실을 잣는 도구로 뮬 방적기(1779년 개발)를, 천을 짜는 도구로 카트라이트의 역직기(1785년 최초 등장)를 선택하고, 틈틈이 이 기계들의 설계도를 그려 왔다. 이하륜이 개발에 성공한다면 대략 200년이나 앞서 이 기계들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셈이다.
태건이 이하륜에게 물었다.
“페달식 재봉틀은?”
재봉틀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846년인데, 손으로 돌려 작동하는 형태였다. 이하륜은 그 다음에 나오게 될 페달식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것도 곧 들어가야지.”
“그러면 공방 장인들 중에 머리 잘 돌아가고 젊은 축에 속하는 이를 조수로 써서, 설계도 보는 법부터 시작해서 도면 그리는 법까지 가르치는 건 어때? 혼자 다 할 수는 없잖아.”
“그게 좋겠네. 그래서 나중에 개념만 설명해도 척척 설계도를 뽑아낼 수 있게 해야지.”
“그럼 도량형 문제도 잘 생각해 봐. 조선이 쓰는 단위를 그대로 쓸지, 아니면 미터법을 도입할지.”
“휴! 그것도 일이네.”
“유리는 어때? 당장 생산량을 대폭 늘릴 수 있을까?”
태건의 질문에 홍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멀었지~ 근데 왜?”
“용기 부족 문제가 심각하니까. 당장 실험 도구도 필요하고. 그러자면 유리 제품이 필수잖아.”
“그렇네. 강산성 용액 같은 걸 담으려면 유리가 꼭 필요하지.”
“시멘트는?”
다시 홍은에게 물었다.
“그것도 요원하지. 동력원도 문제인데 원료 구하기도 그래. 근데 석회석 산지가 이 근처에 있나?”
“있어. 미래의 연변 왕청 지방에. 그것도 엄청 많이.”
태건의 머리 속에는 각종 자원들에 대한 정보가 잔뜩 들어 있었다. 한때 지질학에 관심이 생기는 바람에, 온갖 정보를 찾아 읽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동북아 자원 분포 현황에 대한 자료까지 접하게 된 적이 있었다.
“왕청이면 훈춘에서 그리 멀지 않네?”
“그래. 얼마 안 남았지.”
“그나저나 인쇄술 관련 장인도 이번에 데려오려나?”
이하륜이 물었다.
“송화상단에서 어떻게든 수배해 데려오겠지.”
세 사람은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라, 인쇄술을 우선해서 발전시킬 생각이었다. 교재의 대량 인쇄가 가능해야 집체 교육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쇄술의 경우, 굳이 세 사람이 직접 애쓸 필요가 없는 분야였다. 금속활자를 주조할 수 있는 장인만 데려오면 해결이 가능한 과제였다.
“형, 칠판하고 분필이라도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교과서까지 발간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잖아? 그러니 일단 그거라도 개발해야 교육을 시작하지.”
“그 정도라면 어렵진 않을 거다. 분필의 재료인 석고는 구하기 쉬우니까. 칠판에 들어가는 도료가 문제이긴 한데······. 다소 비싸더라도 일단 천연 도료 재료에 검은색 안료를 더하고 연마제를 섞어 넣으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겠지.”
“괜찮은 생각인데?”
홍은도 적극 찬성했다.
인쇄와 교육 관련 분야까지 논의를 마치자 셋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할 일이 태산인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에휴! 모르겠다. 잡히는 대로 다 하자고. 미리 만들어 놓는다고 손해 보는 건 아니니까.”
이하륜이 나서서 세 사람의 고민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래, 일단 증기기관부터. 동력을 확보해야 뭐라도 하니까.”
“오케이.”
이하륜은 태건의 제의에 흔쾌히 동의했다.
* * *
초겨울이 성큼 다가오자, 반가운 손님들이 남쪽에서 대거 몰려왔다. 바로 2차 이주자들이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네. 남아서 정리하느라 힘들었지?”
“고생이라고 해 봐야 어디 형님만큼 했겠습니까? 집안에 앉아 있어도 형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더군요.”
둘째 태원이 태건과의 재회를 크게 기뻐했다.
태원은 남아 있던 가문의 가솔들을 모두 데려왔다. 아울러 그간 처분한 재산을 재물로 바꿔 몽땅 실어왔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고려해 도성의 저택과 나라에 묶인 땅만은 처분하지 않고 친척에게 빌려주었다.
태원에 이어 허균이 태건과 손을 맞잡았다.
“허허! 제가 조선 각지를 주유하는 동안 조선 땅을 아주 뒤흔들어 놓으셨더군요.”
“단보도 고생했네. 자네가 보내 준 인재들 모두가 훌륭하더군.”
허균이 천거한 인재들은 벌써 한 달 전부터 경흥으로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 들어올 겁니다. 호남 출신 인사의 경우, 주변 정리하고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까요.”
“호남에선 어떤 이들이 오지?”
“정여립 사건으로 출셋길이 막힌 선비들이 제법 많더이다. 또한 재주가 뛰어나거나 용력이 남다르지만, 출신이 비천해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자들 역시 눈에 띄는 대로 포섭해 두었습니다. 가문에서 없는 사람 취급받는 서얼들도 관심을 많이 보였으니, 때가 되면 결심하겠지요.”
“좋군.”
태건은 만족해하는 미소를 지었다. 허균에 이어 홍진이 홍은과 함께 태건에게 다가왔다.
“태 부사님. 다시 뵙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홍은의 오빠 홍진도 이제 태건에게 자신의 인생을 위탁한 셈이었다. 그 때문에 전과 달리 가신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번에 2차 이주민 대열에 합류해 같이 움직이다 보니 홍진은 태원, 허균과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태건에 대해 더욱 많이 알게 되었다.
“잘 오셨어. 험로에 고생 많았겠소.”
“아, 아닙니다. 유람하듯 편하게 왔습니다.”
홍진이 인사를 마치고 떠나자, 김명신이 백여 명의 사내들을 데려와 태건에게 인사시켰다.
“이쪽은 개성에 남아 있던 우리 상단 소속 공방 장인들입니다.”
그의 소개에, 앞 열에 있는 장인들이 머리 숙여 인사하자 태건은 공손한 태도로 답례했다.
“다들 반갑습니다.”
“그리고 저 뒤에 있는 분들은 태 부사님의 특별 요청에 따라 새로 접촉해 데려온 장인들입니다.”
“아, 그분들!”
태건은 인쇄술 관련 분야를 비롯, 송화상단 직영 공방에 없는 다른 분야의 장인들을 최대한 많이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 바 있다.
조선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에 규정된 장인의 전공은 꽤나 다양했다. 그 분야만 해도 129개나 되는데, 종사자가 많은 분야는 금속 야장과 옻칠장, 목장, 사기장, 옹기장, 피혁장에, 책을 만드는 책공, 종이를 생산하는 지공 등이었다. 태건의 부탁에 따라 김명신은 되도록 많은 분야를 아우를 수 있도록 장인을 섭외해 왔다.
태건은 직접 장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이름과 직종을 물었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장인들의 신상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뇌리에 담고자 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태건이 꿋꿋이 직접 이것저것 묻고 환영 인사를 건네자 장인들은 몹시 감격해했다.
인사가 끝난 장인들은 경흥부 관리들의 안내에 따라 차례대로 정해진 숙소로 향했다.
“남쪽에 남아 있던 상단 식구들은 어떻게 됐지요?”
“일단 전란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상행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무조건 길을 나서 경흥으로 모이라고 지시해 두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송화상단 소속 직원들의 상당수가 이미 경흥에 들어왔고, 그중에 일부는 벌써 고려상단 소속으로 바뀌어 콜칸 땅에서 상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태건은 피오성의 성주 첨터허와 약속한 바에 따라, 팔지령 제1진지 부근에 특별히 교역소를 설치해 고려상단 상인 일부를 상주시켰다. 그러자 첨터허는 자체 행상단을 이 교역소로 보내 첫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피오성 행상단의 규모는 꽤나 컸는데, 저령을 넘자면 호위 병력이 반드시 붙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거래는 지난 전투로 인해 팔지령과 저령 사이, 즉 저령강 계곡에 거주하는 콜칸인 세력이 크게 약화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화승총 공방이 제대로 돌아가겠군요.”
태건은 수많은 공방 장인들을 만나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렇겠지요. 그런데 화약은 충분히 확보했습니까?”
“충분하오. 우리가 그간 콜칸인들과 요란하게 싸운 덕분에 조정에서 화약하고 철을 충분히 보내 줬어요. 먼저 와있던 화약장들도 벌써 화약 생산에 들어갔고. 아울러 유황도 추가로 보내 줄 거라 했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다행입니다.”
“이제 장인들이 많이 모였으니 새로운 화포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화포라··· 그럼 구리가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현재 경흥부가 보유하고 있는 화포는 현자총통 여섯 문이 전부인데, 이들 모두가 청동제 화포였다. 이들 이외에 개인용 화포인 승자총통도 있지만 태건은 승자총통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화승총이 있기 때문이다.
“철도 섞어 쓸 수 있는 화포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성곽을 부숴 버릴 수 있는 위력의 화포를요.”
“공성 화포요? 그런데 철이 들어간다면, 깨지기 쉽지 않나요?”
“그러니 장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봐야죠. 언제까지 비싼 청동만으로 화포를 만들겠습니까?”
태건이 염두에 두고 있는 건 1618년 명나라가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대구경 화포, 홍이포였다. 겉관은 구리, 속관은 주철을 썼기에 구리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아울러 대완구와 중완구, 비격진천뢰의 생산도 곧 착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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