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천하 삼분지계 (2)
누르하치가 홍타이지에게 물었다.
“발해왕과 의견을 충분히 나눴다고?”
“그렇습니다. 오늘 저와 얘기한 다음, 내일 발해 태왕을 만나셔도 됩니다. 이미 태왕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누르하치는 홍타이지가 태건을 높여 부르는 걸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항복을 강요하더냐?”
“그게 조금 복잡합니다. 우리가 먼저 명과 손을 잡고 침공한 건 사실이니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지요. 그 부분에 대해 분명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후! 각오했던 바다. 나라를 바치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었지.”
누르하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넋두리하듯 말했다. 그러다 홍타이지의 표정이 무덤덤하다는 걸 느끼고 이를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그런데 네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구나?”
“발해 태왕의 뜻이 꽤 깊었습니다. 분명 책임을 묻긴 하겠으나, 도움도 주겠답니다.”
“답답하구나.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빨리 풀어 보거라.”
“예. 아버지.”
홍타이지는 누르하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누르하치는 아들의 표정으로 보자, 자신이 어려운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땅을 많이 내놓아야 할 겁니다.”
“휴! 그러면 그렇지.”
“일단 발해 태왕은 요하를 기준으로 삼자고 했습니다. 이는 서요하와 사르모론강까지 포함됩니다.”
서요하와 사르모론강은 연결된 물줄기이기에 이를 따라 선을 그으면 국경선이 매우 단순화되어 좋은 측면이 있다.
요하의 경우, 미래에 중국이 제방 공사를 통해 요하 하구를 지금보다 서쪽에 자리한 쌍태자하로 돌려놓았지만, 현재의 요하는 그보다 동쪽에 있는, 미래의 영구를 통해 요동만 바다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또한 대평원을 흐르는 강이다 보니, 요하 물줄기는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그럼 우리 만주인의 터전은 물론이고, 구왈차와 호르친까지 모두 빼앗겠다는 거 아닌가?”
누르하치는 자신의 처지를 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지금 나라를 잃을 상황입니다. 그깟 영토가 문제입니까? 저들이 원하는 땅을 다 내준다고 해도, 우린 요동 서부와 동몽골 일부, 그리고 남몽골 땅이 있습니다.”
“그, 그래. 알았다.”
“그리고 북쪽 국경을 힝간산맥 능선으로 삼잡니다.”
힝간은 여진어로, 대흥안령산맥을 이르는 말이다. 대흥안령산맥 능선이 국경선으로 정해지면 후금 영토의 북방 경계는 송눈평원이 아닌 할하몽골 동부가 된다.
“그렇긴 해도, 너무 억울하구나. 우리 만주족의 터전을 모두 빼앗기다니.”
누르하치의 눈이 어느덧 살짝 젖어 있었다. 또 분노와 수치심으로 인해 흰자위는 붉게 물들었다.
“또 하나 있습니다. 화내지 말고 들으십시오.”
“휴! 그래.”
“패전에 따른 예의를 차려야 한답니다.”
“이를테면?”
“태왕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합니다.”
“뭐라? 무릎을?”
누르하치의 얼굴이 벌게졌다.
“항복하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사과하고 끝낼 수만 있다면.”
태건은 병자호란 때 조선이 당한 치욕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고, 앞으로 그럴 일도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그런 번거로운 절차 자체를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그러나 먼저 발해를 공격한 후금을 굴복시켰다는 상징적 절차도 필요해 누르하치가 태건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의식 정도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 후의 절차는?”
“바로 형제국으로 대해 주겠답니다. 우리가 아우가 되는 셈이지요.”
“무릎 꿇고 사죄하고, 그다음은 아우가 되어야 한다니 다소 가혹하구나.”
“아버지.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만주 대부분을 발해에 넘기는 대신 우리보고 중원을 차지하랍니다.”
“주, 중원?”
누르하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산해관을 넘으라는 거죠.”
누르하치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사실 중원으로 치고 들어가는 건 만주를 통일하는 것만큼 누르하치가 염원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내 태건의 속내를 눈치채고 화를 냈다.
“이이제이 전략이군. 우릴 이용해서 명의 힘을 빼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항의했습니다. 그랬더니 발해 태왕이 충분한 도움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도와줘? 뭘?”
“지금 발해군은 이미 광녕을 점령했습니다.”
“벌써 광녕을? 빠르기도 하군. 잠깐! 과, 광녕 얘긴 왜? 아! 그래서 네가 요동 서부라고 한 거로구나.”
누르하치는 홍타이지의 말에서 의아하게 여겼던 점을 바로 끄집어냈다. 아울러 그와 동시에 태건의 속내도 알아챘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그럼 요하 이서 지역을 발해가 공략해 우리에게 넘겨준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음, 이건 놀라운 제안인데?”
요동평원의 절반을 준다는 건 꽤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비록 요동평원의 대부분이 미개간지라 습지도 많고 홍수에 시달리기도 하나, 워낙 기름져 잘 가꾸면 곡창지대가 될 땅이었다. 그런 가능성을 누르하치도 잘 알고 있었다.
“인구를 부양하기에 요하 유역만큼 좋은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호르친 땅도 대평원이나 북쪽에 있어 춥고, 또 초원에 가까운 곳입니다. 그에 반해 요하 유역은 농경지로 가꾸기에 매우 좋은 곳이지요.”
누르하치는 명의 요동도사 땅을 발해가 모두 차지할 거라 착각했다. 그렇게 되면 후금은 만주 땅 대부분을 잃게 된다. 그러나 발해가 요하 이서 지역을 할양해 준다면 후금은 여전히 만주 일대에 발을 걸친 나라가 된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누르하치가 관심을 보이자 홍타이지의 목소리가 더욱 밝아졌다.
“화승총과 화포, 포탄, 화약에 교관까지 지원해 주겠답니다.”
“오오오! 화포를?”
누르하치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화약 무기의 보유 또한 그가 염원하던 바였다. 발해는 언감생심이고 명을 치고 싶어도 화약 무기가 두려워 미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발해와 이미 싸워봤기에 화약 무기의 위력을 알았고, 더 절절하게 원하게 되었다.
“물론 저들이 이번에 쓴 신형 화포가 아니라 구형 화포랍니다. 울라성 전투에서 봤던 거요.”
“그렇겠지. 그래도 그게 어디냐? 근데 그 화포 이름이 뭐라고 했지?”
“공성포와 자모포랍니다. 자모포는 명군도 쓰는 화포지요.”
자모포(불랑기)는 명군의 주력 무기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공성포, 즉 홍이포는 아직 명군이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은 6년 뒤인 1618년에야 홍이포를 도입하게 된다.
“그럼 그걸 어떤 방식으로 지원한다는 건가?”
“초기 인도분은 무상으로, 산해관을 넘으면 유상으로 공급한답니다.”
“허허! 좋군. 돈을 주고 구할 수만 있으면 된 거다. 우린 그간 그걸 구경도 못 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또 있습니다. 아주 큰 선물이지요.”
“선물?”
“사람입니다.”
“사람? 그렇다면 지난번 울라처럼..”
“예, 맞습니다. 우리 영토에 사는 모든 주민을 데려가랍니다. 아울러 발해가 새로 점령한 명의 요동 지역에 거주하는 만주인과 몽골인, 한족 주민도 그렇고요. 그러나 고구려, 발해, 조선계 주민은 데려갈 수 없답니다. 역으로 요하 서부 지역의 고려계 주민을 우리가 보내줘야 할 겁니다.”
“허허허! 놀랍군.”
누르하치는 어느덧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이거 전화위복일 수도 있겠는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우리 대금의 인구가 전쟁 전보다 대폭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요동에 거주하는 주민의 3할가량이 한민족, 즉 고려계 주민이므로 7할에 달하는 인구를 후금이 데려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만주 북부에 비해 남부 요동 지역의 인구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기에 누르하치가 대놓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럼 주민들을 요하 이서 지역에 정착시켜 땅을 개간하게 하면 되겠군.”
누르하치는 벌써 미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 * *
발해력 9월 30일.
결국 누르하치는 발해가 내건 모든 조건을 수용하기로 했다. 누르하치는 발해 측의 요청에 따라 왕족과 수하 장수를 모두 몽골화라로 불러들였다. 강화를 위한 공식 의례를 치르기 위함이었다.
태건은 몽골화라를 ‘융무’라 명명하고, 의례가 개최될 장소에 나무로 단을 쌓게 했다. 아울러 수많은 깃발을 꽂아 두었고, 그 주변을 정복을 입은 발해 장병들이 둘러쌌다.
누르하치의 동생 슈르하치와 그의 아들 아민, 그리고 누르하치의 장남 츄잉과 차남 다르샨, 5남 망굴타이, 8남 홍타이지가 행사장 우측 앞줄에 섰고, 그 뒤로 후금을 대표하는 장수들이 줄줄이 자리했다.
슈르하치는 이 행사의 의미를 알기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발해 장병들의 정복에 관심을 보였다.
“저들 옷이 특이하군.”
“그렇네요. 금빛 단추와 장식이 멋져 보이긴 하네요.”
아들 아민이 대답했다.
“저 언덕에 있는 게 저들 화포겠군.”
발해군이 오늘 연출한 분위기는 매우 위협적이면서도 화려했다. 그래서 후금 수뇌부들의 심사도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징이 한번 울리자, 갑옷을 벗은 누르하치가 먼저 행사장에 등장했다. 그는 양손을 맞잡고 단을 향해 공손한 자세로 섰다.
“형님…….”
슈르하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노와 굴욕감이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이다.
다시 장내에 장엄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군악대가 태왕에 예를 표하는 악곡을 연주하자, 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예복 차림의 태건이 등장해 단 위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누르하치는 곧바로 태건을 향해 무릎을 꿇은 다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민수호 참장과 벌이대 소장이 고려어와 동해어로 누르하치가 직접 쓴 사과문을 번갈아 가며 낭독했다.
처음 발해 말이 들릴 때는 영문을 몰라 하던 슈르하치는 곧이어 익숙한 여진어가 들리자 결국 눈물을 쏟아 냈다.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는 짧은 내용인데, 자신을 명 황제와 동등한 황제로 여기던 누르하치가 무릎 꿇고 사죄하는 사실 자체가 굴욕이기 때문이다.
“저, 저 그림이라도 그리지 않았으면…….”
아민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태건 곁에는 화원들이 앉아 이 장면을 열심히 그림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 또한 굴욕이었다. 이 장면이 대대손손 전해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태건은 단에서 내려와 누르하치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단에 올라가 준비된 의자에 앉혔다.
태건은 나직이 누르하치에게 말했다.
“참느라 고생하시었소.”
“괜찮습니다.”
“어제 얘기 나눈 대로 이제 사이좋게 지냅시다. 교역도 재개하고요.”
“고맙습니다.”
교역이 재개된다는 사실 역시 누르하치를 기쁘게 했다. 이제 명국보다 발해와 교역해서 얻는 이득이 더 클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 군이 소릉하까지 진출했어요. 그러니 이제 그 전선을 귀국 군이 인계받으시지요. 무기와 교관도 곧 보내 주겠소.”
“예, 고맙습니다.”
누르하치의 표정이 많이 풀렸다. 치욕적인 절차가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선물만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오늘 행사와 함께 요동 전쟁은 완벽하게 종식되었다. 그 결과 발해의 북방 영토는 두 배로 늘어나, 명실상부한 영토 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전쟁의 마지막 과제로 조선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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