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북부 전선 (2)
제88연대 제2대대 진지에 도착해 격전의 현장을 접하자, 태건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발해군에도 큰 희생이 따랐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전방 진지 두 곳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기별을 받은 즉시 태건은 제14사단 소속 2천여 기의 기병을 둘로 나눠 먼저 전장으로 보냈다. 그도 수행원들을 이끌고 제14사단 진영에서 가까운 이곳 제88연대 소속 진지로 급하게 달려온 길이었다.
“기하! 아군 부대에서 21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총 103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허! 이런…….”
대대장 손형운 부령의 보고를 들은 태건은 깊게 탄식했다.
“너무 무거운 짐을 지게 했군.”
“아, 아닙니다. 기하! 제가 불초해서 장졸들이 큰 피해를 본 거 같아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니네. 어쩔 수 없이 이런 전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네. 그게 문제였지.”
후금군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발해 군부는 한정된 병력으로 엄청나게 긴 국경선을 모두 지킬 수 없어 심각하게 고심해야 했다. 더구나 상대는 만주 지리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잘 알고 있는 데다 기동력이 좋고, 개개인의 전투력이 최강이라 평가받는 후금군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전술이 바로 대대 단위로 길목을 지키는 것이다. 그 대신 봉화와 열기구 등의 정찰과 통신수단을 활용해 주변에 포진한, 같은 연대 소속 대대끼리 서로 빠르게 호응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연대 하나가 후금의 1개 기를 상대하는 동안, 후방 부대인 제14사단이나 적의 공격에서 자유로운 다른 연대 병력이 빠르게 현장으로 달려가 적을 섬멸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전술이 내포한 문제는 최초에 적을 맞닥뜨리게 되어 있는 대대의 희생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이 전술을 채택한 건 그만큼 발해군의 전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대대 정도면 후금의 팔기 중 한 기 정도와 싸워 버텨 볼 만하고 연대 정도면 충분히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그 대신 적군도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3천여 병력을 잃었습니다.”
“훌륭하네. 정말 잘 싸워 줬군.”
“감사합니다, 기하!”
손형운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제2대대는 후금군 포로도 잡았는데, 대부분 부상자였다.
태건이 전장과 요새를 둘러보는 사이, 남쪽 탕하진 방면에서 보낸 전령이 도착해 보고했다. 그곳에서도 누르하치의 8남 홍타이지와 궈사 어전(기주) 후르한 등이 지휘하는 양홍기 병력에 제91연대 소속 제1대대 병력이 맞서 싸웠는데, 이곳 88연대와 비슷한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했다.
“1작사에도 보고가 들어갔겠지?”
“그렇습니다. 기하!”
군부 정보국장 이몽련 참장이 대답했다.
“자네가 보기에 누르하치가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아마 몹시 놀랐을 겁니다. 저들이 자랑하는 팔기군의 두 기가 우리 대대에 막혀 퇴각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발해와 정면 대결을 펼쳐 본 적이 없는 저들이라, 몹시 혼란에 빠져 있을 겁니다.”
“그럼 북쪽은 어떻게 됐을까?”
태건은 제1작전사령부가 직접 지휘하고 있는 울라성 부근 상황이 몹시 궁금했다.
사실 발해군의 주력은 그곳에 있었다. 제1사단과 2사단이 바짝 붙어 있고, 제11사단은 울라성 동북쪽 광양평원에서 대기했다. 아울러 이들 3개 현역 사단의 후방을 예비군 사단인 제15사단과 16사단이 지키고 있었다. 이들 2개 예비군 사단은 후금군이 국경을 돌파해 나올 일에 대비해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1작사 전체가 공세로 전환할 경우, 이들은 같이 움직이며 병참선을 담당하게 된다. 또 필요시 공격에 가세할 수도 있다.
이렇게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제1작전사령부가 공격에 나서지 못했던 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후금군의 기동력 때문이었다. 단 1기라도 전선을 뚫고 나가면 후방이 유린당할 수도 있기에 처음엔 방어 전략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후금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첫 공세를 저지한 후에 공세로 전환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전술은 별도의 명령이 없더라도 사전에 수립된 계획에 따라 좌군과 우군 단위로 자동으로 실행될 예정이었다.
“어쨌든 이제 제1작사의 좌군은 공세에 나설 수 있게 된 거 아닌가?”
제1작전사령부 소속 좌군은 제25사단과 26사단이고, 예비군 제14사단도 같이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그렇습니다. 적군의 동향이 모두 포착됐고, 첫 공세를 격퇴했으니 바로 다음 단계에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창성진으로 전령을 보내겠습니다.”
창성진은 부흥진 북쪽, 미래의 이도송화강 유역에 자리해 있었다.
“아, 그리고 좌군이 움직이기로 결정되면, 혜산에 있는 5군단 사령부에도 전령을 보내, 압록강 방면 수비대와 함께 퍼알라를 향해 바로 진격하라고 하게. 좌군이 움직인다면, 굳이 압록강을 지키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지.”
“예, 그리 전하겠습니다.”
평안부의 압록강 전선을 지키고 있는 부대는 예비군 제18사단이었다. 이들이 압록강을 건너 북쪽으로 진격하면 자연스레 후금의 옛 수도인 퍼알라를 노리게 되어 있었다. 그곳에도 1개 기에 해당하는 후금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2작사에도 전령을 보내 제27사단 역시 동진하라고 하게.”
제2작전사령부 소속 제27사단은 요동부의 동부 국경, 즉 후금 국경을 지키는 부대로, 원래 이번 공격 임무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역시 기동력이 좋은 후금군의 돌출 행동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공세로 전환할 경우, 태건은 제27사단도 같이 움직이는 게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 * *
개주 북부의 노호산 능선.
제2작전사령부 좌군 사령관 겸 제12사단장 박종수 소장은 명군의 방어진이 구축되어 있던 이 능선에 도착하자마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발해군의 집중포화에 명군 진지는 대부분 초토화되었고, 수습 못한 명군 전사자의 시신도 너무나 많았다.
사령관 두송과 감군 장전이 발해 저격수에 당해 쓰러지자마자, 명의 우군 병력은 능선을 올라온 발해군에 맞서 싸워야 했다. 발해군의 이 공격도 무척 매서웠다. 산악 전투다 보니 건흥1식 소총이 또다시 맹활약했고, 수류탄을 주로 다루는 척탄병도 제 몫을 해냈다. 심지어 활을 쏘는 사수도 그랬다. 살수들 역시 발해군의 공세를 견디다 못해 진지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명군의 항복을 받아 내는 임무를 충직하게 수행해 냈다.
치열한 전투였으나 발해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원거리 공격으로 적의 수를 충분히 줄인 다음, 위험도가 낮아졌을 때 살수를 투입했기 때문이다.
결국 명의 우군은 살아남은 중간 간부들의 지휘에 따라 북쪽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호두산 전선에서 후군을 지휘하던 유정 역시 우군이 후퇴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들도 20사단 병력과 고군분투하느라 꽤 많은 병력을 잃어야 했다.
“사단장님. 대충 전투 결과가 집계되었습니다. 노호산과 호두산 전선을 합쳐 적군 3만여 병력만이 전장을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포로는 부상자를 포함 대략 6천여 명이고, 전사자는 4천 정도입니다.”
사단사령부 부장 고련의 보고였다.
“그 3만 병력은 어디로 가고 있지?”
“정찰병이 뒤쫓고 있으니 곧 결과가 나오겠지만, 아무래도 해주위로 가지 않았겠습니까?”
해주위는 미래 중국의 해성(하이청)이었다.
“그렇겠지. 그리고 해주위 서북쪽에 있는 우장성도 고려해야 할 테고.”
“어쨌든 여기서 전장 정리하며 새로 보급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보급품을 받을 때쯤이면 적군의 목적지도 명확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사단장님! 제17사단에서 연락관을 보냈습니다.”
사령부 소속 간부가 박종수에게 고했다.
“마침 잘 왔군. 안 그래도 논의할 게 있었는데.”
예비군 제17사단은 현재 웅악과 개주 사이에 자리한 산지에 머물러 있었다. 연락관으로 온 이는 부령 계급의 간부였다.
박종수는 우선 6천여 명의 포로를 제17사단에 넘길 예정이었다. 그게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면 제17사단은 이들을 요동부 복주와 금주 등지로 이송해 그곳에 주둔 중인 경무청 병력에 관리를 맡기게 될 터였다.
포로에 관한 문제를 마무리 짓자 박종수는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전열을 정비하는 대로 우리 12사단과 20사단은 이 능선을 내려가 빠르게 진격할 예정이니, 17사단이 뒤를 잘 받쳐 줘야 할 거네. 일단 개주에 사는 여진인과 한족을 모두 추방하게. 이들 중 고려인 계열 주민들은 또 걸러야 할 거고.”
개주는 후세 학자들에 의해 고구려의 건안성으로 비정될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옛 발해 시기에도 그랬다. 또 망국 후에도 발해 유민이 여전히 많이 거주하던 땅이기 때문에 고려계 주민이 꽤 많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을 떠나온 이주민도 많이 살고 있는데, 개주뿐만이 아니라 개주 너머 요동 동부 지역 전체가 그랬다. 그러다 보니 실제 역사에서 청에 귀순해 팔기에 속하게 된 조선 출신 병사의 수도 꽤 많았다고 한다.
“예, 알겠습니다.”
“아울러 우리 보급선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잘 부탁하네.”
박종수가 말한 부분은 원래 제17사단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럼 돌아가서 포로를 데려갈 병력을 보내라 전하게.”
“예, 사단장님.”
제17사단 연락관을 보낸 후, 박종수는 다시 고련 정령을 호출했다.
“빨리 수암과 답동으로 전령을 보내 전투 결과를 전달하고, 이레 후에 동시에 밀고 올라갔으면 좋겠다는 내 의중을 밝히게.”
수암엔 제21사단이, 국경 요새인 답동이 있는 연산관 방면엔 제2작전사령부를 비롯해 제3사단과 10사단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보고서를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개주 전선을 돌파했다는 보고가 들어가면 다들 그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개주 전투가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다음으로 활약할 부대들은 연산관 전선에서 대기 중인 제2작전사령부와 3사단, 10사단이었다. 이들은 연산관 국경을 돌파하면 곧바로 요양을 노리고 움직일 예정이었다.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 기동하게 되어, 다소 고전이 예상되나 개주 전선이 뚫린 이상 명군의 방어선은 다소 헐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휴! 이제 한고비 넘긴 셈이군.”
박종수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제 요동평원으로 나가는 길이 열렸으니, 명 측은 골치깨나 아플 겁니다.”
고련 정령 역시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확실히 개주는 명과 발해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전선이었지. 여기서 저 요동평원을 보니 새삼 절감하게 되는군.”
박종수의 눈길은 노호산 북쪽에 드넓게 펼쳐진 요동평원에 머물러 있었다.
개주는 발해의 요동평원 진출을 막는 명의 마지막 보루였다. 물론 명군 역시 개주 남부의 웅악을 돌파해야 진격로가 열리게 된다. 그만큼 요동반도의 척추라 할 수 있는 천산산맥의 지세가 험하기 때문이다.
발해가 이 개주전투를 중시한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제 발해군이 요동평원으로 진출하게 된 이상, 명군 진영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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