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한성부를 얻다
한성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한 안국방 거리.
그간 수유 고개에서 활동하던 제3군단 특임대 대대장 정권 부령과 대원들은 보부상으로 변장한 채, 도성 내에서 잠입해 있었다. 이들은 특수 임무를 수행하고자 며칠 전부터 한양에 들어와 있었다.
정권 부령은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어 계속 눈을 끔벅거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거리의 군중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이래? 도성을 버리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거 혹시 우리가 밤새 붙인 벽보 때문인가요?”
중대장 추경운 정위가 말했다.
“효과가 없다고는 볼 수 없겠지?”
“억! 진짜, 저놈의 가짜 왕도 궁을 나서네요.”
워낙 급하게 피난을 떠나는 길이라 능양군은 대가를 타지 않고 말에 오른 채 돈화문을 지나고 있었다.
“정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군. 왕위를 찬탈한 능양군 세력도, 조선도. 쯧쯧!”
정권 대대장은 혀를 끌끌 찼다.
능양군 세력은 삭녕에서 회군한 오천여 병력으로 도성을 장악하고 정권을 잡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현 국왕을 놓친 데다, 어느새 국왕 세력이 철원 방면군을 접수하고 도성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에 대응코자 국경 병력을 불러들인 게, 또 다른 화근이 됐다. 결국 발해군까지 한양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정권 대대장은 도성으로 들어온 이후, 매일 밤, 능양군 세력을 멸하기 위해 발해군 5만 대군이 도성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내용의 한글 벽보를 곳곳에 붙였다.
그런데 이러한 여론몰이 전략이 운 좋게도 현 사태를 일으키는 방아쇠로 작용했다. 실제로 발해군이 오고 있고, 여기에 더해 현 국왕군마저 도성을 향해 오고 있으니 집권 세력의 불안감은 이미 폭발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그런데 공작 차원에서 붙인 벽보 내용이 주민과 병사들 사이에 퍼지면서 결국 도성 전체에 혼란을 불러오게 되었다.
원래 능양군 세력이 철저히 숨겨 온 정보였다. 앞으로 도성 안이 전쟁터가 되는 건 불문가지였기 때문에 이런 소문이 퍼지면 내부부터 무너질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결국 이 기밀이 시중에 풀리자 우려했던 대로 주민들의 대탈주가 시작되었고, 병사들도 몹시 동요해 군복을 벗고 주민 사이에 숨어 버렸다. 결국 병사들마저 대거 흩어지자 능양군 세력도 도성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능양군과 그를 따르는 장졸들이 향하는 곳은 당연히 남문인 숭례문이었다.
“남은 병력이 고작 2천이군.”
“그러네요. 저 군사 가지고 뭘 어쩌겠다고.”
“북쪽에서 내려오는 애들과 합칠 생각이겠지.”
“그게 어디 쉬울까요? 우리 군과 싸워 봤자 상대가 안 될 테고, 거기다 현 국왕군도 있잖아요? 그렇게 패배할 게 분명한 상황에서 어느 병사가 목숨 걸고 싸우겠습니까?”
“맞아. 빤한 결과지.”
“그런데 왜 저들은 내려놓지 못할까요? 이미 완전히 기운 상황인데요.”
“남쪽으로 도주하면 살 방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허허! 그렇군요.”
“자, 능양군 세력이 빠져나갔으니 우린 돈의문으로 가자.”
“예, 대대장님.”
이들이 돈의문(서대문)으로 향하는 이유는 발해군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북부에서 능양군 병력을 추적 중인 제7사단과 제8사단에서 기병 4천을 먼저 파견했기 때문이다.
남하하던 능양군 병력이 양주 북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트는 등, 다소 지체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아예 이들을 앞질러 가서 도성을 먼저 점령하겠다는 연락이 이들로부터 온 바 있다. 그래서 한성부의 민심을 혼란케 하는 작전도 동시에 실행했는데, 기가 막히게 들어맞은 것이다.
* * *
현 국왕군이 수유 고개에 이르렀을 무렵, 도성 상황을 정탐하고 온 정찰병이 급보를 전했다.
“헉! 도성을 후발해군이 점령했다고?”
이이첨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정찰병을 바라보았다.
“어, 어쩌다…….”
정찰병은 그간 한양에서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저 역적들은 파렴치한데다 무능하기까지 하군.”
국왕은 체념한 듯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후발해군이 결국 어부지리를 취한 셈입니다. 휴! 기병 4천을 먼저 보내 빈 도성을 점령할 줄이야.”
정인홍도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고양 쪽으로 향한 8천여 역도 무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요?”
기자헌이 이이첨에게 물었다.
“도성이 이미 후발해군에 점령당한 상황이고 북쪽에서 후발해군이 뒤쫓고 있으니까, 연기처럼 흩어질 겁니다. 아니면 후발해군이 직접 처리하겠지요.”
능양군 세력의 8천여 병력에 대한 걱정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스스로 흩어지든, 발해군에 의해 해산당하든, 이제 국왕군과 상관이 없게 된 것이다.
이이첨의 말을 끝으로 국왕을 비롯한 수뇌부 모두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곧 9월을 앞두고 있어, 하늘은 더없이 높고 맑았다. 상큼한 솔 내음이 바람에 실려와 사람들의 코끝에 와 닿았다.
국왕은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허! 전엔 왜놈한테 도성을 내주었는데, 이번엔 역도에게, 또 후발해에게 내줬구려. 자! 이제 우린 어디로 가야 하오? 이번엔 북쪽이 아니라 남쪽인가?”
“예, 전하 남쪽으로 파천하시어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정인홍이 바로 대답했다.
“남쪽 어디? 충청도로? 아니면 호남으로 가야 하오?”
“예, 일단 충청도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인홍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전하! 일단 역적 무리부터 잡아야 합니다. 저들 병력이 고작 2천이라고 하니, 기병을 보내 추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래야지. 다른 건 몰라도 역적 놈만큼은 반드시 잡아야지.”
국왕은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저들이 명나라 편에 서서 설치지만 않았어도 반 토막이 난 영토라도 보존하고, 조선의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동족이 상잔하는 상황을 태건이 극도로 꺼린다는 점을 이미 파악했기 때문에 발해가 힘으로 밀고 내려올 일은 없었다. 그래서 개혁을 가속화하고 민심을 다독이면 조선 왕조를 지킬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러나 진짜 적은 내부에 있었다. 그들을 제어하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전하! 일단 광주로 길을 잡겠나이다. 거기서 수원과 진위를 거쳐 충청도로 향하는 게 좋겠습니다.”
정인홍이 생각을 정리해서 고했다.
“그렇게 하시오.”
“그나저나 후발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기자헌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정인홍에게 말했다.
“한성부를 점령했으니 당장 우릴 쫓진 않겠지. 그러나 우리 병력도 흩어지면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모두가 뜬구름 잡는 얘기일 수밖에 없었다.
* * *
“허허! 이거야 원. 이걸 장관이라고 해야 하나?”
제2작전사령관 김무정 대장은 요양성 남쪽에 있는 산봉에 올라 전장을 조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허탈합니다. 저들이 요양을 포기하고 떠나길 바랐는데, 또 여기서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겠군요. 아무리 적병이라고 하지만 참상을 보는 것도 이제 그만했으면 했는데.”
사령부 부장 민수호 참장이 속내를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 심정, 나도 마찬가지일세. 연산관이 그랬지. 아니 개주 전투 역시 끔찍했다더군.”
“거긴 두 번이나 전투를 치렀으니까요.”
“저 물줄기가 천문하라고 했지?”
김무정이 손을 들어 가리킨 물줄기는 명이 ‘태자하’라 명명한 강이었다. 요양성 북쪽을 흐르는 요하의 지류로 꽤 큰 강이었다.
이 강을 훗날 청은 ‘대자하’라 칭했는데, 이 강의 발원지가 천문령이라 태건이 이를 천문하라 변경한 것이다.
“예, 우리 지도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근데 명군의 배치 상태가 조금 이상하군.”
“아무래도 병력이 8만이나 되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가?”
요양성에 집결한 명의 병력은 무려 8만이었다. 기존 6만 병력에 북부의 여러 거점, 즉 개원과 철령, 심양을 지키던 병력은 물론, 서부 광녕에서도 원군을 보내줘 8만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대군이 모이자, 명군 경략 양호는 병력을 둘로 나눠, 3만을 요양성에, 나머지 5만을 요양성 서문의 서북쪽 벌판에 배치했다.
“더구나 저 북쪽의 천문하를 보게. 가교 여러 개가 놓여 있지 않나?”
“역시…….”
“자네 생각도 나와 같은 모양이네?”
“예. 퇴로를 확보하느라 저리 배치한 듯합니다. 최대한 여기서 버티다 전세가 불리해지면 바로 다리를 건너 저 천문하 북안을 따라 광녕으로 후퇴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후후! 잔머리깨나 굴렸군.”
명의 대군과 맞서는 발해군 병력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후방에 예비군 제17사단만 남겨 둔 채, 제2작전사령부에 소속된 5개 사단을 동원한 것이다. 이들은 현재 요양성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둘러싼 형태로 포진하고 있었다.
“아예 사단 하나를 서쪽으로 우회하게 하여 저들 퇴로를 막을까요?”
민수호 참장이 물었다.
“아니네. 퇴로를 열어 주는 게 좋겠어. 저 성의 동서쪽은 평지 아닌가?”
요양성은 미래의 요양시 시내에 있지 않고 그보다 동쪽에 자리해 있었다. 그래서 허허벌판이 아닌, 남쪽과 북쪽이 산지로 막혀 있고 천문하가 흐르는 동서 방향이 트여 있는 형국이었다.
“양쪽 퇴로를 다 막을 수도 없고, 또 막히면 저들이 퇴로를 열려고 기병을 동원해 목숨 걸고 덤벼들 거네. 그러면 우리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 상태로 공격에 들어가는 게 좋겠군요.”
“그러게. 일단 계획대로 요양성부터 공격하기로 하지.”
“아, 깃발 신호가 오르기 시작합니다.”
포진을 마치면 각 사단사령부에서 깃발로 신호를 주기로 했는데, 그 신호가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민수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기구에서도 같은 보고가 들어왔다.
이윽고 5개 사단 모두 포진을 마쳤다는 신호가 들어오자 김무정은 곧바로 공격 명령을 발했다. 그의 명령을 받은 군단사령부 직할 화포연대는 즉시 포격을 개시했다. 이 포격이 바로 공격 신호인 셈이었다.
퍼퍼펑! 퍼퍼펑!
이제 전장은 또다시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발해군의 포탄은 모두가 요양성으로 향했다. 서문 부근 벌판은 다음 차례였다.
해자가 깊고, 성벽도 높고 튼튼하기로 유명한 요양성도 5개 사단 소속 화포부대들이 일제히 포탄을 날리자 금세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성내는 물론이고 성 밖 해자를 따라 진지를 구축하고 대기 중이던 병력도 무사할 수가 없었다.
명군 장수 중에 발해군의 화포 성능을 고려하면 오히려 수성전이 더 불리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가진 이도 있으나, 생각의 관성은 어쩔 수 없었다. 요양성이 워낙 튼튼하다는 점도 이 의견을 무시하게 했다. 그래서 그 대가를 지금 명군은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계속되는 포격에 견디다 못한 명군은 결국 성문을 열고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김무정은 곧바로 다음 명령을 발했다.
이 명령 역시 작전사령부 소속 화포부대가 먼저 수행했고, 이를 다른 부대들이 따랐다. 이제 포탄은 성만이 아니라 서문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명군도 노리고 날아갔다.
“저들은 아직도 우리 화포의 사거리를 파악 못한 모양이네. 저 서문 북쪽 벌판에 포진하면 우리 포탄이 닿지 않을 거라 판단한 모양이야. 그러니 거기에 5만이나 배치했지.”
“저들은 끝내 알 수 없을 겁니다. 우린 늘 유효사거리보다 더 안쪽에서 공격했으니까요.”
“후후! 그랬지.”
결국 명군은 병력의 4할이나 잃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무정은 전군을 전진시켜 요양성을 점령하게 했다. 아울러 기병을 활용해 적병의 수를 줄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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