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19
319화
비밀 협상 (2)
해서여진 4국의 일원이었던 호이파국의 수도 호이파성(휘발성)은 원래 고구려의 성이었다. 그래서 고구려 특유의, 삼면이 호이파하(휘발하) 물줄기로 둘러싸인 언덕에 세워진 산성 형태의 성으로 꽤 견고한 편이었다.
병력을 이끌고 이곳 휘발성으로 후퇴한 누르하치는 장남 츄잉과 그의 2만여 병력을 보자 다소 안도감을 느꼈다. 굳어 있던 표정도 다소 풀어졌다.
누르하치는 성루에 올라, 성 주변을 휘감아 흐르는 휘발하 물줄기를 보며 호연지기를 느꼈다. 그의 기반이었던 건주 땅에 비해 호이파 지방은 국력을 키우기에 훨씬 나은 곳이었다. 경작지로 개간할 만한 땅이 넘쳐나고 토질도 기름졌다. 특히 휘발하 유역이 그랬다. 명이 차지하고 있는 요동평원이나 후금의 영토로 편입된 송눈평원에 비할 바는 못 되나, 산악 지대 한복판에 이처럼 넓은 평원이 자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동쪽과 남쪽, 북동쪽에서 옥죄어 오는 발해군을 생각하자 다시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누르하치는 짧은 휴식을 끝내고 성청으로 내려갔다. 역시나 계속해서 정찰병이 들어와 발해군의 움직임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퍼알라를 지키던 우리 병력이 골민알라로 후퇴했습니다. 그리고 후발해군이 그곳을 점령, 동고와 저천 전역이 적군에 떨어진 상황입니다.”
압록강 이북에 자리한 동고(동악)과 저천(철진), 이 두 지방은 초기 건주여진을 구성하는 다섯 아이만에 속한 땅이었다.
“동부의 왕기얀과 북부의 울라 서부 지역 역시 적군 손에 넘어갔습니다.”
왕기얀(완안)과 과거 발해와 양분해 얻은 울라의 서부 역시 이미 발해군에 넘어갔다고 했다. 완안부까지 넘어갔으니, 후금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건주부 땅도 이제 숙수후와 후너허, 두 지방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도 곧 발해군에 점령될 신세였다.
누르하치는 계속 들어오는 비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발해의 공세는 너무나 무서웠다. 북부에 5개 사단, 동부에 3개 사단, 남부에 2개 사단. 도합 10개 사단에 제1작전사령부 병력까지 더해 총 12만 5천에 달하는 병력이 3면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또한 명의 요동부 상황도 전해졌는데 더 가관이었다. 명군 전체가 모든 전선에서 패퇴해 요양으로 후퇴했다는 것이다. 이곳 호이파성이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비교적 최신 소식인 셈이었다.
“음, 골민알라가 위험하군. 남쪽에서 치고 올라오면 대책이 없는데.”
누르하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맺히는 걸 느꼈다.
누르하치가 느끼는 위기감을 모든 장수와 그의 아들들도 느끼고 있었다. 아무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미 발해군과 싸워 본 적이 있는 이들은 12만 대군이 몰려오고 있는 이 상황이 얼마나 위중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결국 8남 홍타이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결단하셔야 합니다.”
“후! 그렇지. 결단하긴 해야지.”
“명의 요양은 이제 끝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슬기로운 지휘관이라면 병력을 보존해 광녕으로 후퇴할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요양뿐만이 아니라 광녕마저 후발해에 내주겠지요. 그렇게 요양이 떨어지면 우린 이제 요양에서 치고 올라오는 요동 방면 발해군까지 상대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골민알라를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홍타이지는 매우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럼 네 생각은 뭐지? 골민알라를 버리고 서부 몽골 땅으로 터전을 옮겨 가잔 말인가? 싸워 보지도 않고?”
장남 츄잉이 나서서 홍타이지에게 화를 냈다.
“형님, 우리도 명의 처지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땅이야 주체 못 할 정도로 넓습니다. 우리 영토가 동몽골과 남몽골로 축소된다고 해도 여전히 넓지요. 문제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부족하면, 또 싸울 전사가 부족하면, 땅이 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후발해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면 혹여 저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겠지요. 그러자면 우린 전멸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우린 1개 기, 7천5백에 달하는 병력으로 적군 500여 병력도 처리하지 못하고 삼천에 가까운 손실을 봐야 했습니다. 이번에 전투가 벌어진 두 군데서 모두 그랬습니다. 그런데 12만 대군을 상대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홍타이지는 강하게, 또 자세하게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발해군 500여 병력에 호되게 당했다는 대목에서 츄잉이 깜짝 놀라 누르하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누르하치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홍타이지의 말이 백번이고 맞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 대금의 과제는 병력을 보존하는 것이다. 후발해와 맞서 싸워 이긴다는 생각은 아예 버려라. 저들은 우리와 명의 대군을 동시에 상대하며 압도적으로 승리한 군대다.”
“그, 그럼 어찌하실 겁니까? 결단한다면 무슨 결단을.”
츄잉이 홍타이지와 누르하치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홍타이지가 말해 보라.”
누르하치가 홍타이지의 의중을 물었다.
“후발해왕 태건에게 사자를 보내 강화 회담 개최를 요청, 무조건 강화를 성공시켜야 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저들이 우리에게 패자의 굴욕을 강요하더라도 감내해야 합니다.”
“그, 그건 너무나 억울하고 가혹한 일입니다.”
츄잉이 몸을 부르르 떨며 하소연했다.
“알았다. 그럼 더 늦기 전에 사자를 보내자.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북부의 후발해 대군은 지금도 거침없는 기세로 골민알라로 진군하고 있으니까.”
누르하치가 가장 공포감을 느끼는 군대가 바로 발해 제1작사 소속 우군이었다. 동부와 남부에서 접근 중인 부대는 자신들이 요격해 시간이라도 벌 수 있으나, 5개 사단으로 구성된 발해 북부군을 상대할 병력은 오로지 골민알라에 주둔 중인 병력뿐이었다. 다이샨의 좌군도 이미 골민알라로 후퇴시킨 마당이라 뾰족한 수도 없었다.
* * *
서울별부 정부종합청사 탁지부청.
의정대신 이하륜은 회의실에 모인 각 상단 대표의 면모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씩 미소를 지었다.
“우와! 국내 굴지의 상단 대표자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나? 예전 동해부 시절이나 개국 초기만 해도 몇 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회의실을 꽉 채울 정도로 많이 오셨군.”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예전에 많이 모여 봐야 열 분 남짓이었는데.”
황후 홍은의 친오빠, 탁지부대신 홍진이 이하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정말 귀한 자리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오늘 회의에서 그저 훌륭한 결론이 도출되길 바랄 뿐입니다.”
오랫동안 탁지부대신을 맡았다가 송화상단 대방(회장)으로 복귀한 김명신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송화상단 계열의 고려해운 사장 김예신, 고려상단 대방 김덕신, 송화섬유 사장 김선신 등 그의 친동생과 사촌 동생들도 모두 자리했다. 아울러 다른 상단 대방과 주요 계열사 사장들도 참여해 회의실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전황은 어찌 되어가는지요?”
피오상단의 대방 책인호가 물었다. 그는 중추원 의장 책덕현(첨터허)의 아들이었다.
“승승장구하고 있어요. 북부와 중부, 남부 전선 모두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지요.”
이하륜은 전황에 대해 간단히 알려주었다.
“의정대신님. 혹시 전비가 부족하진 않습니까?”
함강상단 대방 유삼순이 물었다.
“괜찮습니다. 아시다시피 예전부터 전쟁을 준비했던 터라. 또 재정도 풍족한 편이고요.”
홍진이 이하륜을 대신해 대답했다.
발해의 재정이 풍족한 건 당연히 세금이 잘 걷히기 때문이었다. 나날이 성장하고 있는 상공업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흥청거렸다. 또 그에 비례해 세수도 풍족해졌다. 여기에 더해 평안부의 운산과 대유동, 홍제부의 사도섬 광산에서 엄청난 양의 금이 채굴되고 있어, 발해 재정은 이런 대규모 전쟁도 여유롭게 치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했다.
“자, 그럼 본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하륜이 회의 개회를 선언하자, 먼저 홍진이 나서서 정부 정책을 발표했다.
“민영 상업은행의 설립과 관련해, 정부가 제시한 몇 가지 원칙만 지켜준다면 허가하지 않을 이유가 없소. 그 원칙의 첫 번째는 특정 자본이 이 은행을 지배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 상단협의회의 의견을 들어 볼까요?”
오늘 이 회의를 요청한 단체가 바로 상단협의회였다. 이들은 민영 은행 설립 허가를 요청하기 위해 이 협의회를 결성했고, 그간 탁지부와 부단히 접촉하며 의견을 나눠 왔다.
상단들이 상업은행 설립에 열성인 이유는 사업 자금의 융통을 더 쉽게 하기 위함이었다. 발해의 영토는 나날이 늘어 가고 있고, 그에 따라 시장도 넓어지고 있었다. 또 상단들 대부분이 대외무역에도 맛을 들여, 해외시장까지 눈독을 들이게 되었다. 아울러 계속해서 새로운 상품이 개발되어 나옴에 따라, 새로운 산업도 생겨나고 있었다. 이런 호황기에 국영은행인 고려은행이 홀로 상단들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하기에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또한 두 번째 국책은행인 농업은행, 즉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은행이 곧 출범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상인들을 위한 자체 은행을 설립하자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홍진의 요청에 협의회 총무를 맡은, 북청상단의 이덕은이란 자가 나서서 답변했다.
“20개 단체가 지분 참여하기로 약정했고, 같은 상단 계열사 지분 합계가 1할을 넘지 못한다는 규정도 만들었습니다. 아울러 나라 또한 1할 5푼의 지분을 가져갈 수 있게 하여, 정부가 은행 경영을 감사하고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첫 민영 은행의 자본금은 100만원 정도로 책정되었는데, 여러 업체는 물론이고 정부도 일부 출자해 부분적으로 공공성을 담보하기로 했다.
“두 번째 조건은 대출과 예금 이자를 은행 자율로 결정하되, 중앙은행의 지급 준비율이나 정기 감사 제도와 같은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점 동의하시오?”
“그렇습니다. 대신님.”
“또한 민영 은행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곧 여러 중소상단이 출자해 만들어질 두 번째 민영은행도 설립된다는 점도 알고 있소? 이 은행 역시 조정에서 지원할 예정입니다만.”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자, 그럼 투자자들이 합의서에 서명하는 절차를 진행하기로 합시다.”
20대 상단 이내에 속하는 상단이 출자해서 만들어질 이 첫 번째 은행의 상호는 ‘상업은행’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20대 바깥의 중소 상단 역시 50만원 정도의 자본금으로 ‘기업은행’을 설립하기로 하고, 설립 절차에 들어가 있었다.
이 은행들이 모두 설립되면, 국책은행으로 고려은행과 농업은행이, 민영 은행으로 상업은행과 기업은행이 경쟁하며 영업하게 된다.
출자사 대표들은 차례로 앞으로 나와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 합의서에는 회사별 출자금 약정 액수와 은행 설립 조건 등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자, 이하륜이 나서서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다.
“앞으로 3년 후에 증권거래소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지금 탁지부에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요. 그러니 여러분도 탁지부의 설명을 듣고 참여 여부를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단 대표들은 증권거래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탁지부가 그간 정보를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증권시장의 역사는 매우 뿌리가 깊었다. 현재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1610년 설립)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다.
발해 역시 증권거래소를 개설하기 위해 금융 제도를 정비 중이었는데, 민영 은행의 설립도 그 일환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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