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담판 (1)
후금의 수도, 골민알라.
요하의 지류, 여허하가 흐르는 계곡에 세워진 이 성은 여허국의 수도였던 만큼 꽤 크고 견고했다. 또 송눈평원의 경계가 되는 동남쪽 산지의 계곡에 자리해 있어 지형적인 면에서도 방어에 꽤 유리한 편이었다. 그래서 여허국이 수도를 송눈평원이 아닌 이곳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유리한 지형이 다른 측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다. 여허하가 동북에서 서남 방향으로 거의 직선 형태로 흐르고 있고, 이 여허하의 침식 작용으로 인해 길고 긴 계곡 지형이 생겨났는데, 문제는 이 계곡의 양편이 막히면 독 안에 갇힌 쥐 신세가 된다는 점이었다.
더구나 정복지와 귀순 지역의 주민을 데려오는 일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누르하치 덕분에 이 계곡이 후금 최대의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전황이 불리할 경우, 주민 피난 대책까지 마련해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된 것이다.
누르하치는 입성하자마자 궁궐로 가지 않고 남문 성루에 올랐다. 조바심이 났기 때문이다.
골민알라는 수도답게 꾸준히 성이 확장되어 구릉지에 있는 기존의 산성(여허나라성)에 평지성이 더해져 2개 성이 결합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궁궐은 당연히 평지성 내에 있었다.
“빨리 남문과 북문 진지 앞에 목책을 설치하라 이르라.”
누르하치는 곁에 서 있는 피옹돈에게 지시했다. 피옹돈이 성루를 내려가자 장남 츄잉이 물었다.
“서부와 동부 산지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생이 이미 그렇게 조치했다는군.”
골민알라에 남아 있던 슈르하치는 누르하치의 지시에 따라 이미 골민알라 방어 대책을 마련해 둔 상태였다.
“예? 제 눈엔 보이지 않는데요?”
“당연히 안 보일 수밖에. 먼 곳에 배치되었으니까.”
골민알라 산성은 이 계곡 지형 중간에 자리한 구릉지에 서 있어 시야가 꽤 넓은 편인데도 동부와 서부 산지에 배치되었다는 병력을 볼 수가 없었다.
“후발해 화포의 사거리가 그 정도입니까?”
“우린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발해와 명의 전투를 참관하고 온 자들이 상상 이상으로 멀다고 얘기해 주었다.”
“음, 그렇군요.”
성문 밖은 몹시 시끄러웠다. 후금의 대군 모두가 성으로 들어올 수도 없고, 또 그렇게 성에 갇혀서도 안 될 상황이라, 발해의 주된 공격로가 될 남문과 북문 쪽에 목책을 치고, 그곳에 많은 병력을 배치할 계획이었다.
정찰병들도 계속해서 성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보고를 들은 장수들이 성루로 줄줄이 뛰어 올라왔다.
“후발해 왕이 이끄는 병력의 선발대가 쌍령을 너머 위원보 부근에 이르렀답니다.”
태건이 이끄는 병력은 휘발성을 점령한 후,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을 막아선 병력도 없고, 중간에 자리한 성들 역시 모두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벌써 위원보 부근까지 왔다고?”
위원보는 명의 요동도사 지방과 후금 간 국경에 해당하는, 그래서 명의 방어 거점이 자리한 곳이었다. 명의 개원위 동쪽에 있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다.
“이틀이나 사흘 거리입니다. 본대까지 같이 오려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거리를 대충 계산해 본 안피양구가 말했다.
“그렇군. 참으로 빨리도 왔다.”
“그럼 후발해 왕이 네 사단을 모두 이끌고 오고 있느냐?”
“다소 변화가 있었습니다. 네 사단 중 하나가 중간에 서쪽으로 빠졌답니다. 아무래도 무순을 공격할 것 같습니다.”
동부와 남부에서 진격하던 발해군은 휘발성 부근에서 합류했다. 그렇게 해서 5개 사단이 합쳐진 대군이 되었는데, 이들 중 예비군 사단인 제18사단은 계획대로 보급로를 지키는 임무에 들어가 실제로 4개 사단만 움직이고 있었다. 또 제27사단은 평정하 ― 요하의 지류인 혼하인데 태건은 이 강의 명칭을 평정하로 바꿨다 ― 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 무순(푸순)을 점령한 다음, 심양까지 나아갈 예정이었다.
“그럼 동남쪽은 3개 사단이란 말이군.”
또 다른 장수가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다른 방면군의 동향에 대해 보고했다.
“후발해의 북부군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언제부터 병력을 나눴는지 모르지만, 두 사단이 서쪽으로 우회했고, 나머지 세 사단 중 선봉을 맡은 부대가 허르수성에 이르렀습니다.”
허르수성 역시 여허하 상류에 자리한 성이었다.
“뭐? 벌써 허르수까지?”
누르하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루에서 이틀거리입니다.”
다시 안피양구가 거리를 계산해 알려줬다.
“서부로 우회했다는 그 부대 위치는?”
누르하치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우리 골민알라 서쪽에 자리한 평원이랍니다. 저쪽입니다.”
장수는 서쪽을 가리켰다.
“놈들은 우릴 포위할 심산입니다.”
츄잉은 곧바로 발해군의 움직임에서 일관된 계획을 읽어 냈다. 그리고 또다시 치명적인 소식 하나가 더 전해졌다.
남쪽을 정찰하고 온 정찰병이 가져온 소식은 바로 명의 요양성이 함락되었고, 패배한 명군은 천문하를 건너 광녕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그래서 이들 중 2개 사단이 빠르고 치고 올라오고 있는데, 심양과 철령이 이미 발해군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철령까지 넘어갔다?”
철령 다음은 개원이었다. 개원에서 치고 올라오면 답이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방에서 옥죄어 오고 있으니 빠져나갈 혈로를 뚫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발해군을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다시피 한 츄잉이 싸우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아예 외면하고 안피양구를 바라보았다. 안피양구는 누르하치의 속내를 바로 읽어냈다.
“즉시 길을 떠나면 우리가 먼저 몽골화라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서쪽으로 빠져나가면 무사히 동몽골로 갈 수 있을 겁니다.”
몽골화라는 골민알라와 개원의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곳으로 후금이 중시하는 방어 거점 중 하나였다.
누르하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며 안피양구는 안절부절못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북쪽에서 다가오는 발해군이 더욱 무서웠다.
누르하치는 천천히 고개를 젓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이곳 골민알라 주민들은 언감생심이고, 군사들도 다 못 빠져나가겠지. 그렇게 도망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럼 싸우는 겁니까?”
츄잉이 기대감이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다. 싸워 봐야 개죽음이다. 내가 후발해왕을 만나 담판을 지을 것이다. 설령 저들이 항복을 강요하더라도 우리 전사들과 백성들이 무사할 수만 있다면 받아들이겠다.”
“아버지!”
츄잉이 버럭 소리 질렀다. 무례한 행위이긴 하나 그럴만한 사안이라 누르하치는 그저 빙긋 웃어 보였다.
“안피양구! 네가 후발해군과 동행 중인 홍타이지에게 가서 내 뜻을 전하라. 내가 담판 짓길 원한다고.”
“예. 알겠습니다.”
안피양구는 군말 없이 바로 길을 나섰다.
* * *
요동경략 양호는 소흑산에 이르자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발해의 포격을 견디다 못해 요양성을 나온 후, 허겁지겁 도주하느라 남은 병력을 제대로 점고할 틈도 없었다.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 요동 평원의 늪지대를 지나느라 다들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요하를 비롯한 여러 강을 건널 때는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어야 했다.
“겨우 4만밖에 남지 않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양호는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대패였다. 원래 16만이었고, 또 거기에 2만에 더해진 18만 병력이 이 전쟁에 동원되었는데 겨우 4만여 병력만 건졌다. 요양성을 나올 때는 5만에 가까웠는데, 힘든 행군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병사한 자, 이탈한 자가 많이 나와 이제 겨우 4만이 남은 것이다. 땅도 잃었다. 요동도사의 동부 지역 전체를 잃었고, 광녕과 의주, 반산, 금주 ― 요동반도의 금주가 아닌 소릉하 유역에 자리한 금주 ― 등 서부 지역을 지켜낼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광녕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전열을 정비하고 폐하께 장계를 올리시지요.”
원임총병관 관병충이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장계란 말을 들으니 벌써 두려워지는군.”
“휴! 어쩌겠습니까?”
관병충은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대로 귀환하면 패배의 책임을 물어 참수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도주할 수도 없다. 도주하면 자신의 가족들이 무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 후군도 도착했군.”
후미에 뒤처져 있던 후군 대장 이여백이 군사들을 이끌고 소흑산에 합류했다. 이여백은 부친 이성량을 비롯해, 동생 이여매 등 일가붙이를 모두 데려왔다.
이여백은 곧바로 양호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동쪽으로 정찰병을 풀어 적군의 움직임을 파악해 왔는데, 2개 사단이 우리 뒤를 쫓고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추격군을 편성했군.”
“하지만 저들 이동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화포 때문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발해군은 신형 견인포까지 끌고 오느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극악한 요동 평원 지형이 발해군의 행보도 방해한 것이다.
조선의 사신단도 육로 중 남로, 즉 요양에서 해주와 우장성을 거쳐 반산과 광녕에 이르는 경로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땅이 질어 몹시 고생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사행로 이남 지역의 땅은 뻘밭에 가까운 상태라 볼 수 있다.
북로는 요양에서 심양까지 북상한 후, 거기서 빙 둘러 광녕으로 가는 길인데, 꽤 많이 우회하다 보니 거리가 늘어나는 단점이 있었다. 이 남로와 북로 사이에 군데군데 습지가 많아, 혹자는 이곳을 요택이라 비정하기도 했다. 명군이 지나온 경로가 바로 그곳이었다.
“2개 사단이라 한결 낫긴 한데…….”
양호는 발해군 1개 사단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2개 사단보다 더 많은 병력을 상대해 봤던 터라,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후금 소식은 들은 바가 없소?”
“있습니다. 그들 역시 골민알라로 후퇴 중이라고 합니다. 북쪽은 안전한지 정찰병을 보냈는데, 원정 나갔던 누르하치마저 후퇴해 귀환 중이란 정보를 얻어들었습니다.”
“그러면 후금을 공략하던 적군이 광녕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지 않나?”
“그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거류하 쪽으로 압박해 들어올 수도 있겠지요.”
이여백이 지칭한 경로가 바로 조선 사신단의 사행길 북로였다.
“그렇다면 광녕이 교두보가 될 수는 없지.”
“맞습니다. 빨리 전령을 금주로 보내 소릉하 남안에 진지를 구축해 두라고 지시하시지요.”
“미리 준비해 둬서 나쁠 건 없지. 알았네.”
양호와 이여백은 광녕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광녕 주둔군마저 탈탈 털어 요동성으로 데려온 덕분에 광녕이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금주는 달랐다. 성도 튼튼했고, 소릉하란 천연의 방벽이 있다. 또한 산악 지대가 해안가 부근까지 뻗어 있어 통로가 비좁다는 이점도 있었다.
“그럼 너무 많은 땅을 내주게 되는군요.”
“너무 많은 정도가 아니지. 요동도사 전체가 넘어간 셈이니까.”
“금주에서 적의 진격을 막아 낼 수만 있다면 조금은 만회되려나?”
전장에서 살아나고 보니 이제 처벌을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양호는 이제 발해군보다 명 황제 만력제의 심기를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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